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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권영호
[저자와 대화] '백양나무 껍질을 열다' 시인 유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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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형의 시는 모성 혹은 고향(대지)을 바탕으로 한다. 남자 시인도 시 작품 속에 여성성이 침전돼 있을 때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점에서 여류시인 유가형은 태생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선 '시인'인 셈이다.
"나는 내 시가 딱히 무엇을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 없어요."
유가형은 자신의 시가 어떤 구체적 지향점을 갖는지 생각해 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의 시작(詩作)을 지켜본 선배, 동료 시인들은 유가형이 '모성' 혹은 '고향'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규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유가형은 5남매의 장녀다. 83세로 작고하신 어머니를 모셨고, 시부모도 모셨다. 시인 자신은 느끼지 못했을지 몰라도 그의 삶에는 모성이 녹아 있다. 다만 일상이 돼 있으니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그의 첫 번째 시집 '백양나무 껍질을 열다'는 고향과 지나온 날들, 작고하신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어머니 기억 조금 떼어 배추밭에 심었습니다. 시커먼 거름흙은 걸었습니다. 씨앗은 금세 몸껍질 열고 나와 고물고물 싹 돋았습니다. 어느새 커다란 배추 잎, 한 잎을 제치고 들여다봅니다. 보리쌀 미끌미끌 툭툭 차 뛰어오르고 수수밭 붉은 골 사이로 어머니 접힌 허리 흑백으로 보입니다.
또 한 잎을 젖힙니다. 돌 위 얹은 삼단에서 물기 빠지는 소리 주루룩, 맨발로 마(麻)밟는 어머니 검정 고무신 돌 아래 오도마니 앉아 밤을 지샙니다. 또 한 잎 젖힙니다. 어린 삼촌 보국대에 합류되어 흘러갑니다. 하나, 둘, 하나, 둘, 조상단지 흰쌀도 하나, 둘, 하나, 둘, 주먹밥으로 뭉쳐져 망태에 담깁니다. 슬퍼하는 별들도 무릎 꺾으며 날아와 하나, 둘, 담깁니다. -하략- (기억의 상자에 빠져 허우적거립니다. -중에서-)
이처럼 시인은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마치 눈앞의 장면처럼 생생하게 그려낸다. 씨앗이 싹 트는 장면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수수밭 붉은 골 사이 허리를 굽히고 앉은 어머니도 그림처럼 생생하다. 삼단에 물기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삼촌이 보국대로 끌려가는 모양도 보인다. 하나, 둘, 하나, 둘 망태에 담기는 주먹밥도 선명하다.
시인 유가형은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장면을 그리고, 소리를 들려주는 듯하다. 그는 "최근의 일은 좀처럼 기억나지 않는데 옛날 일은 너무나 또렷하게 기억난다"고 말했다. 얼마나 기억이 생생하면 저처럼 선명하게, 소리가 들리도록 썼을까 싶다.
유가형은 낯빛도 목소리도, 생활방식도 규범적이다. 평생 이웃을 돌보는 일을 해온 사람이기도 하다. 소록도 봉사활동을 십수년 해왔고, 23년 동안 2천500시간 이상 '생명의 전화'를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하기 힘든 밤 시간을 맡아 하느라 밤새 잠 한숨 못 자는 날도 많았다고 했다. 밤잠을 설쳐 핏발 선 눈으로 그는 다음 날 또 일상을 척척 해냈다.
어떻게 23년이나 했느냐고 물었더니, '23년 동안 안 아팠다는 게 스스로 놀랍다'고 했다. 그 흔한 몸살 한번 앓지 않았다고 했다. 양로원 방문봉사, 미용 봉사, 영정사진 촬영 등 다양한 봉사와 이웃돕기 활동도 펼쳤다. 모두 타고난 '모성'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1946년생, 유가형은 말하자면 '옛날 사람'이다. 그 시절 사람들이 흔히 그랬듯 정해진 길이 아니면 걷지 않았고 근처에서 낯선 소리가 들린다고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도 그는 낮은 목소리, 다소곳한 차림새로, 상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 어투로 일관했다. 그렇다고 그가 자라는 아이와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시간 맞춰 퇴근하는 남편과 그 월급에 만족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일상에 침전돼 있었다면 시인이 되지 않아도 좋았을 테니까.
