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부활절 자료집
시청각설교
경축 전보와 슬픈 전보
누가복음 2:10
(경축 전보용지를 보여준다). 어린이 친구들, 이게 뭐지요? 전보에요. 경축전보예요. 여러분들도 경축전보를 받아본 적이 있나요? 경축전보가 뭔지를 모르겠다고요?
그래요, 여러분은 아직 어려서 경축전보를 받을 일도 없고, 요즘에는 경축전보라는 것도 거의 사라졌어요! 그래서 받아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해요!
경축전보는 좋은 일에 전보로 축하해 주는 거예요! 지금은 핸드폰으로 축하하지만 핸드폰이 나오기 전에는 경축전보가 축하를 가장 빨리! 가장 먼저! 하는 거예요!
세상에는 많은 경축 전보가 있어요.
<귀하는 우리 회사의 직원으로 채용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귀하는 우리 대학교에 합격했습니다. 축하합니다!>
<귀하의 그림이 최우수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이런 축하전보를 받으면 기분이 좋을까요, 나쁠까요? 당연히 기분이 좋지요!
그런데 이런 축하전보는 어떨까요?
<축하합니다! 귀하의 아버지께서 살아나셨습니다! 무덤에서 마중하세요.>
이런 축하 전보가 왔다면 어떨까? 너무 놀라서 으으으악! 기절할 거예요. 놀랐다가도 진짜로 아버지가 되살아 나셨다면 너무 좋아서 으아앙! 울음을 터트렸을 거예요. 이렇게 놀랄만한 전보가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놀랍고 기쁜 축하 전보를 받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탄생하실 때 천사는 말했어요.
성경을 찾아서 읽어봅시다. 누가복음 2장 10절입니다.
“내가 온 세상에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어떤 소식?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일까요? 우리를 구원해 주시려 오시는 분이시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사람을 구원해 주셨어요. 눈먼 병자도 고쳐주셨고 죽은 나사로도 살려주셨고…. 이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탄생이 좋은 전보와 같았어요. 그들을 살려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다는 소식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우체국에는 경축 전보만 있는 게 아니에요. 슬픔을 알려주거나 슬픔을 위로해 주는 전보도 있어요.
(조의 전보를 보여준다). 이 전보 속에는 슬픈 사연들이 들어 있어요.
<전쟁에 나갔던 귀하의 아드님이 전사하였습니다. 심심한 위로를 드립니다.>
<귀하가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더 열심히 노력해서 내년에 다시 봅시다.>
이런 전보를 받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너무 슬프겠지요?
예수님은 탄생하실 때에 경축 전보가 되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했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33년 후 예수님에 대한 슬픈 전보가 날아들었어요.
(조의 전보를 보이며)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오늘 3시 돌아가셨습니다. 무덤에 묻히셨습니다.>
얼마나 슬픈 전보일까요? 예수님의 죽음은 참으로 슬픈 전보가 되고 말았어요.
왜 그렇지요? 병자들은 다시 고쳐줄 능력자가 죽어버리신 거예요.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은 친구가 없어진 거예요. 제자들에게는 그들을 인도해 줄 스승이 없어진 거예요.
그보다 더 슬픈 일이 있어요. 예수님을 통해서 모두들 영원히 사는 길을 기다렸는데 예수님이 죽으셨다는 거예요. 이제 영원히 사는 길은 불가능한 길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기쁜 소식으로 오셨다가 슬픈 소식으로 마지막을 장식해 버린 거예요. 그래서 모두들 슬퍼했지요.
그렇다면 천사들은 거짓말을 한 것인가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소식이라고 했는데 그냥 해 본 말인가요? 천사들은 죄가 없어요. 천사들은 거짓말이나 농담을 할 줄을 모릅니다. 천사들은 진실된 말만을 합니다. 천사들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면 슬픈 내용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다는 전보를 받고 모두들 슬퍼하고 있는 데 다시 전보가 날아왔어요. 천사가 예수님의 무덤에서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경축 전보를 내밀었어요. 무덤 앞에서 웬 경축 전보? 천사가 혼동했는가보지요? 다른 곳으로 보내야 할 경축 전보를 무덤 앞에 있는 마리아에게 잘못 배달한 것은 아닐까요?
천사는 잘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천사는 정확히 전보를 배달한 것입니다. (생략) 3월호에서 만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