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종착역 04 (2019 사토 아이코)
04 웃음과 슬픔이 교차하는 엔도 슈사쿠 추도
(73세・부인공론1996년 12월호)
04-1 항상 웃는 얼굴
엔도 슈사쿠(*작가 1923~1996 사토와 동연배 친구사이)씨는 사람을 웃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본인이 웃는 쪽을 더 좋아했다. 그의 장난전화는 유명하지만 구경꾼이 있는 것은 아니니 웃는 것은 그 혼자다.
장난을 당한 상대는 웃는다고 해도 쓴웃음 정도이고, '재미있는 사람이네...' 그 정도로 끝나버린다. 속아놓고 배꼽 잡고 박장대소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엔도 씨 한 명이 크게 웃으며 기뻐하고 있을 뿐이다. 개중에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지만, 엔도씨는 "화냈다" 라고 하며 그것도 재미있어 했다.
어느 날 내가 책상에 앉아 일을 하고 있는데 옆의 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사토 씨요? 사토 아이코 씨 계십니까?" 라는 쉰목소리의 동북 사투리 투로 말했다. "네, 사토 아이코는 저입니다만."
아, 그런가요, 그런가요. 저기, 갑작스런 일이지만, 저랑 결혼 좀 해주실 수 있나요?" 바로 그 무렵, 저는 한 잡지에 '세 번째 남편을 구합니다'. 라는 장난끼 섞인 글을 쓰고, 그것이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을 읽은 사람으로부터라고 바로 생각했다.
그는 자신은 아내를 잃었고 아이가 다섯 명 있다. 그래도 괜찮다면 결혼해 달라는 것이었다. "괜찮은 남자야." 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말했다. "그럼 이력서를 보내주세요." 라고. "이력서 말이죠. 네, 알겠습니다. 이력서는 모필로 입니까? 펜으로 입니까?"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전화를 끊고 이상한 사람도 있다고 생각하며 원고 쓰기를 이어갔다. 그러자 곧 또 전화가 울렸다. "나, 엔도야." "아, 엔도 씨. 안녕하세요." "조금 전에 당신한테 전화오지 않았어?"
"아, 걸려왔어. 괜찮은 아저씨로부터." "그 사랑, 나야." "네?" "나야, 나..." "뭐야..." 나는 말문이 막혔고 엔도 씨는 나를 놀린 것에 더 이상 없는 기쁨을 느끼는 듯했다. "하지만 당신, 평소에도 그렇게 쉽게 속임을 당하나?" 라고 엔도 씨는 말했다.
"여러번 내 속임수에 당해도 질리지도 않는 모양이야..." 하며 거의 감탄조로 말했다. 속인 건 자기인데... "속는 놈은 얼마든지 있어. 근데 '이력서 보내주세요'라니. 그렇게까지 말하는 사람은 없었어."
"하지만 나도 진심으로 그렇게 말한 건 이니예요." “알고 있어. 호기심으로 그랜 줄." "그대로예요." "그게 당신의 재미있는 점이야" 라고 엔도씨는 말했다.
엔도 씨는 여류작가 S 씨에게 도호쿠에서 가출한 소녀라며 전화를 건 적이 있다. "지금 우에노역에서 걸고 있습니다만, 갈 곳이 없으니 받아 주지 않겠습니까, 라고 했더니 단칼에 냉정하게 거절했다." 라고 화를 냈다.
하지만 그것이 상식이지 화낼 이유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엔도 씨는 그 매정한 대답 때문에 웃고 싶어도 웃을 수 없는 것이 불만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S씨도 전화의 주인을 엔도씨인 줄 모르고, 정말로 도호쿠의 가출한 소녀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엔도 씨는 실로 일곱 가지 색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은 좋아, 의표를 찔러준다." 라고 엔도 씨는 말했다. 별로 의표를 찌르려고 한 것은 아닌데도, "그점이 좋은 것이야'라고 했다. 엔도 씨가 기뻐하며 웃으면 나도 왠지 유쾌해져서 속임당한 분한 마음을 잊고 함께 웃고 만다.
나는 버럭화를 잘 내는 성격으로, 엔도 씨로부터 "당신 에세이를 읽다 보면 격분이라든가 분노라든가 격앙이라든가, 발끈했다든가 살펴보면 한 에세이에 다섯 개 정도는 꼭 나오고 있어." 라는 말을 자주 듣곤한다.
