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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기] 보배섬 진도대금산조에 박종기님
○ 대금(大<금0x592A>), 저, 젓대 [그림보기]
황죽(黃竹) 또는 쌍골죽(雙骨竹)으로 만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로 부는 관악기(橫笛). 민요·산조·시나위 등을 연주하는 산조대금(또는 시나위젓대)와 궁중음악·풍류 등을 연주할 때 쓰는 정악대금(正樂大<금0x592A>)이 있다. 통일신라 때는 대금·중금(中<금0x592A>)·소금(小<금0x592A>)을 삼죽(三竹)이라 하였다. 오늘날의 대금은 길이는 82㎝, 지름 2㎝ 정도이며, 입김을 불어넣는 취공과 갈대의 속청을 붙이는 청공이 하나씩 있고, 손가락으로 막거나 떼어 음높이를 조절하는 지공 6개와 악기의 최저음을 결정하기 위하여 뚫어 놓은 칠성공이 한 두 개 있다. 취공(취구)에서 가장 가까운 지공부터 차례대로왼손 검지·장지·약지, 오른손 검지·장지·약지 순서로 짚는다. 대금은 취공 쪽 끝을 왼쪽 어깨에 올려놓고 불며, 음역(音域)은 2옥타브 반 정도이다. 운지법에 따라 근음과 제1배음(한 옥타브 위)과 제2배음(한 옥타브+완전 5도)을 활용한다.
대금은 비교적 음고(音高)가 안정적이어서 합주할 때 조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합주음악에 사용되며, 독주악기로도 널리 쓰인다. 정악대금은 길고, 산조대금은 조금 짧아 음이 높다. 반면에 취구는 산조대금이 넓어 표현력이 강하다.
가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로 대금, 중금, 소금의 삼죽(三竹) 중 가장 작고 음이 높다.
《악학궤범》에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이, 소금과 대금의 제도가 같다고만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모양과 음역이 비슷한 당적과 혼용되거나 당적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던 것이 1956년부터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의 교육용으로 대금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내는 악기를 제작하고 그 명칭도 소금으로 부활하였다. 오늘날의 소금은 대금과 달리 청공(淸孔)은 없고 지공이 6개이며, 사용하지 않는 허공(虛孔) 하나가 하단(下端)에 있다. 재료로는 황죽(黃竹) 또는 쌍골죽(雙骨竹)이 쓰이며, 길이 40㎝, 지름 2-3㎝ 정도이며, 하단의 내경이 약 1.4㎝인데 취구쪽으로 가면서 조금씩 좁아진다. 소금은 민속음악이나 민간정악에서는 쓰이지 않고 궁중음악에서만 사용되는데, 대부분 대금의 가락을 한 옥타브 높게 변주하여 연주한다. 최근에는 창작음악에서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 피리(<필0x7997><률0x5F09>, <필0x7991><률0x5F09>) [그림보기]
전통음악 연주에 사용되는 피리는 세 가지가 있다. 즉 향(鄕)피리·세(細)피리·당(唐)피리 가 그것인데, 세
가지 모두 관(管)에다 혀(속칭 서, 舌, reed)를 꽂아 세로로 부는 악기이다. 대체적인 모양과 구조는 같다. 호드기가 발달된 악기이며,
관대와 서(reed)로 구성되는 점에서 태평소도 같은 계통의 악기이다.
향피리(鄕<필0x7997><률0x5F09>), 대피리
향피리 관의 길이는 궁중음악과 민속음악이 쓰이는 것이 약간 차이가 난다. 서를 포함한 피리의 길이는 궁중음악용은 약 26.4㎝, 민요에 사용되는 것은 25.4㎝, 시나위에 쓰는 것은 25㎝ 가량이다. 지공(指孔)은 여덟이며, 음역은 두 옥타브 정도이나, 고음은 배음을 활용한다. 향토적인 느낌의 음색을 지니며, 음량이 커서 합주곡 연주에서는 전체적인 음악을 이끄는 역할을 한다.
