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88편 강해 / 이레교회 새벽기도회 20161214 水曜日 정인준 목사]
사도신경 찬송가 446(500)장 ‘주 음성 외에는 참 기쁨 없도다 날 사랑하신 주…’
통성 기도(3분) 말씀 봉독(시편 88:1-18), 설교(15분),
◈ 시편 88편은 시편 전체 150편 가운데서 가장 슬픔이 넘치는 시입니다.
그래서 이 시에는 여러 종류의 별명이 붙어 있습니다.
‘단 한 줄기의 위로도, 희망의 빛도 없는 시’, ‘고독과 고통의 수수께끼’,
‘가장 절망적인 시’, ‘가장 어둠침침한 시’, ‘가장 슬픈 종교적 노래’ 등….
종교개혁자 칼뱅은 시편을 “우리 영혼의 거울”이라고 말했고, 루터는 “성도의 심장”으로 일컬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본문 88편은 가장 절망적인 면에서 우리의 거울이요 우리의 심장이 된다 하겠습니다.
◈ 시인은 하나님을 부르면서 시를 시작합니다.
1절과 2절입니다.
“여호와 내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서 부르짖었사오니,
나의 기도가 주 앞에 이르게 하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주의 귀를 기울여 주소서.”
시편 22편 2절에,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와 똑같은 표현인데, 본문에서는 하나님을 ‘내 구원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이 차별됩니다.
밤낮으로 쉬지 않고 부르짖는, ‘지치지 않는 신앙’을 보여줍니다.
◈ 3절에 보면, 이 시인은 “…나의 생명은 스올(음부)에 가까웠사오니”라고 했습니다.
죽음이 가깝게 다가옴을 느끼고 있습니다.
미래가 전혀 기대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4절에서는 “나는 무덤에 내려가는 자 같이 인정되고 힘없는 용사와 같으며”라고 하여, 거의 ‘사망 신고’를 하고 있음을 봅니다.
‘무덤’이라는 말은, ‘함정’ 또는 ‘죽음의 구덩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 시인은 쇠약하여 ‘힘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 5절쯤 가면 절망은 극에 달하고 있음을 봅니다.
“죽은 자 중에 던져진바 되었으며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 같으니이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
“죽은 자 중에 던져진바 되었으며”라는 표현은 그 히브리 원어를 살펴보면
‘죽은 자 가운데 자유롭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히브리 종들이 주인을 6년 간 섬기다가 7년째 안식년을 맞으면 ‘자유롭게 되는’ 그런 자유를 의미하는 단어가 여기 쓰인 것입니다.
하지만 ‘죽은 자 가운데에서의 자유’이므로,
생명 있는 자가 지고 누리게 되는 모든 책임과 권리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열왕기하 15장 5절에 보면, 문둥병에 걸린 웃시야 왕이 ‘별궁’에 거하게 되는데, 이 ‘별궁’이 곧 ‘자유의 집’이라는 의미를 가졌습니다.
왕의 권리와 의무로부터 ‘자유’를 누리는 것이니, 살았으나 죽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면 ‘죽지 못해 사는 것’입니다. ‘산 게 아닌’ 겁니다.
◈ “죽임을 당하여 무덤에 누운 자”라는 표현이 살벌합니다.
‘죽임을 당하여’라는 말은 ‘전쟁에서 쓰러진 자’를 가리킵니다.
꼭 죽어서 쓰러진 것이 아닌 데도, 전쟁터에서는 집단으로 매장합니다.
‘무덤’은 단수로 쓰였습니다.
전쟁터에서는 한 곳에 매장하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그들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시니”라고 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잊혀지고, “그들은 주의 손에서 끊어진 자니이다.”라고 하여 더 이상 하나님의 주목을 받지도 못하는, 전혀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 6절과 7절에서 시인은 모든 시련의 원인을 주님에게서 찾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 말미암았다고 믿는 것입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의 고백입니다.
믿는 자가 겪는 세상 속에서의 환난은 더욱 주님만 바라보게 만듭니다.
◈ 8-9절에서 마치 욥과 같은 비참한 형편에 처해서도 시인은 고백합니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
‘두 손을 들었나이다.’는, 모든 것을 다 맡기고, 항복하고 기도하는 겁니다.
스펄전 목사님은 “거룩한 기도의 예술을 아는 자는, 하나님께 특히 잘 간청하는 자가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찬송가 280(338)장 가사와 같이,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의 겸손한 간청의 모습이 보입니다.
본문의 시인은 극도의 절망 가운데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 13절 말씀이 오늘 시인의 신앙 고백이라 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
‘아침에’ 기도하며 주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제가 매일 가장 먼저 기도하는 자가 되겠습니다.”라는 결심인 겁니다.
시편 88편은 루터의 표현처럼 ‘영혼의 겨울 풍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겨울이 오면 봄 또한 멀지 않으리’의 소망을 또한 보여줍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며 기도하여 ‘영혼의 입춘’을 맞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