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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생은 없는 셈 치고 사는게 중이다"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 스님 - 나의 스승 벽안 스님 | |
승인 2013.06.28 12:48:38 |
유철주 객원기자 | budgate@hanmail.net |
맑은 날씨에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 산을 보는 것도 좋지만 흘러가던 구름과 어우러져 놀고 있는 산을 걷는 것도 매력이 있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산의 생명들을 보면 지쳐있던 몸과 마음에 다시 활력이 생기는 것 같다.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되어서 인지 양산 영축산은 며칠째 구름을 보내주지 못하고 있었다. 통도사 일주문에 들어서자 온 산과 절은 가랑비에 젖기 시작했다. 그리 많은 양이 아니어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비였다. 염화실(拈花室)의 문을 두드렸다. 15년 넘게 반야암에 주석하고 있는 조계종 고시위원장 지안 스님이 ‘염화미소(拈華微笑)’의 얼굴로 맞아준다. 스님의 방은 책으로 가득했다.
경전 공부도 참구하는 마음 필요
“반야암은 원래 책 둘 곳을 찾다 만들어진 암자입니다.” “강원을 졸업하고 통도사 강원 강사로 있을 때부터 책을 많이 보면서 살다보니 자연히 책 소장양이 점점 늘게 되었어요. 반야암을 짓기 전에 통도사 마산포교당 주지를 하며 몇 년을 살았어요. 그때도 그곳에서 여러 불자들과 공부를 하면서 책이 많이 늘어났어요. 소임을 마치고 다시 통도사로 들어오려고 하는데 책이 짐이 되어 둘만한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토굴을 지어 책을 갖다 놓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큰 절 경내에 지으려니 당시 방장이셨던 월하 큰스님께서 토굴보다는 암자형태를 갖추어야 한다고 하셔서 암자를 짓게 되었습니다. 여러 스님들과 신도님들의 도움으로 반야암이 만들어지게 됐습니다.” 책 보관을 위해 지어진 반야암은 지금 책을 보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장소로 바뀌고 있다. 지안 스님이 설립한 반야불교문화연구원 주최 학술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고 또 공부하는 청소년들을 위해 매년 장학금도 지급하고 있다. 반야경전교실과 일요가족법회, 보름기도법회, 템플스테이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공부의 맛을 느끼게 하고 있다. 특히 반야거사회는 자체적으로 <반야>라는 회보를 매달 발간, 6월 현재 153호에 이르고 있다. 반야암에는 특히 남성 불자들이 많이 드나들며 공부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이 지안 스님은 현재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강백(講伯)이다. 출가 후 강원에서 경전을 공부하고부터 줄곧 강사의 길을 걸어왔다. 1995년 남양주 봉선사에서 월운 스님의 강맥(講脈)을 이어받기도 했다. 통도사 강사와 강주, 조계종 승가대학원장 등을 역임했고 지금은 조계종 고시위원장을 맡고 있다. 고시위원장은 조계종 스님들이 응시하는 ‘승가고시’를 총괄하는 소임이다.
스님은 칠순을 앞두고 있지만 변함없이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스님은 근래 『왕오천축국전』, 『조계종 표준 금강경 바로 읽기』, 『처음처럼』, 『마음속 부처 찾기』, 『대승기신론강해』, 『금강경 이야기』,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 『연꽃잎 달빛 향해 가슴을 열고』, 『바루 하나로 천가의 밥을 빌며』 등 많은 책을 내며 불자들의 공부 길을 열어주고 있다.
“출가해서 강사가 된 뒤 매주 10시간 이상 강의를 한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렇고요. 40여 년간 그렇게 해오다 보니 이제 생활이 되어버렸습니다. 매주 스님과 불자들을 만나면서 저 스스로도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인연이 되는대로 대중들을 만날 것입니다.” “경전 공부도 원력(願力)을 가지고 해야 합니다. 그냥 책 읽듯이 하면 안 됩니다. 공부를 통해 부처님 가르침에 깊이 다가서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가끔 강의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얘기합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주력이든 간경이든 10년만 꾸준하게 하면 내공이 쌓인다고 말입니다. 경전공부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깨달음에 다가설 수 있습니다. 스님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경전도 추천했다. 지안 스님은 앞으로 반야불교문화연구원 중심으로 불교연구공동체를 꾸릴 생각이다. 직접적인 연구는 물론 인재를 키우는 일에도 팔을 걷어붙일 생각이라고 한다. 또 올 연말에는 은사 벽안 스님 추모문집도 발간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집 발간을 위한 막바지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지안 스님의 스승 벽안 스님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예불의 감동 속에 출가 결심
20대 중반, 어지럽혀진 마음이 좀처럼 다스려지지 않아 가까이 지내던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 선배는 “통도사를 참배하며 마음을 추슬러보라.”고 권했다. 스님은 기회가 되면 영축산 내 암자에서 책도 보고 마음도 쉴 겸 그렇게 통도사로 갔다. 통도사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스님들도 많았다. 경내에서 만난 스님들이 “그렇게 성스러워” 보였다. 마침 지나가던 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스님이 될 수 있습니까?” 그 스님은 젊은 청년이 출가하러 절에 온 것으로 생각하고 다른 행자를 불러 행자실로 안내를 해줬다. 원치 않게 행자실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스님들을 따라 새벽예불에 참석했다. “‘……唯願 無盡三寶 大慈大悲 受我頂禮 冥熏加被力 願共法界諸衆生 自他一時成佛道(유원 무진삼보 대자대비 수아정례 명훈가피력 원공법계제중생 자타일시성불도-오직 원하옵건대, 다함없는 삼보시여. 저의 정례를 받으시고, 그윽한 향과 같은 가피력으로 온 법계의 중생들, 나와 남이 일시에 불도를 이루게 하옵소서)’ 대웅전 법당에서 100여명의 대중스님들과 함께 예불을 드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감동이 밀려왔죠. 그때 그 장엄한 창불(唱佛)소리에 제 영혼이 번쩍 눈을 떴는지 모르겠습니다.”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벽안 스님 방을 나와 원주 스님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원주스님은 “처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시니, 나중에 다시 찾아가 말씀드리자.”고 했다. 그래서 며칠 뒤 다시 찾아가 말씀을 드려 허락을 받았다.