세피리(細<필0x7997><률0x5F09>)
향피리와 거의 같으나 관이 가늘기 때문에 ‘가는 피리’ 즉 세피리라 한다. 관이 가늘어 작은 음량을 내므로 가곡(歌曲) 반주나 줄풍류(실내악)에 주로 사용 된다. 옛 문헌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20세기 이후에 개량된 것으로 보인다.
당피리(唐<필0x7997><률0x5F09>)
향피리와 모양은 비슷하나, 관이 더 굵고 음역이 다르다. 《고려사》 악지(樂志)에 의하면 지공(指孔)이 9개이고, 《세종실록》의 그림에도 9개인데, 그 중 2개는 뒷면에 있다. 그러나 《악학궤범》 이후 8개로 고쳐 오늘에 이른다. 음역은 황종(黃)에서 청남려(湳)까지 약 1옥타브 반 이상이다. 당피리는 당악인 <보허자 步虛子>·<낙양춘 洛陽春>, 당악계 악곡인 <보태평 保太平>·<정대업 定大業>·<여민락만 與民樂慢>·<본령 本令>·<해령 解令> 등의 연주에 사용된다.
○ 태평소(太平簫), 호적(胡笛), 새납(<쇄0x6719><눌0x5A6E>), 날나리, 호가(胡<가0x5337>) [그림보기]
겹서(double reed)를 관에 꽂아 부는 관악기의 하나. 악기의 구조나 취법으로 보아 피리계통의 악기이다. 조선 초기부터 궁중 의식음악에 부분적으로 사용되었으며, 대취타(大吹打)·농악·불교음악에 편성되었다. 관은 오매(烏梅)·산유자·대추나무·황상(黃桑)·황양(黃楊) 등 단단한 나무를 쓰고, 길이는 30㎝ 미만이며, 위는 좁고 아래로 갈수록 굵게 만든다. 지공(指孔)은 모두 8개인데, 위로부터 두 번째 지공은 뒤편에 있다. 갈대로 만든 작은 서(舌)을 꽂고, 반대편 끝은 나발 모양의 동팔랑(銅八郎)을 붙인다.
세로로 부는 관악기의 하나로 《악학궤범》 등 조선시대의 문헌에 기록이 전혀 없다. 다만 《백운암금보》에 단순히 ‘소(簫)’라고만 기록된 악기의 그림과 운지법, 악보가 소개되어 있어, 이 악기가 단소의 일종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불러일으킨다.
재료로는 오래된 황죽(黃竹)이나 오죽(烏竹)을 사용하며, 지공(指孔)은 위쪽 뒤편에 하나, 앞쪽에 네 개이나, 맨 아래 지공은 사용하지 않는다. 음역은 두 옥타브에 이르며 음색은 맑고 청아하다. 영산회상 등 풍류방 음악의 합주와 가곡(歌曲)·가사(歌詞)·시조의 노래 반주에 사용되었고, 최근에는 독주악기로도 널리 쓰이며, 산조도 연주한다. 초·중등학교의 교육용 악기로 주목받고 있다.
○ 생황(笙簧), 생(笙), 화(和), 우(<우0x6CB6>) [그림보기]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던 관악기의 하나로 몸통은 본래 바가지[匏]로 만들었으나, 요즈음은 나무로 만들고, 몸통 위에 가느다란 대나무 관을 꽂는데, 관의 아래 부분에 얇은 쇠청(金葉, reed)을 단다. 몸통에 붙은 취구에 입을 대고 숨을 내쉬거나 들여 마실 때 쇠청이 떨려 하모니카 비슷한 소리를 내는데, 동시에 두 소리 이상을 낼 수 있다. 옛날에는 죽관(竹管)의 수에 따라 화(13관)·생(17관)·우(36관) 등으로 구분하였으나, 조선 후기부터 17관의 생황이 주로 쓰이는데, 관 하나는 윤관(閏管)이라 소리내지 않으므로, 그 음역은 12율4청성이다.
삼국시대에 고구려와 백제음악에 사용된 기록이 보이며, 상원사 동종의 부조에도 보인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와 조선 초기에는 중국에서 들여오기도 하였으나, 세종 때에는 국내에서 제작하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에는 궁중의 제례의식에 사용되었고, 조선 후기에는 가곡 등의 반주에도 쓰였으나, 오늘날에는 독주악기로 사용되지 못하고 단소와의 2중주에 주로 쓰인다.
