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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함이 두런두런 거린다. 동화책이 속살거리면서 얼른 꺼내 달란다. 전라도에서 열정을 불태우는 박상희 작가님이다. 전국편지마을 회원으로 만나 꽃 인연을 맺었다. 선배님은 장편동화 '아빠와 함께 떠나는 나주 여행'으로 나주를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몸 담은 고장을 지극히 사랑하여 동화로 펴냈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 감흥이 아직도 그대로인데 두 번째 옥동자가 태어났다니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이모라도 되는 듯 사랑스럽게 껴안는다. 어떤 모습일까 노랑 봉투를 곱게 뜯는다. 제목이 '이모티콘 할머니'다. 현실성이 짙은 동화라는 감이 온다. 표지 그림도 참 포근하다. 뽀글 파마에 새하얀 눈꽃이 핀 할머니를 예쁜 손녀가 꼭 껴안고 있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바탕엔 앙징스런 꽃들이 흩날린다. 얼른 읽고 싶은 마음에 후다닥 펼친다. 곱게 써 내려 간 편지가 툭 떨어진다. 지금껏 책 선물을 푸지게 받았다. 이렇게 정성껏 쓴 편지까지 곁들인 건 드문 일이다. 한석봉 여동생이라도 되는 듯 명필이다. 나에 대한 사랑과 칭찬으로 빼곡하다. "늘 명랑 명숙씨는 자기의 아픔까지도 끌어안고 따뜻함과 칭찬 바이러스로 꿋꿋하게 사는게 부럽습니다. 그래서 더욱 존경하지요. 그대를 생각하며 화가 나고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다시 웃어봅니다. 명랑 명숙씨,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계속 행복합시다!" 매력 만점의 동화책에다 한 땀 한 땀 눌러 쓴 자필 편지까지 받으니 어찌 춤추지 않으랴. 저절로 읽고 싶은 충동이 밀물이다. 전국편지마을과 이성자 시인님의 카페에서 나나들이를 한다. 이미 대단한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갈 길이 먼 피래미를 정성껏 대한다. 매일 올리는 수다상을 읽고 한껏 사랑을 주는 힘꽃이다. 사랑은 품앗이다. 작가의 성품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동화 속으로 푹 빠져 들었다. 낮달이 되어 가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존재를 보름달로 밝혀 준다. 세상에 꼭 나와야 할 책이란 생각에 반가움이 꽃등이다. 난 유년시절부터 조부모님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친정엄마는 시집살이하느라 늘 한숨만 쉬셨지만 난 좋았다. 유년시절의 자고 일어나면 할아버지. 할머니의 기침 소리와 조금은 기 죽은 듯한 아버지. 한숨을 몰아쉬는 엄마의 모습이 수묵화처럼 그려진다. 어린 눈에도 대가족과 부대끼는 것이 마냥 좋게만 보이진 않았다. 때론 할아버지. 할머니와 따로 사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했다. 결혼 후엔 우리 엄마의 전철을 그대로 밟는 진행형이다. 시나브로 시어머니가 될 나이가 코앞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어머님께 도움만 받고 사는 철부지다. 비록 끊임없이 조율해야 하는 피곤함은 있지만 후회는 없다. 남매의 교육이 저절로 되어 갈수록 편하다. 