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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C 성서연구 - 제21B강 역대기상하 메시야 왕국의 대망
(24) 하나님께서 징계하실 때 역대상 21장 9-14절
지난 시간, 하나님 앞에서 인구조사라는 죄를 범하는 다윗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신앙의 위인이요, 하나님의 법도대로 살던 다윗이 범죄하는 모습을 보면서, 개인의 경건은 물론이요, 공동체의 경건이 참으로 중요함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또다시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 다윗 역시도 그들의 범죄함으로부터 자유할 수 없었던 까닭이지요. 오늘 우리 사회가 점점 더 악해지고 있는 이때, 더욱 깨어서 근신하여 기도하고, 더욱 서로를 뜨겁게 사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추악하고 더러운 물줄기에 섞여버리는 우리가 아니라, 저들을 향해 끊임없이 맑은 샘줄기를 흘러보내 맑혀내는 복된 우리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지난 시간, 범죄하는 다윗보다 충격적이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반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오늘 함께 생각해보기로 하고 말씀을 마무리 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 다윗을 징계하시는 하나님은 조금 이해가 어렵고, 익숙하지 않은 하나님의 모습인 것이지요?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긍휼과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까닭입니다. 오늘도 구원의 문을 열어두시고, 범죄한 자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분, 제멋대로 길을 떠나 헤메이고 있는 양을 찾아 헤메이시는 분, 그렇게 돌아온 죄인 한 영혼으로 말미암아 잔치를 베푸시는 분, 마을 사람들이 다 아는 부정한 여인을 위해 구원을 베푸시고, 그녀가 행한 힘을 다한 사랑의 고백에 칭찬하셨던 분이 아니시냐는 것입니다. 그분 앞에 나와서 회개하고 뉘우치고, 길을 돌이키면,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다 도말하시고 없는 것으로, 아예, 그런 범죄한 사실조차 기억하지 않으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으로 우리는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못난 우리를 덮어주시고 위로하시고 축복해주시며, 용기를 주시는 분, 아빠 아버지 하나님 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인구조사만큼은 그냥 넘어가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갓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꼭, 반드시 징계를 하실 터이니, 세 가지 안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던 것이지요. 하나님 4번, 용서, 없던 일은 없으신가요? 4번 이후는 없으셨던 것입니다. 그 본문 21장 12절을 함께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대상21:12)
여기에서 더욱 궁금해지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다윗의 다른 허물과 죄를 다 용서하셨으면서 어찌 이 인구조사에 대해서만큼은 징계를 철저하게 하시는 것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것은 결국 하나님의 다윗에 대한 강한 사랑의 표시라고밖에는 이야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나는 네가 나를 떠나는 것, 그렇게 타락하거나 변질되는 것을 어떤 일이 있어도 용납할 수가 없노라. 너는 나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전에도 잠깐 말씀드렸지만,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은, 그릇되이 계획하고 행하려고 하는 일을 애시당초 시작도 못하게 막으시는 것입니다. 초장에 엎으시는 것이지요. 그토록 욕망하는 것을 주시지 않으시거나 빼앗으셔서 절대로 세상으로 갈 수 없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아들, 잘못된 길, 죽는 길로 가려하면 다리 몽뎅이를 분질러서라도 못 가게 해야되는 것이 참 사랑인 것입니다.
다윗은 아마도 이 인구조사를 통해서 영웅적인 제왕이 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자신이 가진 자신의 힘을 계산해보고자 했던 것이지요. 하나님은 이런 다윗의 시도를 무참하게 징계하십니다. 그리고 끝까지 다윗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으로 남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실 계획을 섭리, 진행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이러한 비슷한 예가 또 있습니다. 여러분, 일전에 말씀드렸지요. 우리가 겪는 어려움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고난이요, 하나는 가시입니다. 고난은 견디면 지나가는 것입니다.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시는 지나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나의 생애동안 품고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바울에게 육체의 가시, 그의 표현으로는 “사단의 사자”, 라고 이야기 할만큼 고통스럽고 힘든 질병을 허락하셨습니다.
