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1등 찍고 세계로 …
‘글로벌 Top 10’ 프로젝트 시동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자기쇄신의 역사다. 2위를 압도하는 자타공인 화장품 업계의 리더지만 아모레퍼시픽이 여기까지 오는 데에는 화장품에서 벗어나 한눈을 팔고, 초심을 잃고, 시장 진출 실패로 철수하는 굴욕을 맛보는 등 산전수전의 역사가 있다. 한때 회사의 존립이 위협받았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아모레퍼시픽은 자기쇄신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곤 했다. 아모레퍼시픽의 65년은 그래서 자기쇄신의 교본과도 같다.
성공비결 1
10년 앞선 구조조정
아모레퍼시픽의 옛 이름은 태평양화학이다. 2006년에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지주회사는 태평양, 사업회사는 아모레퍼시픽으로 각각 분리했다. 1945년 9월5일 설립 후 지금까지 65년이라는 긴 세월을 국내 화장품 업계의 리더로 군림한 전통 있는 기업이다.
창업자인 서성환 회장의 회사 창립 후 1970년대까지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이었다. 화장품 업계 1위이긴 했지만 경쟁사들을 압도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그런 아모레퍼시픽이 대형 화장품 제조업체로 한 단계 올라선 계기는 사운을 걸고 시도했던 영등포 공장의 대규모 시설 투자였다. 1962년 준공된 이 공장은 대지 2만2642평방미터(약 6849평), 건평 약 5620평방미터(1700평) 규모로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규모의 현대식 공장이었다. 그러나 엄청난 시설 투자의 부담으로 인해 아모레퍼시픽이 자금난으로 망하는 것 아니냐는 소문이 돌 만큼 완공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다행히 무사히 위기를 넘기며 아모레퍼시픽은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일어섰다. 여기까지는 다른 대기업사에서도 종종 접할 수 있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의 역사에는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해 독특한 부분이 있다. 바로 1991년부터 시작한 대규모 구조조정이다. ‘구조조정’이라는 단어는 사실 1997년에 발생한 외환 위기 이후부터 일반화된 말이다. 1990년대 초까지는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다각화를 외치며 확장경영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아모레퍼시픽의 역사는 확실히 색다르다.
아모레퍼시픽은 1991년부터 부실 계열사들을 팔고, 내부 시스템을 정비했다. 1997년에 외환 위기가 터지자 다른 대기업들 중엔 뒤늦게 구조조정에 떠밀려 우왕좌왕하는 곳이 많았다. 반면 그 즈음 아모레퍼시픽은 오히려 지금까지 회사를 먹여 살리는 주력 브랜드들을 잇달아 내놓으며 시장 지배력을 공고히 하는 발판을 다졌다.
선견지명? 그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실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1990년대 초반, 아모레퍼시픽은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환자였기 때문이다.
우선 영업에 적신호가 켜졌다. 업계 순위는 여전히 1위였지만 시장 점유율이 계속 낮아졌다. 한창 잘나가던 1970년대 초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시장 점유율은 70%가량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는 35% 선, 1991년에는 19%에 불과했다. 아모레퍼시픽은 방문판매(방판)를 무기로 화장품 시장을 석권한 기업이다. 하지만 1980년대에 시판(전문점) 시장이 급성장해 방판 시장이 급속히 위축됐건만, 적절히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각화에 따른 부실 증후군’도 문제였다. 아모레퍼시픽도 그 시절 재계의 유행이던 사업 다각화에 나섰다가 엄청난 부실 덩어리를 안게 되었다. 당시 아모레퍼시픽은 증권, 보험, 의류, 전자 등 다양한 계열사들을 뒀다. 심지어 농구단, 야구단도 있었다. 하지만 화장품 외에는 대부분 적자였다. 화장품으로 번 돈을 다른 계열사들이 축내고 있었다.
‘대기업병’도 심각했다. 오랜 기간 화장품 업계 1위 기업으로서 승승장구하다 보니 조직의 관료화, 부서 이기주의 팽배, 고객과 협력사에 대한 오만함 등이 뒤섞여 있었다. 대기업병의 절정은 1991년에 맞닥뜨린 강도 높은 노사분규였다. 노사협상 결렬 후 노조가 본사를 점거까지 할 정도로 격렬했다. 조직이 커지며 이질적인 문화가 뒤섞인 데다 사내 커뮤니케이션은 꽉 막혀 있었다. 그 와중에 노사 관계는 심각하게 곪아 갔다.
