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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등불의 비유 (21-23)
1. 21절, “또 저희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하십니다.
a. 씨뿌리는 비유가 하나님의 말씀을 씨로 비유했다면, 등불의 비유에서는 등경 위에 두고 비추어야 할 빛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빛으로 비유한 것인데, 마태복음 5장 14절에서도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하셨습니다. 빛은 어둠의 일을 폭로하고, 등대와 같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호롱불처럼 우리 발이 실족치 않도록 도와주고, 자외선 소독기처럼 살균 작용을 하고, 경광등과 같이 위험을 알리고, 식물에겐 광합성 작용을 통해 열매를 풍성하게 만들어줍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 119:105)하신 말씀처럼 빛 되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앞길을 인도하고,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겁니다.
b.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하신 말씀처럼 등잔에다 불을 붙였으면 높은 등경 위에 두어야 방안 전체를 환하게 비출 수 있는 겁니다. 말씀의 빛을 세상에 전할 땐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다. 얼마 전 기독교 통계학자가 운영하는 유튜브를 본 적이 있는데,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를 통해 설교를 듣는다고 합니다. 시대의 흐름이 off라인 교회에서 on라인 교회로 옮겨가고 있는 현상 중에 하나인데, 특별히 요즘 젊은 세대들은 TV보다 유튜브를 더 많이 봅니다. 유튜브가 새롭게 떠오르는 등경, lampstand가 되고 있다는 뜻인데, 교회에서 이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최근 교회에서 새로운 유튜브 계정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시대적 흐름을 따르기 위함인데, 여하튼 복음이라는 등불을 켰다면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파할 등경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c.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나 평상 아래나 두려 함이냐”하실 때의 말은 타고 다닐 때 쓰는 말이 아니라, 한 말, 두 말 할 때의 말입니다. 이 단어가 헬라어로는 ‘모디오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곡식의 부피를 재는 도구 가운데 하나입니다. 평상은 침대를 의미합니다. 등불을 켰으면 등잔 위에 올려놓아야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등불을 켜서 말이나 평상 아래 두면 빛을 전달할 수 없는 겁니다.
d. 예수님이 말씀의 빛을 가리는 도구로 ‘말’과 ‘평상’을 비유로 드셨는데, 사실 ‘말’과 ‘평상’에는 또 다른 상징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곡식을 재는 도구인 말은 ‘세상 물질’을 상징하고, 누워서 쉬는 평상은 ‘게으름’을 상징한다는 겁니다. 19절에서 씨앗이 뿌려진 가시밭이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과 기타 욕심”(19)을 상징하는 것처럼, 말과 평상도 ‘물질에 대한 욕심과 게으름’을 상징하는데, 이 두 가지가 복음의 빛이 전파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겁니다. 복음전파의 사명을 맡은 자가 돈에 대한 욕심에 사로잡히면 복음전파의 순수성이 의심받게 되는 것이고, 사명을 맡은 자가 악하고 게으르면 복음이 전해질 수 없는 겁니다. 말씀의 등불을 켰으면 말이나 평상으로 덮어놓지 말고, 등경 위에 올려놓아 널리 이 빛이 전파되게 해야 한다는 겁니다.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하십니다.
2. 22, 23절,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하십니다.
a. 예수님이 말씀을 빛으로 비유하시면서 주신 말씀인데, “드러내기 위해 숨긴 것”이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잠시 숨겨지고, 감추인 것처럼 보일 때가 있지만, 언젠가는 그 의미가 드러나고, 나타날 때가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말씀이 바로 이사야 53장인데, 그리스도인들이야 이 말씀이 예수님이 겪으실 십자가의 고난에 관한 말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읽으면서도 아직 그 의미를 알지 못합니다. 지금은 저들에게 이 말씀의 의미가 숨겨져 있지만, 7년 대환난이 시작되고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회개할 때가 되면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닫고,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게 될”(슥 12:10) 것입니다.
b. 이스라엘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지금은 이제까지 감추어졌던 재림에 관한 예언들이 드러나고 있는 때입니다.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중동 땅에서 펼쳐지고 있는 사건들이 바로 우리가 성경에서 예언하고 있는 종말의 때를 살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인데, 문제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사건들을 지켜보면서도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이 때문에 예수님이 비유의 말씀을 마치면서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23)하신 것입니다.
II. 헤아리는 그릇의 비유 (24, 25)
1. 24절, “또 가라사대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하십니다.