사도바울이 누구인데요? 그는 다른 사람의 병을 고치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손수건만 가져다가 얹어도 병이 나았을 정도입니다. 병 뿐입니까? 그가 잡아 일으키면 앉은뱅이도 일어났고, 독이 가득한 뱀에 물려도 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사도바울 자신의 질병만큼은,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리 안수해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의 손수건을 늘 품고 지니고 다녀도 그것으로 싸매고 다녀도 낫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바울로 하여금 교만하여지지 않도록, 그렇게 하나님 앞에 버림받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사도바울을 사랑하시는 방편으로 주셨던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과정 중에 일어난 이적과 표적 때문에, 여러 이방인들이 와서 신이 내려왔다며 제물을 준비하여 와서 절했던 일이 수도 없이 많은데, 자칫하면 교만하고 자칫하면 교주가 되기 쉬운 것이 아닙니까? 그런 사도바울을 위해 하나님은 그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셨던 것이지요? 놀라운 것은 사도바울이 오히려 이 섭리와 사랑의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고후12:7-9)
그리고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 평생토록 허락하신 가시로 인해 사도바울의 사역이 방해받지 않았던 것을 말이지요. 오히려 그를 위해 눈이 되어주고, 목숨도 내어주는 동역자들이 더욱 많이 세워졌던 것을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의 모든 생애, 마지막 그 사명을 마치기까지 하나님은 사도바울이 그 육체의 가시로 말미암아 복음전도에 방해받지 않도록, 더욱 성령을 통해, 천사들을 통해, 돕는 일꾼들을 통해 함께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냥 가시만 주시는 하나님이 아니신 것을 우리는 또한 성경을 통해 확인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혹시 여러분에게도 하나님 주신 육체의 가시가 있으십니까? 아무리 기도해도 거둬가지 않으시는 가시가 있으십니까? 그렇다면 가만히 여러분의 생애 가운데 어떤 큰 계시를, 그로 말미암아 어떤 돕는 천사들을 허락 받으셨는지 한번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감사하시며 그것을 더욱 증거하시는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 가시가 그저 가시이지 않게 하실 것입니다. 기록한 대로, 약한 데서 온전하여지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더욱 머물게 하실 것입니다. 가시와 함께 어떤 은사, 어떤 능력들을 더 주셨는지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이 인구조사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가 오늘 다윗에게 있어서 큰 가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평생토록 그를 뒤따르는 가시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가시로 말미암아 다윗은 더 이상 영웅이 되려는 생각, 내 힘을 계산해보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 생각이 다시금 들 때마다, 다윗은 지금 겪어야 했던 재앙을 떠올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3일에 7만 명이 죽어 나가는 백성들의 고통을 생각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다윗을 존중하며 징계하셨습니다. 징계받을 사람에게 어떤 징계를 받겠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그가 결정한 대로 하나님은 징계를 내리셨던 것이지요?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존중인 것이지요? 대개 알든지 모르든지 무작정 내 기분내키는 대로 내 속이 풀릴 벌을 주는 것이 사람이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에게 물으십니다. 징계의 방법과 징계의 기간을 말입니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다윗을 사랑하시는 지 확인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리고 이 징계를 통해 신앙의 유익을 꼭 얻을 것을, 깨달을 것을 하나님은 도전해주셨던 것입니다. 갓이 다윗에게 했던 말을 읽어보겠습니다.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대상21:12b)
“왕은 생각하여 보고 나를 보내신 이에게 무엇을 대답하게 하소서”(삼하24:13 중)
이 갓의 말에, 다윗이 조금 더 기도해보고, 다윗이 조금 더 생각해보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하나님 아직 생각이 안 끝났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차일 피일 좀 미뤄보았다면 어땠을까요? 다윗이 대답하는 정황이 오늘 본문에 기록이 되는데 이렇습니다.
“다윗이 아침에 일어날 때에 여호와의 말씀이 다윗의 선견자 된 선지자 갓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삼하24장 11절)
아침에 일어날 때에, 갓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다윗을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이 그 세 가지 제안을 듣고 대답을 합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고통 중에 있도다 청하건대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노라 하는지라”(삼하24:14)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곧바로 징계를 시작하시는데 뭐라고 기록이 됩니까?
