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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 16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주일 설교
제목 : ‘Cheer Up! 힘내라힘!’ - 3. 피로회복? 피로! 회복!
본문 : 요한복음 6장 55절(53~58절)
내 살은 참 양식이요, 내 피는 참 음료이다. <새번역>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저마다 해결했으면 하는 중요한 여러 가지 화두가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 중 하나가 바로 만성 피로에서 벗어나고 싶은 “피로회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매일매일 바쁜 일상 속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고, 일에, 생활에, 이것저것들에 쫓겨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피로감에 빠져 살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전 세계에서 우리 대한민국 사람들이 가장 바쁘게 산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못 쉬는 사람들도 대한민국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집에서 며칠씩 쉬고 있자면 무언가 게을러진 것 같고, 특별히 하는 것은 없는데 몸은 더 아픈 거 같고, 그래서 ‘역시 나는 일해야 하는 체질인가 봐!’ 하면서 생활전선에 다시 나오시는 모습도 많이 뵈었습니다. '워커홀릭'이라고 들어보셨습니까? 일중독에 빠진 사람들도 한국에 가장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러니 자연스럽게 가장 피로도가 높은 나라 1위가 한국일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런 피로도를 부추기는 평생공부, 평생노동, 평생경쟁의 사회적 숙명도 안고 있습니다. 답답하게도 취업난, 경제난, 출산율저하, 노인복지 이렇게 말만 들어도 피곤한 세상에서 현재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피로’도 문제지만 생각해보면 '피로' 다음에 나오는 행동들이 더 문제인 듯 합니다. 몸이 피로하면 만사가 다 귀찮아 집니다. 몸이 피곤해지면 괜히 짜증도 나고, 누군가 툭~하고 손대면 ‘버럭’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대가 됩니다. 얼마나 피곤함이 커졌으면 ‘만성피로’란 말이 있겠습니까? 진짜 ‘만성피로’란 단어를 읽고 보는 그 자체로 정말 피곤합니다. 또한 이 만성피로가 수많은 질병을 유발합니다. 만성피로가 우리를 운동과는 담을 쌓게 하고, 건강을 찾게 하는 것에서 점점 멀어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현대인들에게 사탄이 준 병은 만성피로다!’ 라는 말이 과언이 아닐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십니까? 여러분들도 많이 피곤하시진 않습니까? 새벽부터 일어나 새벽 기도의 자리를 지키시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각 예배마다 어떻게든 정성을 다해 참석하시는 모습, 그렇다고 집안 일이 없으신 것도 아니실 텐데, 직장생활을 안하고 계시는 것도 아니고, 매일 매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해결하시는 분들도 계신 줄 압니다. 그러다보니 피로가 많이 누적 되셨지요? 계속해서 피로하다보니 짜증나실 일도 생기고, 만사가 귀찮고, 답답하고 그럴 때가 있지는 않으신지 궁금합니다. "아이라도 지치고 피곤해 하며, 젊은이라도 넘어지고 쓰러진다."라는 성경 말씀처럼 솔직히 아직 젊다고 생각하는 저도 피로감을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피로감은 결코 저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이 육체의 피로감을 해결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아주 간단합니다. 충분히 푹 쉬면 사라집니다. 바쁘지만 하고 있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편안한 침대에 갑니다. 따뜻하게 불을 넣고 두 다리 쭈~~욱 뻗고 누워서 누가 깨우지 않도록 이야기한 후, 내가 자고 싶을 때까지 원 없이 자고 나면 피로감이 꽤 많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마사지를 받아도 좋고, 피로 회복에 좋은 맛난 음식을 먹으며 쉬어도 좋고, 좋은 곳으로 구경 가서 좋은 공기 마시고, 눈이 호강하고 오면 피로감이 사라질 수가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건강을 위해서 이 '만성 피로'를 우리에게서 멀리 떠나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응당 잘 쉬고, 잘 먹고, 잘 자고, 잘 지내야 기본적으로 건강한 삶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알고 계십니까?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피로'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찾아와 우리를 쓰러뜨리는 무서운 녀석인데, 바로 오늘 함께 말씀으로 나누고자 하는 ‘영적 피로감’입니다. 영적으로 너무 피곤해져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로 성립되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게 되는 것이 '영적피로감'입니다. 이런 영적 피로감은 물론 바쁜 일상 때문에 찾아오기도 합니다.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하고, 신령과 진리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생명의 양식인 말씀 읽지 못하다보면 당연히 영적 피로감은 빠르게 우리를 찾아오게 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근본적으로 영적 피로감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지 않게 꼬이는 순간에서부터 찾아옵니다. 