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영화지도'를 그리다] <12> 동래구
'만화경' 같은 '역사의 고장' 진면목, '프레임' 속으로 불러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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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보·동성극장은 허물어지고 없다.
온천장 극장가의 맏형이었던 온천극장은 10여 년 전 문을 닫은 뒤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모습을 간직한 것만도 다행일까? |
동래는 볼 때마다 모양이 바뀌는 만화경 같다.
오래되었나 싶으면 새롭게 반짝이고, 조용한가 싶으면 이내 복작거린다.
이러한 동래를 영화라는 거울에 비추어 보면, 또 어떤 무늬와 상(像)을 발견할 수 있을까?
'부산 동래'가 아닌, '동래 부산'이라는 말이 있다.
고려시대에는 동래현, 조선시대에는 동래진(陣)이었다가 이후 동래부(府)로 승격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부산부가 설치될 때까지, 동래가 부산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동래는 유구한 역사의 고장으로서, 부산의 문화와 관광 그리고 스포츠의 중심지였다.
국내서 가장 오래된 동래온천
1960~1970년대 최고 신혼 여행지
고급요정 '동래별장' 지금은 한식집으로
'사랑' '범죄와의 전쟁'서 피상적 경험
시간 박제한 듯한 소박한 동래역
'미스 진은 예쁘다'에 담아
부산 사람들만의 특별한 공간 사직구장
'해운대'에서 잘 드러나
■문화 중심지였던 온천장의 쇠락
그 한가운데, 온천장이 있었다.
동래온천은 우리나라 온천 가운데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최초의 기록을
삼국유사에서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다.
백학의 다친 다리를 낫게 했다는 전설이 있을 만큼 효험이 있어,
개항 후 일본인들이 목욕을 하고자 몰려들 정도였다.
온천장이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된 것은 1910년대 일본인들이 근대적인 온천으로 개발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1965년 금강공원 조성 이후 더욱 명성을 떨쳤고,
1960~1970년대에는 전국 최고의 신혼 여행지로 각광받았다.
평일에도 하루 종일 사람들로 가득 차 이동이 힘들 정도로 대단한 유흥가였던 그곳에 극장이 빠질 수는 없었다. 1950년대 후반 개관한 온천극장은 재개봉관인 2류 극장이었다.
금전적·지리적 문제로 개봉관에 갈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개봉관에서 온천극장으로 필름이 넘어오기까지
걸린 보름간의 기다림은 큰 설렘이었다.
걸어서 10분 정도의 거리에 이본동시 상영관인 동성극장과 국보극장도 있었다.
인근에 극장이 3개나 있었다는 점에서, 온천장 일대의 영화에 대한 수요가 상당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부산대 주변에 젊은 층의 문화 거리가 형성되고,
연산동이 교통의 요충지가 되면서 온천장 상권은 침체되기 시작했다.
게다가 온천장의 극심한 교통 혼잡으로 사람들이 온천장에 오는 것을 꺼려하게 되었다.
온천장 목욕탕의 정비 등 재개발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해
젊은층을 불러들이지 못한 점도 상권 몰락의 큰 요인이었다.
온천장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결정적으로 멀티플렉스가 생겨남으로써,
소자본의 단관극장이었던 온천극장은 10여 년 전 문을 닫았다.
대학시절 온천극장을 즐겨 찾았다는 최광식(56) 씨는 이렇게 회상했다.
"온천극장이 문을 닫기 수년 전쯤부터 경영난을 해소하려고 이본동시 상영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도 해결책이 되지는 못했죠. 극장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없는데, 옛날 극장답게 촌스러운 노란 건물만 우두커니 남아 있는 모습을 보면 왠지 안타깝고 아쉽습니다."
고급 요정이었던 동래별장도 1980년대 이후 휴·폐업을 반복하면서도 명맥을 이어 왔으나
온천장 상권이 기울면서 1997년 끝내 문을 닫았다.
곽경택 감독의 '사랑'(2007)에서 주진모와 기모노를 차려입고 접대를 하던 박시연이 비극적으로 재회한 곳,
윤종빈 감독의 '범죄와의 전쟁'(2012)에서 금품이 오가고 뒷거래가 이루어지며 최민식을 비롯한 남자들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기생들을 끼고 술을 마시던 곳, 모두 동래별장이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하자마가 지은 동래별장은 1965년 고급 요정으로 영업을 시작했는데,
대통령도 들렀을 만큼 관광 명소였다.
비록 지금은 한식당으로 영업하고 있지만, 우리는 영화를 통해 요정으로서의 동래별장을
피상적으로나마 구경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 드러나는 억압 구조는, 우리로 하여금 다다미방과 일본풍의 그림에 진하게 묻어 있는
착취와 수탈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오래된 일본식 가옥의 묘한 아름다움 속에 몸을 숨긴 공간의 정체성을
영화가 은연중에 끄집어내 소리 없이 폭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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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취와 수탈의 역사를 간직한 동래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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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념물로 지정돼 보존 결정이 내려진 동래역.