금속으로 만든 관악기의 하나. 길이 115㎝ 정도 되는 관의 모양은 취구(吹口) 쪽이 가늘고, 끝 부분으로 가면서 점점 굵어지며 맨 끝은 넓게 퍼져 있다. 때로는 두 도막으로 나누어 제작하여 불지 않을 때에는 밀어 넣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한 경우도 있다. 지공(指孔)이 없고, 관의 길이도 고정되어 있어 한 소리만 내며, 배음에 해당하는 몇 소리를 낼 수 있으나, 음악에 활용되지는 않는다.
옛날에는 군대에서 신호용으로 쓰이기도 하였으며, 대취타(大吹打)와 농악 등에 사용되는데, 특히 대취타에서는 나각(螺角)과 교대로 연주한다.
자연산 소라의 껍질로 만든 관악기의 하나. 큰 소라의 뾰족한 끝 부분을 잘라내고 취구(吹口)를 만들어 붙인 것이다. 따라서 크기 등에 대한 일정한 규칙은 없다.
고려 의종 때 임금의 행차인 위장(衛仗)이나 노부(鹵簿)에서 취라군(吹螺軍)이 불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궁중연례(宮中宴禮)와 군대음악인 대취타에 사용되었고,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의 <정대업 定大業>에도 쓰였다 하나, 지금은 대취타(大吹打)에만 쓰이고 있다.
한 음만 지속적으로 소리낼 뿐, 배음을 활용하지도 않는다.
고구려 때부터 현재까지 아악(雅樂)에 사용되는 관악기의 하나. 아래가 막힌 가느다란 죽관(竹管:대나무관)을 나무로 깎아 만든 몸통에 차례대로 배열한 팬파이프의 일종인데, 각 관의 위쪽을 단소의 취구처럼 파고, 거기에 아래 입술을 대고 소리낸다. 한 관에서 한 음만 낼 수 있으며, 빠른 템포의 음악을 연주하기 불편하다.
12관·16관·24관의 다양한 악기가 있었으나, 현재 쓰이는 것은 16관이며, 몸통의 모양이 봉황이 날개를 펼친 모습과 비슷하다하여 ‘봉소(鳳簫)’라 부르기도 한다. 아악 연주에만 사용된다.
대나무로 만들어 세로로 세워들고 부는 관악기. 위쪽에는 단소와 같은 취구를 파고, 지공은 6개이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맨 아래쪽은 대나무의 마디를 살려둔 채 십자모양의 구멍을 뚫었으나, 현재는 단소처럼 관통시킨다. 고려때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왔으며, 현재는 아악에만 편성된다.
흙으로 만든 관악기. 흙으로 속이 빈 큰 홍시모양의 악기 몸통을 만들고, 옆면에 모두 5개의 지공을 뚫는다. 《악학궤범》에 의하면 높이는 3촌7푼, 가운데 둘레 8촌, 밑바닥 지름 1촌7푼의 크기 이다. 지공은 앞에 셋, 뒤에 둘이며, 뾰족한 꼭지 부분에 취구를 만든다.
고려 예종 11년(1116)에 송나라에서 들여와 아악연주에 사용하였다. 음역은 12율이다.
○ 지(<지0x7380>), 의취적(義嘴笛) [그림보기]
대나무로 만든 가로 부는 관악기. 삼국시대부터 사용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고려 예종 때 중국 송나라에서 들여오기도 하였다. 오죽(烏竹)으로 만들며 지공은 5개이고, 취구에 별도의 대나무를 덧대어 만드는 점이 특이하고, 아랫부분은 대나무의 마디를 살려둔 채 십자 모양의 구멍을 뚫어 음높이를 조절한다. 아악에만 사용하며, 음역은 12율4청성(十二律四淸聲)이다.
