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흔히 한다. 좋은 인재를 가려 적재적소에 써야, 사회도 국가도 번성하게 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인재를 잘 쓰면 나라가 흥하고 잘못 쓰면 쇠퇴한다는 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 준 평범한 진리다.
그러나 이처럼 당연한 말이, 오늘도 사람들의 입에 수시로 오르내리는 것을 보면, 그것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위에서 뭇사람을 다스리는 치자(治者)는 이 말을 때때로 머리에 새기고 수시로 가슴에 새겨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기해천수(祁奚薦讐)라는 성어가 있다. 기해가 자기의 원수를 천거했다는 말로, 인재 등용에 공평무사한 마음가짐을 가리키는 말이다.
춘추시대에 진(晉)나라 도공(悼公)의 신하 기해(祁奚)가 중군위(中軍尉)의 직에 있었는데, 그 몇 년 후에 기해는 자신이 연로하여 사직코자 하였다. 그러자 도공이 적합한 후임자를 천거해 달라고 하여, 기해는 그의 원수인 해호(解狐)를 추천하였다. 이를 들은 도공은 깜짝 놀라면서, 해호는 그대의 원수인데 어찌 그를 천거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기해는, 전하께서는 저에게 적임자를 물은 것이지, 저의 원수를 물으신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라고 대답하였다.
그 후 공교롭게도 해호가 죽었으므로, 임금은 또 기해에게 적임자를 천거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아들 기오(祁午)를 추천하였다. 도공은 다시 한 번 놀라면서, 기오는 경의 아들이 아니냐고 하였다. 이에 기해는, 전하께서는 적임자를 물으셨지 저의 아들에 대해 물은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였다. 기해의 공정함을 안 임금은 곧 기오를 임명하였다.
낙하산 인사니, 회전문 인사 또는 비선 인사라는 말들이 온통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다. 이런 말이 나오지 않으려면 먼저 그 자리에 적합한 인사를 공정하게 천거해야 한다. 기해 같은 사람들이 추천인의 위치에 자리한다면, 그런 말들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재를 알아보는 윗사람의 눈이다. 아무리 유능한 인재가 있더라도, 지도자가 그를 알아보지 못하여 쓰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윗자리에 앉은 사람이 비록 초등학교도 못 나왔다 할지라도, 인재를 알아보는 안목을 갖추었다면, 그는 훌륭한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유(韓愈)가 쓴 잡설(雜說)이라는 글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상에 백락(伯樂)이 있은 연후에 천리마가 있게 된다. 천리마는 늘 있으나 백락은 늘 있지 않다. 그래서 비록 명마가 있다 하더라도 노예의 손에서 욕을 당하며 마구간에서 보통 말들과 같이 죽고 말 뿐, 천리마라 불려지지 못한다.
천리를 달리는 말은 한 끼에 때로 곡식 한 섬을 먹기도 하는데, 말을 먹이는 자는 그 말이 천리마인 줄을 알지 못하고 먹인다. 그 말이 비록 천리를 달리는 능력이 있더라도 먹는 것이 배부르지 못하니 힘이 부족하여 훌륭한 재능이 밖으로 드러내지 못한다. 또한 보통 말과 더불어 같으려 하여도 그조차 되지 못하니, 어찌 능히 천리마이기를 바라겠는가?
채찍질을 하는 데 그 도리대로 하지 않고, 먹이지만 그 자질을 다할 만큼 하지 않고, 울어도 그 뜻을 알아주지 못하면서, 채찍을 잡고 다가와 말하기를, 천하에 좋은 말이 없다고 한다. 아, 그 진실로 말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
백락은 주(周)나라 때 말을 잘 고르는 사람으로 본명은 손양이다. 백락이라는 이름은 말을 보는 눈이 워낙 뛰어나서, 사람들이 중국 고대 전설에 나오는 천마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을 따서 부른 데서 연유한다. 백락이 말 시장에 나가서 눈길만 슬쩍 주어도, 세인들은 그것이 준마인 줄 알고 모여들어서, 말 값이 열 배나 뛰었다. 여기서 백락일고(伯樂一顧)라는 고사성어가 생겨났다.
백락이 어느 날 고갯길을 내려가다가 소금을 잔뜩 실은 수레를 끌고 오는 말을 보게 되었다. 분명 천리마인데 늙어서 무릎은 꺾이고 꼬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백락은 안타깝기 짝이 없었다. 천리마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보는 백락을 보고 슬픈 울음을 길게 울었다. 명마로 태어났으면서도 천한 일을 하고 있는 게 서러웠던 것이다. 백락을 만나지 못했기 때문에, 평생 수레나 끌면서 세월을 허송한 것이 참으로 억울했다. 이를 본 백락도 같이 울면서, 자기의 비단옷을 말에게 덮어 주었다.
아무리 좋은 천리마가 있어도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고, 하찮은 말과 같이 짐수레를 끌게 한다면, 이 얼마나 아깝고 분한 일인가? 천리마는 항상 있는데 그것을 알아보는 백락과 같은 눈을 지닌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다 허사가 되고 만다. 준마를 준마로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명마가 옆에 있어도 명마가 없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한유는 백락이 있고 난 후에야 천리마가 있다고 하였다. 명마를 알아보지 못하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서 그는, 진실로 말이 없는 것인가 아니면 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인가라고 한탄한 것이다.
한유의 이 외침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인재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인재를 알아보는 목민자가 없는 것일까? 진실로 천리마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백락이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