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9회 전국 여성 백일장 심사평>
“예술의 다변화 및 대중화 역할 톡톡, 페미니즘 문학의 진수 선보여…”
본 계룡지부에서 파격적으로 전국(全國)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현상 공모해온 ‘전국 여성 백일장’이 금년 들어 제9회째를 시행케 된 바, 올해에도 수백 편의 많은 응모작이 쇄도하는 성황을 이루었다.
한국의 페미니즘 문학을 굳이 논하기 전에 순수한 이 땅의 여성 문예 발전을 전제한 숨은 여성 문인의 발굴을 위한 본 공모전에 뜻밖의 역작품들이 쇄도하여, 여러 곳의 동류(同類) 심사에 임했던 심사 진은 더없는 감고(甘苦)를 금치 못했다. 아주 달디단 기쁨은 입상작을 공모부문별(시, 시조, 수필, 동화)로 비록 동시 부문에선 입상작을 뽑을 수 없었으나 골고루 수준 높은 수상작들을 낼 수가 있었던 점이고, 입상권에 육박해 있는 작품들이 제외되는 고심(苦心) 또한 실은 즐거운 고통이었음을 밝혀두지 않을 수 없다.
시 부문 대상 수상작 「항아리」는 문학적 숙련도와 함께 미학적 완성도 역시 매우 높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특히 활달한 시상 전개와 참신한 서정적 이미지 표출 기법은 선명한 주제의식을 부각시키는데 성공하고 있었다. 금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詩「몸부림」은 제목과 내용의 절묘한 조화를 통해 생경한 이미지를 생성시키고 있었다. 은상의 수필 「매미의 껍데기」는 수필가의 인륜의식(人倫意識)이 눈물겨우리만치 따뜻하고, 철학적 인식에 대한 객관성이 매우 논리적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감동의 카타르시스를 연출하고 있었다. 동상의 시조 「광화문」은 선 굵은 안목으로 풀어나간 보법이 남달랐다. 3수로 된 전통적인 시조형식을 통해 그려내고 있는 역사의식과 시대정신은 문학의 진정성을 획득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또한 동상의 동화「우리 할매 삼순씨」는 우리 시대의 어둔 단면과 그 속에서 얻어지는 동심의 테마로 삶을 극복하려는 내면세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본심에 오른 작품은 「뱀의 해독」, 「나팔화원」, 「오래된 구두」,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악어」등이었으며, 이들 작품은 저마다 독특한 자기 미학을 형성시키고 있었다. 제한된 공석으로 인해 소수의 수상작을 선정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수백 편의 응모작들을 심사하면서, 이미지 전개 능력과 제목 선정, 주제 부각 등은 상당한 문학적 수준에 도달해 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계룡문인협회의 전국여성백일장은 예술의 다변화 및 대중화를 구현하고 실천하는 문학축제의 장이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울러 우리 한국문학사에 있어서 페미니즘 문학의 진수 선보인 전환점은 물론 또 하나의 역사적 이정표를 세웠음에 경이롭고, 놀라울 뿐이다.
당선된 수상자들에게 축하의 박수와 함께, 아깝게 선외 처리된 분들에게는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심사위원 : 이수화, 도창회, 김천우
<당선작>
<대상>
항아리
충주시 호암동 세경아파트 3동 412호
김윤정 / 010-2547-8314
때로 남의 갈증 풀어 주는 그 뽀얀 백자가 되고 싶기도 했어
가끔 그 푸른 청자가 부러워 물기가 고이기도 했어
손끝 마디마디 들어간 정성이 부러워
온 몸 도도히 흐르는 태생적 귀티가 탐이 나
나도 한 번 자랑처럼 귀한 곳에 놓여 봤으면
그러나 나는
투덕투덕 웃통 벗은 사내들이 만들어내는
적갈색 질그릇
장난인지 심통인지 모르게 비뚤어진 귀
꼬챙이 끝에서 펼쳐지는 조악한 난을 문신처럼 새기고
툽툽한 허리로 한자리 차지하면
그래, 청자 백자 따위가 생활을 알랴
