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 입납( 南大門 入納)이란 말이 있다.
편지를 남대문에 들어가게 보낸다는 뜻으로,
주소가 분명하지 않은 편지나 이름도 모르는
집을 찾는 것을 조롱하는 말이다.
'서울 가서 김서방 찾기'의 편지 버전인 셈이다.
입납이란 '삼가 편지를 드림'이란 뜻으로
'편지의 시대'에는 받는 이 이름 뒤에 붙이는
이런 용어가 많았다. 귀하 귀중은 말할 것도
없고 손아랫사람에게는 낭견(郎見),
어른께는 좌하(座下)를 붙였다.
존좌하(尊座下)나 존전(尊前)은 더 높임말로
선생님께 썼다. 복백(伏白)은 엎드려 삼가 올림,
배정(拜呈)은 공손히 받들어 올림이란 뜻이다.
그중 특별히 받는 사람이 손수 펴 보기를 바랄
때는 친전(親展) 또는 친피(親披)를 붙였다.
같은 뜻으로 인비(人秘)라는 말도 쓰였고 허물없는 아랫사람에게는 직피(直披)라고도 썼다. 영어표현에도 내밀한 내용을 담은 편지 겉봉에는
이름 뒤에 Confidential이나 Personal을 쓴다.
친전에는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해주기 바란다는 뜻이 있는 만큼 발신자와 수신자 사이에는
동질감과 부담감이 공존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연인이나 친구들뿐 아니라 같은 조직에
몸을 담거나, 정치인 권력자들 사이에도 두루 쓰인다.
허영자 시인은 '친전'이란 시집도 냈는데 '살 속에/ 그 이름 새기며/ 이 봄밤/ 눈떠 새운다'는
동명의 시도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장·차관 고위관료 측근 부하에게 격려나 경고의 뜻을 담은
친전을 자주 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10·26 직전에도 '근간 입수된 첩보 중 김 부장의 측근 건은…'
으로 시작되는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친전'을 보내 김재규와 그 가족의 전횡을 힐난했다.
요즘 촛불집회 재판압력 행사 여부로 시끄러운 신영철 대법관은 지난해 서울중앙지법원장 때
사건 담당인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친전'이란 꼬리를 붙인 이메일을 수차례 보냈다.
조사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우선 이메일에 붙은 친전이란 용어가 신기하다.
소통과 정보 공유가 생명인 인터넷의 바다에 웬 '우리끼리 얘기'라니.
처신은 부적절하고 방법은 부적합하다.
디지털시대의 아날로그 사건인 이번 파문과 쌍둥이처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