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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스-큐롵-레깅스-홀태바지
먼저 이 글이 서로 관계가 없어 보이는 두 가지 일을 쓰게 됨을 이상하게 여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오랜 집구석 생활을 벗어나 요즈음 밖에를 잠간씩 나간다. 크게 눈에 뜨이는 것은 여자들의 옷이다. 어느 날 병원에서 퇴근하는 간호사들을 관찰했다. 6명이 몰려서 퇴근하는데 그 가운데 다섯 명이 꼬챙이 같은 바지(레깅스)를 입었다. 오늘 교회에 모처럼 갔는데 젊은 여자들의 절반쯤이 레깅스를 입고 있었다. 가히 레깅스는 대한민국 젊은 여인들의 국민제복이라고 할 만하다고 생각했다. 여기서 말하는 레깅을 입은 사람은 두꺼운 스타킹이나 타이스를 입고 아주 짧은 치마나 바지를 덧입은 사람까지 포함한다. 사전에서는 레깅스(leggings or leggins)는 ① 정강이 받이, 각반, 행전, ② 입으면 꼭 끼는 신축성이 좋은 여성용 바지, 궂은 날씨에 바지 위에 입는 특수 바지라고 되어 있다. 옛날 군인들이 발목부터 정강이까지 둘둘 말아 입은 각반, 말타는 사람이 무릅 위는 널찍하고 그 아래는 다리에 꼭 맞는 옷을 입었을 때 무릅 아래 부분을 말한다. 때로는 무릅 위까지 몸에 꼭 끼게 입는 것도 레깅스라고 했다. 지금은 타이스형태, 바지형태 모두 아랫도리에 꼭 끼게 입는 것을 레깅이라고 말하는 것 같다.③ 이런 레깅스 일색인 옷차림을 보면서 50-60년대에 많이 본 영화가 생각났다. 요즈음 영화기 인간행세를 하는 기계나 동물, 또는 초자연적으로 변형된 사람들이 나와서 싸우는 것이 많다면 그 때는 중세 기사들의 활극이나 서부극이 오락성 이 큰 영화들이었다. 중세를 소재로 한 활극에서 남자 기사들은 대개 뾰족한 펜싱 칼을 쓰고 바지는 현대 남자 무용수들이 입는 것 같은 타이츠(tights)를 입고 나왔다. 몸의 아랫부분이 있는 그대로 드러나는 옷이다. 요즘으로 치면 여자들의 투명하지 않은 팬티스타킹을 입었다고 하면 적당한 말이 되겠다. 그래서 남자들의 성기부분이 불뚝 튀어 나오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들에서 젊은 주인공들은 예외 없이 그런 옷을 입고 나왔다. 로미오와 주리엩, 햄릿의 주인공들이 다 그런 옷들을 입었다. 저고리는 대개 풍성하게 입었다. 1600년대와 1700년대 초를 그린 연극이나 영화에서 장교들은 대개 이런 차림이었다. 비슷한 옷이 세기를 건너 뛰어 남자로부터 여자로 전수된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의예과 시절이 생각났다. 그 때 내가 다니던 의예과에서는 일주일에 40시간이 넘게 시간표를 짰다. 그 가운데 하나가 사회학 개론이다. 이화여대에서 사회학을 가르치시던 분이 우리를 가르쳤다. 지금 그분에게 배운 것은 거의 기억에 없다. 하나가 떠오르는데 여자들의 옷에 대한 이야기였다. 여자들이 유행에 맞는 옷을 입으면서 굉장히 앞선 것 같고, 남과 다르다고 으쓱대는 데 천만의 말씀이라셨다. 여자들의 옷이란 것이 변해보았자 거기서 거기라고 하셨다. A라인, H라인, X라인, Y라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뱅뱅 돈다는 것이다. A라인이란 좁은 어깨, 넓은 치마를 특색으로 한다. 엉덩이가 강조된다. H라인은 글자 그대로 퉁퉁하고 여유로워 보이는 옷이다. X라인이란 잘록한 허리를 강조하고 치마와 저고리 모두 넓고 풍성하게 만든 옷이다. H라인은 빼고 X라인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Y라인은 저고리 어깨를 실제 어깨보다 넓게 강조하고 허리 아래는 몸에 꼭 끼게 만든 옷이다. A라인의 치마는 후레아 스커트, Y라인의 치마는 타이트 스커트가 된다. 당시에는 여자의 바지는 정장으로 치지 않을 때다. 요즈음은 ‘핱 팬티’도 정장으로 쳐 주자는 말도 나온다. 