물동이 지는 처녀 젖가슴 눈 아래로 떠 흘끗 쳐다보고,
아이 돌팔매에 후드득 가슴 졸이며,
고만고만한 것들이 모여 항아리 세상 만드는데,
저기 마른 행주 들어 닦는 이 있어
그래, 닦인다, 닦인다, 닦는다
생애에 걸쳐 닦는다
뱃속 가득 저마다의 사연 품고
닦는다, 닦는다
불에서 태어난 우리는 하얀 눈에 겁이 났더라
가슴에 품은 소망 젖을까 비가 끔찍했어라
하지만 우리가 누구인가
누군가 밭을 갈 때부터 존재한 우리가 아닌가
꿈벅꿈벅 굴욕까지 껴안은 우리가 아닌가
그리고 어느 눈 맑은 햇살 비추는 날
생애 내내 닦은 저마다의 빛 뿜어내며
일제히 하얀 이 드러내며 웃으리
햇살 보다 더 밝게 웃으리
아픔을 이겨낸 숙성된 웃음
고통까지 녹여낸 진한 웃음
햇살 아래 눈부신 항아리 세상
<금상>
몸부림
울산시 남구 선암동 589-1번지
신선산휴먼빌아파트 103동 702호
이명길 / 010-5893-7933
모태의 자궁 속 붉은 고무대야
청정해가 기다린다
휘어지는 부드러움은 꺾임보다 절실해서
장어의 몸짓은 한 조각의 삶도 놓치지 않는다
나는 한 번이라도
저리 치열하게 요동한 적 있었던가
무아지경에 빠진 춤사위
허기진 삶을 확 끌어당긴다
촘촘하게 엮여진 세상
엇박자 막춤에 석쇠가 뜨겁다
쇠줄을 타고 아리도록 스며드는 열기
오늘만큼은
비겁한 절망마저 지배하려
강한 너를
나도 꿈틀대며 먹었다
언제나 살기 위해
세상을 입질했던 터
활활 타는 자궁 속
또 하나의 세계가 열린다
<은상>
매미의 껍데기
원주시 봉산동 동신아파트 105동 1403호
임병숙 / 010-4133-5714
뒤뜰의 감나무에서 매미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그곳은 그늘이 좋아서인지 둥치가 든든해서인지 여름만 되면 녀석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울음소리가 감나무 잎을 흔들었다. 심술궂은 햇빛과 잔인한 바람도 막아주는 매미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풀죽은 나뭇잎처럼 무더위에 지친 심신으로 청량제처럼 스며든다.
며칠 동안 쉬지 않고 들리던 자리에 매미의 껍데기가 매달려 있다. 불필요해서 알맹이만 쏙 빠져나간 것일까. 박제처럼 매달려 있는 껍데기를 살짝 만져 보았다.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녀석의 생김새를 쉽게 유추해 낼 수 있는 모습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애절한 울음이 고막을 울린다. 심신을 적셔주던 울음소리는 울음이 아니라 신음이었을까. 해탈하며 입가로 새어 나왔을 비명이 들린다. 다른 녀석들과 달리 산고 같은 고통을 견디며 벗어버린 껍데기는 무엇일까.
아주 오래전, 손바닥만 한 목공소를 하던 큰 오빠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서른두 살의 꿈은 파편이 되어 날아갔고 고단했던 몸은 며칠 동안 깊은 잠만 잤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박함만큼이나 더 절박했던 것은 병원비였다.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의 입원비는 거품처럼 늘어나더니, 집안을 무거운 침묵으로 짓눌렀다. 큰 오빠를 제외한 다섯 남매가 있었지만 그리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다. 사채를 끌어 쓰던 아버지의 어깨가 점점 쳐지더니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였다.
집에 웅크리고 있는 날이 많은 아버지에게 통장을 드렸다. 그 통장은 스물세 살의 분출되기 전의 용암 같은 욕구를 가슴 속으로 밀어 넣고 만든 것이다. 그런 것을 잘 아는 아버지는 이다음에 꼭 갚아주겠다고 하셨다. 그 약속은 아버지가 떨어뜨린 눈물방울처럼 가슴에 축축하게 스며들었다. 그러나 대가를 바란 게 아니었기에 투명한 햇살에 물기를 건조하게 하듯, 머릿속에 새겨 두지 않았다. 전처럼 아버지의 어깨가 다부져 보이고 무거운 침묵 대신 밝은 햇살이 마당에 가득한 게 보기 좋았다. 그리고 시간은 집 앞을 흐르는 강물처럼 기억의 저편으로 흘러갔다.
