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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의 고백을 하십시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 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6:31-33>
** 위의 말씀에 입각하여 소리내어 반복으로 고백하십시오.
안디옥
현재명은 안타키아이다. 행정 구역상 수리아 지역의 지중해에서 약 32Km 내륙 오론테스강가에 위치한 도시로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480Km의 거리에 위치해 있다. 안디옥이라는 지명은 여러 곳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며 성경에서는 비시디아 안디옥과 수리아 안디옥 두 곳이 언급되어 있다(13:14). 수리아 안디옥은 기원전 300년경에 셀류쿠스 니카토르 1세(Seleucus Nicator I)에 의해 세워졌고 그의 아버지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이름을 따라 도시의 이름을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디옥은 A.D.1세기에 로마 제국 안에서 로마와 알레산드리아에 이어 인구 약 50만에 달하는 큰 도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Josephus). 셀류시드왕조 때 수도로, 로마시대에 아시아 수도로 이용되었다.
1. 교회 행사 및 소식
➊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모두들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➋ 금일 당회원 모임, 교사회 모임, 생일축하행사가 있습니다.
➌ 6월 02일 주일 오후예배 후 공동의회가 있습니다. 세례교인들께서는 다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건 : 2013년 예산편성 / 조직 및 직분발표
➍ 병약한 성도와 오래토록 출석치 않는 성도들을 위해서 많은 관심과 부탁드립니다.
➎ 때아닌 불볕 더위에 조심하시고 특히 식중독이나 장염에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스테반 집사의 순교이후 예루살렘교회의 성도들이 각지로 흩어지면서 시리아 안디옥 지역에 정착하여 안디옥 교회를 형성하였다. 누가에 의하면 안디옥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처음으로 그리스도인 들이라고 불리던 곳이며(행11:25-26), 초대교회 선교의 출발지라 할만큼 중요한 곳이었다. 성서 시대 이후에도 상당 기간 동안 안디옥은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근거지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에 파견하였는데 바나바는 먼저 고향인 다소에 피신해 있는 바울에게 찾아가서 그와 함께 1년간 안디옥에 머물며 선교 활동을 한다. 그 후 이곳은 이방인 선교사인 바울의 선교 활동의 거점이 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AD 45-47년 팔레스티나에 기근이 들어 예루살렘 교회가 어려워 지자 안디옥 교회는 성금을 모아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도 한다.
➊ 재건총회 신학원 오픈강좌
-일시 : 5월 28일(화) 오후8시-10시
-장소 : 대방교회
-강사 : 성인경 목사(현 라브리 대표간사)
❷ 동행하는 교회 임학주 장로 차녀 은향 결혼식
-일시 : 2013. 6월 01일(토) 오후 1시.
-장소 : W컨벤션(구. 대왕예식장) 6층
(포항시 남구 상도동 643-1)
➌ 이길수 목사 심근경석 1차 수술후 회복중.
-전남대병원 8동 762호실, 2-3차 수술 남음.
라오디케아는 현재명도 라오디케아 이다. 라오디게아는 리커스 계곡에 위치한 부유한 상업도시이며, 알렉산더가 죽은 후에, 셀레우시드 왕가의 안티오쿠스 2세가 그의 부인 라오디세의 이름을 따서 라오디게아라 불렀다고 한다. 300m 언덕 위에 위치한 도시인 이 곳에는 로마 시대의 원형 극장, 목욕탕 등의 유적이 있으나 고고학적 발굴은 신통치 않다. 라오디게아 교회 터는 유적지 부근에 위치하고 있으나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있다. 교회라 추정되는 이유는 교회에서 사용되었을 만한 십자가 문양이 있는 돌들이 늘려있기 때문이다. 성경(계 3:14)에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믿음이 덥지도 차지도 않음”을 책망하고 있다. 1710년과 1899년의 대지진 때 완전히 파괴되었으며,이곳에서 운동장과 원형극장 터가 발견되었다. 당시 라오디케아는 양모가 풍부하고 안약 등 의약품이 유명했으므로 재물의 유혹과 생활의 편안함으로 미지근한 교회로 책망을 받았다. 특히 라오디케아 지역은 물이 좋지않아 멀리 히에라볼리 파묵칼레로 부터 관을 통해 온천수를 공급받았고 또한 골로새로부터는 냉수를 공급받았으나 오는 도중 물이 식어 미지근 하게 되었다
***** 식사 및 설거지 봉사자
<금주> 정지영, 임은득, 자원자
<다음주> 이명혜, 오계란, 임소을, 자원자
비시디아 안디옥
현재명은 Yalobatch 이다. BC 25년경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재정비되고 티베리우스 황제하에서 꾸준한 발전을 이룩한 안디옥 도시는 사도바울 당시 비시디아 지방의 수도로서 그곳에는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헬라인 이방인들도 대거 거주하는 대도시였다. 따라서 사도 바울은 아나톨리아 지역의 선교센터지역으로서 비시디아 안디옥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이곳에서 이방인들을 향한 선교의 문을 열게되고 또 열정을 바치게된다. 이곳은 안디옥 교회가 있는 수리아 안디옥과 구별되는 곳으로(11:27) 해발 약 100m에 달하는 고원지대이다.