그 때 여자의 정장은 두 쪽 옷(tow piece)이었다. A라인이면 좁은 어깨에 젖가슴이 강조되고 치마는 넓었다(flare skirt). Y라인이면 저고리의 어깨는 진짜 어깨보다 넓고 뻥으로 강조되고 치마는 좁았다(tight skirt). H라인이나 X라인이면 어깨에서 치마 끝까지가 풍성하게 조화를 이루게 된다. 그 교수님 말씀은 여자들의 옷이 이런 틀에서 왔다 갔다 할 뿐이라고 하셨다. 이왕 여기까지 썼으니 더 기억을 더듬어 본다. 중세이후상류층이 타이스같은 옷을 입다가 칼로 하는 결투가 사라지고 전쟁도 칼보다 총으로 전쟁의 방법이 달라지던 무렵부터 타이스같은 옷이 상류층에서 사라지고 퀴로트(Culotte)란 형태의 옷이 주류의상으로 자리 잡았다. 이것은 중세이후 르네쌍스시대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많이 입기는 18세기에 들어와서다. 미국 독립운동의 그림이나 프랑스 혁명 때의 시대상을 그린 그림에서 장교나 상류층은 이 옷을 입었다. 이 옷은 그림에 보이는 대로 그 이전에 타이스같은 옷이 좀 볼썽사납게 남자의 상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상류층에서 피하기 시작하면서 18세기 후반기에는 상류층의 바지로 자리 잡은 것 같다. 몸에 꼭 붙어서 엉덩이가 너무 드러나던 것이 이 큐로트에서는 엉덩이 부분이 좀 풍성해졌다. 바지 길이는 짧아지고 무릎근처에서 끈이나 단추로 다리 둘레에 맞게 조인다. 대신 그 아래는 스타킹이나 레깅스(각반), 또는 장화로 가렸다. 타이스보다는 좀 볼품이 있고, 움직임이 여유로워 졌다.(사진 위) 뮨혠의 Octofest에서 어린이까지 이런 옷(가죽으로 된 것)을 입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반면 하류층에서는 이런 옷을 못 입고 헐렁헐렁한 통바지를 입었다.(아래사진) 이 큐로트바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해 보자. 프랑스 혁명 때 왕과 귀족들, 상류층은 이 옷을 입었고 하층민은 못 입어서 ‘상 큐로트(Sans Culottes)’계급이라고 했다. 주로 도시노동자, 소상인, 소규모 수공업자들이 이 사람들이다. 프랑스혁명에서 로베스삐에르의 자코뱅당은 힘의 주축이 산악당이었는데 이 산악당의 주도세력이 이 ‘상 큐로트’들이었다. 그러나 기록상 로베스삐에르는 끝까지 이 큐로트 옷을 벗지 않았다. 그들의 힘은 필요할지언정 자기를 그들 계급에 속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상큐로트’를 위한다는 것은 명분뿐이고 그들은 단지 수단이요 도구일 뿐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요즈음 정치판에서 국민을 위한다고 떠드는 지도층을 보면 나는 항상 이런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본다. 이 ‘상큐로트’에 대한 유머가 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본 사람은 영화초반부에 스카아렡 오하라가 옷 입는 장면이 생각 날 것이다. 겉옷을 입기 전에 몸의 윗부분을 강조하기 위해 콜셑을 조이는 장면이다. 그 때 그녀가 위의 사진과 같은 큐로트를 속옷으로 입고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유럽의 18세기 귀부인들은 통 넓은 치마 속에 내복으로 큐로트를 입어야 했다. 한 여름에 얼마나 답답했을 가는 상상해 보시기 바란다. 그래서 가끔 귀부인 중에 이 옷을 생략한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요즘 여자가 답답하다고 스커트 밑에 팬티를 안 입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어느 날 맑은 물이 있는 개천에서 귀부인이 건너지 못해 망설이고 있었다. 마침 지나던 노동자가 번쩍 들어서 건너 주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뭔가 어설픈 행동을 했는지 그 부인이 ’이 상큐로트주제에!‘라는 뜻의 말을 했단다. 그런데 마침 그 귀부인이 노팬티차림인 것이 물에 비쳤다. “예, 저도 그렇지만 부인께서도 상큐로트이시네요, 반갑습니다.” 