이처럼 동시다발적으로 안팎에서 문제가 터져 나오자 아모레퍼시픽은 생존을 위해 구조조정의 칼을 들 수밖에 없었다. 내부의 난상토론 끝에 조직을 바꾸고 새로운 기업문화 구축을 하자는 데 뜻을 모았다.
구조조정의 방향은 ‘부실 정리’와 ‘핵심분야 집중’이었다.
우선 1991년에 태평양증권, 태평양경제연구소, 태평양투자자문 등을 선경그룹(현 SK그룹)에 팔아 회생을 위한 실탄을 마련했다. 이어 1995년에 태평양돌핀스 야구단을 현대그룹에 매각했다(현대 유니콘스 거쳐 지금은 넥센 히어로즈). 1996년에 거평그룹에 넘긴 태평양패션의 경우, 유상증자로 150억원을 얹어주고 매각에 성공했다. 이는 국내 최초의 마이너스 M&A였는데, 부실이 너무 심해 거들떠보는 기업이 없어 짜낸 고육지책이었다.
사업 부문 슬림화와 함께 태평양은 비대해진 조직과 관료적 마인드에도 메스를 들었다. 신규 사업 발굴, 인사·조직 시스템 개편, 유통망 정비까지 구석구석을 훑었다. 그리고 1992년부터 내부혁신운동에 들어갔다. 의식 개혁, 행동 개혁, 생산성 향상, 원가·비용 절감 운동 등 혁신은 전 방위적이었다.
인사·조직제도의 경우, 자동화 등으로 남는 생산인력과 관리인력을 영업 부문으로 재배치하고, 내부 조직도 생산, 판매, 마케팅 등 단위기능별 조직을 브랜드 중심으로 뜯어 고쳤다. 화장품, 생활용품, 건강 등 사업 분야별로 조직을 나누는 사업본부제, 브랜드를 중심으로 브랜드 매니저 시스템, 본사와 지역을 관리하기 위한 지역본부제를 도입했다. 연공서열 타파, 능력주의 인사제도도 시작했다.
의사결정 과정도 단축했다. 과거 6~7단계였던 결재라인은 1996년 팀제를 도입하며 ‘사업부문-사업부-팀’의 3단계로 대폭 단축했다. 결재기간도 과거 일주일에서 하루로 압축했다. 사업부장에게 결정권을 대폭 이양시켜 책임경영을 실시했다. 영업 외에도 R&D, 마케팅, 디자인, 생산 등 전 분야로 인센티브제를 확대했다.
또한 생산, 판매, 물류 통합 작업을 통해 생산 및 재고 관리, 물류 등의 효율도 개선했다.
노사 관계 개선에도 공을 들였다. 1992년 노사합동 세미나 이후 대화채널을 구축하고 경영 정보 공유, 성과급 지급, 노조 주도의 생산성 향상 운동 등을 통해 노사협력을 확대했다. 아모레퍼시픽은 1997년에 노동부 평가 노사협력 우량기업에 선정됐다. 1991년의 노사분규를 계기로 회사의 개혁이 시작됐음을 감안하면 기가 막힌 변화였다.
영업·마케팅 개편도 대수술이었다. 방판 위주였던 유통경로를 시판으로도 확대하고, 직판 경로도 신설했다. 기존 방판 조직과 백화점 시장은 재정비했다. 백화점 매장 중 수익성이 좋지 않은 곳을 과감히 없애고, 마케팅 전략도 해외 브랜드를 벤치마킹하며 업그레이드했다. 할인점, TV홈쇼핑, 인터넷쇼핑 등 신유통 경로가 부상하자 새로운 경로에 대한 밀착 대응에 나섰다.
성공비결 2
강한 브랜드 육성
아모레퍼시픽의 구조조정이 얼추 마무리되어 가던 1997년 말, 마침내 외환 위기가 터졌다. 대기업들의 연쇄부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통해 군살을 빼고, 체력을 보강하며 체질을 개선한 태평양은 시대적인 위기와 상관없이 정상궤도로 올라서고 있었다.
