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안세영 16강전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및 경기 내용 분석
[배드민턴 중국 마스터즈 2026] 안세영 vs 한첸시 (중국)
오늘도 그제 32강전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샷들을 테스트해 가면서 여유 있는 경기를 펼쳤으나, 제1게임 중반에 잠시 샷 감각이 흔들리며 연속적으로 범실한 장면은 "옥에 티"였다. 그 외에는 빠르고 경쾌한 풋워크와 한쳰시의 완벽한 공격들을 가볍게 막아낸 특유의 극강 수비, 그리고 여러 차례 싸이드 라인에 정확히 꽂힌 강력한 스매시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시합이었다.(안세영이 컨디션이 좋은 날의 풋워크를 보고 있으면 김연아의 피겨 연기나 마이클 조던의 화려한 농구 공격 기술들을 볼 때처럼 강렬한 예술성마저 느껴진다. 지난 세계선수권부터 그런 시합들이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부상 예방 차원에서 양쪽 무릎 아래에 테이핑을 하고 나오는 것으로 보이는데, 오늘 경기 중 슬라이딩하며 수비하는 과정에서 오른쪽 테이핑이 꼬이자 그걸 풀어버리고 경기장 의료진에게 새로 감아줄 것을 요청했으나 적당한 재료가 없었는지 그대로 테이핑 없이 경기하다가 박주봉 감독이 직접 트레이너진에게 가서 얻어 온 후에야 다시 감는 해프닝도 있었다. 최근에 바뀐 경기 규칙 때문에 경기장 의료진은 거의 있으나 마나 한 존재들이 되어버렸으니, 앞으로는 라켓 가방에 오늘 같은 비상시를 대비한 용품들이 잘 구비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24살 안세영과 동갑인 한쳰시는 지금 중국 4인방 중에서는 가장 젊은 신예다. 비록 오늘 점수 차이는 많이 났지만 안세영의 스텝 스피드에 비교적 잘 따라왔고 공격과 수비에서 여러 차례 좋은 움직임을 보였는 바, 앞으로 충분히 세계 랭킹 10위 안으로 진입 가능한 재목이라고 여겨진다. 왕즈이처럼 대기만성 노력형 선수인 듯하니 안세영 입장에서도 일정한 경각심을 가져야 하리라.
2. 왕즈이 16강전 경기 하이라이트 영상 및 경기 내용 분석
WANG Zhi Yi (CHN) vs KARUPATHEVAN (MAS) | 马来西亚新星为何顶不住?(Round 16) LI-NING China Masters 2026
그냥 언뜻 보면 말레이시아의 렛샤나가 바보 같은 범실을 남발하며 자멸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오늘 경기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이 두 선수의 직전 맞대결이었던 지난 세계선수권 32강전 경기를 먼저 봐야 한다. 당시에 렛샤나는 공격과 수비 모두 예전의 자신보다 월등히 향상된 최상의 움직임을 보였음에도 그걸 능가하는 왕즈이의 더 완벽한 수비와 공격에 완패를 당했었다. 2주 만에 다시 만난 오늘 제1게임 초반에 같은 상황이 반복되었고, 결국 왕즈이의 초강력 수비를 뚫기 위해선 조금이라도 더 완벽하게 구석을 노려야 한다는 강박 관념이 렛샤나를 지배하는 순간 결과는 이미 결정되어버렸다.
어제 32강전 때는 다소 무거워 보이던 왕즈이의 풋워크가 오늘은 지극히 경쾌했고, 2주 전 세계선수권 푸싸를라 씬두와의 16강전 88분 대혈투에서 손상됐던 양쪽 허벅지 근육들이 완벽히 회복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다리가 가벼우니 코트 커버 범위가 넓어지며 수비가 더 잘 되고, 조금이라도 치기 쉬운 위치로 셔틀이 날아오면 곧바로 양쪽 싸이드 라인을 노리는 강력한 대포알 스매시를 퍼부어대니 렛샤나가 패닉에 빠지며 자멸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3. 결승전 무혈입성이 예상되는 왕즈이
이번 대회 시작 전부터 필자가 기대했던 대로, 세계 랭킹 39위 불가리아의 신성 칼로야나 날반토바가 오늘 세계 랭킹 6위 랏차녹 인타논을 꺾고 내일 8강에서 일본의 20살 동갑내기 미야자키 토모카와 맞붙게 되었다. 미야자키가 비록 운이 좋아서 지금 세계 랭킹 9위에 올라 있지만, 실제 실력 면에서는 20위나 30위권 밖 선수에게 언제든 질 수 있는 레벨이라는 게 필자의 견해다. 이에 반해 날반토바는 (지금 올라 있는 39위가 자신의 역대 최고 랭킹이긴 하지만) 176cm의 큰 키에도 불구하고 풋워크가 매우 빠르고(바로 이 점이 세계 랭킹 10위권에 포진해 있는 덴마크의 장신 3인방과 구분되는 점이다. 필자는 조만간 날반토바가 유럽 최강자가 되리라 예상한다.), 수비 순발력과 지구력도 나쁘지 않기에 지난 2년간 전혀 실력이 안 늘고 있는 미야자키보다 월등한 발전 가능성을 갖고 있다. 앞으로 랭킹을 조금만 더 끌어올려서 30위권 안에 들게 되면, 그래서 슈퍼 750 이상 최상급 대회에서 A급 선수들과 꾸준히 맞붙게만 되면 1~2년 안에 실력이 급성장할 수 있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자, 그런데 지금 이 이야기를 왜 하느냐 하면, 내일 날반토바와 미야자키 경기의 승자가 모레 왕즈이와 준결승에서 맞붙기 때문이다. 필자는 당연히 날반토바가 2 대 0 완승을 거두고 올라올 것으로 예상하는데, 문제는 누가 올라오든 왕즈이에게는 오늘 상대였던 렛샤나와 별반 다를 게 없는 상대일 거라는 점이다. 즉, 날반토바와 미야자키의 지금 실력으로는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한 왕즈이의 안세영급 수비를 뚫을 수도, 또한 그녀의 강력하고 정확한 공격들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왕즈이는 가벼운 준비 운동 정도로 준결승전을 소화한 후 체력을 온존한 채로 결승에 올라오게 될 텐데, 4강에서 야마구치와 힘든 시합을 치러야 하는 안세영보다 분명히 유리한 점이다.
