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성 아트에서 마주친 소녀 -
한 선배의 소개로 소녀를 만나러 강화 민통선 안에 있는 북성 아트를 찾았다. 첫 마주침은 혼란스럽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소녀를 보기 전 인터넷 카페에서 본 첫 인상이 인자하고 포근하면서 이웃집 큰 언니처럼 편안한 느낌이었다.
북성 아트에 도착하여 소녀는 보이지 않고 우리는 먼저 소녀가 전국투어 현장 인물 크로키 한 그림을 감상하였다. 전시된 그림 속 인물을 감상하면서 소녀가 섬세하고 따뜻하게 다가왔다. 10여분의 시간이 흐르고 마주친 소녀는 하얀 남방에 검은 조끼와 바지 그리고 베레모를 쓰고 화장기 없는 맨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은 이지적이면서 당차고 열정적인 모습이었다.
소녀는 현장에서 마주치는 인물의 감정이나 표정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그리는 화가다. 전시장에 다양한 사람 표정이 사각 벽면을 차지하고 살아 움직인다. 폐교를 작업실로 만들어 학생들은 떠나고 없지만, 그 곳에 소녀가 살고 있다. 소녀는 혼자가 아니다. 자연과 더불어 과거나 미래가 아닌 현재의 시간의 최선을 다해 삶을 풍요롭게 사는 모습이 곳곳에서 배어나온다.
소녀가 우리를 위해 늦은 점심을 준비한다고 한다. 다람쥐처럼 소녀의 움직임이 바쁘다. 소녀의 공간은 작은 방에 커다란 창문 그리고 소녀만 누울 수 있는 침대. 거실도 아닌 난 그 공간을 소녀의 고독이라고 명명한다. 흙을 싸 올려 만든 벽난로에 장작을 넣고 활활 타오르는 불 앞에서 소녀는 어떤 삶을 구상할까? 그 모습이 고독해 보인다. 소녀 왈 침대에 누우면 별이 속삭이고 달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기며 즐거움을 선사한다고 한다. 자연과 더불어 소통하고 받아들이는 소녀가 참 샘도 나고 얄밉다.
소녀의 공간에서 지글지글 익는 소리가 나더니 뒤뜰에서 자라는 식물로 푸짐한 한식상이 차려진다. 화가다운 상차림이다. 쑥 향기가 물씬 풍기는 부침개. 개망초대 줄기를 까서 무친 나물은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 신기한 음식이었다. 부추를 넣어 만든 잡채. 돌나물 샐러드, 묵은 김치 무침, 그런데 음식을 담아내는 접시 가장자리를 소녀 작업실 주위에서 자라는 야생화로 장식을 하였다. 소녀의 손맛과 정성이 빚어낸 음식은 자연 그대로였다. 그래서 포만감도 행복도 배수( 倍數))가 되었다.
소녀의 뜰을 거닐었다. 한 때의 영광은 없고 침묵에 빠졌지만, 나무는 제자리에서 그늘을 만들어 생을 이어가고 토끼풀은 오롯이 옛 추억에 잠기게 한다. 운동장 단상으로 실루엣처럼 드리워지는 지난 시간, 그 곳에 순수하고 열정적인 내가 있었다. 소녀는 이 넓은 뜰을 거닐며 어떤 생각을 하며 자신을 반추할까? 강한 봄 햇살이 운동장으로 쏟아져 내린다.
소녀 집 추녀 끝에 매달린 풍경이 소리가 없다. 산자락으로 스며드는 청아한 음과 날숨과 들숨으로 전해지는 공기가 맑다. 소녀의 쉼터인 평상으로 나무 실루엣이 흔들린다. 소녀가 웃는다. 맨 얼굴에 번지는 하얀 이가 아름답다.
어디쯤인가?
‘생각하는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라는 이순의 소녀가 나와 마주쳤다. 그 소녀 삶이 나의 정체성을 묻는 것 같아 운전하는 내내 ‘백거이’ 말이 송알송알 거리며 머쓱하게 한다.
‘소나무는 천 년을 살지만, 꽃을 피우고 화려한 모습을 보이는 경우는 한 번도 없이 결국 말라죽는다. 그러나 무궁화는 겨우 하루를 살뿐이지만, 화려한 꽃을 자랑한다.’
첫댓글 그 때 그 반가움을 이제사 화답합니다.열정적인 모습 지금도 선합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소서.
하하, 선생님. 이순의 저를 내내 소녀라 칭하셨군요. 나의 어떤 모습이 그리 " 소녀" 라는 명칭이 나오게 만들었을지 짐작이 될듯도 싶고...... 아무튼 감사합니다. 글 쓰시느라 ..... 얼마나 생각속을 헤메었을지요? 자주 오사이다. 안녕!
한결 : 소녀처럼 사시는 서양화가 정정신씨를 참으로 잘 그려냈네요
德田 : 전형적인 예술가 스타일입니다. 자유방종하면서 그 속에서 크레이티브를 창출하는 끼있는 사람이지요.ㅎ
아이구, ㅋ
벼*리 : 아름다운 표현력에 감탄하며 소녀가 움직이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행복이 넘치는 하루였군요..늘 맑은 소녀모습으로 토요사생에 시간되면 뵈어요^^**
하하, 벼리선생님! 수필가로써의 문장을 이끌어 나가기 위한 한 방편으로 그리 표현을 했나봅니다. 하하 이순의 할매를..... ㅎㅎㅎ 이번 주는 저의 개인전 현장을 지켜야하고......... 개인전이 끝나면 토요화가회에 합류를 하겠습니다. 지금 연장전으로 들어갔나이다. - 정정신 -
감동적인 글입니다,
쉬리! 여기까지 다녀갔으면 내 갤러리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겠네요? 감사 ! 그 정에 감사! 보고프다. 내가 애정표현을 너무 많이 하는가!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