“이에 여호와께서 그 아침부터 정하신 때까지 전염병을 이스라엘에게 내리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 명이라”(삼하24:15)
그 아침부터입니다. 다윗이 너무 쉽게 대답을 한 것이지요. 잘 생각해보고 대답하게 하라고 갓이 이야기했지만, 다윗은 거의 생각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답을 한 것입니다. 그 아침부터, 너무나도 안타까운 것이 아닙니까? 다윗이 아침에 일어났는데 그 아침에 갓이 왔고, 그 아침에 대답했고, 그 아침부터 하나님의 진노가 시작된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의 물음에도 그렇지만, 하나님의 물음에 진지하게 대답하시길 축복합니다. 그리고, 기도해보시고, 더 생각해보시고, 행동과 대답이 앞서지 마시고, 늘 진중하신 분들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그날 아침, 무서운 심판이 시작되는 것은, 우리가 너무 쉽게 기도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대답하고 행동한 까닭인지도 모릅니다. 늘 기도하고 여쭙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렇게 신중하게 선택하고 결정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축복합니다.
여러분, 오늘 저와 여러분이 다윗 왕이었다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요? 자, 다시금 갓 선지자의 세 가지 제안을 읽어보겠습니다.
“혹 삼년 기근이든지 혹 네가 석 달을 적군에게 패하여 적군의 칼에 쫓길 일이든지 혹 여호와의 칼 곧 전염병이 사흘 동안 이 땅에 유행하며 여호와의 천사가 이스라엘 온 지경을 멸할 일이든지라고 하셨나니 내가 무슨 말로 나를 보내신 이에게 대답할지를 결정하소서 하니”(대상21:12)
3년 동안의 기근은 어떻습니까? 애굽에서처럼 먼저 7년 풍년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준비할 시간도 없습니다. 지금부터 당장 3년 흉년이드는 것입니다. 아무도 견딜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자, 3개월 적들에게 쫓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평생을 대적들에게 쫓겨 살아온 다윗이 아닙니까? 이제는 도망다닐만큼 젊지도 않고, 대적들에게지지 않는 다윗, 승리하는 다윗이요, 그래서 지금 인구조사도 해본 마당인데, 쫓겨다닌다니요? 도망자의 생활은 정말 진절머리날만큼 경험했던 다윗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도저히 적에게 쫓기는 것도 못하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마지막, 3일 동안의 온 이스라엘에 임하는 염병을 선택합니다. 그리고그 결정을 내린 데에는, 혹시 하나님의 손에 징계를 받으면 하나님께서 조금은 봐주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징계가 모두 하나님께 나온 것임을 잠시 기억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해주세요.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하고 그 징계와 심판의 권한을 넘겨드렸더라면 어땠을까요? 그 결정마저도 끝내 자신이 내리고 있는 다윗을 보시면서, 그리고 나, 우리라는 용어를 통해 자신이 직접, 당장 겪지 않아도 되는 징계로 살짝 우회하고 있는 다윗을 보시면서, 하나님은 오늘 다윗의 결정대로 삼일 동안의 염병을 허락하셨던 것이지요.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아픈 매는, 하나님이 때리시는 매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매를 한번 맞아본 사람은 차라리 사람에게, 깡패에게 맞는 것이 낫지, 절대로 하나님의 손에 매를 맞지 말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요. 다윗의 대답을 보겠습니다.
“다윗이 갓에게 이르되 내가 곤경에 빠졌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심히 크시니 내가 그의 손에 빠지고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아니하기를 원하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염병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죽은 자가 칠만 명이었더라”(대상21:13-14)
그래요. 곤경에 빠졌다는 다윗이 너무 쉽게 결정을 내렸지요? 내게 이익이 되는 결정을 내리고 있기 때문에 가장 빠르게 결정이 되는 법입니다. 사실 내 이익, 내 손해, 그것이 기준이 되어버리면 고민할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날 아침부터 당장에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긍휼을 기대했던 다윗의 바램과는 달리, 하나님의 징계는 실로 매서웠습니다.
