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클라베(교회를 넘어 세상의 변화를 꿈꾸는 영화)
민들레 신문/오동진
입력 2025.03.02 21:30
수정 2025.03.03 08:08
종교인이 가져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한 조용한 목소리
예상과 달리 ‘콘클라베’는 엄청난 영화까지는 아니다. 그렇지만 엄청난 결말을 맺는 영화이다. 과연 현실에서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만약 일어날 수 있다면 가톨릭에는 엄청난 일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되면 바티칸이 변하고, 세상도 크게 바뀌게 될까? 영화 ‘콘클라베’는 영화적 상상력에 기초하고 있으나 결국 지금의 시대가 변화의 바람을 강렬하게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영화 ‘콘클라베’는 결단코 강렬한 변화에의 욕구를 그리는 이야기이다.
흰 연기 피워낼 때까지 ‘잠금방’에 갇혀있는 107명의 추기경들
콘클라베의 어원인 라틴어 com clave는 ‘잠금방’이란 뜻이다. 교황이 타계하면 전 세계 추기경 중 투표 자격이 있는 사람(80세 이하 추기경, 대체로 120명. 영화에서는 107명 참여)만으로 선거인단을 구성해 새로운 교황을 뽑는 바티칸의 독특한, 직접 민주주의 투표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100여 명의 선거인단은 바티칸 내 시스티나 성당에 사실상 유폐된 채 외부와 단절된 상태에서 2/3 이상의 득표자가 나올 때까지 계속 투표를 해야 한다. 하루 총 4번 투표가 이루어지며 교황이 선출되면 흰 연기(선출 실패시에는 검은 연기)를 피워 바깥 바티칸 광장의 시민들에게 알리게 된다.
교황은 전 세계 가톨릭의 지도자이다. 세계 가톨릭 신자는 약 14억 명에 이르며, 신자 수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가톨릭이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종교라는 점이 중요하다. 일국의 대통령이나 총리는 그 나라를 대표하는 정도이지만 교황은 일종의 전 세계의 왕이자 정신적 지도자로 인식된다. 콘클라베가 세상의 주목을 받는 이유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그 과정을 차근차근 보여주는 내용이다. 요한 23세 교황이 갑자기 타계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바티칸의 궁무 처장으로 일종의 국무장관급인 마이크 로렌스 추기경(랄프 파인즈)이 황급하게 달려 가 그의 임종을 준비한다. 죽은 교황의 손가락에서 일명 ‘어부의 반지’를 빼 내 흠집을 내는 의식이 첫 장면에 들어 있다. 영화는 그로부터 4일 후 콘클라베가 시작되는 첫 날을 보여 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풀어 나간다.
영화 속 현재의 바티칸에는 유력한 교황 후보가 여럿 있다. 일단 로렌스가 밀고 있는 알도 벨리니(스탠리 투치) 추기경이 있다. 알도는 가톨릭 내 자유주의 운동(동성애 찬성, 이슬람 등 타종교 포용)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트랑블레 추기경이란 인물(존 리스고우)도 있다. 아프리카에서 온 아데예미 추기경(루시안 므사마티)도 있는데 그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다. 선출이 유력하다. 한편으로 이 모든 유력 후보의 대항마가 있는데 근본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이탈리아의 테데스코 추기경(세르지오 카스텔리토)이 바로 그다. 그리고 처음에는 추기경 선거인단 명단에 없었으나 죽은 교황이 생전에 비밀리에 임명했다는 추기경 한 명도 막바지에 합류한다. 빈센트 베니테스 추기경(카를로스 디에즈)이다. 그의 존재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았던 데는 그가 아프카니스탄 카불 출신이기 때문이다. 회교 국가에서 온 추기경은 바티칸에서는 거의 존재감이 없는 인물일 수밖에 없다.
덕망과 신앙심의 상징들이 벌이는 추잡한 싸움
투표가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추기경 중 한 명은 자신이 마치 미국 선거판에 있는 것 같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치열한 수 싸움이 벌어지고 음모가 판친다. 아프리카 추기경인 아데예미의 초반 득표율이 만만치 않다. 소외된 지역의 추기경인 만큼 의외의 지목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러나 곧 한 수녀와의 섹스 스캔들이 터진다. 30년 전 그가 30대 때의 얘기로 수녀는 당시 19살이었다. 둘 사이에서는 애까지 태어났다. 당연히 아데예미는 교황 대상에서 탈락한다.