몸을 만들어 놨으니 이제는 영업 일선에서 경쟁자들과 싸워 이길 강한 브랜드가 나설 차례였다. 그 선봉에 선 것이 헤라, 아이오페, 설화수, 라네즈, 마몽드 등의 브랜드였다. 럭셔리한 이미지(헤라), 고기능성(아이오페), 한방화장품(설화수), 20대 여성의 감수성(라네즈, 마몽드) 등 소비자들의 시대적인 욕구를 콕 집어낸 이 브랜드들은 강력한 브랜드 파워를 형성하면서 높은 실적을 올렸고, 드디어 아모레퍼시픽을 선순환 사이클로 이끌었다. 즉 탄탄한 R&D와 기획력으로 출시된 제품이 시장에서 높은 실적을 내고, 이에 따라 이익이 축적되는 식이었다.
1995년 출시된 헤라는 1999년에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메가 브랜드가 됐다. 국내에 한방화장품 붐을 일으킨 공로자인 설화수는 그 이듬해인 2000년에 역시 매출 1000억원을 넘어섰다. 설화수는 특히 2005년에 매출 4000억원을 돌파하며 그해 아모레퍼시픽 화장품 매출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대박을 터뜨렸다. 이들 메가 브랜드의 선전은 당시 백화점 시장에서 아모레퍼시픽이 해외 명품 브랜드들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성공비결 3
‘미와 건강’으로 사업 분야 압축
강한 브랜드가 높은 이익을 남기고, 이를 통한 재투자로 성장이 이뤄지는 선순환이 시작될 무렵, 아모레퍼시픽은 안도하지 않았다. 1998년부터 다시 2차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1990년대 초의 구조조정이 생존을 위한 부실 털어내기였다면, 이번 구조조정은 핵심역량 강화를 위한 것이었다. 남은 계열사들을 ‘미와 건강’ 부문으로 더욱 압축했다. 선택과 집중 전략에 따라 수익성이 좋은 계열사라도 미와 건강이라는 방향과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접었다.
이에 흑자 기업이던 알짜 계열사 한국태양잉크를 합작 파트너 일본 태양잉크에 매각했다. 건실한 금융회사였던 동방상호신용금고는 한국디지탈라인에 팔았다. 한때 잘 나갔지만 부실해졌던 태평양생명은 동양생명에 넘겼다. 광고기획사 동방커뮤니케이션은 BBDO 월드와이드에 50.1%를 매각해 합작으로 전환했다. 부실이 컸던 태평양정보기술은 아예 청산했다. 생화학 부문의 안산공장은 바이오랜드에, 태평양금속은 일본 측 파트너였던 네오막스에 매각했다.
성공비결 4
강한 브랜드 위주로 사업구조 재편성
아모레퍼시픽은 2차 구조조정으로 계열사를 압축하는 한편, 1997년 무렵 30여 개가 넘던 브랜드 구조조정에도 눈을 돌렸다. 브랜드 수가 너무 많고 타깃 고객층이 겹친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대부분의 브랜드 앞에 붙어있던 ‘아모레’는 아이덴티티가 불분명하다고 보고 이를 떼어냈다. 모든 브랜드를 콘셉트와 타깃 연령대, 가격대 등으로 분류했다.
이에 2002년에 아모레퍼시픽, 설화수, 헤라, 리리코스,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 이니스프리, 에뛰드, 미쟝센 등 10개 브랜드만 남기고 나머지 브랜드는 단종 시키거나 10개 브랜드의 하위라인으로 재배치했다.
각 브랜드는 유통경로별로 달리 접근시켰다. 전문점에는 아이오페, 라네즈, 마몽드를, 방판에 설화수, 헤라, 프리메라, 직판에 리리코스 등으로 선을 그었다. 백화점 경로에는 최고가 명품으로 헤라, 설화수, 아모레퍼시픽 등의 브랜드를 배치했고, 할인마트에는 이니스프리를 뒀다. 저가 시장에는 자회사 에뛰드를 포진시켰다. 이처럼 채널별 특성을 살린 다양한 가격대의 브랜드 전략으로 태평양은 시장의 거의 모든 영역을 물샐 틈 없이 방어하는 체계를 구축했다.