여기서 “헤아린다”는 단어가 헬라어 ‘메트론’인데, 이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가 ‘메트레네스’인데, 이 단어는 앞에서 살펴 본 ‘모디오스(말)’와 마찬가지로 부피를 재는 도구를 의미합니다. 그런고로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라 하신 말씀은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어떤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는가에 따라 큰 은혜를 경험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어린 사무엘은 성막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올 때,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삼상 3:10) 했습니다. 말씀하시면 듣고 순종하겠다는 믿음을 보여준 것인데, 이런 믿음이 있었기에 이후로 사무엘이 하나님의 선지자로 선택을 받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땐, 순종이라는 믿음의 그릇을 예비하여 말씀을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2. 25절,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하십니다.
a.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하심은 앞에서 살펴본 사무엘의 경우처럼 믿음의 그릇을 예비하고 있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받기 전에 먼저, 믿음의 그릇을 예비해야 한다는 겁니다.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에 따라 하나님 말씀의 위대함을 노래한 시편 119편에서 시편 기자는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나로 깨닫게 하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시 119:18,34)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도 말씀을 읽고 들을 때, 믿음의 그릇을 예비하기 위해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는 겁니다.
b.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하심은 또 믿음의 그릇을 예비하여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이후로도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이미 깨달은 말씀도 빼앗기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사람들 사이에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인데, 우리가 항상 사모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배우지 않으면 배운 말씀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겁니다. 성경에 기록된 종말의 말씀들 가운데 다니엘을 종말론의 서론이라고 부르고, 요한계시록을 본론이라 부르고, 스가랴를 결론이라고 부릅니다. 다니엘을 이해해야 요한계시록을 이해할 수 있고, 요한계시록을 이해해야 스가랴를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인데, 개인적으로도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강해를 끝내고 난 뒤에 비로소 스가랴서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있는 자는 더 받게 된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할수록 이전에 알지 못했던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겁니다.
III. 추수의 비유 (26-29)
1. 26절,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하십니다.
세 번째 비유는 말씀이 자라 추수의 때가 이르는 비유인데, 여기서도 예수님은 씨뿌리는 비유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cf 3절). 말씀이라는 씨앗이 뿌려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될 수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많이 모여도, 말씀의 씨앗이 아닌 기복신앙, 축복복음, 뉴에이지 사상과 같은 다른 씨앗을 뿌려서 성장한 교회라면, 진정한 교회라고 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말씀의 씨앗을 뿌려 자라지 않은 것이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 나라라고 해야 한다는 겁니다.
2. 27절, “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하십니다.
씨를 뿌리고 나면, 추수 때까지 농부가 해야 할 일은 없다는 겁니다. 농부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하나님이 그 씨가 자라 열매를 맺도록 하신다는 겁니다. “씨가 나서 자라되 그 어떻게 된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하신 말씀처럼 씨 뿌린 자도 자신이 뿌린 씨앗이 어떻게 자라는 지 알 수 없다 하십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 뿐이니라.”(고전 3:6,7)하십니다. 바울처럼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자가 있고, 아볼로처럼 물을 주는 자가 있지만, 그 씨앗이 자라 열매 맺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지 않으면 씨를 뿌리고 물을 주는 자의 수고가 헛될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요나 선지자는 사흘길이 넘는 니느웨 성을 하루에 돌면서 대충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지만, 니느웨 성 전체가 회개 했습니다. 이에 반해 스데반 집사는 사도행전 7장 전체에 기록될 만큼 훌륭한 설교를 했지만, 오히려 돌에 맞아 순교했다 했습니다. 말씀의 씨는 우리가 뿌리지만,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겁니다. “가서 전하라”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복음을 전했다면, 전도자는 결과에 상관없이 만족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3. 28절,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하십니다.
씨앗이 땅에 뿌려지면 스스로 자라 열매를 맺는데, 싹이 나고 이삭이 자란 다음엔 충실한 곡식이 된다 하십니다. 말씀이 뿌려질 때 믿음이 자라는 단계가 있다는 뜻이고, 넓게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성장하는 과정이 있다는 설명인 것입니다. “대저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히 5:13,14)하십니다. 젖을 먹는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 다시말해 밭에 뿌려진 지 얼마되지 않은 새싹과 같은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장성한 자와 같이 단단한 음식도 먹고 소화시킬 수 있는 이삭과 같은 믿음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자라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이 그 열매를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겁니다.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벧후 3:17,18)하십니다.
4. 29절,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하십니다.
씨가 땅에 뿌려져 싹과 이삭과 곡식으로 자란다 하신 말씀은 교회가 성장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모습이기도 한데, 예수님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 명령에 순종함으로 오늘날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된 것입니다.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었으니 이제는 낫을 대어 추수할 때가 되었다는 것인데, 교회의 휴거 사건으로 1차적인 추수가 끝나면, 7년 대환난의 기간 동안에는 회심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함으로 마지막 이삭줍기 추수가 시작될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복음을 전한 뒤 음식을 가져와 먹기를 청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요 4:32,34,35)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곡식이 익어 희어져 추수할 때가 된 말세지말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마지막까지 추수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IV. 겨자씨의 비유 (30-32)
1. 30, 31절, “또 가라사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꼬,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하십니다.
