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260장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Glory to Jesus who died on the cross)
작사 : 피터 빌혼(Peter Philip Bilhorn, 1865~1936)
작곡 : 피터 빌혼(Peter Philip Bilhorn, 1865~1936)
이 찬송가는 마차 제조업자였으며 후에 유명한 복음찬송가 작곡자가 된 빌혼에 의해 1908년에 작사.작곡된 것이다. 빌혼은 일이 끝나면 술집에서 주객들을 상대로 노래를 불러주는 일을 하였는데, 그리스도에게 붙잡힌바 된 이후에는 주옥같은 찬송가를 만들어 신자들에게 많은 은혜를 끼쳤다. 이 찬송가도 그가 자신의 회심을 회상하며 만든 것이다. 관련 성구는 로마서 7장 24-25절의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구원하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이다.
해설
1절 우리를 죄에서 구하시려 주 예수 십자가 지셨으니
기쁘게 부르세 할렐루야 나 구원 얻었네
핵심 교리: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은 단순히 고난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이사야 53:5–6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마가복음 10: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베드로전서 2: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따라서 “나 구원 얻었네”라는 고백은 인간의 공로나 선행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역을 믿음으로써 얻은 구원을 의미합니다.
“할렐루야”의 이유
구원받은 사람에게 가장 큰 찬송의 이유는 세상의 형편이 아니라 죄와 사망에서 건짐받았다는 사실입니다.
에베소서 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그러므로 이 찬송의 출발점은 십자가, 그 결과는 구원, 그 반응은 찬송입니다.
후렴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님 나를 구하셨네
찬송하세 찬송하세 주가 구원하셨네
후렴은 이 찬송 전체의 중심입니다.
① 구원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
“주님 나를 구하셨네”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구원의 근원을 인간에게 두지 않고 하나님께 둡니다.
요나 2:9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디도서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따라서 구원받은 성도의 가장 합당한 반응은 찬송과 감사입니다.
② 구원받은 사람의 삶은 찬송의 삶
시편 40:3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요한계시록 5:9
“새 노래를 노래하여 이르되… 주께서 죽임을 당하시고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에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십자가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은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게 됩니다.
2절 우리를 죄에서 구했으니 이전에 행하던 악한일과
추하고 더러운 모든 죄를 온전히 버렸네
여기서는 매우 중요한 구원의 결과를 말합니다.
구원은 죄의 용서만이 아니라 죄에서 돌이키는 삶을 포함합니다.
① 죄에서 구원받았으므로 죄를 버린다
에베소서 4:22–24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골로새서 3:8–9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죄가 용서되었다”고 말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옛 생활을 벗고 새 생활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② 그러나 “온전히 버렸네”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신학적으로 주의할 부분이 있습니다.
성도가 구원받았다고 해서 이 세상에서 더 이상 죄를 전혀 짓지 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요한일서 1: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그러므로 이 찬송의 “온전히 버렸네”는 죄 없는 완전한 상태라기보다,
죄를 사랑하고 죄 가운데 살던 옛 삶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켰다
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성경적으로 적절합니다.
3절 나 지금 죄에서 사함받아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것 없겠네
여기서는 칭의와 성화, 그리고 죽음에 대한 승리가 연결되어 있습니다.
① 죄 사함
에베소서 1: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예수님의 피가 우리의 죄를 씻습니다.
요한일서 1:7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② 거룩한 백성이 됨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 됩니다.
베드로전서 2:9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따라서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니”라는 가사는 매우 성경적입니다.
다만 이것 역시 죄가 전혀 없는 완전한 성결 상태라기보다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이 되었고 계속해서 성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③ “이 육신 장막을 벗을 때도 겁날 것 없겠네”
이 표현은 성경에서 육체를 장막에 비유한 것과 연결됩니다.
고린도후서 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바울은 육체의 죽음을 장막을 벗는 것으로 표현합니다.
그래서 성도에게 죽음은 최종적인 멸망이 아닙니다.
빌립보서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고린도전서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따라서 “겁날 것 없겠네”는 죽음 자체가 두렵지 않다는 인간적인 자신감이라기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간다는 믿음
을 표현한 것입니다.
4절 우리가 이세상 떠날 때에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영원히 즐거운 천국에서 주함께 살겠네
마지막 절은 성도의 영화와 영생을 바라봅니다.
① “이 세상 떠날 때”
성도의 육체적인 죽음은 세상과의 이별이지만, 그리스도와의 이별은 아닙니다.
요한복음 11:25–26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그러므로 성도에게 죽음은 부활을 기다리는 잠과 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② “예수의 손목을 굳게 잡고”
이 표현은 신앙적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성경의 구원론적 관점에서는 한 가지 중요한 의미를 덧붙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손을 붙드는 것보다 더 근본적인 사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따라서 이 가사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면,
“내가 주님의 손을 굳게 잡는다”
→ 믿음과 신뢰
이며,
“주님께서 나를 붙드신다”
→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의 보장
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③ “영원히 즐거운 천국에서 주 함께 살겠네”
이것이 구원의 최종 목적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궁극적으로는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3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요한계시록 21: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그리고 요한계시록 22:4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즉 천국의 가장 큰 복은 금이나 집이나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