**** 주일낮예배 /사회자 / 이덕기 장로
묵상기도 ᠁᠁᠁᠁᠁ /늘은혜 성가대
예배의 부름 ᠁᠁᠁ / 요13:20
신앙고백 ᠁᠁᠁᠁᠁ / 사도신경
기원 ᠁᠁᠁᠁᠁᠁᠁ / 사회자
※. 찬송 ᠁᠁᠁᠁᠁ / 25장
성시교독 ᠁᠁᠁᠁ / No 114
찬송 ᠁᠁᠁᠁᠁᠁᠁ / 43장
기도 ᠁᠁᠁᠁᠁᠁᠁ / 이덕기 장로
성경봉독 ᠁᠁᠁᠁ / 누가복음 12:16-21
특송 ᠁᠁᠁᠁᠁᠁᠁ / 늘은혜 성가대
설교 ᠁᠁᠁᠁᠁᠁᠁ / “우리에게 있어야 할것”
카스트리키에서 메테오라로 가는 중에 처음으로 만나게 되는 수도원으로, 아나파프사로도 불리우는 성 니콜라스를 기리는 수도원입니다. 1388년에 세워져 1628년에 확장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상태가 악화되어 더 이상 일반에게는 개방되지 않고 있습니다. 16세기에 세워진 돔으로 된 작은 교회에는 크레타 화가 테오파네스가 1527년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천국'을 묘사한 가장 아름다운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봉헌찬송 ᠁᠁᠁᠁᠁ / 50장
봉헌기도 ᠁᠁᠁᠁᠁ / 한용균 목사
교회소식 ᠁᠁᠁᠁᠁ / 이덕기 장로
※. 찬송 ᠁᠁᠁᠁᠁ / 5장
※. 축도 ᠁᠁᠁᠁᠁ / 한용균 목사
폐회 ᠁᠁᠁᠁᠁᠁᠁ / 성도의 교제
※. 표는 일어서기를 바랍니다.
성 루사누 수도원
수녀로 개종한 성 바바라를 기리기 위해 14세기에 세워진 수도원입니다. 1545년경 이오안니나에서 온 두 수도사 요하사프와 막시모스에 의해 확장되었습니다. 이 수도원은 아름다운 곳에 자리잡고 있어 계곡 아래로 메테오라의 경관을 내려다 보기에 그만인 곳입니다. 그래서 이 지역에 대한 포스터나 가이드북 등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바위 위에 직접 건물을 세웠기 때문에 그 벽이 약화되면서 루사노는 1980년에 황폐화되었습니다. 성 바바라를 기리는 16세기에 세워진 작은 십자형 교회가 있으며, 이곳에는 크레타인들이 그린 교회의 무자비한 수난을 묘사한 뛰어난 프레스코화가 장식되어 있습니다
**** 주일찬양예배 찬양집회 오후3시00-
찬양 : 김현우 간사 와 “주 사랑” 찬양그룹
(박수조, 박성희, 김정윤, 조연신, 김상원, 이한나)
기도 : 이정순 집사
본문 : 데살로니가전서 1:1-10
가족찬송 : 구역장
설교 : 한용균 목사
“소문난 교회”
찬송 : 두 손들고 찬양
기도 : 사회자
주기도문 : 오직 믿음으로
다른 수도원들과 비교해 작은 편이지만 메테오라의 수도원들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다른 수도원들에 비하면 쉽게 도달할수 있어서인지 현재 수녀원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도 가장 인기가 높은 편입니다. 내부는 밝게 빛나고 대 메테오른이나 발람 수도원보다도 더 넓습니다. 이곳에는 16세기 중반에 세워진 1개의 작은 본당이 있는 성 스테파노스 교회가 있습니다. 감탄이 절로 나는 아름다운 황금 잎새 조각상과 벽화, 오래된 성상들을 볼수 있습니다. 또한 역병을 피하는 초자연적인 힘을 지녔던 것으로 보이는 성 카랄람보스의 성스러운 두상이 은그릇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수요일 예배 및 기도회 2013. 5. 29. 저녁7시 30분>
설교자 : 한용균 목사
성경본문 : 창세기 5:21-24
설교 :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메테오라(Meteora)는 '공중에 떠 있는 수도원'이라는 뜻으로, 바다속의 기암군이 형성되어 만들어진 지역입니다. 11세기이후로 중세의 수도사들은 일반인이 쉽게 근접할수 없는 깎아지른 듯 솟아 있는 이 곳 메테오라의 바위산 정상에 터를 잡았습니다. 그들은 숱한 어려움속에서도 15세기에 은둔의 극치를 보여주며 고립된 암벽 위에 24개나 되는 수도원을 세웠습니다. 속세와의 차단을 위해 물자 보급과 사람들의 출입은 도르래를 이용해 끌어올리는 방법 뿐이었습니다.
