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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8호 至氣今至願爲大降侍天主造化定永世不忘萬事知 포덕 154년 8월 27일(화요일) | |
시일소식 |
포덕 154년 |
8월 다섯째주 화요시일식 | |
발행처:천도교 동천교구 발행인:김학봉 편집인:김대석 주소:부산시 남구 대연5동 1564번지 전 화:(051) 628~1302~6 Fax:624-0519 카 페:http://cafe.daum.net/dongcheon21 |
집례 : 중암 김대석 교무부장
- 청 수 봉 전
- 개 식 심 고
- 주 문 삼 회 병 송
- 경 전 봉 독 - 의암성사법설 [명리전] 명언천법장 외(경전 602~610쪽) - 김다훈 학생동덕(2)
- 천 덕 송 합 창 ------------------------------- 제15장 천일기념가(천덕송 34쪽, 1~2절)
- 설 교 -------------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 학암 김학봉 교구장
- 천 덕 송 합 창 ------------------------------- 송가, 동학행진곡(천덕송 64쪽, 1~2절)
- 폐 식 심 고
* 음악준비 : 문준기 학생동덕(2)
[긴급명령, 국부 손병희를 살려내라](손윤 짓고 이창희 엮음, 뷰스, 2013.1)
■ 책 소개 의암 손병희 선생은 경영전략적인 준비 없이 무력투쟁으로 시작한 동학혁명의 최고책임자의 한 사람으로서 대업(大業)의 좌절을 거울삼아 민주공화국가, 자주독립국가인 대한민국의 건설에 일평생을 바쳤다. 이 책은 의암경영연구소 창립 및 의암손병희선생기념사업회 준비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손윤이 집필한 책으로, 주류 역사학자들이 외면하는 대한민국 성립 과정의 비밀을 낱낱이 밝히고 있다. ■ 목 차 제1부 지워진 역사,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히다 1)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 2) 손병희 선생이 진짜 국부다 3) 대한민국 건국일은 3월 1일이다 4) 손병희 선생은 동학혁명의 지도자다 5) 손병희 선생은 사회 개혁의 선구자다 6) 손병희 선생은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화신이다 7) 손병희 선생, 동학을 천도교로 재창건하다 8) 삼일독립운동의 최고지도자는 손병희다 제2부 목차 (생략) |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
학암 김학봉 교구장
모시고 안녕하십니까?
올해 여름더위는 근년 들어 가장 무더웠던 해인 1994년 폭염보다도 더한 그야말로 기록적인 ‘한증막(汗蒸幕) 더위’랍니다. 이제 앞으로는 매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을 만큼 봄과 가을은 점점 짧아지고 더운 여름과 추운 겨울 두 계절만이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런 조짐이 가까이서 보이고 있습니다. 모쪼록 이런 날씨일수록 마음기둥을 굳건히 하여(固我心柱) 슬기롭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할 때입니다. 우리나라가 점점 더 아열대기후로 변해가고 있다는 언론 보도는 이젠 이미 우리들의 귀에 익숙해져 있습니다. 과일도 기후변화에 따라 수종(樹種)이 다변화 되어가고 있고, 남부지방에서 잘 자라던 과일들이 지구온난화 영향으로 이젠 북쪽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우리나라 바다 속 어종(魚種)도 전과는 달리 아열대기후에서 활동하는 어종으로 바뀌어 종의 다양성이 이루어져가고 있다고 합니다. 삼한사온(三寒四溫)에 익숙해있던 기성세대뿐 아니라 신세대들도 이번 여름나기는 정말 장난이 아닙니다. 그래도 지난주 금요일 여름더위가 물러가고 선선한 가을이 다가온다는 절기 처서(處暑. limit of heat)가 지남에 따라 주택가 저희 집에는 새벽녘 풀벌레와 귀뚜라미 소리가 요란합니다. 스쳐가는 바람결에 조금씩 계절의 순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지난 여름방학은 의미 있게 잘 보내셨습니까? 저는 3주간의 방학 보충수업 기간 중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학교에 나와 학생들의 수업상태를 확인하느라 오전에는 매일 학교에 출근했었답니다. 그 밖에는 두 건의 연수와 한 건의 답사, 8월 14일 해월신사님 승통일인 지일기념일을 앞두고 3일간의 흥신포 합동수련회에 참여하여 하루 2시간씩 주문공부를 하였고, 8월 첫째 주 주말을 기해 지난 고등학교 학창시절 절친 세 가족과 1박2일간의 휴가를 다녀온 것이 전부입니다. 그러다보니 어느덧 여름방학이 훌쩍 다 가버렸네요.
