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터키 이스탄불의 야경..
저녁 시간 아타튀리크 공항에 도착..
구 도심 지역인 술탄아하몌드에 투숙.
과거 콘스탄티노플의 영광을 회고해봅니다!
터키는 과거 그리스 시리아 여행때 와보고 2번째 방문..
금년 3월 이집트 출장때에도 아타튀르크 공항을 경유하였습니다만 구경은 생략!!
여러가지 일정이 겹쳤죠..
그리고 여기서부터 동유럽을 여행하기 위해서 오늘 다시 방문..
터키 AVIS 렌트카를 예약했습니다..
인수를 받고 시내 술탄아하메드로 이동하여 숙박..
이때만 해도 터키에서 렌트카 인수가 고난 여행의 시작이 될지는 짐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술탄아하메드의 미리 예약한 숙소에 숙박..
구도심의 야경 구경에 나섭니다..
최근 테러 문제로 터키 전역이 시끌시끌..
그런것에 겁내지는 않지만 정부 외교 시책에 협조하는 의미에서 이번에 터키는 이곳을 보는 것으로 마감 예정..
정부에서 여행자제를 권고하는 지역을 일부러 돌아다닐 필요는 없겠죠..
관광객을 붐벼야할 광장이 한산합니다!!
여행이 터키 경제의 주요한 한축을 담당하는데 터키인들 어떻게 해야 하나요..ㅠㅠ
도시는 한번 방문한 후에 두번째 방문은 조금 시들한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 동경속에 꼭 한번 와보고 싶었던 과거 비잔티움..
동로마 제국의 수도이며 보스프러스 해협을 사이에 두고 기독교 정교 문화를 꽃피웠던 콘스탄티노플..
콘스탄티누스 1세가 324년 이곳으로 천도해오면서 콘스탄티노플로 명명하고 동로마제국의 역사가 시작..
강성하여 한때는 로마제국의 영토 대부분을 점유하기도 하면서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의 동경의 장소였으나
14세기 내전과 셀주크투르크와의 전쟁으로 피폐하기 시작..
급기야 강성하여진 오스만투르크에 의하여 콘스탄티노플이 1943년 함락됨으로 동로마제국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제국이 몰락..
아야소피아 앞에는 이슬람의 영광을 상징하는 지금 야경으로 보는 블루모스크가 건립..
그리고 아야 소피아는 술탄의 명에 의하여 파괴되는 비극을 면하고 이슬람 모스크로 변모..
지금은 관광객들의 유치를 위하여 일부벽의 모자이크는 복원되어 비싼 입장료와 함께 공개되고 있습니다!!
블루모스크는 무료..
아야 소피아의 관람은 유료..
이번에는 내부 구경은 시간상 생략하였습니다..
아야소피아 또는 하기야소피아로 불리우는 장소..
Ayasofy!!
아야 소피아는 터키어로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
처음부터 그렇게 불리었는지는 의문??
동로마제국이 이전해 오면서 대성당은 두번 바실리카 형식으로 건립이 되었으나 내란또는 화재로 소실..
그때부터 서양놈들은 거칠었던 모양..
성전을 불태우는 난동을 자행하다니..ㅎㅎ
532년 당시 황제였던 유스티아누스1세는 다시 성당 건립을 명하고
당시 왕성했던 국력과 재원을 바탕으로 5년11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지금의 아야 소피아를 준공..
문헌에 의하면 537년 12월 27일 황제와 대주교에 의하여 헌당식이 거행..
황제는 솔로몬의 신전을 능가하는 신전을 건축했다는 생각에 "솔로몬이여, 내가 그대에게 승리했도다"라고 외쳤다고 전해진다..
많이 교만하였던 모양..
하긴 당시 세계관에서 세계를 호령하는 동로마의 황제였으니..
광장 인근에 위치한 이슬람의 학교인 "메데레사"..
여기에 역대 술탄들의 무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
광장에 위치한 오벨리스크..
전탑 형식으로 건축한 로마시대의 짝퉁 오벨리스크와 이집트 오리지널 오벨리스크가 같이 위치합니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킨 술탄을 그날 바로 아야소피아로 향합니다..
아야소피아의 흙을 자신의 머리에 뿌리고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없고, 알라만 존재한다"고 선언..
함락전부터 술탄마호메트 2세의 신하들은 승리의 상징으로 아야소피아를 파괴할 것으로 주청하였으나
역사에 오점을 남기는 황제가 되기 싫다고 아야소피아를 모스크로 변경할 것을 명령..