4. 2주 전과는 달라진 상황, 달라져야 할 전략
2주 전 세계선수권 준결승에 앞서 필자는 안세영에게 왕즈이와 긴 랠리 게임 지구전으로 갈 것을 권한 바 있다.(아랫글 참조)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달라졌고, 필자가 추천하는 전략도 달라진다. 윗글에 자세히 적었지만, 세계선수권 준결승 때의 왕즈이는 양쪽 허벅지가 정상이 아니었고 안세영과의 지구전을 버틸 상황이 아니었지만, 허벅지가 지극히 건강해 보이는 지금의 왕즈이를 상대로는 필자는 긴 랠리 게임을 권하고 싶지 않다. 왜냐면 왕즈이의 수비력과 지구력, 그리고 어떤 순간에도 포기하지 않는 정신력만큼은 이제 안세영과 완전히 동급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스텝 스피드와 속도전에 있어서는 여전히 안세영이 확실한 우위에 있다. 최강의 라이벌을 상대하면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를 버리고 굳이 상대가 원하는 전술에 휘말려들어갈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2주 전 세계선수권 결승전에서 야마구치를 상대했을 때처럼, 또 지난 1월 인도 오픈 결승에서 왕즈이를 상대했을 때처럼 빠르고 강력한 선제 공격 위주의 속도전을 권하는 것인데, 한 가지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다. 바로 지금의 왕즈이의 수비력이 지난 1월이나 야마구치의 수비력에 비해 월등하다는 점이다. 결국 안세영의 스매시가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싸이드 라인을 때릴 수 있느냐가 관건이다. 충분히 예리하지 못한 공격이라면 전부 다 왕즈이의 수비에 걸릴 것이고, 그리 되면 안세영의 체력만 빠르게 소진되고 되레 손쉬운 역습 기회마저 제공할 수도 있다.
안세영 입장에서는 이런 모험을 감행하느니, 차라리 지금껏 왕즈이와의 거의 모든 대결이 그러했듯 긴 랠리 게임으로 승부를 보고 싶은 유혹이 강하게 일 것이다. 물론, 지구전을 택한다고 해서 꼭 안세영에게 불리하란 법은 없다. 최근 맞대결에서도 지난 3월의 전영 오픈 결승전 딱 1경기를 패했을 뿐이니까 말이다. 그러나 2주 전 세계선수권 때도 그랬고, 오늘 경기도 그렇고, 마냥 지구전으로 가기엔 왕즈이의 스매시가 너무 빠르고 정확해졌다는 게 필자의 판단이다. 즉, 랠리가 길어지다 보면 아무래도 왕즈이에게 스매시 기회를 내줄 위험이 커진다는 점을 우려한다.(다시 말하지만, 2주 전 세계선수권 준결승은 참고가 되지 않는다. 그때 왕즈이는 양쪽 허벅지가 정상이 아니었고, 코트 커버력이 떨어진 데 그치지 않고 점프도 제대로 뛰지 못해서 안세영을 상대로 오늘 같은 대포알 스매시들을 때릴 수가 없었으니까. 아무리 안세영의 수비가 뛰어나다 해도 양쪽 구석에 꽂히는 강력한 스매시들을 계속 얻어맞는다면 이기기 어렵다.)
이런 작전은 어떨까? 일단 긴 랠리 게임으로 간다는 전략으로 경기를 시작하더라도 안 되겠다는 판단이 들면 지체 없이 속도전으로 계획을 바꾸는 것 말이다. 그러나 경기 도중 이미 지치기 시작한 다음엔 이런 전환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이번에 상대할 왕즈이는 2주 전에 상대한 왕즈이보다 2배 가까이 더 어려운 상대일 거라는 점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확실하게 2 대 0으로 제압할 수 있다면, 안세영에 대한 왕즈이의 추격 의지가 다소나마 꺾일 것이다.(필자가 왕즈이라면, 2주 전 세계선수권에서 푸싸를라의 방해로 이루지 못했던 안세영과의 진검 승부를 이번 결승전에서 달성하고 기필코 승리하겠다는 결의와 확신에 차 있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그녀의 컨디션은 지금 최상이다.) 안세영으로서는 앞으로 여왕의 지위를 좀 더 편안히 유지할 수 있느냐 여부가 이번 결승전 맞대결에 달려 있는 셈이다. 집중력을 최고조로 끌어모아서, 단 1개의 범실도 하지 않겠다는 정도의 각오로 독하게 임해 주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