이태준, <복덕방>
이 글에서는 복덕방에서 일하고 있는 세 노인이 나온다.
서 참의가 주인으로 있는 복덕방에는 매일이다시피 안 초시와 박희완 영감이 나와서 함께 지낸다. 서 참의는 구한말 군관 출신이며, 합병 후에는 놀면서 심심파적으로 얻은 가옥 중개업을 하면서, 사람들의 도시진출로 호황을 누려 가회동에 수십 칸짜리 집을 세우고 얼마 후 땅도 장만하였지만, 지금은 그저 밥을 먹고 살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박희완 영감은 훈련원 시절 때 서 참의의 친구이다. 재판소에 다니는 조카를 빌미로 대서업을 한다고 일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노인이다. 그는 또한 대서소를 차리겠다며 국어 독본을 열심히 공부하는 늙은 영감이다.
안 초시 영감은 무용가인 딸에게 겨우 용돈이나 얻어 쓰는 처지로, 궁색한 생활을 하면서 조그만 농담에도 잘 토라지는 성미를 지녀서, 한번 토라지면 며칠 씩 복덕방에도 나오지 않곤 한다. 그러나 안 초시는 실상 세상에 대한 야심이 끓는 자이다. 그러나 딸은 각지로 공연을 떠나 번 돈을 조금이라도 줄만도 하지만 그럴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안 초시 영감은 돈 만 원이라도 붙들어 가지고 다시 한 번 세상과 교섭해 보고 싶어한다.
그러던 중 안 초시 영감은 박희완 영감으로부터 황해 연안의 축항 용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딸에게 말하게 된다. 딸은 관심을 보였고 정혼한 남자를 내세워 땅을 구입한다. 안 초시는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지만, 일이 제대로 되면 그 중에 얼마는 떨어질 것이라고 기뻐한다. 그러나 1년을 지나보니 헛된 꿈이었다. 그들은 속은 것이다. 안 초시 영감은 딸에게 봉변을 당하고는 실망한다. 단돈 오십 전을 얻기도 이제 어려워졌고, 때 묻은 적삼 소매를 보고 슬픔에 빠진다. 안 초시 영감은 결국 복덕방에서 음독자살을 하게 된다.
서 참의는 안 초시의 죽음을 딸에게 알렸고, 딸은 자신의 명예가 실추될 것을 염려해서 경찰에 알리지 말기를 간청한다. 서 참의는 딸이 보험에 든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죽은자에게 좋은 수의를 해 입히고 평생소원이던 속셔츠를 입혀 주라고 명령한다. 딸의 무용 연구소 앞에서 영결식이 거행되고, 딸 때문에 많이 온 조문객들의 분향이 끝날 무렵, 서 참의는 혼자말로 이제 죽었으니 이런 호사를 한다면서 걱정도 없으니 얼마나 좋으냐고 말한다. 박희완 영감도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영결식에 온 자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둘은 묘지에 가지 않고 술집으로 내려오고 만다.
이태준의 작품은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난 자들의 한을 서정적으로 그려내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보다 많은 노인들이 등장한다. 이 작품에서도 사회로부터 점점 멀어지는 노인들의 애처로운 삶을 잘 그려내었다. 세 노인이 함께 <복덕방>에서 지내면서 서로 다투기도 하고, 온갖 모습을 보여 주지만, 서로를 향한 애정이 밑바탕에 깔려 있는 것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으며, 이와 같은 서로를 향한 애정이 메말라 가는 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다. 그는 또한 사라져 가는 것,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이 작품에 포함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태준은 이런 주변인들의 애달픈 삶을 잔잔히 그려 내어 우리들로 하여금 삶의 진실과 애달픔을 일깨워주는 것 같다.
지금 나이가 젊은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노인이 되기 마련이다. 앞으로는 의학이 발전하여 100세 이상 숨이 붙어있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갈 것이다. 그럴수록, 우리는 꼭 미래를 준비하여 노인들에게 잘 배푼다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써 노인들을 보살피고 공경해야한다. 내가 선행을 하면 뒷사람이 그 모습을 보고 따르며 또 그를 지켜보는 사람이 선행을 하기 마련이다. 개개인이 조금만 더 남들을 생각한다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될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가 될 것이다.
<돌다리>
이 책은 김동인, 이효석과 함께 미문장의 대가로 평가받는 이태준의 동화 모음집이다. 고아와 거지 등 불우한 환경에 처한 인물들을 많이 등장시켰던 작가는 그들이 좌절하고 절망하는 모습과 고난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을 함께 그려 내어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창섭은 누이가 의사의 오진으로 죽자 농업학교로 진학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서울로 가서 의전에 들어가 의사가 된다. 그는 열심히 노력하여 맹장 수술 분야에서 최고의 권위자가 되고 병원을 운영하여 성공한다. 창섭은 병원을 확장하기로 하고 모자라는 돈을 고향의 땅을 팔아 채우고, 부모님을 서울로 모시리라 결심하면서 고향으로 내려오지만, 그 계획은 의외로 완강한 부친의 반대로 직면한다.