생활용품과 녹차 사업도 마찬가지 논리로 손을 봤다. 퍼스널 케어를 주력으로 설정하고 헤어케어, 바디케어, 오랄케어 등 3대 영역을 중심으로 미쟝센, 댄트롤, 해피바스, 메디안, 송염 등만 남기고 브랜드를 정리했다. 과거에는 구색 맞추기로 세제 등 거의 전 분야를 커버했지만 수익이 남지 않는 분야는 과감히 도려냈다. 녹차는 고급제품 위주로 재편했다.
2차 구조조정까지 마치자 아모레퍼시픽의 계열사는 화장품 계열 3사(아모스-헤어케어, 에뛰드-색조화장품, 빠팡 에스쁘아-향수), 비화장품 계열 3사(태평양제약, 퍼시픽글라스-화장품 용기, 장원산업-녹차) 등 6개사만 남았다. 한때 계열사가 25개사에 이르렀던 회사가 엄청난 다이어트를 해치운 셈이다. 외형에 대한 욕심을 버리기 쉽지 않음을 떠올리면 이 회사의 절제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짐작할 수 있다. (참고: 2010년 4월 기준 태평양그룹은 지주사 태평양 산하에 아모레퍼시픽(자회사로 해외현지법인 11개사 보유), 에뛰드, 이니스프리, 아모스, 태평양제약, 퍼시픽글러스, 장원, 태신인팩(패키지 제작) 등 7개사로 이뤄져있음)
성공비결 5
오너가 앞장서 혁신 진두지휘
2차 구조조정까지 마친 아모레퍼시픽은 군살 없는 몸매에 탄탄한 체력을 지니고, 강력한 소수정예 브랜드만을 거느린 그야말로 몸짱, 체력짱 기업으로 거듭났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최고급에서 중저가까지 전 연령대를 대상으로, 강하고 수익성 높은 브랜드를 고루 보유하고 있다. 화장품 유통망도 거의 전 분야를 망라해 지배하고 있다. 기능성 화장품, 한방화장품 등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카테고리를 창조해내는 기획력과 기술력, 마케팅 능력, 그리고 해외 명품 브랜드를 압도하는 시장 장악력까지 갖추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국내 화장품 시장 점유율은 35.1%로, 업계 2위인 LG생활건강(12.9%)의 세 배에 가까운 압도적인 시장 지배력을 자랑한다(2009년 기준). 아모레퍼시픽은 국내 시장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2000년대 들어 선순환 시스템이 자리 잡은 후 재무구조에도 탄탄하게 물이 올랐다. 2009년 실적을 기준으로 할 때, 아모레퍼시픽은 빚이 별로 없고(부채비율이 28.03%에 불과), 자본금을 예금했다고 가정하면 이자율이 18%가 넘으며(자기자본이익률(ROE) 18.71%), 장사로 버는 이익률이 17%에 이른다(영업이익률 16.99%). 아모레퍼시픽은 시너지를 낼 만한 해외 브랜드에 대한 M&A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는데, 앞으로 M&A에 나설 경우 그룹 내부에서 동원할 수 있는 자금만 300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이 정도 자금이면 웬만한 브랜드를 충분히 인수할 수 있다는 평가다.
아모레퍼시픽을 위기에서 건져내 오늘날의 건실한 기업을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태평양그룹의 오너인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이다. 1987년 7월 미국에서 MBA를 마치고 돌아와 경영에 참여한 그는 기획조정실장으로 일하며 창업자인 부친 서성환 회장과 함께 회사의 구조조정과 혁신을 진두지휘했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을 먹여 살리는 핵심 브랜드들은 모두 그가 키워낸 것이라 할 수 있다. 부친의 별세 이후 회사를 물려받아 1998년 대표이사 사장에 취임한 그는 구조조정과 혁신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혁신과 도전을 아모레퍼시픽의 DNA로 만들어버렸다.
아모레퍼시픽은 경영권도 안정되어 있다. 서경배 사장은 그룹 지주회사인 태평양 지분을 특수관계인 지분까지 합해 총 59.98%를 갖고 있다. 지주사 태평양은 아모레퍼시픽 지분을 44.80% 보유하고 있다(2010년 1분기 기준). 전문가들은 아모레퍼시픽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SK증권의 하태기 애널리스트는 “흠잡을 데가 별로 없는 기업”이라고 말할 정도다. 하 애널리스트는 “국내 화장품 시장은 해외 업체에 완전 개방되어 있는 완전경쟁시장인데, 여기서 1위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경쟁력이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성공비결 6
내수 시장 방어하고 해외 시장 적극 공략
국내 화장품 시장은 이제 성숙기에 이르렀다. 아모레퍼시픽으로서는 국내에서의 추가 성장 여지가 크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아모레퍼시픽은 해외 시장으로 눈을 돌려 성장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다.
