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마지막 42장에 이르렀습니다.
1-2절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하나님은 무소불능이십니다. 무엇이든지 다 아시고 다 이루시고 완성시키십니다.
그래서 신앙고백도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시 하나님 아버지를 믿사오며 하는 겁니다.
3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지식이 없는 자가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냐? 내가 그렇게 했다고 고백합니다.
회개의 시작은 스스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을 함부로 지껄였다는데서 출발합니다.
4절 “내가 말하건대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청하건대 들어주시옵소서 알려주시옵소서
나의 무지를 깨우쳐 주옵소서 하는 욥의 고백입니다. 이제 제 정신이 든 겁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고백하고 3절에서 형편없는 자신임을 알고
4절에서 한 번만 들어 주소서 하고 간청을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5절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되옵나이다”
귀로만 들으려고만 했다는 말은 신앙이 귀만 커지는 걸 말합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이제는 내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눈이며 계시의 영입니다.
바로 에베소서 엡1:15절이하의 바울의 기도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는 설교보다
자신이 계시의 영을 가지고 죄인으로 출발하여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그리스도의
능력과 교회의 머리로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붙잡는 비밀을 가져야 합니다.
이때부터 진짜 신앙생활이 시작됩니다. 바로 하나님을 찾아가는 신앙이 된다는 말입니다.
6절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내가 스스로 자신을 가증스럽게 본다는 뜻인데 이게 바로 진정한 회개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옛사람을 떠나는 것이 참 회개입니다. 그 때에 성령이 내주하고
역사하십니다. 티끌은 바람에 날아가지는 않습니다. 우리의 몸 재료가 티끌입니다.
근데 재는 불에 한 번 탄 것입니다. 바람에 날아갑니다. 결국 교만한 자를 낮추어
그의 품으로 어린 양과 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사40:11)
그 다음 6절의 사건이 있은 다음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의
세 친구들이 하나님께 관하여 한 말들이 욥만큼 정당하지 못하다고 지적하십니다.
그들은 욥을 정죄만 하고는 입을 닫았습니다. 결국 나중에는 돌이키게 됩니다.
이게 바로 욥과 다른 중요한 차이점입니다. 왜 입을 닫고 말죠. 끝까지 살려야죠.
그러나 그들에겐 욥을 정죄하는 것 이상의 구원의 방도가 없었던 겁니다.
안타깝게도 지금도 인간의 불행의 원인과 동기를 파헤치는 사람들은 많은데
그와 같은 인간을 구원해 내는 비밀을 알지 못하는 선생들이 많습니다.
8절 이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의 결과입니다.
8절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같이 옳지 못함이라“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니리 하심은 용납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의 제사와 헌신을 기쁘게 받으시겠다는 건 엄청난 복입니다.
여기서 선택과 유기의 그림자를 볼 수 있는데 욥은 선택이 된 백성입니다.
욥은 드디어 거듭난 사람입니다. 곧 첫째 부활애 참여한 자들과 같이 천년이
차도록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음에도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을 받습니다.
그래서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9절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느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하나님께서 욥의 체면을 세워주십니다. 바로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나서
10절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설이나 주신지라”
하나님의 판결의 결과는 1) 욥이 기도한 것이며 2) 욥을 회복시켜 돌이키고,
갑절로 축복하십니다. 사실 거듭나면 회복(回福)이며 이웃을 위해 빌면 갑절의
복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내 종이라고 함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일을 한다는 뜻입니다.
11절 “이에 그의 모든 형제와 자매와 이전에 알던 이들이 다 와서 그의 집에서
그와 함께 음식을 먹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리신 모든 재앙에 관하여 그를 위하여
슬퍼하며 위로하고 각각 케쉬타(화폐단위) 하나씩과 금 고리 하나씩을 주었더라”
욥을 떠났던 주변 사람들이 다 돌아옵니다. 이와 같이 돌아온다는 것은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의미입니다.
12절 “여호와께서 욥의 말년에 욥에게 처음보다 더 복을 주시니 그가 양
만 사천과 낙타 육천과 소 천 겨리와 암나귀 천을 두었고”
욥의 말년이 어땠음을 말씀하는데 사실 인간은 죽을 때가 가장 좋아야 합니다.
약5:11절에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그의 인내가
결국 주의 자비와 긍휼을 얻어내는 조건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만일 우리가
보이지 않는 것을 실상으로 우리 안에 나타나길 바란다면 참음으로 기다려야죠(롬8:25)
믿음이란 보이지 않는 하늘의 복을 보이는 세계에 실존으로 드러내기 위한 몸부림입니다.
보이는 것을 더 받는 것이 복이 아니라 하늘의 신령한 복이 내 속에 나타나는 자각을
가지고 밖으로 그 위엄와 존귀로 단장하고 영화와 영광의 옷을 입고 사는 겁니다(욥40:10)
그래서 보지 못하는 것이 실상이 되기를 바라는 믿음은 반드시 인내가 필요합니다.
16절 “그 후에 욥이 140년을 더 살며 아들과 손자 사 대를 보았고”
아들, 손자 4대가 함께 삽니다. 요즘 같으면 상상도 못하는 복입니다.
13절을 보면 “또 아들 입곱과 딸 셋을 두었으며”
14절 “그가 첫째 딸은 여미마라 이름 하였고 둘째 딸은 긋시아라
이름하였고 셋째 딸은 게렌합북이라 이름하였으니” 딸들의 이름들입니다.
여미마는 사랑스러운 이라는 뜻이고, 긋시야는 계피라는 뜻으로 향기입니다.
게렌합북은 아름답고 뚜렷하다는 의미인데 웃는 말로 어디나 셋째 딸이 뛰어나네요.
15절 모든 땅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더라 그들의 아버지가
그들에게 그들의 오라비들처럼 기업을 주었더라” 아리따운 여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세상에서는 딸들에게도 상속이 되는데 이는 처음 사람의 전통이라고 봅니다.
17절 “나이가 늙고 기한이 차서 죽었더라” 천수를 누렸다는 의미로 자연사입니다.
욥과 같이 말년이 최고의 경지에 이르도록 우리가 가진 믿음이 항상 살아 있어서
그리스도 안에서 영의 생각을 하므로 뇌에서 우리 몸에 양약이 되는 신비로운
물질이 만들어지는 진리의 비밀을 간직하고 그 복이 실재가 되도록 간절히 바라므로
생로병사라는 땅에 속한 인간들의 통념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야 할 겁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감사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