언제나 같은 모습일 것 같던 아버지가 칠순이 가까워지니 눈에 띄게 주름이 늘어났다. 게다가 갑작스레 혼자되면서, 농사꾼 같지 않다는 말을 듣던 멋쟁이는 영락없는 촌로(村老)로 변했다. 예전처럼 놀기 좋아하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일이 힘들기도 하겠지만 당신을 감싸고 있는 지독한 외로움 때문인지 기운이 없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식사보다는 술로 끼니를 잇는 날이 더 많았다. 휑하니 들어간 두 눈을 보면 가슴속에 아릿한 물결이 흘렀지만, 문득 그 약속을 떠올리게 되었다.
“아버지, 그 때 약속한 거 기억나세요?”
기억력이 전만 못해서 모른다고 하면 어쩌나 했는데 아버지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살아생전에 꼭 갚아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그 때는 힘들어하던 아버지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인제 와서 되돌려받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것은 왜일까. 한 번 고개를 든 욕망은 가속도가 붙은 자동차의 속도처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늘어나는 주름처럼 이런저런 욕망이 생겼다.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남이 가지고 있는 것을 탐내고 질시를 했다. 남들처럼 좀 더 넓은 집에서 불편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살림살이에 대한 욕심. 별다른 탈 없이 잘 자라고 성적도 뛰어난 아이들을 보면 내 아이들과 비교하며 가슴앓이를 했다. 재산을 많이 물려받거나 사람을 보면 부모님을 원망했다. 욕망의 빗금은 가슴 속에 수많은 선을 늘려나갔다.
욕망이 비눗방울처럼 부풀려지던 내게 기다림이란 조급하게 갈증만 나게 했다. 한 해, 두 해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칠순을 훌쩍 넘기셨다. 금방 무슨 일이 닥칠 듯한 조바심에, 빚쟁이라도 된 양 재촉을 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친정에 가던 발걸음도 끊었다. 아버지의 식사 준비며 집안일 등은 한숨처럼 쌓여갔다.
정수리 부분이 훤해진 아버지가 서류를 들고 오셨다. 얼마 남지 않은 머리카락을 마저 뺏듯 진을 빼는 딸에게 지친 모양이다. 처음 보는 부동산 등기 이전 서류에는 생소한 용어가 많았다. 집 앞에 있는 논이 아버지의 성함 대신 내 이름으로 바뀐 것만 선명하게 보였다.
“늦어서 미안하다. 이거면 되는지 모르겠다.”
식사도 제대로 못 했는지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가벼운 진동이 느껴졌다. 그토록 원하던 것을 받았것만 뭐라고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버지도 아무 말 하지 않으셨다. 어색한 침묵의 틈으로 아버지의 꾸깃꾸깃한 잠바에서 퀴퀴한 냄새가 익숙하게 다가왔다. 그 냄새는 코끝으로 들어와서 명치끝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았다. 가까이 사는 딸네 집에 몇 년 만에 오신 아버지는, 커피 한 잔만 드시고 일어나셨다. 버스 정류장을 향해 걸어가는 왜소해진 등에는 아이들이 메고 다니는 가방이 매미처럼 매달려 있었다.
욕망이 많아지고 커질수록 무언가가 나를 단단하게 에워싸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욕망이라는 껍데기였다. 껍데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욕망이라는 풍화 작용을 거치며 더 단단해졌다. 그 속에서 나의 욕망은 점점 늘어났다.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고 더 높은 곳으로 오르려 하고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싶어했다. 줄어드는 법도 없다. 공기가 들어가면 부풀려지는 풍선처럼 점점 더 부풀려졌다. 욕망이 많아지고, 부풀려지면서 나를 가두는 껍데기도 더 단단해졌다. 그 속에 갇혀서 욕망을 비우는 것은 잊고 채우기만 했다. 단 한 번도 깨뜨리고 나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지난가을, 아버지와 볏 가마를 들던 장면이 다가왔다. 한 번씩 들 때마다 야윈 몸을 부르르 떨던 아버지의 이마에 굵은 핏줄이 섰다.
“농사꾼은 땅이 힘이다. 땅이 없으면 천하장사라도 힘을 못 쓰지.”
어릴 때 아버지에게 많이 듣던 말이다. 평생 흙냄새에 묻혀 사셨으니 땅은 재산이라는 개념이 아니었다. 삶을 지탱해주던 버팀목이고 안락하게 감싸주었던 껍데기였다.
