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이 아니더라도, 내년이 아니더라도, 멀리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어울리는 역사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며, 작은 식당 하나라도 꾸며 나간다면 세계인이 찾는 관광 천국 남해가 되지 않을까
미국여행기②
장장 13시간여의 비행 끝에 차창 밖으로 내려다보는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는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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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 금 호 해오름예술촌 촌장 | 다운타운의 고층 빌딩지역과 주택지와의 계획적이고 차별된 조화, 그리고 바둑판처럼 짜여진 도로의 구획마다 지붕 색깔과 모양의 동일함에서 자유분방한 미국만 생각하던 나에겐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는 지극히 정제되고 계산되는 사회임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마중 나온 초등학교 시절 친구의 자동차를 타고 도착한 코리아타운의 중심지에 있는 숙소에 여장을 풀고 밖으로 나온 나의 눈에 보이는 것은 거의 전부가 한글인 간판과 한국말 하는 한국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진짜 미국에 온 것일까?
미국 사람 만나면 한마디 해보려고 오기 전 열심히 회화 공부를 했는데 미국사람은 하나도 보이지 않으니 한편으로 섭섭하기도 한 기분으로 한국보다도 더 한국적인 코리아타운에서 낯선 미국여행 첫날을 맞이했다.
떠날 때 여행계획을 짜고 예약을 하고 오는 것이 아니라 일단 도착해서 현지 사정과 현지인의 의견을 수렴하여 여행을 시작하는 평소 습관처럼 다음날 여행 전문기관을 찾아간 곳은 규모가 크고 오래 되었다는 `아주여행사`였다.
정말 운 좋게도 처음 만난 여행사 박평식 회장은 30년째 관광회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남해 창선 진동리 사람으로 일곱 남형제의 맏이였으며 같이 근무하는 동생 세 명은 모두 창선고등학교 제자였다.
이렇게 기이한 인연은 그 뒤에도 몇 명이나 성공한 남해 사람을 만남으로써 세계 어디에서도 제 몫을 다하고 사는 대단한 남해사람의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자문을 받아 일단 시차 적응 겸 일주일간 LA 주변을 혼자 탐문하고 이어 여행사에서 제공하는 서부대륙과 멕시코 패키지여행을 마치고 여행사가 가지 않는 곳은 다시 혼자 찾아 가기로 결정하고 도시 주변 명소를 찾기 시작했다.
패키지여행은 짧은 시간에 최소의 비용으로 많은 곳을 둘러 볼 수 있다는 것과 여행길에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할리우드. 가슴 설레며 찾아간 그 곳은 건물, 도로, 가게, 식당 등 어느 한곳도 우리나라 어느 도시들보다 특이함이 없이 그저 평범하기만 했다.
환상적으로 보았던 유명 배우 족적과 싸인은 광장 한 귀퉁이의 좁은 시멘트바닥위에 찍혀 있었고, 스타들의 이름이 쓰인 별들은 거리 보도 블록위에 있는 한 점의 무늬에 불과 한 것 같았다. 그 이후 돌아본 유니버셜시티, 산타모니카의 66번 도로와 써드거리, 베니스 해변, 올베라 거리, 리틀도쿄, 차이나타운도 거의가 비슷한 수준으로 보였다.
실지로는 별반 특별한 것도 없어 보이는 이곳에 그토록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돈을 뿌리고 가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거창하고 화려한 건물들이 아니라 그 곳을 사랑하며 꾸미고 가꾸는 사람들이었고, 역사와 이야기를 섞어 만든 분위기였으며, 추억과 즐거움을 안겨주며 자신들도 행복해 하는 축제장이었다.
진짜와 똑같은 가짜 채플린과 캐리비안의 해적 잭 스패로우와 람보를 만나고 찰리와 초콜렛 공장의 조니 뎁과 사진을 찍으며 거리의 악사들과 어울려 한판 춤을 출 수 있는 신명나는 거리, 그것이 세상 사람들을 유혹하고 다시 찾게 하는 마약이었다.
웅장하고 거창하게 건물만 지어 놓고 추억도 행복도 주지 못하는 우리네 관광 현실을 생각하며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곳에서만 볼 수 있는 한보따리의 기념품을 사 들고 미국 내 한국으로 돌아 왔다.
당장이 아니더라도, 내년이 아니더라도, 멀리를 바라보며, 우리에게 어울리는 역사를 만들고 이야기를 만들며, 비록 작은 식당 하나라도 특이함으로 꾸며 나간다면 천혜의 자연과 더불어 천만 세계인이 찾는 관광 천국 남해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