우리가 죄에 민감하지 못할 때, 세상에 점점 빠져들 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만족하게 될 때, 하나님의 뜻이 아닌 내 생각으로 행할 때, 아주 빠르게 우리를 찾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의 거처를 떠나 믿음으로 하나님을 따라 나섰을 때 그의 나이는 75세였지만 몸은 피곤했을지언정 영적으로는 건강한 시기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백세에 아들 ‘이삭’을 선물로 받았을 때엔 비록 몸은 처음보다 쇠약할지언정 그의 영은 독수리 날개 침같이, 청춘같이, 강력하게 날아올랐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매일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으로 살았기에 당연히 영적인 피로감은 찾아올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아브라함에게 언제부터 영적 피로감이 찾아온 줄 아십니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아들 ‘이삭’이 태어나고 나서부터였습니다. 솔직히 아브라함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갑니다. 100살이나 되어 얻은 아들 ‘이삭’을 보며 아브라함은 정말 미칠 것처럼 좋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도 정말 최고의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란 존재가 그런 것일까요? 점점 세월이 흘러갈수록 선물을 주신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선물로 주신 이삭과만 더 가까워지게 되었습니다. 아들 ‘이삭’이 좋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럴수록 그 선물을 주신 하나님께 더 감사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져야 할 텐데 그 반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점점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렇게 영적인 피로감에 빠졌습니다. 이제는 다 이루었다 착각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 ‘이삭’을 통해 이어가실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원대한 꿈을 꾸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의 1:1 친밀한 대화가 필요치 않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한 분 만이 아닌 아들 ‘이삭’으로도 충분히 만족했기 때문입니다.
다윗도 그랬습니다. 무슨 일이든 하나님과 더불어 행동했던 다윗의 행적들을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습니다. 다윗의 믿음이야 두 번 이야기하면 입이 아플 정도로 성경에서 수도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 다만 다윗의 ‘영적피로감’이 절정에 다다르며 만들어낸 아프고 슬픈 이야기인 사무엘하 11장에서만 빼고 말입니다. 사무엘하 11장에서 다윗은 철저히 하나님과 멀어져서 범죄하고 있습니다. 간음과 살인, 거짓과 탐욕에 빠져서 하나님을 순간 잊어버린 듯 보입니다. 눈앞에 나타난 밧세바의 아름다움 때문이었을까요? 늦잠을 자고 일어나 아직 잠이 덜 깬 탓이었을까요? 다윗에게서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이것 또한 ‘영적 피로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보내신 나단선지자를 통해 강하게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냐” 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이 계속해서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면서 말씀 안에 순종했다면 어쩌면 사무엘하 11장은 기록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듯 ‘영적피로감’이 나타나면 우리의 죄악 된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마지막 부분에 등장하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역시 마찬가지의 모습입니다. 두 제자는 예수님과 함께 이적과 기적을 체험하면서 행복한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들의 예상과는 정반대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그들이 생각했던 예수님이 아니라고 생각을 굳히고선 고향으로 발걸음을 돌립니다. 슬픈 빛을 띠게 되고, 눈은 가리어지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자신들이 바라는 왕이 되어줄 줄 알았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자, 그들은 더 이상 예수님에게 희망을 찾지 못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부활하실 것이라는 약속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자신들의 생각에 갇힌 그들에게 ‘영적 피로감’이 찾아들기 시작했습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면서 그들은 불평했을 것입니다. 마치 예수님과 함께했던 날들이 신기루였던 것처럼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그 뜨거운 제자의 시절들을 잊어버리고, 패배감과 절망감에 젖어들어 한숨을 내쉬면서 걸어오고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해결되지 못하는 답답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젠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깊은 고민에 빠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영적 피로감’이 찾아들면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당연히 지금도 살아계셔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젠 하나님 앞에서조차 범죄 하게 됩니다. 더 이상 말씀 앞에 설 수 없게 되고, 더 이상 하나님 앞에서 깨어 근신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는 사자들이 나를 둘러싸고 놓아 주지를 않기에 암흑천지에서 그저 주저앉아 포기하게 됩니다.
그리고 바로 그 때, 때를 놓치지 않고 찾아오는 사탄이 우리 귓속에 대고 속삭이는 유혹에 넘어가게 됩니다. 평소라면 얼씬도 하지 못할 녀석이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처럼 느껴지게 되는 순간입니다.