"당신이 화내는 건 마음대로지만 싸움닭이 싸우다 모래 걷어차듯이 나한테 모래 뿌리는 거 그만해." 내가 화가 났을 때 엔도 씨의 다루는 방식은 경쾌하고 교묘해서, 항상 나를 웃게 했고 분노는 사라졌다.
04-2 어제 저녁 반찬
"그런데 당신집 어제 저녁 반찬 뭐 했어?" 라고 갑자기 말한다. "어젯밤에는요, 우리 집은 스키야키예요. 백그램에 천팔백엔짜리 고급소고기인데 그거 오백 그램 사와서 배부르게 먹었어요. 딸이랑 둘이 살면서 무려 오백 그램이나... " 엔도 씨의 목소리를 들으면 나는 반사적으로 떠벌리는 버릇이 붙어 있는 것이다.
"게다가 계란도 한 사람당 하나씩이 아니고 두 개씩이야..." 엔도 씨는 폭소를 터뜨리며 "계란도 두 개씩인가... 당신의 뻥튀기 이야기는 뻥튀기 근처에도 못 가는 뻥튀기야." 하며 즐거워했다.
"정말 당신은 재미있는 여자야." 그런 말을 들으면 나는 마치 남의 일처럼 "정말 나는 재미있는 여자구나" 라고 생각하고, 왠지 유쾌해진다.
나는 연중 싸우거나 속거나 손해를 보거나 하는 인간이지만, 그때마다 엔도씨는, "그럴 때는 나에게 상담해, 왜 상담하지 않지" 라고 자주 말해 주었다.
하지만 일을 먼저 저질이고 보는 성격의 나는 상담하기 전에 일을 저질러 버리고 실패한 후, 엔도 씨에게는 그 실패를 푸념할 뿐이었다.
엔도 씨는 그때마다 "뭐슨 일을 또 저질렀나, 너는..." 라고 사투리 섞인. 소리로 외치고(그는 기쁠 때는 사투리 섞인 목소리가 된다), 그 실패의 어리석음을 우스갯소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리고 그로 인해 나는 웃으며 기운을 되찾았고, 역시 같은 실수를 반복했다.
04-3 "일생에 한 번 있는 부탁이야."
어느 날 엔도 씨는 두 곳에서 강연 의뢰를 그것이 같은 날임을 잊고 맡아 버리고 내게 드물게 침통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 왔다.
"부탁해. 일생에 한 번 있는 부탁이야. 전화로 보이지는 않겠지만 다다미에 머리를 대고 엎드려 부탁해..."
강연 중 하나는 홋카이도의 하코다테이고 다른 하나는 나고야였다.
나는 어쩔 수 없이, 그렇다면 나고야에 갈게요 라고 말했다. "그럼, 맡아주는 것으로 알게. 고마워요." 엔도 씨는 신묘한투로 말했지만 그러다 점점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갔다.
"네, 사토 당신. 나는 다리를 다쳐 움직이지 못한다고 상대방에게 말해 두었으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줘. 엔도씨는 지금쯤 하코다테에서...어쩌고 저쩌고라고 말하지 마. 그러면 큰일 나. 당신 알겠지?"
그런 다짐의 말을 들은 후 나는 나고야에 갔다. 엔도 선생님의 발은 어떻습니까, 라고 주최자가 말했고, 거짓말을 잘 못하는 나는 얼버무리기에 횡설수설했다.
그 무렵 엔도 씨는 하코다테에서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 그는 주최측의 마중 나온 사람에게 치매 노인 흉내를 내어, 그것을 정말로 알고 주최 측은 매우 걱정했다.
너무 걱정했기 때문에 사실 그건 거짓말이라고 자백했지만 성실한 사람들을 너무 화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게 말이야, 그쪽 사람들 진정으로 화를 내고 있는 거야." 라고 마치 화를 내는 쪽이 나쁘다는 투로 말했다.
04-4 엔도씨의 축사
6년 전 내 딸의 결혼이 결정되었고, 그 피로연에서의 축사를 나는 엔도 씨에게 부탁했다. "좋아, 해줄게." 라고 엔도 씨는 맡아 주었지만, "축사에 송 죽 매 세 단계가 있는데 어떤 걸로 할까요?" 하고 바로 떠벌렸다.