지난해 아모레퍼시픽의 전체 매출에서 해외 부문의 비중은 10%였다. 앞으로 국내 시장을 방어하면서 해외 부문의 비중을 얼마나 높이느냐에 따라 아모레퍼시픽 성장의 지속 여부가 달라질 수 있다.
해외 시장 공략을 위한 구체적인 사업 목표와 중장기 전략은 이미 세운 상태다. 2015년까지 아모레퍼시픽은 세계 10위 화장품 기업이 되는 것이 목표다. 현재 아모레퍼시픽은 전 세계 화장품 업계 20위다(미국 화장품 전문지 <WWD> 2009년 8월 집계. 달러 환산 매출 기준). 세계 10위가 되려면 적어도 뷰티 사업에서 4조원, 건강 사업에서 1조원의 매출을 달성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연간 1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내는 메가 브랜드 육성이 필수적이다. 적어도 뷰티 사업에서 10개, 건강 사업에서 5개 이상의 메가 브랜드가 있어야 세계 10대 화장품 회사이자 건강문화를 추구하는 리딩 기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서경배 사장의 생각이다.
아모레퍼시픽은 현재 해외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중국, 아시아(홍콩, 대만, 싱가포르 등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권), 프랑스, 미국 등 해외 시장 전체에서 올린 매출은 2830억원이었다. 2007년 1746억원, 2008년 2335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매년 성장세다.
해외 시장 가운데서 가장 큰 규모의 매출을 내는 곳은 중국이다. 라네즈와 마몽드의 선전으로 지난해 1176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2008년 대비 매출이 50% 이상 증가해 성장성도 좋다. 중국에서는 2007년부터 손익분기점을 넘어섰다.
향수 브랜드인 롤리타 렘피카로 공략중인 프랑스의 경우, 금융 위기 이후 경기 침체 여파를 크게 받은 유럽권 분위기로 인해 매출은 2008년 959억원, 2009년 971억원으로 다소 정체됐다. 하지만 프랑스 향수 시장의 4위 브랜드에 올라있을 정도로 그 동안 자리를 잘 잡았고, 작년 하반기에 롤리타 렘피카 브랜드의 신제품을 출시하며 다시금 시장 공략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지난해 115억원의 매출을 올린 미국 시장도 차근차근 바닥을 다져가고 있는 중이다. 럭셔리 라인인 아모레퍼시픽 브랜드로 최고급 백화점 버그도프 굿맨, 니먼 마커스 등에 입점해 현지인들과 접점을 확대하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의 해외 실적이 주목받는 이유는 우리나라 교포가 아닌 현지인들을 상대로 승부를 벌이면서도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업계와 전문가들 모두가 기대를 보이는 이유다.
해외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서경배 사장이 내건 슬로건은 ‘아시안 뷰티 크리에이터’다. 아시아의 미(美)로 세계시장에서 승부하겠다는 의미다.
현대증권의 김혜림 애널리스트는 “중국, 인도 등 아시아권이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신흥 시장의 중심인 상황에서, 아모레퍼시픽은 서구 화장품 업체들에 비해 아시아 신흥국들과 문화적으로 가깝다는 이점이 있고, 실제로 중국 진출 역사가 이미 20년 이상 된 서구 브랜드들과 비교하면 이제 중국 진출 10년인 아모레퍼시픽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는 편”이라며 “올 하반기에 중국에 상륙하는 설화수 등 추가 진출 브랜드들이 안착할 경우 중장기 성장을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사진으로 보는 아모레퍼시픽 65년
대한민국 화장품 역사를 쓰다
국내 화장품 업계 1인자인 아모레퍼시픽이 걸어온 길은 그 자체가 국내 화장품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흑백사진 속에는 중장년층이라면 젊은 시절에 친숙하게 접했을 법한 장면들이 흥미로운 모습으로 기록되어 있다. 화보를 통해 아모레퍼시픽과 국내 화장품 업계의 65년을 돌아본다. (사진제공 : 아모레퍼시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