‘그 정도면 충분해!’, ‘하나님이 어디 계시다 그래? 안보이지?’,
‘거봐, 네가 열심히 해봐야 아무 소용도 없지?’, ‘어차피 다 사람이 하는 거야!’,
‘그냥 적당히 하자구!’, ‘이제 그만 좀 쉬어도 돼! 하나님도 다 이해하실거야’,
‘요즘 세상에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 너도 이제 그것에 관심 좀 가져봐’,
‘기도 안 해도 하나님 다 아셔’, ‘지겨운 성경 또 읽고 싶어?’,
‘어차피 조그마한 죄 짓는 건데 하나님께 빨리 회개하면 되지. 괜찮아!!’,
‘감사하라고? 불평할게 이렇게나 내 주변에 많은데, 감사하라구?’,
‘하나님 믿어도 답답하지? 그래 그런 거야! 그러니깐 믿으나 마나 믿을 필요가 없는 거라구!’
등등 정말 그럴 듯한 소리들로 우리를 유혹해서 넘어뜨리려고 하는 때가 찾아오게 됩니다.
평소에는 들리지 않았고 관심조차 없던 유혹들이 이 ‘영적피로감’이란 녀석에 빠지게 되면 아주 빠르게 우리의 시선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마치 육체적인 피로감이 강하면 쉽게 짜증나고, 쉽게 화내고, 쉽게 답답해지면서 평소와 달라지는 것처럼 영적 피로감이 찾아오면 우리의 마음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게 아닌데,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쉽게 원망하고, 쉽게 불평하게 되고, 기도하지 않게 되고, 말씀과 멀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요나처럼 니느웨가 아닌 다시스로 떠나며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지금 '영적피로감'에 깊이 빠져 계시지는 않습니까? 아니면 영적으로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고 계십니까? 가장 쉽게 알아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배’입니다. 지금 내가 어떻게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살펴보시면 ‘영적피로감’에 대해서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예배’ 앞에서 지금 내가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배 가운데 하나님과의 교통이 있습니까?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계십니까? 깊이 하나님을 만나고 계십니까? 예배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감동이 있는지 우리는 돌이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지금 내가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예배를 구경하며, 보러 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님과 나는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100% 충전된 스마트폰을 가지고 나가 열심히 사용했습니다. 그러다보면 언젠가 스마트폰은 방전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방전이 되었다고 해서 그 스마트폰을 이제 그만 쓸모가 없으니 책상 깊은 곳에 넣어두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방전이 되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네! 바로 충전을 합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충전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피곤함을 느낄 때는 쉬는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영적피로감’은 쉬는 것으로 해결 되는 것이 아니기에 다른 충전방식이 필요합니다.
어떤 분들은 영적피로감이 찾아올 때 잠시 교회를 떠나 있는 분들도 계시고, 영적 잠수를 타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기도의 자리를 멀리합니다. 잘 읽던 성경을 책꽂이에 꽂기 시작합니다. 가장 중요한 예배에 더 이상 우선순위를 두지 않습니다. 그렇게 내려놓아야 할 것들은 내려놓지 않고, 내려 놓치 않아야 할 것들을 다 내려놓고 오히려 쉬려고 합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는 계속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도 쉬게 되는 안타까운 역사가 나타나게 됩니다.
이 '영적피로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충전으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영적인 충전을 통한 회복은 곧 '예배의 회복'입니다.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예배를 회복한 후에, 하나님이 그토록 찾고 계시는 그 외침에 순종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배의 회복은 곧 "예수님과의 관계회복"을 말한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영적피로감 해결을 위해 예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면서 첫 번째 단계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근본적인 믿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대신 죽으시고, 보혈 흘려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다시 오실 예수님에 대한 관계 회복이 필요합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사실이 바로 예수님이 나를 위해 피 흘려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따라 그의 피로 구속 곧 죄 용서를 받게 되었습니다. <에베소서 1장 7절, 새번역>
우리는 그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 공동번역>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9절, 새번역>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에게 은혜와 평화를 내려 주시기를 빕니다. 예수님은 신실한 증인이십니다.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제일 먼저 부활한 분이시며, 이 세상 왕들을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의 보혈로 모든 죄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장 5절, 쉬운성경>
바로 이 ‘보혈’을 통해 자유함을 얻고, 죄사함을 받아야 예배의 문을 열고 들어가 진짜 하나님과의 관계가 시작되는 것처럼 바로 ‘영적피로감’ 회복은 언제나 다시 그 보혈의 “피로! 회복!” 되어 진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보혈 공로를 새삼 다시금 깨닫고, 그 보혈 공로를 통해서만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온전해짐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보혈이 없었다면 우리의 예배는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써 우리는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제사장은 날마다 제단에 서서 직무를 수행하면서 똑같은 제사를 거듭 드리지만, 그러한 제사가 죄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사하시려고, 단 한 번의 영원히 유효한 제사를 드리신 뒤에 하나님 오른쪽에 앉으셨습니다. <히브리서 10장 10~12절, 새번역>