부디 이 동화책을 읽고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은 평생을 대추방망이처럼 살게 하는 밑거름임을 깨닫길 바란다. 내용을 족집게 처럼 그린 그림 보는 재미도 꿀이다. 건빵 속 별사탕처럼 맛있다. [이모티콘 할머니] [곁눈으로 슬쩍 보니 이모티콘 문자다. "할머니도 문자 해?" "그럼,우리라고 못 하니? 너희들 하는 거 우리도 다 한다." 할머니는 큰소리치셨다. 채은이네 집은 아침마다 전쟁이다. 엄마는 간단하게 빵과 우유로 아침 식사를 하자고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엄마는 일회용 밥은 전자렌즈에 돌리고 반찬은 배달시킨다. 채은이는 아침밥을 제대로 못 먹어 기운이 없다. 어느 날 할머니가 오셔서 이젠 밥을 얻어 먹겠구나 만세를 불렀다. 기대와는 달리 할머니도 밥을 안 해 주신다. 그 전 같으면 온갖 일을 다 해주셨는데 이젠 등산도 가고 친구도 만나고 며칠 푹 쉬다가 가시겠단다. 채은이가 툴툴거려도 모른 척 하실 뿐이다. 할머니는 채은이의 노트북까지 사용하신다. 다음 날 부터 새벽같이 어디가기까지 하시니 궁금증이 뭉게뭉게 일었다. 새벽같이 어디를 다녀온 할머니 옷에서는 갈비 냄새가 났다. 할머니 곁에 딱 붙어서 코를 벌름거렸다.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만 같아서 할머니가 의심스럽다. 궁금증을 해갈시켜주지도 않은 채 슬그머니 들어가 버린다. 그날 밤 '딩동'하고 할머니에게 문자가 온다. 곁눈으로 슬쩍 보니 이모티콘 문자다. 어떻게 하는지 몰라 헤매시는 할머니가 채은에게 묻는다. 할머니께 맛있는 것 해 달라는 조건으로 가르쳐 드린다. 가족들 몰래 김밥을 싼 할머니는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셨다. 오후에 "오늘 늦음 할머니"하고 웃는 모양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밤이 늦도록 귀가하지 않으셨다. 아빠는 안절부절못하며 지구대에 신고를 했다. 밤 열두 시가 지나서야 나타난 할머니는 기분이 매우 좋아 보인다. 아빠. 엄마는 속이 상하여 말도 섞지 않는다. 며칠이 지나 할머니가 또 이모티콘 문자를 보냈다. "긴급회의 있음"하고 김이 솔솔 올라오는 모양이 옆에 있다. 할머니는 식탁 가득 맛있는 음식들을 차려놓고 속엣말을 털어 놓으신다. "사실은 필리핀에서 시집 온 새댁한테 가 봤단다. 아침마다 반찬 만드는 거 가르쳤어, 그날은 어린이대공원으로 놀러가고, 밤엔 노래방도 가느라 늦었지 뭐야. 나도 이제부턴 누군가 도우면서 살고 싶구나. 우리 가족은 나 없이도 주문해서 잘 먹으니 걱정할 것도 없고." 하신다. 채은이는 엄지 척! 하며 큰 소리로 말하자 모두들 밥을 먹다 말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한바탕 웃고 말았다. "이모티콘 할머니, 최고!"] 채은이 할머니는 참으로 지혜로운 분이다. 일 나가는 며느리가 밥도 제대로 챙기지 않지만 원망하기보단 이해를 한다. 집에서 잔소리 할 궁리를 하는 대신 바깥세상으로 마음을 돌린다. 당신의 손길이 필요한 곳을 찾아 봉사한다. 시어머니들이 본받아 할 부분이다. [멋쟁이 할머니] [유리 옆집엔 멋쟁이 할머니가 사신다. 보라색 선글라스를 머리에 쓰고 최신 아이폰도 있다. 털이 긴 고양이도 안고 다녀 멋쟁이 할머니라고 부른다. 가끔씩 할머니가 영어로 통화를 하는 소리가 들린다. 유리는 옆 집 할머니가 무척 궁금해진다. 엄마는 관심 없다는 듯 샐쭉한 표정이다. 어느 토요일 시골에 사시는 외할머니가 오셨다. 오시자마자 팔을 걷어붙이고 고구마를 쪄 주신다. 