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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럽고 따뜻하고 친절한 하나님의 사랑”
그George Herbert는 목사입니다. 사물의 본질이나 존재의 근본 원리를 사유思惟나 직관直觀을 통해서 연구하는 형이상학파形而上學派 시인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시를 짓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자신의 시Love(III)를 통해서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Love bade me welcome; yet my soul drew back,
Guilty of dust and sin.
사랑이 나를 반갑게 맞았지만, 내 영혼은 물러섰다.
티끌과 죄로 더럽혀졌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랑은 허물과 죄는 티끌조차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화자는 허물과 죄 자체인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따뜻하게 환영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인류는 위축되었습니다. 주저했습니다. 허물과 죄로 범벅이 된 존재라는 죄책감 때문이었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 자신을 적나라하게 돌아볼 수 있다면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결코 자신만만할 수 없습니다. 어떤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But quick-eyed Love, observing me grow slack
From my first entrance in,
Drew nearer to me, sweetly questioning
If I lacked anything.
그러나 눈치 빠른 사랑이 내가 주저하는 것을 보고
내가 처음 들어서는 순간부터
다가와 다정하게 물었다.
“혹시 부족한 것이 있느냐?”
하나님께서 인류의 망설임을 알아차리셨습니다. 인류가 당신으로부터 멀어지도록 그대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부드럽게 다가오셨습니다. 무엇이 부족한지 따뜻하고 친절하게 물어보셨습니다.
“A guest,” I answered, “worthy to be here:”
Love said, “You shall be he.”
“여기 있을 자격이 있는 손님이 필요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사랑이 말했다. “그 손님이 바로 너다.”
인류는 부드럽고 따뜻하며 친절하게 환영해 주시는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해서는 자격을 갖출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고 대답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자신은 어떤 자격도 갖추지 못했다고 대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는 누구든지 당신의 환영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I the unkind, ungrateful? Ah my dear,
I cannot look on thee.”
“저 같은 무정하고 배은망덕한 사람이요? 아, 사랑이여,
나는 당신을 바라볼 수도 없습니다.”
Love took my hand, and smiling did reply,
“Who made the eyes but I?”
사랑이 내 손을 잡고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 눈을 만든 이가 누구냐? 바로 나다.”
인류는 자신을 무정하고 감사할 줄 모르는 존재라고 고백했습니다.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없는 존재라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죄와 결점에 집착했습니다. 믿음도 부족하고, 은혜도 모르는 자신은 하나님을 바라볼 수도 없다고 외쳤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주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당신을 바라볼 수 있는 눈도 창조하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티끌과 죄로 범벅이 된 인류를 그대로 받아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격을 갖춰야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 안에서 값없이, 선물로 주어졌기 때문에 받을 수 있습니다.
“Truth, Lord; but I have marred them: let my shame
Go where it doth deserve.”
“맞습니다, 주님. 그러나 제가 그 눈을 더럽혔습니다.
제 부끄러움이 마땅한 곳으로 가게 하소서.”
“And know you not,” says Love, “who bore the blame?”
“누가 그 죄를 대신 짊어졌는지 모르느냐?” 사랑이 말했다.
인류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할 눈을 자신이 망쳤다고 외쳤습니다. 수치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외쳤습니다. 수치심 때문에 도무지 견딜 수 없다고 외쳤습니다. 티끌과 죄에 범벅이 된 존재에게 어울리는 지옥으로나 가게 내버려두라고 외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의 외침을 가로막으셨습니다. 누가 티끌과 죄를 짊어졌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당신이 친히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대신 짊어졌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제아무리 몸부림쳐도 해결할 수 없는 수치심과 절망 속에서 영원히 몸부림칠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할 길을 열어주셨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My dear, then I will serve.”
“You must sit down,” says Love, “and taste my meat.”
So I did sit and eat.
“그렇다면 제가 섬기겠습니다.”
“아니다. 앉아서 내 음식을 먹어라.” 사랑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앉아서 먹었다.
인류는 더 이상 하나님의 따뜻한 환영을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기뻤습니다. 감사했습니다. 감격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외쳤습니다. 영원한 절망으로부터 건져주신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외쳤습니다. 합당한 값을 치르겠다고 외쳤습니다. 인류 곧 저와 여러분은 늘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아니 하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처음에는 즐겁게 합니다. 나중에는 의무로 합니다. 결국은 공로가 됩니다. 공로에 따르는 대가를 기대합니다. 이미 갚을 수 없는 은혜를 받아놓고도 공로에 대한 대가를 요구합니다.
