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06.日. 맑고 따습다가 흐리고 쌀쌀해짐
11월06일,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3.
여보세요! 앵커맨 밸라거사입니다.
정덕거사님 아파트 거실이 따뜻했던지 우리스님께서 머리에 두르고 다니던 목도리를 풀어놓고 있었습니다. 선일스님께서도 모처럼 회색 털실 모자를 벗어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스님들의 머리를 찬찬하게 쳐다볼 수 있었습니다. 스님들의 머리 모양은 모두가 한 가지인 듯 하지만 조금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 만들어가거나 만들어지는 헤어스타일이 있습니다. 그중 스님들의 이상적인 헤어스타일은 법랍과 함께 자연스럽게 머리가 벗겨지는 반 대머리 형태가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스님과 선일스님도 앞과 윗머리가 많이 벗어져서 선객의 풍모가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하지만 부석사 회주인 주경스님이나 연주암 회주인 자승스님처럼 머리숱이 많은 스님도 있습니다. 머리숱이 많아 머리가 새까만 스님은 아무래도 더 젊어 보입니다. 그래서 일도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한 강연회에서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 씨가 황홀한 글 감옥에 갇혀 평생 글만 쓰다 보니 머리가 얼마 남아있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서 머리란 머리카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정말로 장발 스타일이어서 망정이지 앞과 윗머리는 거의 빠지고 없었습니다. 내가 볼 때 조정래 씨의 머리는 아직 글을 쓰기에는 충분할 만큼 남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강연회에서도 정글만리를 쓰기 위해 중국에서 직접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고 자료를 모았던 이야기와 중국이라는 나라의 영향력과 중요성을 극구 강조하는 모습은 나름 확신에 차있었습니다. 세계화 또는 글로벌화 시대를 맞아 중국의, 중국 문화의, 중국 경제력의, 중국 군사력의, 중국 정치력의 강도랄까 힘의 크기는 누구라도 인정을 하고 있지만 중국 자체가 포함하고 있는 체제體制의 한계나 내부적 모순이랄까 거품이 의외로 많아 그 폭발력이 얼마만큼 세계를 향해 위세를 떨칠지는 따져가면서 아직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다양한 정보를 수집하고 자료를 구축하는 일도 또 그 정보와 자료를 분석하고 파악하는 일도 시사평론가와 정치나 경제전문가와 소설가의 시야視野나 안목眼目은 서로 다를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야구선수가 야구를 잘하고 가수가 노래를 잘 불러야하듯이 소설가는 소설을 잘 써야 합니다. 물론 야구선구가 야구를 잘 하는 것과 가수가 노래를 잘 부르는 것과 소설가가 소설을 잘 쓰는 일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자기 본분에 충실해야한다는 것 말고도 그 의미하는 바나 사회적인 영향력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설은 왜 쓰는가? 하는 문제를 한번 짚고 넘어가야하는데 나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니까 시간이 허용하는 대로 한 번씩 이야기를 풀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내려와 아파트 앞에서 잠깐 동안이지만 또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습니다. 우리스님은 미얀마로 떠나시고, 선일스님은 백장암으로 가시고, 선광스님은 성당사로 가시고, 또 일요법회 도반님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일요법회 도반님들은 다음 일요법회에서 보게 되겠지만 우리스님은 미얀마 만행을 끝낸 몇 달 후에나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스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모레 아침 아홉시 반 미얀마 행 비행기이면 공항에 일곱 시까지는 도착을 해야 하고 그러려면 숙소에서 여섯시 이전에 나와할 텐데 그 시간에는 리무진도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하니 차라리 아침 일찍 내가 스님을 만나 공항까지 모시고 가겠습니다. 그러자 스님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닙니다. 공항으로 가는 것은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뭐 외국을 한두 번 가본 것도 아니고 하니 리무진을 예약하든 택시를 불러 타든 할 터이니 신경 쓰지 마시고 편하게 주무십시오. 네, 리무진이나 택시 말이지요. 그럼 스님 알겠습니다. 그런데 스님 말씀을 듣다보니 재 호주동포인데 시드니에서 20여년 가까이 택시운전을 하고 있다는 한 한국남자 분의 글을 본 기억이 났습니다. 택시운전을 하다보면 별의 별 사람들을 다 만나보게 된다고 운을 뗀 후에 자신의 경험담을 본격적으로 이야기하였습니다. 고객이 택시에 턱 타는 순간 고객의 분위기나 생김새가 전해주는 첫인상만으로 고객의 성향性向이랄까 품성品性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대개 짜게 생긴 놈은 짠돌이가 대부분이고, 인상이 더럽게 생긴 놈은 매너도 더럽고, 쉽게 흥분하게 생긴 놈은 역시 성질이 급하다고 했습니다. 