매미가 지상에서 보낸 시간은 열흘 남짓이다. 얼마 되지 않는 날이지만, 지상에서 지낸 시간이 전부였기에 일생이라고 할 수 있다. 짧지 않은 일생을 자신을 비워내고 덜어내는 연습만 한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온 몸이 찢기는 해산 같은 고통을 겪으며 껍데기를 벗었으리라. 그리고 마침내 나방이 되어 힘찬 날갯짓을 하며 날아간 것이리라.
지금 내 몸을 감싸고 있는 욕망과 아집의 껍데기는 하등 불필요한 것이다. 나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고 주위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할 뿐이다. 그것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아둔하고 미련하기 때문이다. 매미의 일생보다 훨씬 짧은 시간 갖고 있던 것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단단하게 감싸고 있는 껍질을 깨뜨리지 않으면 부화할 수 없는 새처럼 그것을 버리지 않으면 나는 늘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속이 훤히 보이는 껍데기에 귀를 기울여 본다. 조금 전과는 다른 울음소리가 들린다. 무더위를 식혀주던 울음도 아니고 심신을 맑게 정화해주던 울음도 아니다. 껍데기를 벗으며 고통스럽게 지르던 비명도 아니다. 모진 고통을 견딘 끝에 새롭게 태어난 환희와 기쁨의 탄성이 부드럽고 여유롭게 가슴으로 스며든다. 나의 몸도 나방이 되어 날아 갈듯 가벼워졌다.
<동상>
광화문
부산시 중구 남포동 6가 신천지 아파트 714호
부산 동아대학교 교육학과 3학년
조정선 / 051-245-3075 / 010-2789-3075
제 몸에 남은 상처도 추억으로 물리고
역사의 흔적마저 환생시킨 세종로에
커다란 북 소리 울려 조선의 얼굴 다시 뵌다.
지난날 제 모습 잃고 보냈던 6백년 세월
우리겨레 애환을 눈물로 어루만지듯
민족의 염원들 모여 단장의 아픔 이겨내리.
세월도 끌어안고 고이 트는 새벽녘에는
슬픔의 안개마저 빛 무리로 거두어지고
광화문 천년의 꿈결 이제 다시 시작된다.
<동상>
우리 할매 삼순씨
충남 계룡시 엄사면 엄사리 동아A 103-404
김 선 미 / 010-4406-0501
우리 집은 작년만 해도 화목하고 즐거운 남들이 부러워하는 행복한 집이었습니다. 내가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어, 병원비 때문에 집안은 어려워지게 되었고, 엄마 아빠의 싸움도 그때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내가 사고가 난 것이 서로의 탓이라며 엄마 아빠의 싸움은 늘 그렇게 시작 되었지요.
나는 교통사고 이후에 엄마 아빠의 계속된 싸움으로 인해 많이 힘들고 속상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으로서는 참으로 감당하기 힘들고 슬픈 일이었습니다. 몸도 아픈 상황에서 나 때문에 엄마 아빠가 자꾸 싸우니까 그때 마다 눈물이 났습니다.
엄마 아빠는 아침부터 밤까지 내 병원비를 버느라 매일 바쁘십니다. 그래서 나는 늘 혼자 집에 있어서 너무 심심하고 답답합니다. 다른 친구들처럼 학원도 다니고 싶고 엄마 아빠랑 집에서 저녁도 먹었으면 좋겠는데 나는 늘 혼자입니다.
가끔씩 시골에 사는 우리 할머니가 나를 보러 오셨다가 며칠씩 집에 있는데 나는 그때가 너무 좋습니다. 오늘이 바로 그날입니다. 우리 할머니가 오셔서 대화도 나누고 맛 나는 음식도 해주시고 친구가 생긴 것 같아 너무 너무 좋습니다.
나는 할머니 한테 장난을 쳐 보았습니다. “삼순 씨 오랜만이야?” 하자 할머니는 웃으시며 꿀밤을 한 대 때려줍니다.
나는 우리 할머니 이름이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할머니한테 “삼순씨!” 라고 부르며 장난을 칩니다. 엄마 아빠 계신데서 그러면 혼나니까 없을 때 할머니와 단둘이 있을 때만 장난칩니다. 할머니는 혼내시지 않고 그냥 웃으시거나 꿀밤을 한 대 때리십니다.
“할머니 이름이 왜 삼순이야?” 하자
“딸 중에 세 번째 로 태어나서 삼순이라고 이야기 했쟎아!” 하십니다.