이런 추세는 19세기 중반이후 남자들의 옷이 지금 우리가 입는 것과 같은 바지로 바뀌면서 큐로트는 대개 특별한 경우에만 입게 되었다. 운동선수, 축제일, 등에서 보인다. 얼마전에 죽은 미국의 유명한 골프선수(이름을 잊었다)가 이 큐로트만 입고 시합을 했다. 이런 남자들의 정장노릇을 하던 큐로트가 20세기에 여자에게서 부활했다.197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도 여자들이 큐로트를 겉옷으로 입었었다. 이 여성용 큐로트는 폭이 넓은 스커트와 같은 모양인데 바지같이 가운데가 분리되어 바짓가랑이가 되어 있는 옷이었다. 대개 무릎까지 내려오고 폭이 넓어서 얼핏 보기에 스커트를 입은 것으로 보이지만 활동하기가 편하다. 그냥 스커트를 입으면 버스나 지하철에서 앉기가 조심스러운데 이 큐로트를 입으면 발을 꼬기도, 다리를 벌리기도 편하다. 최근에는 이것이 짧아지고 몸에 꼭 끼는 핱 팬티로 발전했다. 전통적인 치마형의 큐로트는 여자 골프선수들이 가끔 입고 나온다. 영국의 정신분석가 Dinora Pines여사가 87년에 우리나라에 와서 쎄미나를 했다. 그 때 이 할머니가 세미나장에 큐로트를 입고 나타났다. 우리나라에서도 점잖은 자리에는 안 입고 대개 집에서나 허물없는 자리에 갈 때 여자들이 입었는데 이 할머니 분석가는 공식 행사에 강사로 오면서 그런 편한 옷을 입었던 것이다. 놀랬다. 김행숙 선생이 제일 먼저 알아보고 킥킥 웃으면서 우리에게 말해서 우리는 대단한 분이라고 감탄했다. 그런 정도로 그 때 큐로트가 유행이었다. 80년대 모습이다. 남자의 타이스같은 옷에서 큐로트가 되고, 넓은 바지로 변하더니 지금은 거꾸로 진행된다. 여자들의 옷이 화려하게 입기 위해 통이 좁은 내복으로 큐로트를 입게 하더니 여자들도 정장으로 바지를 입게 되었다. 참고로 말하면 50년대 우리나라에서 많은 여자들을 울린 멜로드라마 “Imitation of Life'라는 영화에서 어린 신인배우 산드라 디가 입었던 스랙스바지가 화제가 되었다. 그 때만 해도 그런 바지는 일반적으로 입던 옷이 아닌데 그 영화에서는 아주 잘 어울렸다. 그 때에는 여자의 바지는 고급 사교장에서 정장으로 취급되지 않을 때다. 그 후로 여자도 바지를 많이 입게 되었는데 대개는 바지의 통이 꽤 넓었다. 그 때 여자의 바지는 지퍼가 뒤쪽이나 옆에 있었지 앞에 있으면 상스럽다고 욕을 먹었다. 그러다가 여자들이 진을 많이 입게 되면서 여자바지도 앞으로 지퍼를 달았다. 그러더니 바지가 짧아지고 차츰 통도 좁은 것들을 입더니 급기야 21세기에 들어 와서 16-17세기에 남자들이 입던 타이스 같은 꼬챙이 바지가 21세기 젊은 여자의 일반적인 복장이 돼버렸다. 3세기 전에 유럽 남성들의 통상복이던 꼬챙이 같은 바지가 3-4세기를 지나 21세기에 여자들이 꼬챙이 같은 바지를 입는 유행으로 되살아 난 것이다. 지금 보면 젊은 남자들의 바지도 점점 꼬챙이가 되어가는 흐름이다. 여자들보다 좀 속도가 느리고 그 범위가 좁다. 여자는 연예인이건 기업체 직원이던, 자유업자건 꼬챙이 일색으로 보이지만 남자의 경우는 아직은 자유직업의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만 보이는 것 같다. 만일 남자도 여자들처럼 직업, 나이 가리지 않고 꼬챙이 바지를 입게 되면 4세기 정도 만에 꼬챙이 바지가 전 세계를 석권하는 꼴이 된다. 꼬챙이 바지 만세다. 김대환교수가 말한 “유행이라고 해 보았자 그게 그거다. 돌고 도는 것이다.“란 말이 증명된 것이다. 굉장히 긴 시간이 걸린 순환이다. 지금은 여자건 남자건 꼬챙이같은 바지를 입으면 대개는 엉덩이 부분과 성기부분을 감추려고 웃옷을 길게 입거나 짧은 바지로 그 부분을 가린다. 이런 것이 언젠가는 4세기 전같이 허리 아랫부분을 몽땅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15-17세기의 복장으로 돌아가지 않을까도 생각해 본다. 이런 순환은 비단 옷의 유행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영국의회는 주기적으로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정권을 잡는다. 