방학 전에 스마트폰 밴드에 올라온 글이 좋아 저장을 해 두었습니다. <삶은 만남 속에서>라는 글인데, 한 번 소개를 해보겠습니다.
세상에 태어나면서 부모를 만나고..., 자라면서 친구를 만나고, 성숙해 가면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삶의 모습도 달라지고...!! “행복”할 수도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생은 모두 다 “만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어떤 사람이 여행 중에 점토를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그 흙덩어리에서 아주 좋은 향기가 풍겼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여행객이 물었습니다. 아니 흙에서 어떻게 이렇게 좋은 향기가 날 수 있나요? 흙덩이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장미꽃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삶”도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향기를 풍길 수도 썩은 냄새를 풍길 수도 있습니다. 라는 글입니다.
이 글과 같이 오늘 설교는 “아름다운 만남을 위하여”라는 주제로 한 말씀 드리려합니다.
한양대학교 정민 교수의 글에는,
“만남은 맛남이다. 누구든 일생에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난 만남을 갖는다. 이 몇 번의 만남이 인생을 바꾸고 사람을 변화시킨다. 그 만남 이후로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나일 수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만남 앞에서도 길 가던 사람과 소매를 스치듯 그냥 지나쳐버리고는 자꾸 딴 데만 기웃거린다. 물론 모든 만남이 맛난 것은 아니다. 만남이 맛있으려면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고장난명(孤掌難鳴)이라고, 외손바닥으로는 소리를 짝짝 낼 수가 없다.” 했습니다.
진정 살아오면서 나를 바꾸고 변화시킨 맛난 만남이 얼마나 있었는지를 가만 헤아려 봅니다. 그리고 또 내가 만났던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참으로 맛난 만남이 되어 주었는지를 헤아려 봐야겠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냥 지나쳐버린 만남이 너무나 많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만남이 우리들 앞에 펼쳐질 텐데 정말 맛난 만남이 되도록 그에 걸맞는 마음가짐과 마음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겠습니다.
아름다운 만남의 예를 하나 들겠습니다. 아시다시피 다산 정약용 선생은 1801년 신유박해로 전남 강진으로 유배됩니다. 그의 나이 39살이었습니다. 여기서 평생의 제자인 황상과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그곳 아전의 자식이었던 황상은 다산이 소일거리로 연 서당에 문을 두드립니다. 그의 나이 15살이었습니다. 황상은 다산과의 그 첫 만남 이후 70노인이 될 때까지 단 하루라도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으려 몸부림쳤다고 합니다. 다산과 황상간의 이야기 한 토막을 소개해 드립니다. 다산은 서당에서 글공부를 하는 고만고만한 학생들 중에 영특해 보이는 황상이 맘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산은 수업을 마친 후 돌아가는 황상을 따로 불러 '공부를 더 해 봐라'고 운을 떼었다고 합니다. "너는 좀 남거라. 이를 말이 있다." 꽁무니에 서 있던 더벅머리 소년이 주뼛대자,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큰사람이 되어야지." 그러자 소년이 무슨 말을 하려다가 얼굴을 붉힌 채 되삼킵니다. "지금보다 더 노력해야지. 게을러선 못쓴다" 하니, 소년이 그제사 어렵게 입을 엽니다. "선생님! 그런데 제게 세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는 너무 둔하고, 둘째는 앞뒤가 꼭 막혔으며, 셋째는 답답합니다. 저 같은 아이도 정말 공부할 수 있나요?" "그렇구나. 내 이야기를 들어보렴. 배우는 사람에게 보통 세 가지 큰 문제가 있다. 너는 그 세 가지 중 하나도 없구나." "그것이 무엇입니까" "첫째, 민첩하게 금세 외우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은 가르치면 한 번만 읽고도 바로 외우지. 