아야소피아의 벽들은 회벽으로 칠하여지면서 아이콘들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고, 4개의 미나렛이 증축..
맞은 편에는 블루모스크로 불리우는 "술탄 마호메트 2세"의 모스크가 건립되었다..
이집트의 원형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는 하나의 돌로 이루어진 사각 기둥..
절대로 여러개의 돌을 붙여서 만들지는 않는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죠..
방첨탑으로 동양에서는 불리우며 최상부는 피라미드 모양..
피라미드를 높은 곳에 올려놓은 형상..
피라미드가 태양신 라의 상징이기 때문데 오벨리스크도 고대 이집트의 태양 숭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혹자는 남여성기의 상징으로 보면서 고대 다산과 풍요 숭배의 상징으로 이야기하기도!!
하면부에 여타의 오벨리스크에서 보기 힘든 부조 형식도 존재하는데
오벨리스크 하면에 오벨리스크를 세우기 위한 구조물로 보아야 할 듯 합니다..
동로마시절 전탑형식으로 만든 오벨리스크..
오벨리스크에 대한 네이버의 글을 옮겨봅니다!!
관심 있으시면 일독.. 아니면 당근 패쉬..ㅎㅎ
고대 이집트 왕조 때 태양신앙의 상징으로 세워진 기념비.
방첨탑(方尖塔)이라고도 한다
거신병이 아니다. 하나의 거대한 석재로 만들며 단면은 사각형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가늘어져 끝은 피라미드꼴이다. 중(中)왕국시대 이후로는, 국왕의 통치 기념제 때에 신전탑문 앞에 한쌍이 건립되었다.
건축의도를 놓고 다산을 기원하는 구조물이 아닐까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런 학자들은 오벨리스크가 영 좋지 않은 곳을 뜻하는 모양일 것이라 주장한다. 여성부? 다만 진짜로 오벨리스크가 그 곳을 의미한다고 해도 외설적인 건 아니다. 농경사회인 당시에는 성관계는 쾌락 이전에 가정과 국가를 위해 필요한 행위였다.
현재는 대부분 고대 로마 제국 시대나 후대의 식민지 시기에 유럽으로 반출된 상태인 경우가 많으며 그중에서도 이집트의 총독이 프랑스의 루이 필리프 왕에게 증정한, 룩소르에 서있던 3,200년된 오벨리스크가 콩코르드 광장에 서있는 것이 특히 유명하다.
사실 유럽에 있는 오래된 성당에는 이집트에서 반출된 오벨리스크가 서 있는 경우가 많다. 이집트 문자가 해독되기전 그 의미도 모른채 장식용으로 세워졌거나, 혹은 그냥 이집트에서 본 형식의 돌탑을 로마인들이 따라 만들었거나. 전자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 앞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로, 원래는 제18왕조의 파라오 투트모세 4세가 완성해 카르나크 대신전 앞에 세웠던 것이다. 후자는 교황청 성 베드로 대성당 앞 성 베드로 광장에 있는 오벨리스크가 그런 경우로, 기원전 30년경쯤에 로마 총독 코르넬리우스 갈루스(Cornellius Gallus)가 알렉산드리아의 포룸 율리움(Forum Julium)에 세웠던 것이다. 로마인이 만들었으므로 이 오벨리스크에는 처음부터 상형문자가 없으며, 코르넬리우스가 새긴 라틴어 명문이 남아 있다.
이집트산 원조(?) 오벨리스크의 경우에 이집트 정부도 돌려달라고 하지 못하는 게, 19세기에만 해도 기분내키는 대로 유럽 각국은 물론 심지어 미국에까지 마구잡이로 선물해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콩코드 광장에 서 있는 오벨리스크만 해도 선물해주고 프랑스가 보답으로 준 선물이 대형시계인데 10년도 못가 고장나버려 폐물이 되었다. 이집트도 이슬람교 국가다보니 다신교 시대였던 고대 이집트 유물을 옛날에는 별로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당시 이걸 프랑스에 선물로 주는 걸 결사반대하던 오귀스트 마리예트(프랑스인이지만 이집트 문화재 보존 및 연구에 기여했다. 이집트 항목 참고.)는 폐물이 되어버린 시계를 씁쓸하게 바라보며 "3천 년이 넘어도 변함없는 위대한 보물을 겨우 10년도 못가 고장나는 고철덩어리와 바꾸고 말았다." 면서 두고두고 한탄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이집트도 이제 와서 돌려달라고 하기에도 무안해서인지 오벨리스크 문제에 대해서는 '이집트 문화재를 세계에서 알아주고 세계 각지에서 구경하는 것도 좋지 않겠나?'라는 정신승리법으로 위안삼는다. 다만, 자신들이 선물해 준 것이 아닌 경우에는 당연히 돌려달라는 요구를 한다.