유리는 외할머니 손을 잡고 멋쟁이 할머니 집으로 갔다. 마치 궁궐 같은 집에서 왕비처럼 지내는 멋쟁이 할머니가 입을 가리며 웃는 모습이 귀엽기까지 했다. 할머니는 고양이를 지극히 사랑하여 사람이 먹는 피자까지 준다. 외할머니가 자식들은 어디에 있냐고 물으셨다. 미국에서 유명한 박사라고 자랑하니 외할머니 얼굴이 갑자기 우글쭈글해졌다. 외할머니는 그렇게 멀리 살면 뭐하냐며 자식 자랑을 늘어 놓는다. 평소엔 흉을 보던 아빠 자랑까지 하신다. 가족사진이나 앨범은 없냐고 물으니 벽에 거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얼버무린다. 멋쟁이 할머니는 유리를 착하고 인사성도 밝다며 에뻐한다. 집에도 초대하여 귀한 손님처럼 대접하여 꼭 마법에 걸린 느낌이다. 유리가 아이폰 화면을 잘못 건드려 할머니의 여행 사진이 나왔다. 지난 설날에 파리 여행을 갔다며 이번 어버이날엔 호주에 갈 거란다. 외국을 옆집에 가듯 말하니 부럽기만 하다. 어버이날, 터덜터덜 걸어오는 멋쟁이 할머니는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인다. 여행은 안 갔냐고 물으니 못 들었는지 맥없이 지나간다. 그 뒤로 할머니의 집 현관이 꾹 닫혀 있다. 오지랖이 넓다며 엄마는 꾸중을 하면서도 신고부터 한 후 할머니 집으로 함께 가 주었다. 안방에 들어가 보니 할머니는 자는 듯 쓰러져 있다. 할머니께 날마다 전화했던 아들 번호를 대라고 하니 횡설수설한다. 아무리 찾아도 자식들의 번호는 없다. 멋쟁이 할머니를 실은 구급차는 드릉드릉 급한 소리를 내며 병원으로 향했다. 유리는 고양이를 안은 채, 제발 할머니가 별일 없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참으로 슬픈 노인들의 현주소다. 잘 키운 자식은 외국 자식이란 말이 딱 맞다. 외국에서 박사하느라 어머니가 아파도 오질 않는다. 결국 고양이를 의지한 채 겉으로만 화려하게 살 뿐이다. 그나마 이웃사촌 유리 가족을 만나 행복했으리라. 그것도 잠시 가짜 행복은 결국 몸까지 쓰러뜨린다. 그래도 유리같은 예쁜 오지랖쟁이가 있어 목숨을 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랴. 내 주변에도 독거노인이 많다. 실제로 작은 도움을 드린 분도 더러 있다. 첫인상은 동화 속 멋쟁이 할머니처럼 보였다. 이른 출근길 작은 공원에서 매일 운동을 하면서 속을 텄다. 알고 보니 그렇게 팔자가 안 좋을 수 없었다. 부잣집 마나님처럼 보이던 할머니는 사위에게 전재산을 홀라당 빼앗기고 겨우 사는 처지였다. 그마저도 감시까지 당하여 바깥에서 또래의 어르신들과 너나들이도 못하게 했다. 열등감 덩어리의 자격지심이다. 부처같은 친구와 몇 차례 도와 드리니 엄청 행복해 하셨다. 딸보다 더 낫다며 말 못할 사정을 털어놓으셨다. 지금은 공원에도 안 보여 매일 두리번거리며 걱정한다. 수소문하여 찾아볼까 해도 방법이 없다. 어느 날 딸과 함께 지낸다고 하신 것이 마지막이다. 그 딸은 효녀가 아니라 자신도 환자라 엄마를 마구 부린다고 하니 애물단지다. 그 후 또 한 분의 어르신을 알게 되었다. 일터 주변에 사시면서 지나가실 때 마다 내게 말을 건다. 그럴 때 마다 먹을거리를 손에 쥐어 드리면 고마워 어쩔 줄 모르신다. 그 분 역시 구순이 가까워오는데도 단칸방에 월세 사신다. 딸이 시골 집을 팔아 도시의 작은 방을 구해 준 후 잠적해 버렸다. 할머니는 참으로 많이 배우고 경우도 바른 분이다. 남편복이 지지리도 없더니 자식복까지 없다며 신세타령을 한다. 우편물이 오거나 모르는 것이 있을 땐 편하게 오신다. 살갑게 대해 드렸더니 시도때도 없이 오시지만 친정엄마 생각에 귀찮아하지 않는다. 오늘도 독후감삼매경에 빠져 있는데 다리를 절절 끌며 오셔선 이런저런 말을 건넨다. 