3일 동안 염병이 돌면, 3일 정도 앓다가 낫는 정도로 생각을 했던 모양이지요? 아뇨, 3일만에 7만명이 죽어나갔던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에 곡소리가 그치질 않았던 것입니다. 아마 다윗의 측근들 중에도 염병으로 죽어나간 사람들, 가족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요. 다윗을 사랑하시고 존중하신 하나님이, 다윗에게 결정권을 주시고 셋 중 하나의 징계를 고르라고 하셨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을 피했습니다. 사람에게 시달리는 것을 피했습니다. 그러고 나니, 백성들이 죽는 일만 남았던 것이지요? 설마 했는데, 하나님께서 3일 동안 전염병을 내리시니 이스라엘에서 7만 명이 죽습니다. 그때였지요? 다윗이 행한 두 가지로 이 재앙이 멈추게 됩니다.
첫 번째 회개입니다. 다윗이 오늘 이 모든 일에 자신이 책임을 통감하고 뉘우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내 잘못임을 시인하고 백성들을 구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이지요? 언제? 사람들이 많이 죽고 난 3일만에 말입니다. 왜 3일이나 걸렸을까요? 왜 3일이나 시간을 지체했을까요? 회개는 빠를수록 좋습니다. 오늘 지금 내가 회개하지 않으면 내 주변의 사람들이 3일에 7만 명씩 죽어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을 늘 기억하시는 우리가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아뢰되 명령하여 백성을 계수하게 한 자가 내가 아니니이까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곧 나이니이다 이 양 떼는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청하건대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의 손으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을 치시고 주의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 하니라”(대상21:17)
그렇게 회개를 하는 다윗, 오늘 백성들에게 재앙 내리심을 뉘우치셨던 하나님의 마음과 모처럼 한 마음이 되어 고백하고 기도했을 때, 드디어 하나님으로부터 재앙을 멈추는 응답이 주어졌던 것이지요?
여러분, 진정한 회개의 기도가 즉각적인 응답의 통로임을 기억하시고, 문제와 어려움이 생겼을 때, 내 이기적인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겪게 되었을 때, 더욱, 하나님 앞에 나의 회개와 내 눈물의 기도를 올리실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서 갓을 통해 방법을 가르쳐주십니다. 이 땅의 범죄함과 타락함으로 말미암은 염병이 그치는 길, 오늘 칼을 빼어든 하나님의 사자가 칼을 다시금 칼집에 넣는 길은, 역시, 하나님의 백성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냥 예배가 아닙니다. 내가 값을 지불한, 나의 정성과 나의 힘과, 나의 뜻과, 나의 목숨이 담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갓을 통해 다윗에게 이렇게 말씀을 주십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갓에게 명령하여 다윗에게 이르시기를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대상 21:18-19)
보십시오. 오늘 예루살렘을 향하여 서 있던 재앙의 천사는, 그 어떤 것으로도 떠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것으로도 멈추지 않습니다. 단 하나,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 그것으로 오늘 이 재앙의 천사는 예루살렘 앞에서 물러가게 되는 것이지요. 피가 있는 제사, 내가 값을 치러서 내가 죽어 제물이 되는 제사, 여러분, 오늘 그 제사를 받으신 하나님이 오늘 이 재앙을 멈추어 주셨던 것입니다.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그리하여 다윗은 그 터 값으로 금 육백 세겔을 달아 오르난에게 주고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대상21:24-27)
보십시오. 이 예배는 바로, 내가 드리는 제사입니다. 오르난의 것으로 남아 있어서는, 오르난의 것으로는 내 제사가 되질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제사를 하나님 앞에 드리고 있음에도, 우리 가운데 드리운 이 재앙의 그늘이 치워지지 않는 이유, 오늘도 고통이, 어려움이 그치지 않는 그 성경적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의 예배, 오늘 우리의 제사가, 내 것으로 드리는 예배가 아닌, 오르난의 것으로 드리는 예배, 남의 것으로, 주인이 아닌 손님으로 예배 드리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한번 여쭙겠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것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고백하고 내가 올려드리는 제사로 예배 드리고 계십니까? 부모님의 것으로, 옆에 있는 신앙동료의 것으로, 내 남편과 내 아내의 것으로, 오늘도 그들이 준비하고 그들이 수고하고 그들이 헌신한 것으로, 오늘 우리는 내 예배를, 남의 헌신과 수고, 그의 정성에 숟가락만 하나 더 얹어서 드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 예배를 드릴 때 반드시 내 것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이 있어야 됩니다. 내 물질이 가야 되고, 내 시간이 가야 되고, 내 재능이 가야 됩니다. 그것이 예배입니다.