옮긴 글에 등장하는 오귀스트 마리에트는 "이집트 박물관"의 아버지..
뱀을 상징으로 만든 것 같은 부러진 조형물도 광장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저녁 늦은 시간이지만 보스포러스 해협이 보고 싶어서 "GOLDEN HORN"까지 걸어서 내려갑니다..
골든혼에 도착하여 야경 구경..
이곳에서 보이는 모스크도 10여개가 넘습니다..
멀리 터키 축구 국가 대표팀이 경기 출전전에 반드시 방문하여 신에게 승리를 약속한다는 모스크도 보이고!!
이곳에서 유명한 고등어 케밥..
관광객으로 장사진을 이루는 장소인데 현지인들 몇명만이 있을 뿐입니다!!
불어오는 바닷 바람만큼 스산한 터키 풍경이네요..
유람선은 운항중..
멀리보이는 탑까지 탁신광장에서 전차가 운행됩니다..
그리고 다시 해안으로 내려오는 트램도 운행되고..
터키 현지인들이 사용하는 교통카드는 환승이 허용되고, 관광객이 이용하는 토큰은 환승이 되지 않습니다..
시내 중심부를 걷지 않고 대중 교통을 이용하면 수도없는 4리라 교통 토크을 구입해야 합니다..ㅠㅠ
해협에 위치한 다리위로 올라갑니다..
많은 터키인들이 고기잡이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터키 78평방키로미터.. 세계 37위.. 남한의 8배정되입니다..
그리고 인구는 7,800만명..
쿠르드족이 자리한 동부는 정확한 인구 통계가 되지 않아 추산입니다..
혹자들은 1억이 넘는다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종교는 대다수가 이슬람을 신봉하며, 2005년부터 유로 가입을 추진하고 있으나 여전히 진행중..
종교적인 문제와 유로 가입이 되지않은 지금도 수많은 터키인들이 일자리를 위하여 서유럽에 위장 전입..
수도 없는 터키인들이 서유럽의 주요 도시에서 부랑아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자리를 찾아서 서유럽으로 몰려들것이 뻔한 터키인들..
유로 가입이 쉽지는 않을 전망입니다..ㅠㅠ
전형적인 이슬람 술탄국이었던 터키는 세계 1차대전 직후 갈리폴리 전투의 영웅 무스타파 케말을 주축으로
독립전쟁이 발발..
1922년 무스타파 케말을 정부 수반으로 하는 공화국이 성립됩니다..
623년간의 이어진 오스만 술탄 제국의 몰락!!
1923년 공화정이 성립되고 "무스타파 케말"은 1300년동안 이어져오던 칼리프제를 폐지하고 세속주의를 법으로 명시..
이슬람식 일부일처제를 폐지하고 터키 문자를 도입하는등 수도 없는 개혁을 단행..
1934년 의회로부터 아타튀르크(터키인 아버지 즉 국부)라는 명예성명을 부여하였습니다..
터키는 키프로스와 쿠르드족과의 영토 분쟁중이며, 현 대통령인 에르도안이 화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아타튀르크에 의하여 터키의 정신으로 선언된 세속주의..
에르도안은 정치에 입문하며 이에 반반하여 이슬람주의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정의개발당"을 창당..
그에게 기회가 된 것은 2001년의 경제위기..
경제난을 극복하지 못하는 세속주의 정당에 회의를 느낀 국민들에 의하여 총리로 선출..
12년간 총리직을 역임한 그는 작년 대통령에 선출..
경제회복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이용하여 1인 장기 집권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으며, 세속주의 군부의 쿠데타까지
국민들의 지지로 극복.. 터키를 이슬람주의 회귀로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은 이념 종교 이런 문제보다 대다수의 국민들의 희망인 경제라는 화두로 움직이는 추세입니다..
짧게 느껴본 이스탄불..
과거보다 더 침울하여지고 더 피폐하여진 느낌..
그렇지만 차량이나 건설등에서는 뭔가 힘이 느껴지기도 하는 분위기입니다..
에르도안의 굴기.. 언제까지 진행될지 눈여겨 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터키인들의 망중한을 구경하는 것으로 야간 터키 이스탄불 구경을 마감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옵니다..
짧은 터키 돌아보기..
내일 아침 잠깐 더 보고 가야 할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