정작 문제는 제 머리를 믿고 대충 소홀히 넘어가는 데 있다. 완전히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하지. 둘째, 예리하게 글을 잘 짓는 것이다. 이런 사람은 질문의 의도와 문제의 핵심을 금세 파악해 낸다. 바로 알아듣고 글을 빨리 짓는 것은 좋은데, 다만 재주를 못 이겨 들떠 날리는 게 문제다. 자꾸 튀려고만 하고, 진중하고 듬직한 맛이 없다. 셋째, 깨달음이 재빠른 것이다. 대번에 깨닫지만 투철하지 않고 대충하고 마니까 오래가지 못한다. 내 생각을 말해 줄까? 공부는 너 같은 사람이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송곳은 구멍을 쉬 뚫어도 곧 다시 막히고 만다.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가 쉽지 않지만, 계속 파고들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뚫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구멍이 뻥 뚫리면 절대 막히는 법이 없다. 앞뒤가 꼭 막혔다고? 융통성이 없다고 했지? 여름 장마철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얼마나 통쾌하냐? 어근어근 답답하다고 했지? 처음에는 누구나 공부가 익지 않아 힘들고 버벅거리고, 들쭉날쭉하게 마련이다.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튀어나와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 반반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 구멍은 어떻게 뚫어야 할까? 부지런히 하면 된다. 막힌 것을 틔우는 것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연마하는 것은 어찌해야 하지? 부지런히 하면 된다. 어찌해야 부지런히 할 수 있겠니? 마음을 확고하게 다잡으면 된다. 그러면 할 수 있겠지? 어기지 않고 할 수 있겠지?"라고 했답니다. 서울에서 오신 하늘같은 선생님이 ‘너도 할 수 있고, 너라야 할 수 있다’고 북돋워 준 한 마디가 소년 황상의 삶을 온통 뒤흔들어 놓았고, 이 한 번의 가르침 이후 소년의 인생이 문득 변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나이 70이 넘어서도 여전히 초서(草書)를 계속 썼습니다. 주위에서는 “그 나이에 초서는 해서 무엇 하느냐?”고 하자 그는 “우리 선생님은 강진에서 20년 유배생활 동안 복사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나도록(踝骨三穿) 공부하고 또 공부하셨다. 거기에 비해 내 공부는 공부도 아니다.”라고 했답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제 간의 만남입니까?
그럼 이제 우리 교사(敎史)에서 보이는 아름다운 만남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저는 다른 스승님도 계시지만, 특히 1세 교조이신 대신사님과 2세 교조이신 해월신사님의 만남을 참으로 아름다운 만남이라 말하고 싶습니다. 남달리 종교적 심성이 강하여 세상과 인생에 대해 평소부터 회의를 품어 오시던 해월신사께서 신유년(1861. 포덕 2년) 6월에 수운 대신사께서 새로운 도를 편다는 사실을 알고 가셔서 입도를 하시고, 한 달에 2~3차례씩 영일군 신광면 마북리에서 경주 용담까지 70리 먼 거리를 왕래하시며 대신사의 가르침을 받아가며 수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다 계해년(1863. 포덕 4년) 12월에 해월신사께서 대신사를 찾아뵈오니 대신사 말씀하시기를 “내 그대에게 특별히 할 말이 있더니 마침 잘 왔다. 그대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절대로 내 문안에 들어오지 말라. 그대 뿐 아니라 다른 접주들에게도 이 말을 전하여 어김없이 하라. 어서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서 정심자중(正心自重)하라. 만사가 천명이니 삼가 어기지 말라.”고 하시므로 신사께서는 어쩔 수 없이 검곡으로 돌아 가셨는데, 이날 밤 대신사께서는 가족들을 다른 곳으로 보내시고, 등촉(燈燭)을 밝혀 기도하시던 중 새벽녘 선전관 정운구가 포졸들을 앞세워 대신사를 체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는 대신사께서 도가 전해지지 않을까 염려함이었고, 한편으로 제자인 신사를 위한 마음 씀이었다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갑자년(1864. 