나는 몇 번씩 이나 이 이야기를 들었는데도 할머니 이름도 재미있고 할머니가 세 번째로 태어나서 삼순이란 것도 너무 너무 재미있습니다.
할머니와 하하 호호 즐거운 시간입니다. 저녁에 할머니가 쪄 준 고구마를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습니다. 고구마를 먹고 텔레비전을 보다가 할머니와 꼬옥 안고 오랜만에 혼자가 아닌 둘이 단잠에 빠져 들었습니다. 할머니 품은 너무 따뜻했습니다.
캄캄 한 밤이 되어서 엄마가 들어오고 곧바로 아빠가 들어왔습니다. 또 싸움소리가 들립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먼저 들립니다. “또 술이야 지겹다 지겨워”
“세상이 나를 자꾸 이렇게 만드는데 어쩌란 말이야!” 라고 말하는 아빠의 목소리도 들립니다. 오늘밤도 싸움소리가 그치질 않습니다. 엄마 아빠는 낮엔 공장을 다니시고 밤엔 대리 운전 일을 하고 계시는데 오늘도 손님한테 안 좋은 소리를 들었나 봅니다. 할머니와 나는 방에서 자고 있다가, 엄마 아빠의 싸움 소리에 깨어 할머니 품에 안겨서 속상해서 울었습니다. 할머니가 오셨는데도 평소와 다름없이 싸움을 하니까 나는 너무 너무 속상하고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나를 꼬옥 안아주면서 나를 다독여 주었습니다. “육민아! 엄마 아빠가 힘들어서 그러니까 네가 조금만 이해하렴.”
“싫어! 싫어!” 엄마 아빠 매일 싸우고 아빠는 매일 술 마시고 그래서 싫단 말이야!”
“나 할머니랑 같이 살면 안 될까? 나 집에 혼자만 있어서 심심하고 엄마 아빠도 매일 늦게 들어와서 무서워!”
“할머니는 시골에 살아서 네가 오면 답답할 텐데 괜찮겠니?” 하고 할머니가 내게 묻습니다.
“어! 엄마 아빠가 돈 많이 벌면 안 싸울 거 아니야! 매일 싸우는 게 돈 때문 인거 같아! 싸울 때 매일 돈 돈 하거든! 내가 없으면 엄마 아빠가 돈 더 열심히 벌 거 아니야! 그럼 싸우지도 않을 거고 예전 같이 행복한 우리 집이 될 꺼야! 그때까지만 이라도 할머니랑 살고 싶어!”
다음날 아침 눈을 떠보니 할머니는 엄마 아빠랑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아빠는 어제와 사뭇 다른 모습입니다. 할머니한테 미안한지 머리를 푹 숙이고 할머니 말에 고개만 끄덕입니다. 나는 할머니를 따라 가기로 했는데 엄마 아빠가 걱정됩니다.
“엄마 아빠 싸우면 안돼!” “그리고 돈 많이 벌어서 꼭 나 데리러 와야 돼 알았지! 약속해!”
“알았어! 돈 많이 벌어서 육민이 데리러 갈께! 백 밤 만 기다리고 있어!” 라고 말하며 엄마는 나를 안고 눈물을 뚝뚝 흘리십니다.
할머니 집에 온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벌써 엄마 아빠가 보고 싶습니다. 같이 살 땐 지겹기만 한 엄마 아빠인데 왜 이리 보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도 꾹 참고 착한 일 많이 하고 할머니 말 잘 듣고 백 밤 만 자고나면 엄마 아빠가 오신다니 참아야죠! 오늘도 들마루에 누워 하늘을 보니 반짝 반짝 거리는 별과 둥근달을 보며 엄마 아빠가 하루 빨리 오시기를 기다리며 잠이 들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나에게 너무 잘해줍니다. 항상 생선이며 과일이며 맛난 음식들을 할머니는 먹기 싫다며 나에게 다 주십니다. 내가 먹어보니 다 맛있습니다.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맛난 음식들을 할머니는 맛이 없다니요. 하여간 난 너무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다리가 아픕니다. 일하다가 사과나무에서 떨어져서 다리를 다쳐 걸을 때 절뚝절뚝 거립니다.
그런데, 매일 일을 하고 계십니다. 일을 하지 말라고 해도 할머니는 일해야 한다고 합니다. 일 하는 게 재미있다나요! 내가 보기에는 하나도 재미없는데 말입니다. 우리 할머니를 보면 정말 이해가 안갑니다. 아픈데 일도 다니시고 일 다녀와서는 박스며 재활용품들을 모으러 다니십니다.