메테오라의 고립된 수도원들은 그리스 정교가 중세의 오토만 투르크의 그리스 점령(1453~1829)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종교적 전통과 헬레니즘 문화를 살아 있게 한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이곳의 16세기 프레스코화들은 비잔틴 후기 회화의 발전상을 살펴볼수 있는 중요한 장소이기도 합니다. 마치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듯한 메테오라의 수도원들은 천년의 풍상을 견뎌내고 지금도 바위 산에 우뚝 솟아 있으며, 이 신비롭고 경이로운 경관은 1980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 수도원들은 터는 비좁았지만 수도사의 개인 기도실과 물 탱크, 교회당, 휴게실 등을 모두 갖추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도사들의 식당(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이 흥미를 끌고 있으며, 아기오스 니콜라스 아나파우사스 수도원(1510년 세워졌으며 내부에 잘 보존된 프레스코화가 있음)과 아기아 모니 수도원(1315년경 세워짐)에는 수많은 필사본과 희귀본이 보관되어 있는 도서관도 있습니다. 현재는 수도원 5곳과 수녀원 한곳 만이 남아있으며, 대부분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1925년부터 바위를 깎아 진입도로를 만들기 시작해 지금은 쉽게 출입할수 있게 되었으며, 특이하게도 여자들의 경우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긴치마를 입어야만 관람이 허용됩니다
***** 다음주 예배 봉사위원
주일오전기도 : 이종운 장로
주일오후기도 : 임소을 집사
주일오후찬양 : 1구역
항구 스칼라에서 코라로 올라가는 길 중간에 계시의 동굴이 있는데 현재는 계시 수도원으로 덮혀이다. 이 동굴은 또한 정교회와 천주교간의 우호적 대화가 있었던 장소이다. 동굴로 내려가다보면 내부 정원을 통과하여 몇 계단을 내려가는데 이때 만나는 오른쪽에 만나는 예배소가 성 알테미오스(18세기) 예배소이다. 계속 내려가다 교회 앞 넓은 홀(나르텍스)의 오른 쪽 돔과 성 안나 종탑을 왼쪽에 보게된다. 더 내려가면 성안나 교회 입구와 동굴에 이른다. 입구에 있는 비문은 인상적이다. "이 장소가 초라함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전이다" 앞으로 곧장 들어가면 성 안나 교회에 이른다. 전통에 따르면 11세기에 이곳에 호시우스 크리스토둘로스는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안나를 기념할 뿐아니라 어머니 마리아, 또 자기를 밧모를 가도록 도와 준 당시 황제의 어머니 안나를 기념한 것이라한다. 교회 오른 쪽에 고대 동굴의 경사진 천장이 있는데 시작하는 천장 부근에 3가닥으로 갈라진 틈이 있다. 이것은 성 삼위일체를 상징하고 이 방향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한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 1:10) 계시를 들을 때 요한은 동굴이 좁아지는 쪽 한 홈에 머리를 대고 기도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요한의 초상화를 보면 이마에 굳은 살이 박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요한이 기도후 일어설 때 짚었다는 홈이 머리를 두던 홈 오른 쪽에 남아있다(요한은 분명히 오른 손잡이였을 것이다!). 오른 쪽을 쳐다보면 사람이 서서 책을 둘 만한 천연 장소가 있는데 전통에 따르면 이곳에서 요한의 제자 프로코로스가 그의 선생이 지시하는 모든 것을 기록하였다고한다.
