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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백성호
#궁궁통1
유대 민족은
고대 이집트에서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모세는
유대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신이 약속한
가나안 땅을 향해
기나긴 여정을 떠났습니다.
모세가 하늘로부터 받은 십계명 돌판을 유대 민족에게 보이고 있다. 영화의 한 장면. 중앙포토
여정 중에
모세는 시나이산에서
하늘로부터
십계명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는
열 개의 율법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에게는
그 율법이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었습니다.
그래서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모시는
성막을 만들었습니다.
성막(聖幕),
말 그대로
성스러운 천막입니다.
유대인들은
바로 그 성막에서
하느님을 만난다고
믿었습니다.
모세가 하늘로부터 받은 십계명은 유대 민족에게 신과의 약속이자 구원의 조건이었다. 렘브란트 작품. 중앙포토
당시
유대 민족은
유랑의 삶을 살았습니다.
십계명을 모신
성막도 계속 짊어진 채
옮겨다녀야 했습니다.
#궁궁통2
떠돌아다니던
유대 민족이 이스라엘 땅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그때 비로소
유대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게 됩니다.
옮겨다니던 천막인
성막은 이제
거대한 건축물인
성전으로
바뀌었습니다.
성스러운 천막에서
성스러운 건축물로
바뀐 겁니다.
성막처럼 성전 역시,
유대인은
하느님을 만나는 장소라고
믿었습니다.
유대교는 계약의 종교다.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유대 민족이 지키면, 그 대가로 신은 구원을 약속한다. 그래서 유대교는 이방인에게 선교하지 않는다. 오직 유대 민족만을 위한 구원 약속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백성호 기자
그때
유대교 신앙의 핵심은
하느님이 주신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 가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엄청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쪼개져
싸울 때가 있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이제 막
건국될 때였습니다.
북쪽의 이스라엘 왕국은
기원전 722년에
아시리아 왕국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그로부터 125년 후에
남쪽의 유대 왕국은
바빌로니아에 의해
멸망했습니다.
유대 민족은 바빌로니아로 끌려가
노예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귀밑머리를 길게 기른 정통파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장소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유적인 통곡의 벽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유대 왕국이 멸망할 때
유대인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성전이
파괴됐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성전 안에는 하느님이 계신다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믿는 하느님은
전지전능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이 계시는 성전이
이방인의 침략에 의해서
철저히 파괴되는 사건은,
유대 민족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습니다.
자신들의 신앙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에 빠지는
이도 많았습니다.
이스라엘 갈릴리 호숫가에 있는 가파르나움에 있는 유대교 회당. 예수 역시 이곳에서 하늘의 뜻을 전했을 터이다. 베드로의 장모 집이 이 지역에 있었다. 백성호 기자
#궁궁통3
그때
유대의 선지자들이
나름의 해법을 내놓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것은
우리의 죄 때문이다.
이걸 하느님께서
심판하긴 거다.”
그래도
문제는 남아 있었습니다.
성전이 파괴돼
버렸으니까요.
유대인들에게는
하느님 앞에서
기도할 장소가 없어진
것이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에 대한 해법을
이렇게 내놓았습니다.
“반드시 성전을 찾아가서
재물을 바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믿음을 가지고 율법을 지키는 일이
여호와를 더 즐겁게 하는 것이다.”
갈릴리 호수 일대의 옛 모습을 그린 작품을 찍었다. 예수 당시 갈릴리 주변 풍경이 이와 비슷했을 터이다. 백성호 기자
이렇게 해서
유대교의 시너고그(회당)가
생겨났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재물을 바치고 기도를 해야만
하느님을 만난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동네 곳곳에 있는
시너고그에서 기도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이를 기점으로
유대교 신앙의 핵심은
또 달라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재물을 바치고 기도할 때
유대인을 인도하던
제사장 그룹도
필요치 않게 됐습니다.
사제 계급 대신
유대교 학자인 랍비를 중심으로
회당에 모여서
율법과 토라를 공부하고,
기도하게 됐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파괴되고,
유대 민족은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을 이어가야 했지만,
유대인의 신앙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큰 계기가 됐습니다.
정통파 유대인이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백성호 기자
#궁궁통4
유대교 신앙의 핵심은
이제
율법과 기도가 됐습니다.
그 기도는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가능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539년에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2세는
유대 민족의 팔레스타인 귀환을
허용했습니다.
다시
팔레스타인 땅에 돌아온
유대인들은
‘율법과 기도’를 중시하며
유대교 신앙을 이어갔습니다.
그로부터
약 500년 후에
이 땅에 온 예수는
유대인들이 중시하던
‘율법’을 겨냥했습니다.
십계명 중에서도
안식일을 지키라는 계명은
엄청나게 중요한
율법이었습니다.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사형에 처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예수는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율법을 어기고
병든 이를 고쳐주었습니다.
온갖 비난이 쏟아지자
예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다.”
예수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던 유대교를 향해 종교가 사람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일깨웠다. 백성호 기자
당시
유대인의 상식으로는
그야말로
파격적이고
혁명적 발언이었습니다.
목숨을 걸어야만
할 수 있는 선언이었습니다.
결국
유대교라는
뿌리에서 나왔지만,
유대교의 율법주의를
뛰어넘는 종교가
등장하게 됩니다.
다름 아닌
그리스도교입니다.
‘율법+기도’의 유대교는
‘사랑+기도’의 그리스도교로
성숙하게 됩니다.
물론
지금도
유대의 메시아를 기다리는
유대교인들은
고개를 끄덕이지 않겠지만
말입니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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