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을 하는 차례 (배움에는 순서가 있다)
········································································ 한포재 이건명 선생
왕세제의 진강 책자에 대한 의론〔王世弟進講冊子議〕
수신(修身)의 큰 법도는 《소학(小學)》에 갖추어져 있습니다. 삼가 〈소학집주총론(小學集註總論)〉을 보건대 “혹자가 ‘이미 《소학》의 순서를 잃었으니, 《대학》을 배우기를 청하는 것이 어떠합니까?’라고 묻자, 주자(朱子)가 답하기를 ‘《대학》을 배우려면 먼저 《소학》을 보아야 한다.’라고 하였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제왕의 학문은 보통 사람과는 차이가 있지만 학문을 하는 차례는 응당 다름이 없습니다. 삼가 생각건대 왕세제 저하(영조)는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타고나셨고 춘추도 한창이신데, 학문하는 공력에는 힘을 다하지 않으시고 강학하는 책 또한 많지 않으니, 마땅히 주자가 “30세에 깨달음이 있으면 곧 30세로부터 기반을 세워 공부해 가야 한다.”라고 논한 바에 따라야 하고, 먼 곳을 가는 것은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하고,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은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은 또한 자사(子思)의 가르침입니다. 지금 만약 먼저 《소학》을 강학하여 그 일상생활에서 가장 밀접한 일들을 체험하고 나서 차례로 사서(四書)와 여러 경전을 익혀 순서에 따라 나아가 이치를 궁구하여 성품을 다하는 데에 이른다면, 또한 《소학》의 강령(綱領)에서 벗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의 구구한 바람으로, 지금 재차 순문하시기에 대략 그 설을 아룁니다. 삼가 성상께서 재단하시기 바라옵니다.
[주-1] 30세에 …… 한다 : 《주자전서(朱子全書)》 권1 〈학일(學一) 소학(小學)〉에 보인다.
[주-D002] 먼 곳을 …… 가르침입니다 : 자사(子思)가 지은 것으로 알려진 《중용장구》 제15장에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먼 곳을 가려 할 때는 반드시 가까운 곳으로부터 시작함과 같고, 비유하자면 높은 곳에 오르려 할 때는 반드시 낮은 데에서 시작함과 같다.[君子之道, 辟如行遠必自邇, 辟如登高必自卑.]” 하였으니, 여기에서는 배움에는 순서가 있으므로 왕세제가 《소학》으로부터 시작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8권 / 수의(收議)
ⓒ 전주대학교 한국고전문화연구원 | 전형윤 채현경 이주형 유영봉 (공역) | 2016
王世弟進講冊子議
脩身大法。小學書備矣。伏見小學集註總論。或問旣失小學之序。請授大學。朱子答曰授大學。也須先看小學。夫帝王之學。雖與匹夫有別。爲學次第。宜無異同。伏想王世弟邸下聰睿天賦。春秋鼎盛。而其於學問之工。未盡着力。所講之書。亦且不多。則宜依朱子所論三十歲覺悟。便從三十歲立定脚跟做去。而行遠自邇。登高自卑。亦子思之訓也。今若先講小學。 以驗其最切於日用。次及四書諸經。循序而進。以至於窮理盡性。亦不出於小學之綱領。此臣區區之望。而今承再詢。略陳其說。伏惟上裁。
출처 : 한포재집(寒圃齋集) 제8권 / 수의(收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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