포덕 5년) 3월 3일 대신사께서 대구감영에 갇혀 계실 적에 신사께서 위험을 무릅쓰고 찾아뵈었을 때 사제 간의 마지막 만남을 가졌는데, 이후 가까이에서 옥바라지를 했던 곽덕원(郭德元)에게 “燈明水上無嫌隙 柱似枯形力有餘(등불이 물 위에 밝았으니 의심할 틈이 없고, 기둥이 마른 것 같으나 힘은 남아있도다)”라는 ‘유시(遺詩)’ 1수(首)를 남기셨는데, 이는 대신사 당신께서는 비록 환원하시지만, 성령상(性靈上) 우리 도는 영원하리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특별히 해월신사에 관한 당부를 하셨는데, “경상(慶翔)이 지금 성중(城中)에 있는가? 곧 잡으러 갈 것이니 멀리 달아나라는 내 말을 전하라. 만일 잡히게 되면 일이 어렵게 되니 번거롭지만 내 말을 꼭 전하라”고 부탁하셨습니다. 이는 마지막 순간까지 대도(大道)를 생각하시고, 스승님의 제자 사랑하는 마음을 잘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해월신사는 스승이신 대신사님을 어떻게 모셨을까 하는 점이 궁금해집니다. 임술년(1862. 포덕 3년) 3월의 일입니다. 대신사님께서 호남지역 순회를 마치시고 경주 박대여(朴大汝) 제자 집에 몰래 머물고 계셨을 때, 해월신사는 심고를 지극히 드린 결과 영감으로 아시고 스승님을 찾아뵙자 전후사정을 들어보신 대신사 는 제자의 정성이 하늘에 닿았음을 아시고 매우 기뻐하셨다 합니다. 같은 해 11월에 대신사께서는 용담으로 찾아온 신사에게 관의 지목을 피해 있을만한 곳을 물색해보라고 부탁을 하니, 신사는 자기가 사는 검곡(劍谷-금등골)로 가시자고 권하자 대신사 웃으며 “군의 집은 비좁으니 다른 곳을 찾아보라.”하셨습니다. 이는 금등골은 깊은 산중으로 은신처로는 좋으나 왕래가 불편하여 적합지 않아서 흥해의 매곡동(梅谷洞) 손봉조(孫鳳祚)의 집으로 모시게 되었고, 이후 신사는 스승님께 이불 한 채와 상하의 한 벌을 지어 바치자, 대신사 말씀하시기를 “평소 빈한한 그대가 어찌 이처럼 애를 썼는가?”하고 치하하시며 또 “내 집 처자들이 끼니가 어려우니 군이 구할 방도가 있겠는가?”하시자 신사는 곧 쌀과 고기와 돈 사오십 금을 마련하여 스승님의 서찰과 함께 본가에 보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대신사 순도(殉道) 후 은도시대(隱道時代)의 어려운 도산검수(刀山劍水)의 상황에서도 끊임없이 수련에 수련을 더 하셨고, 스승님의 유가족을 돌보는 한편, 매년 탄신 향례와 순도 향사를 지내는데 소홀함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이렇듯 해월신사께서는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한결같은 믿음과 정성을 다하셨기에 뭇사람들로부터 신망을 받았고, 후일 우리 교단의 2세 교조가 되셨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2학기 개학을 하고 수업시간에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해 “모든 아이들은 특별한 존재이다”라는 2007년 인도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학습장애 중 읽기와 쓰기 장애인 ‘난독증(難讀症)’을 앓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주인공 이샨은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지만, 영어 알파벳 철자 중 ‘b’와 ‘d’, ‘p’와 ‘g’ 같이 비슷한 철자를 혼동하여 책을 잘 읽지 못함으로 인해, 매 수업시간마다 선생님께 반복되는 지적을 받고 벌로 복도에 나가 서있는 것이 일상이 되어있어 친구들로 부터도 ‘멍청이’로 따돌림의 대상이 되어 있던 주인공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릴 적 똑같은 장애를 앓다가 이를 극복하고 미술교사가 된 니쿰 선생님을 만나 격려와 지지, 공감과 칭찬 속에 끝내 주인공 역시 난독증을 극복하게 된다는 인간승리의 아름다운 영화였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만남을 어떻게 하면 보다 더 아름다운 만남으로 승화시켜 갈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때 늘 설교에서 자주 인용했듯이 의암성사님 법설『무체법경』「신통고」의 말씀이 답이 되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이 반드시 서로 사랑해야 큰 도를 반드시 얻으리니(人必相愛 大道必得) 항상 생각하고 생각하라. 내가 뭇 사람을 사랑하면 뭇 사람이 한울 길에 가서 영(靈)의 다리를 반드시 이룰 것이요, 뭇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가 한울 길에 가서 영의 다리를 반드시 이룰 것이니, 돌보고 돌보아 서로 사랑하면 반드시 성과를 얻을 수 있느니라”는 말씀을 되새기며 ‘아름다운 만남’을 주제로 한 오늘의 설교에 대신합니다. 감사합니다.
