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감
지난겨울 세 뼘 뜰에, 산수유나무 사서 심었다. 삼월, 꽃이 왔다 갔다.
어제 밤, 바람이 몹시 불거라는 예보에, 미사도 안 보고 아내와 들어갔다.
아침에 아내가, “대형사고 났네. 산수유나무가 꽃 폈어요!”
음, 대형사고로군, 하는데,
“산수유나무가 뽑혔어요!” 한다.
♧ 이중주
차양 모자 쓴 날렵하고 키 큰 젊은 여자 머리에 꽃 단장한 레이스의 앳된 여자 아이 손 잡고 서점으로 들어간다
청바지 무릎 맨살이 길게 훤하다
♧ 사진 2
육이오가 나지 않았다면 어머니는 신안주 원흥리 뒷집 오빠와 만났을지 모르지
열여덟 월남해서, 결혼했던 열 살 위 이북 남자와 안 만났을 걸
그럼 나는 없겠지만
♧ 고기 국수
추자도 나바론언덕 벼랑 사이
저 너머가 보이는 바이칼호 같은
위 시술 후 석 달 만에 만나는 국수 바다
거기 빠진 나를 이승으로 이어주는 줄들
♧ 일행시
위 선종을 잘라냈는데, 의사가 “일상생활 그대로 하시면 됩니다” 딱 한 마디!
아무리 생각해도 설명이 너무 없다 여기다가 한 달 뒤 오늘 느꼈다
♧ 오일장
오래 전 제주대학도 옮겨 가 의붓아이처럼 스산한 용담동 버스에서 내렸는데 그 옆 골목!
백 년쯤 곰삭고 반들반들
문득 용수철처럼 튀어나오는 94세 할머니 오일장에 좌판이 있다고
오늘 장마 첫날 그 골목 젖지 않겠다
* 나기철 시집 ‘지금도 낭낭히’(서정시학 서정시 137)에서 * 사진 : 지난 금요일 영아리오름에서 만난 산딸나무 꽃 |
출처: 김창집의 오름 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김창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