씨뿌리는 비유를 보충 설명하시기 위해 주신 비유들 가운데 마지막이 겨자씨에 관한 비유인데, 등불의 비유가 하나님의 말씀이 등경 위에서 비추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헤아리는 그릇의 비유가 말씀을 받기 위해선 믿음의 그릇을 예비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씨가 자라 추수하는 비유가 씨를 뿌릴 때와 뿌린 것을 거둘 때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겨자씨의 비유는 말씀의 생명력을 보여주는 비유라 할 수 있습니다. 작은 겨자씨가 자라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가 되는 것처럼, 말씀이 뿌려 지면 이것이 자라서 많은 사람들이 안식과 만족을 얻는 큰 나무가 된다는 겁니다. 이제는 이 비유의 구체적인 의미를 살펴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겨자씨 한 알과 같다”라는 말씀에 등장하는 겨자씨는 비록 세상에서 가장 작은 씨앗은 아니지만, 농사를 짓는 유대인들에게 있어 밭에 뿌리는 씨앗들 가운데 가장 작은 씨앗이 바로 겨자씨입니다. 겨자씨는 좁쌀처럼 작은 씨앗이지만 밭에 뿌리면 나무처럼 성장하여 3, 4미터까지 자라고, 큰 것은 7미터까지도 자란다고 합니다. 이 정도면 하루하루 자라는 것이 보일 정도로 놀라운 생장력을 가진 것이 겨자씨라고 할 수 있는데, 하나님의 나라가 바로 이런 겨자씨처럼 놀라게 성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는 겁니다.
예수님과 12 제자로 시작된 교회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함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종교가 되었습니다. 겨자씨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성장은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휴거 사건 이후에도 회개한 이스라엘을 통해 이어지게 될 것인데, 이후로는 예수님이 재림하시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게 될 것입니다. 겨자씨 한 알로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온 세상을 덮게 된다는 겁니다.
2. 32절,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나물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공중의 새들은 씨뿌리는 비유에서 살펴본 사단 마귀가 아니라, 세상 나라들을 상징합니다. 에스겔 17장 22, 23절에 보면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백향목 가지가 크게 자라 각양 새들이 깃들일 것이라 하셨는데, 이 새들이 바로 이방 나라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다니엘 4장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을 상징하는 큰 나무에 새들이 머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여기서의 새들도 느부갓네살 왕이 건설한 바벨론 제국에 머물고 있는 세상 나라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왕의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단 4:20-22)하십니다.
본문에서 겨자 나무에 깃든 새들도 바로 이방 나라들을 상징하는데, 겨자씨처럼 작게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이지만, 이 나라가 나무처럼 커지게 되면 이방나라들이 그 가지에 깃들며 은총을 얻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앞에서도 살펴본 것처럼 이 말씀은 예수님이 지상재림하시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천년왕국을 건설하실 때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치러 왔던 열국 중에 남은 자가 해마다 올라와서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며 초막절을 지킬 것이라. 천하 만국 중에 그 왕 만군의 여호와께 숭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 오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비를 내리지 아니하실 것이라”(슥 14:16,17)하십니다.
V. 비유가 아니면 (33, 34)
1. 33절,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하십니다.
33, 34절은 씨뿌리는 비유와 이어지는 네 가지 비유를 소개한 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 얼마나 많은 비유들을 가르치셨고, 또 이 비유의 말씀을 이해시키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제자들에게 그 뜻을 설명해주셨는지를 소개한 말씀인데, 먼저 33절에서는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 “알아들을 수 있는대로” 다시 말해 가능한 한 많은 비유를 들어 말씀을 가르치셨다는 겁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시기 위해 얼마나 애쓰셨는지를 알 수 있는 말씀인데, 예수님의 제자된 우리도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려주기 위해 힘써야 한다는 겁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딤후 4:2)하십니다.
2.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하십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것처럼 비유는 믿음이 없는 자들에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감추는 도구로, 믿음이 있는 제자들에겐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생생하게 보여주시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신 것인데,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 비밀에 대해 공개적인 자리에선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제자들과 따로 모인 곳에서는 이 모든 것을 해석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게 해주셨다는 겁니다. “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너희에게는 주었으나 외인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며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 돌이켜 죄 사함을 얻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11,12절) 하십니다.
-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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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늘은 더 높아만 가고 바람은 부쩍 차가워지며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들에 가을 정취가 가득하네요.
계절의 작은 변화에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시면서 오늘도 아름답고 힘차게 파이팅 하시길 기원하며
웃는얼굴 넓은 마음으로 행복을 담고 사랑을 담아 웃음보 터지는 아름다운 하룻길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