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씁니다
김경준
무릎 높이쯤 되는 큰집 마루 밑, 거기서
작은 몸 놀릴 수 있었던 그쯤의
자의식 겨우 눈뜬 그 나이었을 겁니다.
술래놀이에 마루 밑 깊숙이 숨었습니다.
큰엄마가 콩기름 반질거리게 바른
나이테 곡선 예쁜 마루 위와는 다르게
깊은 어둠 속에서 뭔지 나를 지켜보다가
흉측한 손이 불쑥 나를 잡아당길 것 같아
숨어 들어간 마루 밑이 무서웠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서 어둠이 익숙해지자
칙칙한 공기 축축한 흙은 손가락에 곰질곰질
허연 거미줄은 쌓인 먼지 무게에 늘어지고
잘못 박힌 못과 옹이구멍 뚫린 마루 사이로
곰팡이 슨 담뱃잎, 노래기, 쥐며느리, 벌레시체
마루 위와 다르게 거미줄 설긴 기둥은 거무튀튀
나이테도 지워진 낯선 세상이었습니다.
밖으로 얼굴을 돌려서 처음 본 것은
할머니가 새 고무신 신으시고부터 없어졌던
누런 헌 고무신 한 켤레에 섬돌 옆 부러진 곰방대
어둑한 마루 아래는 쓸 수는 없고 버리기엔 아까운
잡동사니들을 밀쳐 두는, 잊어가는 공간이었습니다.
견디고 버텨온 삶의 억지가 스며 밴 영혼의 그 자리
낙심하는 통증은 지근대고, 허튼 심사로 꼬인 기둥
거무튀튀 썩어가는 내 영혼의 그 자리에
축축하게 젖은 어둠이 웅크리고 있습니다.
큰집 마루는 사용하는 바닥만 깨끗하면 되지만
내 안을 비집는 잡념의 어둠을 걷어내고
순백의 영혼을 위해 한 줄 글을 엮어 어르고
들숨 날숨 내 안에 들여놓는 고진 삶들을 글자로 적어
신음소리 덧나지 않도록 한 문장씩 덧대는 일입니다.
첫댓글 헛간이나 마루밑에 숨으며 숨바꼭질 하던 어린시절이 생각나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