나도 할머니 집에 온 후로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같이 재활용품을 모았습니다. 집에 혼자 있을 때 보다 할머니랑 같이 다니니까 덜 심심하고 재밌습니다.
낮에 일하는 것도 힘든데 저녁에 나가서 재활용품을 줍고 집에 들어와서는 “아이고 다리야. 아이고! 죽겠다.” 하십니다.
“그렇게 힘든데 왜 자꾸 일해? 그냥 집에 있어. 할머니!” 그렇게 말하면 할머니는 날 보며 씨 익 하고 웃으십니다.
우리 할머니는 오늘밤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할 것입니다. 아파서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다리야” 하면서 말입니다. 나는 우리 할머니가 불쌍해 보입니다.
구불 어진 허리에 다리는 절고 밥도 물에 말아 김치에다가만 드십니다. 그런데 나에게는 내가 좋아하는 생선이며 고기를 늘 줍니다. 할머니는 같이 먹자고 해도 고기며 생선이 싫다고 하십니다.
나는 할머니가 차려준 고기반찬이랑 맛난 반찬들이랑 밥을 두 그릇이나 먹었습니다.
할머니는 전화를 받고 한참을 듣더니 네! 한마디만 하고 끊습니다.
전화를 끊고는 멍하니 앉아 한참을 그러고 계십니다.
“할머니, 왜 그래?” 물어봐도 대답이 없습니다. 할머니는 한참을 그러고 계시더니 “육민아! 아빠랑 엄마랑 백 밤 더 자야 온대?” 라고 말씀하십니다. “싫어! 싫어! 왜 나 보기 싫어서 안 오는 거야? 왜 안 온데?” 화를 내며 물어봅니다. “엄마 아빠가 돈 많이 벌어서 오려고 그러지.” 할머니 는 차분하게 나에게 이야기 합니다. 나는 눈물이 납니다. 엄마 아빠가 너무 보고 싶고 이제 삼십 밤만 더 자면 엄마 아빠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너무나 속상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할머니는 집에 없었습니다. 밤에 아파서 끙끙 거리며 한숨도 못 잤을 텐데 말입니다. 나는 동네에 나가서 할머니를 찾아보았습니다. “할머니! 할머니!” 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돌때쯤 우리 할머니를 발견했습니다. 우리 할머니는 청소를 하고 있었습니다. “할머니, 여기서 뭐하고 있어? 빨리 집에 가자. 나 배고파.” “그래 우리 강아지 조금만 더 기다려라! 다 했다.”
우리 할머니는 새벽에 청소하고 아침에 일 나가서 저녁에 들어오면 폐품수집에 왜 이렇게 바쁜 줄 모르겠습니다. 요즘에 예전보다 갑자기 더 바빠졌습니다. 나는 할머니에게 아침을 먹고 어깨를 주물러 주며 “할머니 아프지마!” 라고 말하고 나니 괜 시리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씨 익 웃어 주십니다.
며칠이 지나고 할머니가 시내에 나가자고 합니다. 나가서 나에게 예쁜 옷도 사주시고 할머니는 맛 나는 것들도 이것저것 많이 사주셨습니다. 너무 신이 납니다.
물건을 다 산후에는 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합니다. 차를 타고 몇 시간쯤 지났을 때 한적한 곳에 차가 멈추고 할머니와 나는 내려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 보니 병원이 나옵니다. “어디야?” 물어보자 할머니는 그냥 따라오라고만 합니다. 나는 할머니와 손을 잡고 따라가 보니, 엄마, 아빠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나는 “엄마 아빠!” 하며 달려가 엄마 아빠를 붙들고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엄마 아빠는 일하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많이 다쳐서 아프다고 할머니가 나에게 말해 주셨습니다.
“할머니 여태까지 나한테 왜 얘기 안했어? 엄마 아빠가 아프다고 왜 얘기 안했냐 말야.” 할머니가 그만 울고 화장실에서 씻고 오라고 합니다. 나는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고 오는데 의사 선생님과 할머니가 이야기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엄마 아빠가 얼마 못 살 것 같다는 이야기 소리가 내 귀를 스쳐 지나갑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안 돼! 안 돼!” 하며 엄마 아빠에게 가서 다시 엉엉 울기 시작했습니다. 할머니는 집에 가자며 내손을 끌고 병원에서 나왔습니다.