창섭의 부친은 동네에서 근검하기로 소문난 사람인데, 부지런히 일할 뿐만 아니라 논과 밭을 가꾸는 일에 모든 정성을 들이고, 동네 길들을 물론 읍내 길과 정거장 길까지 닦는 사람이다. 창섭이 고향에 도착했을 때 부친은 장마에 내려앉은 돌다리를 보수하고 있었는데, 창섭이 서울로 올라가자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그리고는 땅이란 단순히 사고 팔수 있는 대상이 아니며 후에 그 땅의 주인이 죽은 후에도 농토를 아무에게나 파는 것이 아니라 땅의 주인이 될 자격이 있는 사람, 즉 농부답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고 말한다.
부친은 창섭이 땅을 허술히 생각하고 있는 것에 가슴 아파하지만, 창섭은 자기 세계와 아버지 세계와의 결별을 체험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간다. 아버지의 충고와 같은 말에 창섭은 땅에 대한 아버지의 애착과 농부로서의 신념을 발견하고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선다.
이태준은 이 작품 속 아버지를 통해 땅이란 단순히 사고 팔수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작품 속에서 창섭의 할아버지이자 자신의 아버지. 그리고 그, 그들의 삶을 지탱시켜 주었던 것 역시 다름 아닌 땅이었고, 그런 그들은 땅을 위한 삶을 살아왔다.
따라서 그에게 있어 땅은 바로 삶 자체였던 것이다. 그는 작가를 대변해 아들 창섭에게 그리고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모두가 땅의 혜택을 받은 자로서 가장 바르게 살아가는 방법은 땅과 함께 즉 자연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것이라고.
임시방편적 나무다리가 편하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비록 무겁고 힘들지라도 돌다리를 고집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다고. 이는 환경 문제에 있어 가장 중요한, 그러나 우리가 너무나 쉽게 간과해버리는 것. 바로 자연과 우리가 하나라 느끼며, 늘 보살피고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인 것이다...
<해방 전후>
이 작품은 1946년 8월 문학가 동맹의 기관지였던 ‘문학’ 창간호에 발표된 단편 소설이다.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이태준 자신의 자전소설이라 할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의 해방을 전후한 행적과 함께 그가 북을 택한 이유를 어렴풋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내용은 이렇다.
일제 말기, 시국 문제에 협력하지 않고 버티던 작가 ‘현’은 더 이상의 시달림을 피해 철원으로 낙향한다. 그러나 낚시로 소일하는 그에 대한 감시의 눈초리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한 가지 원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김 직원’과의 만남이다. 그는 ‘현’의 가슴에 지사적 용모와 행동으로 뚜렷하게 새겨진다. ‘현’은 그를 우러러보기까지 하게 된다.
그와의 갈등은 해방이 되고부터이다. 8월 16일 서울의 친구 전보를 받고 급히 상경하면서 그는 해방의 소식을 듣는다. 17일 아침에야 서울에 온 그는 재빨리 문단의 주도권을 쥐려는 여러 문인 친구들의 계획에 참여하게 되고, 그들이 좌익 계열이라는 것을 알고도 주도적으로 나선다. 비록 소련에 대한 거부감이 있고, 대세에 밀려가는 자신의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지만, 영친왕을 모셔다 왕으로 섬겨야 한다는 ‘김 직원’의 논리에는 정면으로 맞서 자신의 주장을 편다. 자신의 해방 전 문학적 성향을 반성하기도 하고, 친일 분자들의 소행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김 직원’과의 결별이다. 강원도 산읍에서 그를 만났을 때, 시골 향교를 지키며 시국에 대해 자신보다 한층 저항적인 그에 대해서 ‘현’은 <상종한다기보다 모시어 볼수록 깨끗한 노인이며, 이 고을에선 엄격히 존경을 받아야 옳을 유일한 인격자, 즉 지사>로 인식한다. 그러나 해방 후 좌익 문인 단체에서 활동하면서는 그를 <돌과 같이 완강한 머리>혹은<이 세계사의 대사조 속에 한 조각 티끌처럼 아득히 가라앉아 가는>모습으로 파악한다.
그는, 해방이 끝났는데도 이런 싸움에 지겨움을 느껴서 다시 한내천으로 되돌아간다.
이 작품에는 일제 말기에 문학인으로서 느껴야 했던 갈등과 좌절의 과정이 드러나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지식인으로서의 성찰과 함께 ‘해방전후’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의 이데올로기적 선택에 관한 문제이다. 붓을 꺾고 낙향했던 주인공 ‘현’과 고향 마을 향교의 ‘김 직원’의 삶의 방식이 대조를 이루면서 현의 이데올로기적 선택을 정당화 하고 있는 것이다.
첫댓글 이제 드디어 작품에서 해방 이야기가 나오네요. 이번 방학동안에는 해방전까지 읽도록 합시다. 고생했어요. 속도를 늦추지 말도록!
千手 _()_ 대일 부처님 아미타불! 감사합니다. _()_ 아미타불!
그 카리스마 좀 한 수 알려주세요! _()_
대일님~ 많이 성숙해지셨군요. 대일님 마음도 또한 얼마쯤 해방되었으리라 싶어요. 무엇에 대한 해방일지는 잘 살펴보세요. 수고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대일님을 보면 제가 부끄러워지네요. 너무 열심히 해서 ㅋㅋ 이제 정말 못 따라가겠어요 ㅋㅋ
"태백산맥"이나 "아리랑"이 올라올 때가 되지 않았어요? 곧 방학 끝나가는데...^^*
대일님, 무진당님 모두 훌륭하십니다. 덕분에 해방 전후 지식인들의 모습을 생각해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_()_
대일 부처님 세권의 책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아미타불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