“처음 그 말씀을 들을 때는 큰 충격이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음미해보니 저 스스로를 경책하게 되는 말씀이었어요. 금생이 없는 것으로 여기자고 스스로 타이르게 됐습니다. 지금도 은사스님의 그 말씀을 항상 가슴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지안 스님이 본격적인 출가생활을 할 때 대중처소에는 다섯 가지 규칙이 붙어있었다고 한다. ‘하심하라. 서로 공경하라. 자비심을 가져라. 차례를 지켜라. 남의 일을 말하지 말라’ 등이다.
“인생을 가장 예술처럼 사는 것이 스님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벽안 스님의 은사는 경봉 스님이다. 세납으로 9살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그래도 벽안 스님은 은사를 지극하게 모셨다고 한다.
지안 스님은 이런 벽안 스님의 모습을 보면서 스승을 어떻게 모셔야 할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한다. 지안 스님은 또 벽안 스님이 청백가풍(淸白家風) 그 자체였다고 덧붙였다. 벽안 스님은 만년에 노구에도 불구하고 거동이 불편할 때까지 조석예불과 큰방 대중공양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대중 청규(淸規)를 철저히 지켰으며, 출가자로서 지켜야 하는 계행(戒行)이나 예의범절에도 철저했다고 한다. 은사스님께서 통도사 주지를 하실 때 신도들이 스님께 약값에 보태 쓰시라고 봉투를 드리면 스님께서는 일언지하에 거절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법당 불전함에 넣으라고 정중하게 말씀하셨어요. 또 외부에 출장을 다녀오시고 나서 남은 출장비는 꼭 종무소에 반납하셨습니다.” 이런 성격 때문이지 지안 스님은 출가한 뒤 20년 가까이 벽안 스님을 모시고 살았지만 용돈을 받아본 일이 없었다. 그런데 딱 한 번 용돈 받은 일이 생겼다. “은사스님께서 동국대학교 이사장으로 계실 때 서울에 있는 약사사에서 스님께 인사를 하고는 내려올 차비가 부족해 조금 머뭇거렸습니다. 스님께서는 ‘왜 안 가나?’ 하셨어요. 옆에 있던 스님이 ‘차비가 없어 그런가봅니다.’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웃으시면서 1000원을 주셨습니다. 제가 얻어 본 유일한 용돈이었습니다. 하하.” 벽안 스님을 회고하는 지안 스님의 얘기는 끝이 없었다. 벽안 스님이 석우, 청담 스님 등 선지식(善知識)들을 모시고 수행한 일화부터 종단 정화불사에 동참했던 일까지 ‘레퍼토리’는 무궁무진했다.
지안 스님이 스승 벽안 스님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마지막 질문을 통해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생에도 인연이 돼 벽안 스님을 만난다면 다시 모실 수 있습니까?” 다음 생에 스님이 되면 다시 은사스님을 만날 것입니다. 그러면 스승으로 더 잘 모실 것입니다. 저는 지금도 은사스님의 품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여전히 제 마음속에는 은사스님이 계십니다. 제가 정신적으로 성숙할 수 있게 해주신 분이 바로 은사스님이세요. 출가 전에 학교에 다니며 여러 선생님들을 만났고 또 출가해서도 여러 어른스님들을 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은사스님이 가장 이상적인 스승이셨습니다. 감동받은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저도 제자를 두고 있고 출재가 불자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스승 노릇을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은사스님 같은 스승이 되어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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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스님과 불자들은 만나면서 저 스스로 공부를 많이 할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인연이
되는대로 대중들을 만나는것입니다 라는 지안스님의 말씀에서 우리불자들은 자주 스님을
뵙고 경전 공부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에 깊이 다가서겠다는 의지가 있어야겠습니다. _()_나무마하반야바라밀
경전 한줄을 보더라도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하고 생각해야합니다
그렇게해야 경전속에서 제대로 된 부처님 공부를 할 수 있습니다.
참선이든 염불이든 주력이든 간경이든 10년만 꾸준하게 하면 내공이 쌓인다고
말씀하십니다.
경전공부를 통해서 얼마든지 깨달음에 다가 설 수 있답니다 . _()_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아미타불...아미타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