나는 학교에 가도 집에 있어도 자꾸 눈물만 나고 슬퍼집니다. 엄마 아빠만 보고 싶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밉습니다. 엄마 아빠 걱정도 안하고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고 일만 하십니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은데 데려가지고 않고 일만 하니까 속상합니다. 할머니는 엄마, 아빠, 나 보다 일이 더 좋나 봅니다. 그래서 요즘은 재활용 수집하러 나갈 때 할머니를 따라 나가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부터 밤늦게 까지 일만하고, 나한테 맛난 반찬도 안 해 주고 놀아주지도 않습니다. 할머니가 내가 싫어졌나 봅니다. 예전엔 맛난 반찬도 해주시고 안아주고 놀아주고 그랬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할머니에게 말을 하지 말고 속을 썩여야 한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쳐갑니다. 나는 뒷산에 숨어서 할머니가 나를 찾나 기다려 봅니다. 늦은 저녁 할머니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육민아! 육민아!” 나는 못들은 체 가만히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웃집 아주머니가 지나가면서 이야기 했습니다. “힘드시죠? 어르신! 아들, 며느린 그렇게 병원에 누워있고 어린 것 키우려니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몸도 안 좋으신 데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하시고 아들 며느리 병원비에 육민이 병원비에 이것저것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서요! 그것은 속도 모르고 저렇게 속을 썩이니 말 이예요. 어르신은 음식도 변변히 드시지 못하시고, 손자만 맛있는 거 해주시고. 아이고! 앞으로는 그러지 마세요! 어르신!”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순간 이제야 알았습니다. 할머니가 고기며 맛난 음식들을 맛없다고 한 말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나를 더 먹이려고 그랬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요즘은 엄마 아빠 병원비 때문에 돈이 없어서 나에게 고기반찬도 못해주고 할머니가 더 바빠졌다는 것을 아주머니와의 대화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를 미워하는 마음을 갖은 것이 미안하고 할머니가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도 모르게 쏟아지고 말았습니다. 할머니 말도 잘 듣고 착한 아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웃집 아주머니가 할머니랑 이야기가 끝나고 지나가자 나는 얼른 할머니 하고 달려가 안기며 “할머니! 앞으로 말 잘 들을께!” 하며 할머니의 품안에 안겼습니다. 또 눈물이 납니다. 할머니는 “우리 강아지” 하며 또 환하게 웃어 주었습니다. 앞으로 할머니 와 울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물론 속도 썩이지 않고요.
나도 우리 할머니처럼 씩씩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야 우리 엄마 아빠가 빨리 나아서 나를 데리로 올수 있을 테니까 말이 예요.
난 큰 소리로 소리쳐 봅니다.
“엄마, 아빠! 빨리 나아서 와! 보고 싶어! 할머니 말 잘 듣고 기다릴게.”
메아리가 나에게 알았다고 대답해 주는 것 같습니다.
“엄마 아빠가 육민이 보고 싶어서 빨리 올거야!” 하시며 환한 미소를 내게 지으십니다.
마음속에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우리 할머니는 멋진 내 친구며 우리 할머니이며 내가 사랑하는 사람입니다.’라는 생각이 들자 마지막으로 크게 소리쳐 봅니다. “할머니 고맙고 사랑해!”
라고 소리치자 할머니가 나를 얼싸 안고 큰소리로 울었습니다. 나는 할머니가 눈물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참아왔던 눈물이 폭포수처럼 마구 쏟아져 흘러 내렸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할머니도 많이 힘들었고 엄마, 아빠 걱정을 많이 했었나 봅니다. 할머니 랑 얼싸안고 한참을 울고 난후 할머니와 나는 약속했습니다. 다시는 울지 않고 씩씩하고 강한 우리 할머니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요.
할머니와 파이팅하며 손을 잡고 경쾌한 걸음으로 집으로 향했습니다.
첫댓글 살짝 더운듯한 가을하늘이 식으려는 열정을 다시 데우려나 봅니다. 뱃속 가득 저마다 사연 품은 항아리 처럼 시간이 지나면 모두는 저마다의 신발을 벗어야 하지요.
수작이 뽑혀서 반갑고 많이 응모해서 기쁩니다. 회장님과 회원님들 준비하느라 고생많이 하셨습니다. 다시 성황을 이루는 내년을 기대해봅니다.
수상자인데요. 전화번호와 주소는 좀 지워주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