물론 그 두 정당이 다투기 전에 토리당과 휘그당도 마찬가지였다. 순환하는 것을 알기에 비록 정적이라도 상대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 정적이 곧 정권을 잡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정권을 잡더라도 반대 정당이 만든 법이나 제도를 깡그리 부수는 일은 안한다. 만일 그랬다가는 영국항공(British Air)은 몇 년마다 국영이 되었다가 민영이 되었다가 할 것이다. 그런 일은 없었다. 물론 변화는 있다. 다만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정도의 변화다. 1700년대 초 영국의 내각책임제가 자리 잡은 후 이런 순환은 지금까지 계속되지만 입헌 군주제의 단절이나 한 정당이 반대당을 몰살시키는 일도 없었다. 프랑스는 1789년 혁명이후 여러 번 정치체제의 변화를 겪는다. 왕정이 공화제로(1789), 공화제가 통령제로(1794), 통령제에서 제정으로(1804, 이 과정은 간단한 것 같지만 복잡한 길을 걸었다), 제정에서 다시 왕정으로(1815), 왕정이 다시 제2공화제로 (1846), 다시 제2제정으로(1852), 이어서 제3공화정으로(1875), 이 공화정이 제4공화정(1946)으로 바뀌고 1958년 제5공화국으로 변신한다. 바뀔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희생됨은 물론이다. 정치에서 순환이 극단적으로 일어나느냐 점진적으로 온건하게 일어나느냐는 매우 중요하다. 그 순환이 어떤 형태냐에 따라 애꿎은 국민들이 희생되기 때문이다. 위정자 저의들끼리 싸워서 그들이 희생되건 말건 시민들로서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같잖은 새우밖에 안 되는 존재들이 고래행세를 하면서 벌이는 싸움에 진짜 나라의 주인인 고래 같은 새우들이 망가지는 것이 못 마땅하기에 여기서 거론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 정치가 상대방을 무조건 부정하고 권력을 잡기만 하면 자기만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에서인지 자기보다 앞의 사람이 한 일을 몽땅 뒤집어 버리는 것을 보고 걱정이 되어 한마디 써 보았다. 참고로 말하면 참여정부시절에 미국과 약속한 FTA를 한나라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백지화하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했었다. 그 협상을 완성한 민주당이 그 협상을 뒤집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참 답답한 세상이다. |
사진이 있는데 그 사진이 HWP file로 되어 있어서 올리기가 힘드네요.
여러번 시행착오끝에 사진 올리기 성공함
위가 culottes, 아래가 san culot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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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2년전 쯤, 제 아내가 이곳 한국식품점 주차장에 임시로 마련한 한국옷 떨이미 판매장에서 $100 미만을 지불하고 유행이 지난 한국제 캐슈미어 정장 한벌을 사서는 뽐내며 입고 결혼식에 까지 참석한것 까지는 좋았는데, 그 뒤에 한국에서 온 어떤 부인에게 자랑을 했더니, "보기보다는 다르게 얼굴도 두꺼우시네요. 그 옷은 유행이 지나도 6-7년은 지나서 한국에서는 그 옷 입고는 마실도 못갑니다." 하는 바람에 입장이 난처해 진 마누라 가로되, "여기는 한국만큼 안목이 높지 않으니 저는 그래도 계속 입을 작정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잘 입고 다닙니다. 얼굴도 두껍게...
재미있네요.
상당한 연구의 결과물이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