사탕 몇 알을 손에 쥐어드리며 편찮으시지 말라고 당부드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이 안 좋아 물리치료 가는 중이라고 하여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고보니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어젯 밤 남편과 노인전문병원을 찾아 갔다. 시이모님께서 칠순 중반인데 병원에 누워 계신다. 살짝 치매기마저 있어 언니인 시어머님의 눈가가 마를 날이 없다. 남편과 연애할 때 부터 우리의 사랑을 지지해 주신 분이다. 성격도 밝고 음식 솜씨도 좋아 인기가 많다. 건강하실 땐 열정우먼으로 사셨는데 편찮으시니 초라하기 짝이 없다. 자식농사는 잘 지어 뿔뿔이 흩어져 산다. 혼자 지내다가 이렇게 병원 신세를 지고만다. 평소에 시어머님과 이모님은 알게모르게 살짝 샘도 내는 듯 보였다. 이모님은 자식농사를 잘 지어 기가 살아 있다. 반대로 어머님은 자식 농사가 부실하여 기는 죽었지만 아들.며느리.손자.손녀까지 함께 산다는 것이 자랑거리였다. 이모댁에 다녀오시는 날이면 이모를 슬쩍 부러워하시는 듯 하다가 당신 삶이 행복하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셨다. 그럴 땐 효부는 아니지만 같이 산다는것만으로도 효도를 하는 것 같아 생색도 냈다. 병원 문을 여는 순간 가슴이 아려 왔다. 할머니 네 분이 누워 계시는데 아무 희망도 즐거움도 없어 보인다. 이모님은 뼈만 앙상하여 살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 불쑥 걱정이 되었다. 맛있는 것 사 드리겠다고 하니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단다. 옛 말에 곡기를 끊으면 죽는다는 말도 있다. 어떤 할머니는 발가벗고 계셨다. 간병인이 손님이 있을 땐 입으라고 해도 막무가내다. "아이구 내사마 딱 죽고 싶은기라. 산송장이나 마찬가지인 내가 옷을 입으면 뭐하겠노?"하시며 옷만 만지작거리셨다. 축 늘어진 가슴을 보니 같은 여자로서 명치 끝이 아렸다. 얼른 일어나시라고 손을 꼬옥 잡아 드린 후 나왔다. 이모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남편도 고개를 떨군다. 국밥이나 먹고 가자며 식당으로 들어 갔다. 남편이 다른 날 보다 더 살갑다. "이모보니 참 안됐다.그쟈? 못 먹으면 죽는기라. 니도 우짜든동 많이 먹고 건강해야된대이. 고기도 많이 묵고 소주도 한 잔 쭉 들이키라."했다. 못 드시는 이모님 생각에 목이 메이면서도 건강한 사람은 먹고 있는 꼴이 아이러니다. 최명희의 혼불 생각이 불쑥 새치기 한다. '가족을 위한 최대의 사랑은 건강해 주는 일이다.'라고 했다. 멋쟁이 할머니처럼 혼잣말도 하고 연극배우까지 하는 독거노인들이 언제쯤 사라질까. 난 독거노인으로 시부모님을 내버려두지 않아 이렇게 복을 받는 것일까 엉뚱한 위로를 받는다. 동화책을 다 읽고 나니 바윗덩어리가 가슴에 얹혀진다. 수채화처럼 쓰여진 동화보다 큰 울림이 있다. 사회적 문제가 되는 소재를 사랑의 눈길로 찾아 낸 박상희 작가님이 대단하다. 가슴 아프지만 생각거리가 푸진 동화를 써 준 작가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사각지대에서 혼잣말하는 어르신이 계시나 보리쌀 소쿠리 쥐눈 처럼 두리번두리번 거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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