☞ <제234차 천도교 부산연합 간담회> 결의사항(7/28) : 지난 7월 28(일) 오후 2시 동부산교구에서 부산연합 간담회가 열렸다. 당일의 안건 및 결의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7/28(일) 천도교 부산여성연합회 교사 강좌(강사 : 이창번 선도사) 2) 7/31(수)~8/4(일) 청년회 후원 대학생단 주관 제29회 한울나눔터(장소 : 강릉수도원, 대상 : 초등 5년~중, 고생) 행사 적극 참여. 3) 8/24(토) 천도교 부산여성연합회 1일 수련 및 교리 강좌(강사 : 김춘성 종학대학원장) 4) 9/1(일) 부산연합 합동시일식 봉행(설교 : 박남수 교령님) 당초 지난 간담회에는 9월 15일에 실시하려했으나, 추석절이 가까운 관계로 첫째 주인 9월 1일로 바꾸어 봉행키로 함. 5) 차기 회의 : 포덕 154년 9월 15일(일) 오후 2시 동천교구
☞ 교직원 워크샵 및 교구 성지순례 다녀와(7/19~20) : 지난 7월 19일(금)~20일(토) 양일간에 걸쳐 동학혁명군 최후의 전투지인 충북 보은(교조신원운동을 가진 보은 장내리와 북실동학혁명공원)으로 교직원 워크샵 및 성지순례를 다녀왔다.
☞ 제2회 중국(만주) 지역 항일 및 천도교 유적지 답사에 동천교구 민족사상탐구부 학생 6명 참가(7/22~26) : 동천고등학교 민족사상탐구부(구 종학부) 학생 6명이 7월 22일(월)~26일(금)까지 항일 유적지인 만주의 청산리, 봉오동 및 천도교에서 세운 동흥학교를 비롯해 윤동주기념관, 화성의숙, 백두산, 두만강 등지를 답사하고 돌아왔다. 학생들의 인솔은 김대석 동덕이 수고하였다.
☞ <제219차 천도교 흥신포 연원간담회> 결의사항(8/11) : 지난 8월 11일(일) 오후 2시 남부교구에서 열린 흥신포 연원간담회의 결의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대연, 남부교구 통합에 따른 논의 사항 : ① 10월 대연 2지구 보상 문제를 비롯한 재 감정 들어갈 예정. ② 여러 가지로 고민한 결과 대연교구를 유지재단에 당장은 넘기지 않기로 함. ③ 충분한 보상을 받기 위해 비슷한 선례가 있는 동대문교구의 김건영 동덕과 긴밀히 연락하기로 함. ④ 대지를 불하받든지 보상금으로 받든지 두 가지를 놓고 유리한 쪽으로 진행할 예정. ⑤ 대연, 남부 통합교구가 1층을 어린이집으로 보육시설을 갖출 것을 고려함. ⑥ 남부교구에서는 교구회의를 거쳐 대연2지구 부지에 통합교구로 이전하는 문제에 대해 교인들의 의사를 타진하고 결의가 필요함. ⑦ 동대문교구 김건영 동덕의 자문을 받아 조합에 동행토록 함. ⑧ 대연교구의 현 위치가 민족대표 33인 중의 라인협 선생님의 묘소 입구자리임을 부각시킬 것. ⑨ 앞으로 강도회를 비롯한 통합교구 성공을 위한 노력을 경주할 것. 2) 차기(220차) 회의 : 포덕 154년 10월 20일(일) 오후 2시 남부교구
* 집례 : 노암 강병로 교화부장
* 경전봉독 : 신성현 학생동덕(2)(의암성사법설 '명리전'(3)천하지정책장, 경전 611~622)
* 천덕송 합창
(1) 제16장 오관가(천일기념가 36쪽, 1~2절)
(2) 송가, 일편단심가(천덕송 67쪽, 1~2절)
* 설교 : 덕암 성강현 종학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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