조선 시대에 궁중아악에 쓰인 관악기. 《악학궤범》에 의하면 길이 1척1촌7푼의 오죽관(烏竹管) 두 개를 누런 생사(生絲)로 묶어 만든 ‘쌍관(雙管)’이다. 각각의 관에 6개의 지공(指孔)을 뚫으나 뒷구멍 하나는 쓰지 않아 실제로 짚는 구멍은 다섯이다. 관의 위쪽에 입을 대고 불어 소리낸다. 발음 원리는 서양의 리코더와 같으나, 현재는 실물도 전하지 않는다.
아악에 사용되는 관악기. 《악학궤범》에 의하면 내경 7-8푼, 길이 1척8촌2푼의 황죽(黃竹)으로 만들며, 단소와 같은 취구가 있다. 지공은 3개이나 다양한 운지법을 활용하여 12율을 낸다.
고려 예종 11년(1116) 중국 송나라에서 들어왔으며, 악기로서 뿐만 아니라, 아악의 문무(文舞)를 출 때 들고 추는 무구(舞具)로도 쓰였는데, 이 때는 길이 1척4촌 정도되는 것을 사용한다.
본래 중국에서 들어 온 가로로 부는 관악기. 《고려사》 악지(樂志)와 《악학궤범》 등 문헌에 자주 등장하고, 조선 말기까지 궁중음악에 널리 사용되었으며, 1950년대 중반까지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소금과 혼용되다가, 그 이후로는 소금으로 대체되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용되지 않으며, 1955년 이전에 쓰던 악기의 실물만 국립국악원에 보존되고 있다.
대나무로 만든 관악기. 관의 밑이 막히지 않고 통(通)하였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고려 때는 당악(唐樂)에 쓰였고, 《악학궤범》에도 당(唐)악기로 분류되었으나, 그 뒤로는 민속악(民俗樂)에 널리 사용되었다. 민속음악에 쓰이는 악기는 퉁애라고도 한다. 현재 쓰이고 있는 퉁소는 지공이 5개(뒤 1개, 앞 4개)이며, 취구와 지공 사이에 대금처럼 청공이 있다. 오래 묵은 황죽(黃竹)으로 만들며, 길이 55㎝, 내경이 2㎝ 정도이다. 시나위를 연주하기도 하였고, 특히 북청사자놀이의 반주악기로 유명하다.
대금·소금과 함께 통일신라의 삼죽(三竹)으로 불리던 가로로 부는 관악기. 황죽(黃竹)으로 만들며, 길이 65㎝, 지름 1.7㎝ 정도이고, 지공 6개와 음정 조절을 위한 칠성공이 있다. 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
《악학궤범》에만 기록된 가로 부는 관악기로 “소관자는 목동(牧童)에서 나왔다.”고 한 것으로 보아 민간에서 쓰이던 토속적인 관악기를 가리키는 것 같다. 오래된 황죽(黃竹)이나, 큰 새의 뼈로 만든다 하였으며, 길이와 제도는 일정하지 않다고 하였다. 《악학궤범》의 그림을 보면 취구 외에 지공이 셋 있다. 음역은 한 옥타브 보다 조금 넓었다. 현재는 실물이 전하지 않는다.
나무 잎사귀로 만드는 풀피리. 도피(桃皮)·귤나무 잎사귀·갈대 잎·화피(樺皮) 등 나무껍질이나 잎사귀를 입에 물고 불었던 토속적인 악기이다. 중국의 옛 기록에도 보이고, 《악학궤범》에 그림과 함께 소개되었으며, 현재에도 민간에서 더러 부는 사람이 있으나, 연주회용 음악으로는 잘 연주되지 않는다.
조선시대 궁중의 아악에서 사용되던 나발의 일종이다. 가늘고 긴 금속관으로 만들어 졌으며, 위 쪽에 취구가 있고, 아래쪽은 넓게 퍼진 입이 달렸다. 입부분에는 화려한 장식을 달았는데, 전체 길이는 2척6촌, 입의 지름은 4척5푼이다. 연향(宴享)에 쓰는 것은 은으로, 제향에 쓰는 것은 나무로 만들어 붉게 칠한다. 조선 후기에는 능행에도 쓰였으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좋은정보~~ 감사합니당~~~~ ^^*
잘보았슴다 근디 대금의 지름이 저가알기로는 3.2~3.5 정도로 알거덩요 내경지름이 1.5니 2센치면 살이너무업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