아브라함은 다시금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통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산에 갔을 때 어린 양의 보혈에 대한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먼저 어린 양을 준비하셨던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통하여 그 어린양의 피로 인해, 주신 선물인 이삭을 다시 선물의 자리로 돌려놓고, 선물을 주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게 됩니다. 놀라운 것은 그 모리아 산이 바로 예수님이 피 흘리신 신약의 골고다언덕과 동일한 곳이라는 것에서 우린 큰 감격을 느껴야만 합니다.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예배를 회복했듯이 골고다 언덕에서 보혈을 흘리신 예수님의 그 피로 우리가 예배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보혈공로가 없었다면 우리는 누구도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또한 예배를 올바로 드리지 않는다면 우리의 영적피로감은 결코 해결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올바른 예배란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흘리신 보혈의 의미를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이사야 53장 5절, 새번역>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평화를 누리고, 치유와 회복을 경험하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보혈의 의미를 모르고 예배를 드린다면 올바른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우리는 회복될 수 있습니다. 다시 이 놀라운 사랑에 대한 감격함이 있고, 믿어짐이 있고, 나를 위한 보혈이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슬픈 낯빛으로 터덜터덜 엠마오로 돌아가는 두 제자가 다시 가슴이 뜨거워지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진 계기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바로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고 물으시면서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마음이 그렇게도 무디니 말입니다. 그리스도가 마땅히 이런 고난을 겪고서, 자기 영광에 들어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누가복음 24장 25~26절, 새번역>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우리를 위해 십자가 보혈을 흘려주기 위함임을 설명해주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무딘 마음과 영적피로는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있고, 나도 그 사람 안에 있다. <요한복음 6장 56절, 새번역>
오직 보혈공로를 의지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에 동참하여 구원함을 얻을 때 우리 모두에게는 예수님이 거하심으로 당연히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도 희미해져가는 구원의 감격이 다시금 새로운 일로 우리에게 다가와 회복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그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 하나님께로 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바로 그 보혈의 공로를 통해서만 우리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올바로 설 수가 없고, 예배할 수 없고, 어떤 믿음의 길로든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절대 ‘영적피로감’을 그냥 방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관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피로감에 대해서 민감하여 피로회복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해결해야겠다는 갈급한 마음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회복!”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보혈로만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짜 우리를 응원하시는 주님의 마음을 담아 강력한 힘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예수 보혈을 지나야만 아버지께로 갈 수 있습니다. 보혈을 지나 드디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피로! 회복!”이 되어 지면 우리들의 ‘영적피로감’은 싹 물러가고 영적인 눈이 밝아져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다시금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듣게 되고,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 그 깊은 은혜의 바다에 과감히 뛰어들 수 있으며, 다시금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게 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약국이든 슈퍼든, 편의점이든 수많은 장소에서 피로회복제를 판매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작은 병 하나로 모든 피로들이 싹 사라지기는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면서도 그래도 왠지 한 병을 마시면 힘이 나는 것 같지 않으십니까? 그리고 그 한 병과 함께 육적인 피로 회복을 위해서는 적당한 쉼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충전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축복하기는 육적으로 피로감을 느끼시지 않고 매 순간순간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이 ‘영적피로감’을 극복해 하나님과 멀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결코 ‘영적피로감’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오늘 그것을 다시금 온전히 믿고, 붙드시고 소유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다시금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깊은 사랑의 감격에 빠지시기를 기도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공로를 온전히 힘입어서 영적피로감에서 벗어나고, 모든 예배가 회복되어지길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그 보혈, 그 은혜를 묵상하며, 기도하며, 사모할 때에 우리의 어두워진 눈이 밝아지고, 냉랭하고 무관심하고 무기력했던 심령이 뜨거워지기를 소망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피의 능력으로 모든 것이 온전케 되는 것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동역자 여러분, 2024년 6월에는 이 ‘영적피로감’에서 벗어나서 “피로!회복!”을 한 후 전진하고 승리하길 원하십니까? 그러면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그 피로 회복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오늘도 우리를 응원하시며 말씀하십니다! "이 방법을 잊지 마라! 피로!! 회복!!"
결단 찬양 -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 보혈을 지나 후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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