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5가해87-1-1.zip
須菩提가 白佛言하되 世尊이시여 如我解佛所說義로는 不應以三十二相으로 觀如來이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말씀드리기를 “세존이시여! 제가 부처님이 말씀하신 뜻을 알기로는 마땅히 32상으로써는 여래를 보지 못하겠나이다.”
冶父:有相身中無相身이여 金香爐下鐵?崙이로다 頭頭盡是吾家物이거늘 何必靈山問世尊이랴 如王秉劍이노라
說誼:卽相卽眞이라 相外無眞이니 頭頭物外家風이요 事事目前三昧로다 處處得逢渠인데 何必向外求리오 如王秉劍者는 以有相求亦錯이며 以無相求亦錯이니 有相無相이 都盧是錯이니라 如王秉劍하여 罪來卽斬하고 一得知非하면 便令却活이니 操縱在握이요 殺活이 臨時로다
야부:상이 있는 몸 가운데 상없는 몸이여!
금향로 밑에 철곤륜이로다.
낱낱이 모두 내 집 물건이거늘
어찌 반드시 영산의 세존께 물어야만 하는가?
왕이 검을 잡음과 같노라.
설의:相이 곧 眞이라. 相 밖에 眞이 없으니 낱낱(頭頭)이 물건 밖의 가풍이요, 일마다 눈앞의 삼매로다. 곳곳에서 저를 만나는데 어찌 반드시 밖을 향해 구하리요. 왕이 칼을 잡은 것과 같다는 것은 有相으로써 구하더라도 또한 틀렸음이며 無相으로써 구하더라도 또한 틀렸음이니 有相과 無相이 모두 다 틀렸음이니라. 왕이 칼을 잡은 것 같이 죄가 있으면 베어(斬)버리고 한 번 그른 줄 알면 문득 도리어 살게 함이니 조종하는 것이 손에 있고 죽이고 살리는 것을 때에 따라 행하도다.
청봉착어:상(相)을 여의고 진(眞)이 없으니
상과 상즉(相卽)하여 여래가 있도다
일체가 여래의 집 안(腹中)에 있거늘
여래가 다시 누구에게 내 집안 일을 물으랴?
圭峰:五는 印見聞不及이라.
규봉:(5)는 보고 듣는 것으로 미치지 못함을 인정한 것이다.
爾時에 世尊이 而說偈言하시되
若以色見我이거나 以音聲求我하면
是人行邪道이니 不能見如來이니라
이때 세존께서 게송으로 말씀하시기를
만약 모습으로 나를 보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를 행함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할 것이니라.
淸峯:聲(눈으로 볼 수 없이 있는 것), 色(눈으로 볼 수 있는 형상)으로서 여래를 헤아려 알고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래는 근본체인 진여 법성인 것이므로 형상이나 소리나 어떤 현상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닌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체를 관함으로써 견성 성불하는 것은 언설로서나 형상으로서나 알음알이를 내거나 헤아려 아는 것이 아니다. 오직 스스로 체달, 체인, 증오하여 증득할 뿐이다. 다시 말하면 현상은 눈(귀, 코, 혀, 몸)을 통하여 식(識)으로 보는(見) 것이며, 진여는 무위 무상이므로 항상하는 청정한 체(體)인 것이기 때문에 관(觀)하여 계합해 깨우쳐 알 뿐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성, 색은 생, 멸을 따르는 것이다. 생멸하는 상에 끄달려서는 정각을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며 곧 삿됨인 것이다.
따라서 여래는 상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인식의 분별로써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색으로 여래의 참모습을 구하는 것도 성색을 여의고 구하는 것도 변견인 삿된 도의 행함이 되는 것이다. 성색(聲色)을 여의고 여여한 여래가 없으니 여래란 실상이 공적(空寂)한 도리임을 알아야 한다.
부처님의 모습이나 소리의 근본 체성을 깨달아야 한다.
明星出處親踏着 명청출처친답착 하면
始知佛覺不由星 시지불각불유성 이리라
샛별 뜨는 곳을 몸소 이르러 보면
부처님의 깨달음이 별을 봄이 아님을 비롯 알리라.
說誼:色見聲求는 是行邪道이면 作?生不行邪道去요 但知聲色本非眞하면 自然不被聲色惑이리라 見盡自於玄旨會요 情忘能與道相親하리라.
설의:색으로 보고 음성으로 구하는 것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라면 어떻게 하면 사도를 행하지 않으리요? 다만 성색이 본래 참이 아님을 알면 자연히 성과 색의 미혹함을 입지 않으리라. 보는 것이 다하면(空) 스스로 현묘한 뜻을 알 것이요, 알음알이(情)를 잊으면 능히 도와 더불어 서로 친하리라.
圭峰:魏加後偈에 云하되 彼如來妙體는 卽諸佛法身이니 法體는 不可見하며 彼識不能知라하다 偈에 云하되 唯見色聞聲하는 是人은 不知佛이니 以眞如來身은 非是識境故라하며 無着이 云하되 以彼法身은 眞如相故로 非如言說而知로 唯自證知故라하다
규봉:위 역(魏)에 뒤 게송을 보태서 이르기를 “저 여래의 묘한 체는 곧 모든 부처의 법신이니 법체는 볼 수가 없으며 능히 알음아리(識)로써 알지 못한다” 했다. 게송에 이르되 “오직 색, 성, 향으로 볼려고 하는 이 사람은 부처를 알지 못하는 것이니 진여 법신은 알음알이(識)의 경계가 아님인 연고라” 했으며, 무착이 이르되 “저 법신은 진여의 상(相)이므로 말로 설명하여 알 수 있는 것 같은 것이 아니므로 오직 스스로 증오해 알아야 하는 까닭이라” 했다.
六祖:若以兩字는 是發語之端이라 色者는 相也요 見者는 識也요 我者는 是一切衆生身中에 自性淸淨하여 無爲無相의 眞常之體이니 不可高聲念佛而得成就요 會須正見分明하여 方得解悟니라 若以色聲二相求之하면 不可見也니라 是知하라 以相觀佛이거나 聲中求法하면 心有生滅하여 不悟如來矣니라
육조:‘若以’ 두 자는 말을 낼 때의 실마리(端)이다. 色이란 相이요 본다(見)는 것은 알음알이(識)요 내(我)라고 한 것은 일체 중생의 몸 가운데 자성이 맑아 깨끗하여 無爲, 無相의 참으로 항상 하는 體이니 높은 소리로 염불해서 성취하는 것이 아니요, 모름지기 바른 지견으로 분명히 알아야 바야흐로 깨달아(解悟) 알 수 있는 것이다. 만약 色과 聲 두 가지 상으로써 구한다면 볼 수 없는 것이다. 알라. 相으로써 부처를 보려 하거나 소리 가운데서 법을 구한다면 마음에 생멸이 있어서 여래를 깨닫지(悟) 못하는 것이다.
무애심: 중간부분
淸峯:명청출처친답착 하면. . . .부분의 게송이 강설하신 원문에는 있으나 금강경5가해 책에는 빠져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