그러나 곧 이 모든 것이 트랑블레 추기경의 ‘작전’에 의한 것이었음이 드러난다. 과거의 섹스 스캔들을 끄집어 내기 위해 변방 멀리에 있는 수녀를 트랑블레가 바티칸으로 불러 들였기 때문이다. 트랑블레는 트랑블레 대로 그것 역시 죽은 교황의 생전 지시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역시 이제는 유력 교황 후보군에서 밀려 날 판이다. 그런데 이러다가는 가톨릭 근본주의자이자 강성 보수주의자인 테데스코 추기경이 교황 자리에 오를 판이다. 그는 이탈리아 출신이 교황에 오른 지 40년이 됐다며 열을 낼 만큼 극단적인 민족주의자이기도 하다. 반 테데스코 전선이 형성된다. 카불에서 온 베니테스 추기경은 한결같이 교황 후보로 주인공인 마이크 로렌스를 밀고 있는 상황이다.
자, 과연 어떤 인물이 새로운 교황으로 오르게 될까. 신성(神性)을 책임지는 만큼 덕망과 신앙심이 가득한 인물이 될까? 그러나 영화 속 콘클라베 과정은 이들 추기경, 이들 종교적 지도자들조차, 세속의 권력자들 못지 않은 추잡한 싸움을 벌이고 있으며 연신 그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다. 바티칸이라고 해 봐야 거기도 속세에 불과한 것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그 리얼의 모습에 흠칫 놀라게 된다.
2시간으로 정리한 가톨릭을 둘러싼 무수한 논쟁과 교리
주인공 로렌스 추기경은 바티칸 책임자로서 콘클라베에 앞서 짧은 연설을 한다. 그는 하느님 말씀의 요지는 다양성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로렌스는 신앙이 살아 있으려면 끊임없이 하느님의 존재와 그의 역사하심을 의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심이 신비를 낳고 그 신비가 신앙으로 이어진다고 말한다. 죄를 짓는 교황을 추대하자고도 말한다. 죄를 짓고 용서를 구하고 그럼으로써 우리 모두를 구원으로 이끄는 인물을 교황으로 뽑자고 말한다. 교회의 적은 확신과 신념이며 그것이야말로 통합과 포용의 적이라고 말한다.
영화 ‘콘클라베’는 가톨릭의 교리를 둘러싸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무수한 논쟁과 그 오랜 역사를 2시간 안에 압축해 보여 주려 애쓴다. 그 정리의 기술력이 뛰어나다. 가톨릭은 지금껏 타 종교에 대해, 동성애에 대해, 사회주의 이념 등에 대해 조금씩 조금씩 그 문호를 개방해 왔다. 교황으로 어떤 인물이 되느냐에 따라 가톨릭 국가마다 처한 여러 정치 사회적 이슈의 해결이 달라져 왔다. 영화 ‘콘클라베’는 그 고민의 깊이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로렌스는 자신이 기도의 문제를 안고 있다고 고백한다. 그는 죽은 교황 요한 23세도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나 요한 23세가 잃은 신념은 하느님에 대한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것이다. 로렌스가 갖고 있는 기도의 문제는 신앙 그 자체이다. 그는 복마전인 바티칸을 벗어나 수도원으로 가고 싶어 한다. 인간이 추구하는 신성, 신의 부름, 혹은 신의 목소리는 어떻게 실현시킬 수 있는가. 그것은 홀로여야 가능한 것인가, 더불어 있어야만 되는 것인가. 어느 한 쪽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종교인이 가져가야 할, 그 전에 무엇보다 인간으로서 가져가야 할 삶의 태도에 대해 조용한 목소리를 전하는 작품이다.
2시간 지나서야 ‘콘클라베’가 세상에 전하려는 메시지 알게 될 것
실제로 현재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위중하다. 88세 고령이다. 교황이 된지 올해로 12년째이다. 만약 그가 타계하게 되면 실제 콘클라베가 열릴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이 민감한 시기인 3월 5일에 개봉된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3월 3일이다. 개봉일은 그 직후를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수상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반복하지만 엄청난 결말의 영화이다. 끝까지 누가 교황이 되는지 지켜보시기들 바란다.
첫댓글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고민하고 영화인이 본 모습대로라면 쇄신과 정화해야 할 현실
콘클라베(conclave) 라틴어 con(with) clave(key)의 합성어이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되어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이루어지는 교황선출을 말한다. 숙소는 마르타의 집이다. 콘클라베 참석자는 교황 선종일 기준으로 만 80세 미만이다. 공개적으로 정해진 후보는 없고 각자 기도안에서 투표하여 재적 2/3가 나올때까지 계속한다. 투표 상황이 실패하면 투표용지를 태워 검은 연기로, 교황이 탄생하면 흰 연기로 여부를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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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히 종영된다기에 공부하는 마음으로 관람을. 그냥 지나갔으면 크게 후회했을 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