일제의 수탈과 항일, 그리고 동족상잔 등 현대사의 결이 그대로 쌓여 있는 이 유적의 시간과 의미가 잊히지 않도록 끊임없이 불러내는 것이 영화의 소명이다. |
■동래역, 보존될 기억
분위기를 바꿔 낙민동으로 자리를 옮겨 보자.
여기, 도심 속에 시간을 박제해 놓은 듯 소박한 모습의 동래역이 있다.
1933년 영업을 시작하여, 한때는 항일 운동을 하던 수많은 학생들이 체포되어 이곳을 거쳐 갔고,
한때는 군인들이 가족들과 이별하고 전장으로 떠나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민족의 역사를 끌어안은 채 서서히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던 동래역을 환기한 것은
장희철 감독의 '미스진은 예쁘다'(2011)였다.
왜 하필 동래역이었을까?
그 것은 주인공들이 하나의 작은 동래역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에 제대로 편입되지 못하는 약자들과,
곧 역으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철거될 위기에 놓인 동래역은 서로 참 닮았다.
외발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철도건널목 지킴이 수동의 모습은 몇 년 동안이나 하릴없이 처분만을 기다렸던
동래역과 오버랩 된다.
그러나 동시에 동래역은 포용의 장으로서 기능한다.
무언가 끊임없이 실려 들어오고 실려 나가는 기차역에 고여 있는 주인공들을 동래역은 부드럽게 보듬는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만의 외발자전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묵묵히 지켜본다.
9월의 마지막 날, 동래역사가 철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앞으로도 보존될 거라는 소식이 들려왔다.
연푸른 지붕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아꼈던 한 사람으로서,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새로운 역사(驛舍)가 생기면 옛 동래역은 본래의 역할을 완전히 상실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미스진은 예쁘다'가 지금의 동래역만이 가질 수 있는 의미를 찾아냈듯,
앞으로 동래역이 더욱 많은 영화에서 새로운 역할을 부여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작은 부산, 사직구장
윤제균 감독의 영화 '해운대'(2009)를 본 사람이라면 술에 취해 그물에 얼굴을 아무렇게나 붙인 채
이대호 선수에게 욕을 해 대던 설경구를 기억할 것이다.
병살타를 친 이대호 선수에게 끈질기게 시비를 걸다 결국 주황색 봉지를 뒤집어쓴 채
끌려 나가는 모습이 영 낯설지만은 않다.
롯데 야구팬이라면 실제로 한 번쯤은 봤을 법한 취객 연행 장면이다.
설경구가 보여 주는 야구에 대한 집착 같은 애정이 '해운대'를 부산 영화로서 완성시킨다.
해운대 일대가 바다로 부산을 드러냈다면,
사직구장은 야구를 사랑하는 '부산 사람의, 부산 사람에 의한, 부산 사람을 위한' 공간으로,
영화에 부산다운 생기를 불어넣었다.
사직구장이 '한국 야구의 성지'라고 불릴 수 있었던 것은, 롯데의 실력이 아니라
야구에 대한 부산 사람들의 애정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애정은 야구 경기가 진행되는 약 3시간 동안 강렬하게 표출되어,
사직구장은 세계 최대의 노래방이 되기도 하고, 공동체를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되기도 한다.
그때만큼은 프로야구 혹은 롯데라는 팀을 둘러싼 이데올로기나 이해관계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야말로 축전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부산 사람들에게 야구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듯, 사직구장 또한 야구장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사직구장은 삶의 터전이며, 부산의 로컬리티가 집약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다.
조금 과장하여 말하자면, 부산 그 자체다.
전국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성격을 부여받은 이 특별한 공간을, 영화가 어떻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만화경 원통 속에 온천장, 동래역, 사직구장이라는 세 가지 거울 면을 끼워 들여다본
동래의 무늬는 영화가 가진 얼굴만큼이나 다양하다.
이미 사라진 것이 있다면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 온 것도 있고,
서서히 식어 가는 것이 있다면 뜨겁게 들끓는 것도 있다.
그러나 결코 이게 다가 아니다.
만화경이라는 게 그렇듯, 앞으로 같은 모양은 두 번 다시 나타나지 않고 계속 달라져 갈 것이다.
공간의 운명이 끊임없이 변하다가 결국 소실되는 것이라면,
이미 잃어버린 것 혹은 앞으로 잃어버릴 것을 프레임 속으로 불러와
사람들로 하여금 돌아보게 하는 것.
그리하여 그 공간에 영원에 가까운 시간을 부여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화가 맡은 사명 중 하나일 것이다.
글=구혜원 부산대 영화연구소 연구원 mistyislet@naver.com
사진=이경희 사진가 mizise@naver.com
후원 : 부산영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