유가형은 '파괴하고 싶은 욕구'를 종종 느낀다고 했다. 주변을 파괴하고, 정해진 길을 파괴하고, 어머니와 며느리, 자식으로 굳어진 자기역할상도 파괴해버리고 싶다고 했다. 그런 마음을 행동으로 드러낼 수 없었고, 그래서 시인이 됐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시를 통해 일탈을 꿈꾸고 상상의 범죄를 저지른다고 했다.
"시에는 중앙선도 없고 횡단보도도 없어요. 신호등도 없고…. 마구 달리는 것이지요."
유가형의 시 '유리병 속에 들어간 새'는 시인이 얼마나 많은 말을 쏟아내고 싶은지 잘 보여준다.
'그녀가 토해내는 말의 양이 많은 것을/ 아는 것은 말 사이 섞여 나오는 휘파람과 반짝반짝 잘 닦여진 유리병이기 때문이다/ 토해 낸 말을 잘게 토막 쳐 되새김하거나 도로 집어넣기에/ 알아듣는 건 무리다/ (중략) 병을 굴리면 더욱 웅크리고/ 한사코 유리병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 고음으로만 캑캑 게워내는 소화시키지 못한 뼈 조각들/ 누가 저토록 많은 삶의 가시와 목마름을 주었기에 삭혀도 삭혀도 못 삭혀/ 마음 아파 긴 유리병 뒤집어쓰고 아무데나 나뒹구는 새/ 그 새, 미친 여자.'
유가형은 자신을 유리병 속에 갇힌 새이며, 미친 여자로 규정하고 있다. 쏟아내도 쏟아내도 할 말이 넘치며, 삭혀도 삭혀도 삭힐 수 없는 가시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은 유리병 안에만 존재하기에 바람과 비를 만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투명하기에 분명하게 보이나 소통할 수 없는 유리병. 시인은 그 속에서 실제화 되지 않을(들리지 않을) 비명을 지르고 있는 셈이다. 유가형은 "시 한편을 쓰고 나면 후련하다. 무엇이라고 설명하기는 힘든데 오랜 세월 목에 걸려있던 가시 하나가 쑥 빠져나간 느낌이다"고 했다. 비록 바깥에서 누가 알아듣지 못할지언정 그는 내뱉고 있는 셈이다. 만약 누군가가 그의 고함소리를 듣는다면? 그것은 유리병이 깨진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그는 더 이상 시를 쓰지 않을지도 모른다.
시인의 본명은 유귀녀였다. 개명은 새로운 나를 출산하는 행위인 동시에, 존재하던 나를 살해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그는 유귀녀의 이름으로 규범과 전통에 충실하고, 유가형의 이름으로 중앙선을 넘고, 신호체계를 무시한다. 그러나 새로 지은 이름 '유가형' 역시 규범과 의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을 듯하다. 경북대 박재열 교수가 지어준 이 이름 가형은 '집안의 맏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맏형'은 책임져야 할 게 많은 사람이다. 실제로 유가형씨는 대구작가콜로퀴움 '문학도서관'의 살림을 책임진 관장이기도 하다. 작가콜로퀴움 문학도서관이 지방에 있음에도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어 가는 배경에는 관장 유가형 시인의 많은 노력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답지 않게 유가형의 손은 거칠었다. 동료 시인은 "맏형으로 무엇이든 직접 나서서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학기행을 갈 때면 밥도 고기도, 반찬도 회도 모두 준비해온다고 했다. '현지에 가서 편하게 사서 먹자'고 말해도 맏형 유가형은 대답이 없다.
▷유가형은=본명 유귀녀(貴女). 1946년 경남 거창 출생. 2001년 '문학과 창작'으로 데뷔. 시집 '백양나무 껍질을 열다'. 대구작가콜로퀴움 문학도서관장. '낯선시' '팔공신문' 편집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