보십시오. 그냥 다윗은 얼마든지 왕이기 때문에 오르난의 이런 헌신과 마음을 그대로 그냥 받아들이고 그 모든 것을 가지고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손해 하나도 안보고 말입니다.
“오르난이 다윗에게 말하되 왕은 취하소서 내 주 왕께서 좋게 여기시는 대로 행하소서 보소서 내가 이것들을 드리나이다 소들은 번제물로, 곡식 떠는 기계는 화목으로, 밀은 소제물로 삼으시기 위하여 다 드리나이다 하는지라”(대상21:23)
그런데 다윗은 분명히 말하는 겁니다.
“그것은 예배가 아니다.”
“절대로 그렇게 할 수는 없다. 내가 대가를 다 치르겠다.”
“다윗 왕이 오르난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다 내가 반드시 상당한 값으로 사리라 내가 여호와께 드리려고 네 물건을 빼앗지 아니하겠고 값 없이는 번제를 드리지도 아니하리라 하니라” (역대상21:24)
그랬더니 그 결과가 무엇이었습니까??
“다윗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려 여호와께 아뢰었더니 여호와께서 하늘에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시고 여호와께서 천사를 명령하시매 그가 칼을 칼집에 꽂았더라”(역대상21:26-27)
하나님의 사자가 빼어들고 멈추었던 그 칼을 이제 완전히 칼집에 넣는 겁니다. 그만하면 족하다신 하나님의 명령에 잠시 멈춰있었을 뿐입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그 기다려주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윗은 오르난의 타작마당을 사서 대가를 치르고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그래요. 다윗이 자기 안에 있던 이기심과 완악함, 교만하여 행한 죄와 악을 회개하고 참으로 두려우신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회복했을 때, 그 사자는 칼을 칼집에 넣는 겁니다. 더 이상의 심판이 이스라엘에 이어지지 않습니다. 그 재앙이 완전히 끝나게 되는 겁니다.
그래요, 우리가 기회로 주신 예배에 마음을 다해 나와 예배드려야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오늘 본문만 의지해서 말씀드리면, 범죄한 나와 이 땅에 임한 ‘거대한 재앙’을 완전히 끝내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올라가서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 마당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대상21:18) 당신 영광 받으시려고, 피조물 앞에서 경배 받으며 기분 좋으시려고 명령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죽어가는 나를, 너를, 우리를 시급히 살려 내시려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에 갓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이른 말씀대로 다윗이 올라가니라”(대상21:19) 다른 그 어떤 것은 몰라도, 예배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의 태도가 오늘 본문의 다윗 같기를 축복합니다. 일전에도 한번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우리가 아침부터 성실하게 열심을 내는 일, 아침부터 부산을 떨면서 가족들을 재촉하는 일, 어떤 일입니까? 예배드리는 일이시길 축복합니다. 돈버는 일, 공부하는 일, 놀러가는 일보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일이, 그 준비가 더 부산스러워야합니다.
그래요. 힘들어도 피곤해도 죽을 것 같아도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 같이 쌓여있어도, 죽어가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내 죄를 생각하며 예배의 자리로 올라오시는 것입니다. 저 오르난의 타작마당, 여부스 사람의 땅은 지금 이렇게 다윗이 구별하여 구입하고, 솔로몬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은 곳이 아니더냐는 것입니다. 이곳 성전으로 올라와 최우선 하나님 앞에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예배를 불을 내려 받으시고 당신의 치료를, 당신의 회복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하일교회 성도 여러분, 예배입니다.
그것도 내가 시간과 재능과 건강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는 예배를 하나님은 오늘도 명령하고 계시고, 오늘도 우리는 그 예배의 자리에 초청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허락하신 예배가 오늘 우리에게 회복과 구원, 치료와 평강의 통로가 됨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그 어떤 것보다 예배입니다. 예배가 최우선입니다. 예배에 모든 것을 다 쏟는 것입니다.
예배를 소홀히 함으로 전염병이 연장되는 일이 없는, 예배를 받으시지 않아, 전염병이 그쳐지질 않는 안타까운 일이 없는 그런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축복합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다윗과 같은 진정한 예배자, 참된 예배자가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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