후덕하게 생긴 아저씨는 팁도 넉넉하게 주고, 친절하게 생긴 아저씨는 매너가 좋고, 내성적으로 생긴 분들은 역시 조용하고 수줍어하더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서양 사람들의 경우이고 동양 사람들의 경우에는 분위기나 인상에서 받은 느낌과 나중의 행동이 예상하고는 전혀 달라서 정리하자면 서양 사람들은 생긴 대로 놀지만 동양 사람들은 생김새와 관계없이 제 멋대로 놀더라는 것입니다. 서양에서는 마음을 얼굴에 표현하라고 가르쳐온데 반해 동양에서는 마음을 가슴 깊은 곳에 잘 숨겨두라고 가르쳐왔기 때문일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대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 호주동포 분만큼 척 보면 알만큼 사람의 분위기 파악이나 첫인상에 대해서 경험이나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호주동포 분도 꼭 무슨 대답을 얻고자 물음표를 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사람들을 무수하게 상대하다보니 사람의 일이라는 게 그렇더라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요즘 호주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이나 무척이나 많이 학교도 다니고 여행도 하는데 한국인과 일본인은 한눈에 보아도 그냥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이를 테면 한국여행자들은 몹시 복장에 신경을 써가면서 멋을 내고 있는데 반해 노력한 대가가 미미하지만 일본여행자들은 대충 편안하게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데도 복장이 참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국 여행자들은 주로 대도시 주변만을 맴돌고 있으나 일본 여행자들은 호주 전역에 걸쳐 오지를 막론하고 가지 않는 곳이 없더라는 이야기입니다. 모험과 도전정신의 차이인지 자라온 환경과 교육방식의 차이인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모여 있는 데만 항상 모여 있고, 일본사람들은 어디에나 방방곳곳에 흩어져서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 글을 읽어보고 참 정확하고, 유익하고, 자세한 관찰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나도 1987년도에 처음으로 인도를 다녀왔는데, 일행 중 어떤 분은 우스갯소리이겠지만 유서를 써놓고 왔다고 말할 정도로 마음을 단단히 먹은 여행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인도에 도착해서 부처님 8대성지가 있는 시골구석에 가보았더니 일본 청년들이 슬리퍼에 반바지를 입고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는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본여행자들이 가끔 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고는 했습니다. 그래도 그들은 남들이 하지 않는 자기만의 여행을 고집하며 즐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화백님이 우리스님과 선일스님을 모시고 출발을 했고, 묘광명보살님이 무진행보살님과 두 보살님을 모시고 출발을 했고, 선광스님이 혼자서 출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도 아내와 함께 서울을 향해 출발을 했습니다. 그때가 밤 10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서해안고속도로는 지체와 정체가 계속 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우리스님 송별회를 마무리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다음 날인 11월8일 스님은 미얀마를 향해 출국을 하셨습니다. 이제는 천장암 홈페이지 칼럼모음 난과 직선제실현 난에 글을 올려 줄 우리스님도 안 계시고, 일요법회 난에 사진을 올려 줄 진월거사님도 안 계시고, 태진이 방을 꾸며 줄 태진이도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일요법회 도반님들을 포함한 모든 회원 여러분들이 참여하고, 만들고, 꾸며나가는 천장암 공동체 홈페이지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이제 조용하고, 사려 깊고, 관람자적인 자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쓰고, 올리고, 참여하여 스스로 무대 위의 주인공이 되기를 진실로 요청 드립니다. 말이라는 게 하면 할수록 늘 듯이 글이라는 것도 쓰면 쓸수록 능숙해집니다. 그리고 막상 실행해본다면 신기하게도 나에게 숨어있던 생각이나 사고들을 놀라우리만큼 대담하고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매 순간 가슴 뛰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눈 딱 감고 두 손을 높이 들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올려보십시오. “내가 변하면 세상이 따라 변합니다.” 이상 일요법회 늬우스 데스크 앵커맨 밸라거사였습니다. 까빠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