***** 참여, 필수 참고 사항
◔ 기도회 - 수요일 (저녁8시10-)
※. 기도는 하나님으로 움직이게 함이다.
◒ 화요일 전도활동 - ※. 기도회 및 전도 오전10시30분-
요한은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주님께서 요한을 부른 뒤 그는 베드로, 야고보과 함께 제자들 중 핵심인물이 되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중요한 사건(야이로의 딸을 살림, 변화산, 겟세마네 기도)이 있을 때마다예수님으로부터 선별된 인물로 대접받았다.물에 익숙하였던 요한은 예수님이 갈릴리 주변을 옮겨다니며 전도하실 때 유능한 노잡이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교통수단인 배를 수배하고 운전하였을 것다. 그래서인지 그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요한이 대제사장과 친분이 있었던 점과 아버지가 배를 가지고 있는 선주였다는 것을 보면 요한이 어느정도 유력한 집안에 속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시몬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 하나가 예수를 따르니 이 제자는 대제사장과 아는 사람이라 예수와 함께 대제사장의 집 뜰에 들어가고(요 18:15) 그러나 그의 성격은 매우 과격하여 형제 야고보와 함께 '우뢰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요한은 베드로와 함께 하루에 5,000명이 넘는 사람을 전도할 만큼 큰 능력을 얻었으나 그는 곧 슬픈 소식을 접한다. 그의 형제 야고보가 헤롯 아그립바에게 순교를 당한 것이다.
밧모섬은 그리스의 영토이다. 터키 해안에서는 불과 60㎞밖에 떨어져 있지 않으나 아테네에서는 250㎞나 떨어져 있다. 밧모섬의 크기는 남북이 약 16㎞,동서로는 넓은 곳이 약 10㎞이며 중간 부분은 너비가 불과 1㎞정도밖에 안된다. 해안 굴곡이 심하여 주위 둘레는 약 60㎞에 이르나 면적은 34㎢이다.
**** 중보기도하기
① 5월 교회에 회복과 하나됨을 위해
② 교회에 회심과 구원 역사가 증가하도록
③ 창원 땅의 회심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④ 추수할 일군을 세워주소서
⑤ 강단에 말씀의 능력과 부흥을 위해
⑥ 성도의 산업 (모든 직장과 가게, 운전, 병원, 교사, 약사, 옷집, 목장, 경동테크주식회사, 책통클럽 학원을 위해)
⑦ 박수조집사님 완쾌(完快)와 교회를 멀리한 성도와 군복무중에 있는 형제를 위해
역사상 에페소는 4차례의 네오코로스(Neokoros)가 될 자격을 얻었다. 네오코로스가 된다는 것은 황제의 신전에 파수꾼이 된다는 것으로 다른 도시들이 모두 부러워 할만한 특권이었다. 에페소는 처음으로 도미티안(81∼96년)에 대한 신전의 파수꾼 역할을 부여 받았다. 그러나 도미티안 황제가 자신의 한 하인에 의해 암살 당하자 에페스인들은 어렵게 얻은 네오코로스의 권리를 잃을 처지에 놓였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의 아버지 베스파시안(Vespasian)을 신으로 모셔 이 신전을 그에게 바쳤다. 도미티안 황제는 사도 요한을 로마로 불러 고문을 가한 후 파트모스(밧모섬)로 유배 시켰던 황제이다. 요한은 그가 암살 당한 후 요한은 에페소로 돌아 올수 있었다. 이 도미티안 신전에서 발굴된 도미티안 황제의 조각상이 에페소스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다. 도미티안 신전은 헤르메스와 카두세우스(의학의 상징으로써 뱀들이 서로 꼬여 있는 모양의 지팡이) 부조물로 장식된 2개의 동상 받침대 앞에 있다.
