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김경숙
쉿 조용! 묵언해요, 굳게 입을 다물어요
그대 눈빛만으로 마음 읽어야 하는
세상을 참는 방법이 너무나도 싫어요
참았던 소리들이 입 안에서 꿈틀해요
이제는 속 시원히 고백하고 싶어져요
숨 가쁜 들숨날숨이 목에 걸려 넘어져요
몇 계절 다 지도록 우두커니 서 있다가
따뜻한 가슴 되어 서로 안을 때까지
멀어진 너와의 거리 자박자박 다가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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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김용재
산 사람들은
더 이상 산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산은 이미
산 사람들과 한 몸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리운 것들은 모두
내 밖에 있다
서성거릴 뿐
내 가까이 오지 않는 것들을
용서하는 이 그리움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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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별/ 김정희
마른 잎들이 바람을 데리고
낮은 언덕으로 숨어드는
햇살 고운 날
눈부시게 엉키는 물결들이
호수 한가운데
은빛 물별들 가득 피워 올린다
숨어 있던 바람의 가벼움에도
수런거리는 물결
어느 날 호숫가에서
구겨지듯 주저앉아 슬퍼하던
내 슬픔 하나는 물속을 헤매다
다른 모르는 이들의 슬픔을 손잡고
다시 물 위로 떠올랐다
내 가슴에 있을 때 슬픔이던 것들
오늘은 깊은 물속에서
수십, 수백 송이 물별로 떠오르는 것,
시 같은 기쁨이 되어
다시 반짝일 수 있는 것
흔들리며 밀리며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렇게 별일 없이 살아 낼 수 있는 것
물별의 반짝임이 가르쳐준 살아가는 날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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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의 집/ 강경화
낡은 성당 종탑 아래
집을 짓는 무당거미
종소리는 보내기 위해
지붕도 벽도 쌓지 않는다
거미는
아득히 멀리서도
손 모으는 이
보이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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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문학지 속의 한 편
광주문학 봄호/ 광주광역시문인협회/ 2023
바보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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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3.24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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