주어지지 않으면 크게 실망합니다. 원망과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따지기도 합니다. 은혜로 허락해 주신 믿음을 완전히 까먹고 아주 떠나버리지 않으면 그나마도 천만다행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니라고 다독여주셨습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앉아서 먹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구원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값없이 선물로 주어진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희생을 통해서 이미 준비해 놓은 성찬을 받아먹으면 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비로소 인류는 티끌과 죄에 범벅인 자신을 따뜻하게 환영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저와 여러분이 피와 땀과 눈물을 쏟아부어서 또는 힘에 지나는 수고와 노력으로 쟁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스스로 속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값없이 선물로 이미 주어져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는 앉아서 먹었다.”라는 구절에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사랑을 단순히 보고 듣는 것에 그치지 말아야 합니다. 직접 맛보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 호흡하는 모든 순간 하나님께서 은혜 안에서 값없이 선물로 풍성하게 부어주시는 사랑 속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어두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환난, 곤고, 박해, 기근, 적신, 위험, 칼, 사망, 생명, 천사들, 권세, 현재 일, 장래일, 능력, 높음, 깊음도 절대로 끊어놓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먹고 마시며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을 거룩한 희생제물로 아낌없이 내놓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 절기 네 번째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골1:15)라는 증거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저와 여러분은 절대로 볼 수 없는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형상εἰκών은 단순한 모양이 아니라 본질을 가리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닮거나 설명해 주는 분 정도가 아닙니다. 볼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하나님을 보고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완벽하게 드러내 보여준 분이십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셨습니다. 이는 첫 번째로 창조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피조물의 유일한 주권자가 되신다는 의미입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는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골1:16)라는 증거대로, 친히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별과 은하, 자연과 생명 등 모든 것은 우연히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만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우주의 존재 목적은 돈도, 성공도, 저와 여러분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서 창조되었습니다. 절대로 잊지 말고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골1:17)라는 증거대로, 창세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순간도 빠짐없이 우주를 붙들어주고 계십니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고 지고, 지구가 쉬지 않고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고,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종류의 생명들이 나타나고 사라지는 등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호흡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전무후무한 능력 안에서 베풀어주시는 은혜를 통해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1:18-19)라는 증거대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πλήρωμα하십니다. 교회의 유일한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당연히 교회의 중심은 목사도, 프로그램도, 전통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교회가 건강하게 유지되기 위해서는 유일한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에게만 전심으로 집중해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은 물론 필요하다면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목숨까지도 바쳐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라는 증거대로, 친히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거룩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 기꺼이 물과 피를 흘리셨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물론 인간과 인간 더 나아가 창조 세계까지 화목 시키셨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닙니다. 우주적인 화해를 이루신 너무나 소중한 사건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창조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의 중심이 되십니다. 역사의 중심이 되십니다. 만물의 중심이 되십니다. 교회의 중심이 되십니다. 저와 여러분의 중심이 되십니다. 여전히 티끌과 죄에 끌려다니는 저와 여러분을 한순간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세상 무엇도 끊을 수 없는 사랑을 더할 나위 없이 풍성하게 베풀어주셨습니다. 지금도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이후로도 한결같이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건져줄 강력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오신 유일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과는 완전히 다르셨습니다. 왕궁이 아니라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군대를 이끌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온갖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죄인들을 만나주셨습니다. 상처 입은 사람을 안아주셨습니다.
한 여인이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끌려왔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이었습니다. 여인을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의 손에는 돌이 들려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이 여자를 돌로 쳐도 되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순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잠시 후,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살기가 가득했었던 사람들은 무슨 영문인지 몰라 조용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향해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들고 있던 돌을 던져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양심에 찔림을 받았습니다. 하나둘 돌을 내려놓았습니다. 급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인을 바라보셨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겠다. 어서 돌아가라. 이제부터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요8:11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습니다. 따뜻했습니다. 친절했습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힘겨운 삶을 살아왔던 여인이 평생 경험하지 못했던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그날, 여인의 인생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저와 여러분이 수없이 많이 반복해서 저지르고 있는 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저와 여러분이 경험하는 실패보다 훨씬 더 깊습니다.
이전투구의 현장에서는 결단코 경험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습니다. 따뜻합니다. 친절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저와 여러분을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재창조하기 위해서 이제까지 바로 그 사랑을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늘도 여전히 베풀어주고 계십니다. 이후로도 영원히 넘치도록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만물의 중심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무리 찾아보아도 자격이라곤 하나도 갖추지 못한 저와 여러분에게 부어주신 하나님의 부드럽게 따뜻하고 친절한 사랑을 깊이 묵상하는 복된 사순절 절기를 보내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