***** 2013년 5월 추천신앙도서
묵상하는 그리스도인 / 오대원목사/ 예수전도단 / 11,000원
오데온(Odeion) 소극장
오데온(Odeion)은 2세기에 세워진 음악당으로 극장과 같은 형태로 소극장이라고 도한다. 에베소의 정치 조직은 두 그룹이 있었는데, 하나는 보울레(Boule)라고 불리는 원로원(상원에 해당하며 300명으로 구성)으로 바로 이 소극장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또 하나의 그룹은 데모스(Demos) 라고 불리는 민회로서 모든 에베소인으로 구성되어있고 이들은 대원형극장에서 집회를 가졌다. 이 소극장은 콘서트 등 문화적 행사를 위해 사용되었는데 총 1,400명을 수용하였다. 가장 낮은 부분인 오케스트라의 중앙에 빗물을 받는 홈통이 없는 것으로 보아 원래 지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귀족 전용이었다. 맨 꼭대기의 대리석 좌석은 현재 없어졌지만, 아래 쪽의 좌석들은 잘 보존되어 있다. 계단 옆 부분에 새겨진 그리핀(머리와 날개는 독수리이고 몸은 사자인 괴물)의 발 모양은 오데온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오데온 옆에는 기원전 3세기 아우구스투스 통치때 세워진 시청 건물인 프리타네이온(Prytaneion)이 있다.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봉헌된 신성한 지역에는 영원히 꺼지면 안되는 성화가 타고 있었으며, 이 불은 크레테스라고 불리는 성직자들에 의해 꺼지지 않게 잘 관리가 되었다
***** 2013년 5월 요절 암송 요절(사랑) *****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요한일서 3:14>
에베소 트라얀 황제 신전(우물)
쿠레테스 도로 북쪽 끝에 위치한 12m 높이의 이 우물은 102~114년에 트라이안 황제에게 바쳐졌다. 우물 중앙 받침대 위에는 트라이안 황제의 동상이 있었고 그 발목으로부터 물이 흘러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받침대와 오른발 한쪽만 남아있다. 이 곳에서 여러 황실가족의 동상이 발굴되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쿠레테스 도로 북쪽 끝에 위치한 12m 높이의 이 우물은 102~114년에 트라이안 황제에게 바쳐졌다. 우물 중앙 받침대 위에는 트라이안 황제의 동상이 있었고 그 발목으로부터 물이 흘러 나오게 되어 있었는데 현재는 받침대와 오른발 한쪽만 남아있다. 이 곳에서 여러 황실가족의 동상이 발굴되어 박물관에 소장되어있다
***** 뜨거운 갈망.
- E.M 바운즈 목사 -
단순히 바라는 것이 갈망이 아니다. 갈망은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염원이요 무엇인가 얻기를 강하게 원하는 것이다. 영적인 일에서 갈망은 기도를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갈망은 기도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갈망 없는 기도를 생각하기 힘들다. 왜냐하면 기도하기 전에 갈망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갈망은 기도에 선행하고, 기도는 다시 갈망을 더욱 뜨겁게 만든다. 갈망이 입으로 표현된 것이 기도다. 기도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는 것이라면, 기도는 마땅히 표현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입 밖으로 나와야 한다. 반면, 갈망은 침묵한다. 기도는 귀에 들리는 소리지만, 갈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갈망이 깊을수록 기도는 더 강해진다. 갈망이 없다면, 기도는 아무 의미 없이 혼자 중얼거리는 것에 불과하다. 마지못해 드리는 형식적인 기도, 갈망이나 감정 없이 드리는 기도, 마음이 실리지 않은 기도는 전염병을 피하듯이 피해야 한다. <아멘>
에베소 하드리안 황제 신전
하드리안(Hadrian) 신전은 크레테스 도로상에서 가장 눈길을 끈다. 목욕탕 옆의 하드리안 신전은 위대한 건축물의 본보기이다. 138년경에 지어져 하드리안 황제에게 바쳐졌으며, 고린도 양식의 신전은 정면에 독특한 부조물과 장식이 되어 있다. 건물의 현관입구에 4개의 기둥이 남아 있는데 중앙의 2개 기둥은 아치를 이루고 있다. 현관을 들어서 안쪽 정면의 박공 머리 위에는 메두사를 닮은 여성의 모습이 나뭇잎과 함께 부조되어 있고 그 아래 왼쪽부터 아테나신, 셀레나신, 아폴로신, 에베소의 창시자 안드로클로스, 헤랄데스, 데오도시우스 황제의 아버지, 데오도시우스 황제, 에베소의 아르테미스신, 데오도시우스의 아내와 아들이 차례로 부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치문에는 행운의 여신 니케의 조각상이 있고 그 뒤 반원형에는 메두사의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빛 가운데 거하면 (요일 1:7)
오스왈드 챔버스의 글 (61)