결혼 피로연이라는 것은 대체로 지루한 것으로, 그 지루함의 원인은 내빈의 연설에 있다고 나는 진작부터 생각하고 있었다.
딸의 시집가는 시가는 기업농의 성실하고 상식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축사는 자연 성실하고 게다가 길어졌다.
연회석에 음식이 운반되어 그것을 먹으면서 축사를 듣는 것이기 때문에, 너무 길면 접시 소리니 사담이니 하는 것으로 술렁인다.
그래서 나는 말석에서 메인 테이블의 엔도 씨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재미없으니까 재미있게 해줘. 그러자 엔도씨로부터 대답이 왔다."얼마 줄래?"
그러다 엔도 씨의 축사 차례가 왔고 엔도 씨는 마이크 앞에 섰다. 그리고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러분, 밥 먹으면 안 돼요!" 모두들 깜짝 놀라 조용해 졌다. 그 순간 옆 테이블에서 기타모리오(*北杜夫 소설가 1927~2011)씨가 말했다.
"술은?" "술은 마셔도 돼요..." 와 하고 웃음소리가 나서 나는 기뻤다. "소설을 쓰는 사람은 모두 이상한 사람입니다." 엔도 씨의 연설은 그런 식으로 시작되었다.
"여기 있는 기타모리오도 이상하고, 고노 다에코(*河野多惠子 소설가 1926~20115)씨도 나카야마 아이코(*中山あい子 소설가 1923~2000)씨도 모두 이상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이상한 것은 오늘 신부의 어머니 사토 아이코 씨입니다. 스기야마(사위의 성) 씨. 앞으로 이 사람을 어머니(장모).라고 부르기는 힘들 거예요." 사람들이 웃는다. 하지만 엔도 씨는 웃지도 않고 계속했다.
"나는 옛날 중학생 시절 전철에서 자주 만나는 여학생이었던 사토 아이코를 동경해 어떻게든 그녀의 관심을 끌려고 전철 손잡이에 매달려 원숭이 흉내를 냈습니다. 그래서 바보 취급을 당했습니다."
예상대로 엉터리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나는 무슨 멍청이였는지, 그런 원숭이 흉내를 내거나 하지 않았다면, 오늘은 이 피로연의 아버지 자리에 앉아 있었을 것 같은데..." 폭소 속에 엔도 씨는 말했다.
"마지막으로 제가 신랑에게 부탁이 있습니다. 부디 사토 아이코 씨를, 이 귀찮은 사람(장모)을 잘 부탁드립니다." 보통 같으면 이럴 때는 '아이코 씨의 소중한 외동딸을 잘 부탁합니다'. 라고 해야 할 부분이다.
어머니(장모)를 잘 부탁한다는 것은 들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뭉클했다. 엔도 씨는 역시 나를 걱정해 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걸 확실히 알았다.
하지만 그 후 엔도 씨는 화장실에 가면서 말석인 내 곁을 지나면서 '야, 7천엔이야, 7천엔.' 하고 나갔다. 뭉클했던 나는 금세 정신을 차리고, '칠천엔은 비싸다...' 라고 바로 받아쳤다.
엔도 씨는 놀라울 정도로 많은 친구를 가진 사람이었다. 문학 관계, 출판 관계, 종교 관계, 의료계, 음악계, 실업계. 그 많은 친구들 중에서 나는 엔도 씨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변두리 친구에 지나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엔도 씨의 "기분 전환 친구." "진기한 친구" 였다.
엔도 씨가 타계하신 후, 나는 여러 사람으로부터 위로의 소식이나 전화를 받았다. 그때마다 나는 말했다. "장난만 치는 상대 같았지만 저는 의지하고 있었어요. 허전한 마음 뿐입니다."
하지만 이 '의지' 라고 하는 것은 상담을 받아 주거나 격려를 받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실패를 듣고 실망에서 벋어나 크게 웃도록 하여 용기를 주는 것이었다. 앞으로는 어떤 실패도 이제 혼자 짊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엔도씨, 그동안 여러가지로 고마웠어요." 라고 말하기보다는, "엔도씨, 앞으로가 걱정입니다...」 라고 밖에 나는 말할 수 없다.
(73세 1966년 부인공론 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