죄에 대해 의식적인 차원에서 자유함을 느끼는 것과 속죄에 의해 죄로부터 구원받는 것을 혼동해서는 안 됩니다. 그 누구도 거듭나기 전까지는 무엇이 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죄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보리 위에서 대면하신 것입니다. 내가 죄로부터 구원받은 증거는 내 속에 있는 죄의 진정한 속성을 아는 것입니다. 죄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마지막까지 대항합니다. 마침내 속죄의 절대적 완전하심이 그 사람에게 부여되면 그때서야 그 사람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속죄를 의식적인 영역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영역에도 적용하십니다. 오직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절대적 능력을 붙잡을 때에만 우리는 요한일서 1장 7절의 의미를 알게 됩니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여기서 죄란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죄뿐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은 죄성들을 말합니다.<아멘>
로마시대, 2세기, 빌라 몬타르도, 이탈리아 , 그리스산 대리석, 높이 61 , 대영박물관
하드리아누스 황제(재위 117-138년)의 통치기는, 트라야누스 황제가 공격적인 대외확장정책을 편 직후에 해당되며, 로마제국의 평화적 통합의 시대로 알려져 있다. 영국에서는 북방 야만족으로부터 국경을 지키기 위해 일명 하드리아누스의 벽이 건설되었는데, 이는 군사적 목적뿐만 아니라 권력의 상징으로서도 중요했다. 하드리아누스는 방방곳곳을 순례한 여행자로, 또 그리스문화의 애호가로서도 잘 알려져있다. 로마황제로서는 처음으로 턱수염을 길렀는데, 이는 철학자적 풍모 또는 그리스식 스타일에 대한 그의 추종과 연관되어 설명되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하드리아누스의 스타일은 로마제국 전역에 유행했다.
로마에서 발견되었으나 그리스산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흉상은, 머리를 왼쪽으로 돌린 황제의 영웅적인 나신을 잘 묘사하고 있다. 우아한 머리칼과 수염 처리는 주로 조각끌로 처리되었다. 새겨진 홍채와 패인 눈동자 등의 눈 처리형식은, 초상 조각상에 있어서 이 시대에 처음으로 도입된 형식이다.
2013년 5월26일 창원 아름다운교회(055-283-3450)
창원시 성산구 상남동 49-7
셀수스 도서관은 에페소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물로 쥴리우스 셀수스가 소 아시아주의 총독으로 11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게 되자 그의 딸 쥴리우스 아퀼라가 그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리기 위해 이 도서관을 건축하여 125년에 완성하였다. 도서관의 정면 입구는 2층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있는데 지혜, 행운, 지식 그리고 선행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4명의 여성들의 석상이 있다. 도서관 내부는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이중 벽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에 소장되어 있던 수 천 권의 두루마리책을 보호하게 했다. 그러나 262년 코트족 침략 때 모두 소실되었다.
아름다운교회/한용균목사
마라나타(예수님이 다시 오십니다.)아멘!
아고라
아고라는 시장을 뜻한다. 대극장으로 가는 대리석 도로의 서쪽에 위치한 아고라(Lower Agora)는 네로 황제 시대에 건축된 것으로 아직도 발굴중이다. 이곳에서 3개의 문이 있다. 오데온 극장 건너편에 있는 아고라(Upper Agora)는 사방이 가로 세로 110 m로서 기원전 3세기 경에 설치된 에베소 도시 생활의 중심지였다. 아고라는 두 줄의 화랑으로 둘러싸여있고 그 뒤에 상점들이 줄서 있어서 청동, 구리제품, 등잔을 비롯한 많은 도자기 제품, 포도주, 꿀, 고기, 비단, 보석 등이 거래되었다. 그 때 당시의 모든 여성들은 이곳에 꼭 한번 오고자 했다고 한다. 다른 시장터가 모두 그러하듯이 이 시장의 한 가운데에 신전이 위치해 있었는데 이 신전은 처음에는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Isis Temple)이 있다. 로마시대에 아고라는 신성한 장소로 여겨져 사람들은 밭에서 입는 옷을 입고 아고라에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아고라의 기념문은 도서관 바로 옆에 있다. 아고라는 기둥과 둥근 지붕형 구조로 만들어진 대단히 인상적인 곳이다. 시장터의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는 이 신전은 이집트의 신 세라피스를 숭배하던 신전으로 2세기에 로마의 안토니우스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것이다. 에페스가 항구도시인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밀접한 무역관계를 갖고 있었으며 문화교류가 활발했던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또 해시계와 물시계가 아고라 중앙에 놓여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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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함이란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이미주셨고, 지금도 주시며 앞으로 주실 것처럼, 당신도 그분을 위해 전부 바치라는 뜻이다.” -제임스 패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