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구슬書ᄆᆞᆯ 책모임에서 김세진 선생님을 초대했습니다.
책모임이 만들어질 때부터 선생님을 초대해서 말씀을 듣는 것이 염원이었다는데 1년 만에 이루었습니다.
이 기쁜 자리에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습니다.
초대에 흔쾌히 응해주신 김세진 선생님 고맙습니다.
언제 봐도 반가운 김세진 선생님, 김세진 선생님 강의를 듣고
같이 오신 선의관악 복지관 서비스 제공팀 승철 오빠가 오늘 책모임에 함께 했습니다.
총 10편의 독서노트를 읽었고,
‘당사자를 향해 주먹을 날리는 사회복지사’ 1편을 깊이 나누기로 했습니다.
김세진 선생님께서 처음 인사를 나누실 때의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저는 참 궁금했어요. 이런 바쁜 시대에 당장에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은 이런 모임을 하고 있는 귀한 학생들이 누구인가. 이런 모임이 당장엔 필요 없어 보여도 삶을 살찌웁니다.”
삶을 살찌우는 사람들. 구슬書ᄆᆞᆯ 동료들이 참 귀합니다.
나눔을 시작하기 전,
김세진 선생님이 시인 보들레르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 변화를 말씀해주셨습니다.
거지와 인격적인 만남을 하려는 시인을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가,
인격적인 만남을 앞세워 폭행을 정당화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었다가,
거지를 자기 이론을 증명하기 위한 대상자로 본 것에 분노했습니다.
우리 현장에서 당사자를 대상화 실적화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봅니다.
요즘 정보원 카페에 여름 단기 사회사업 관련 글이 자주 올라옵니다.
정보원 활동을 시작하고부터 순례와 공부만 해서,
이번 여름 단기 사회사업을 참 기대합니다.
그 기대하는 마음을 돌아보았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복지요결을 적용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습니다.
순간 아차 싶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을 복지요결 적용 대상으로 생각했습니다.
많이 반성했습니다.
태환 오빠가 당사자를 통제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는 곳에 대한 경험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김세진 선생님께서 사례관리에 대해 제대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사례관리는 영어로는 ‘case management’로
사례관리자는 ‘manager’입니다.
그러나 현 사례관리 구조는 당사자를 스타로 내세우고 사례관리자가 매니저 구실을 하는 게 아니라,
사례관리자가 스타 구실을 하고 있습니다.
매니저가 아니라 인생설계자 구실을 합니다.
이번 실무자 공부 모임에서는
법학과 학생들이 수많은 판례를 읽듯이, 사례 예시 52편을 먼저 읽는다고 합니다.
실천하기 전에 예시를 먼저 아는 것은 참 중요합니다.
두터운 사례집을 들고 다니며 열심히 공부하실 선생님들을 상상합니다.
참 멋있습니다. 실무자 공부모임을 응원합니다.
민지 언니는 자연주의 사회사업 방식에 동의하지 않는 당사자를 만났을 때에 대한 우려를 표현했습니다.
소위 ‘복지병’에 걸린 사람(혹은 사회사업가를 그저 복지 전달자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자연주의 사회사업 방식을 앞세우는 것이,
그 사람을 계몽하는 모양새이진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시설이 아니라면 당사자와의 만남은 한계가 있습니다.
삶 전체의 자주를 건드릴 순 없습니다.
그 한계를 인정해야 합니다.
사회사업가는 당사자의 욕구를 모두 들어주는 만능 해결사가 아닙니다.
사회사업가는 가치 편향적인 사람입니다.
사회사업가는 욕구를 존중할 뿐, 무조건 따르지 않습니다.
를 들어, 신체 약자가 신체 약자들끼리만 나들이를 가고 싶다는 욕구를 표해도,
사회사업가는 어울려 사는 데에 뜻을 두기 때문에 그 욕구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
복지 당사자가 ‘복지병’에 걸렸다고 할 때,
그 병원(병의 원인)은 사회사업가의 잘못된 도움입니다.
그저 계속해서 사회사업가의 뜻을 설명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진정성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김세진 선생님께서는 기품 있는 사회복지사가 되기를 권하셨습니다.
저는 기품 있다는 말을 많이 어려워합니다.
김세진 선생님께서는 기품 있다는 것은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것이라 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는 어디까지나 직장인으로서의 사회복지사가 갖춰야 할 직업 정신이라 하셨습니다.
태환 오빠는 일상에서의 모습과 직업인으로서 갖춰야 할 모습이 다를 때,
현장에서 일을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착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은 부담스럽습니다.
인격적 만남과 인간적 만남은 확연히 다릅니다.
인간적 만남은 어떻게 하는 건지 모호하지만, 인
격적 만남은 상대방을 자기 삶을 살고 어울려 사는 존재로 여기기에 무엇이든 물어보는 만남입니다.
다만 인격적 만남을 하는 사람은 대개 인간적 만남을 하기 쉽습니다.
자기 인생에서 이웃과 인정을 살리며 살아가는 사회사업가는
자신이 하는 주장에 힘을 싣기 좋습니다.
그렇다고 이를 모든 사회사업가에게 요구할 수는 없습니다.
승철 오빠는 사회사업가와 맞지 않는 개인 성향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태환 오빠는 개인 성향도 사회사업과 맞지 않는 것 같고,
사회복지가 정책에 따라 바뀌는 게 더 크다고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사회복지학과는 실무자를 키우는 학과이지,
정책을 건드리는 학과가 아닙니다.
이 세상 정책 중에 복지정책이 아닌 정책이 어디 있겠습니까?
정책에 영향을 받지 않는 현장이 어디 있겠습니까?
간호사에게 보건 정책을 요구하지 않고, 버스 기사님께 교통 정책을 요구하지 않는데
왜 사회사업가에게 복지 정책을 요구합니까?
정책을 바꾸어야 한다는 건
제 실천은 돌아보지 않고 외부를 탓하는 것입니다.
정책이 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정책이 더 중하다 할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근본책입니까?
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을 살리는 일이 근본책입니다.
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이 없음이 온갖 문제의 근원이고, 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이야말로 온갖 복지의 바탕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놓아두고 달리 어떻게 해보려는 건 대개 말단에서 비롯하는 일입니다. 말단이나 다스리는 방안이기 쉽습니다.
복지정책이 그러합니다.
복지정책은 애당초 근본 태생이 아닙니다. 지금도 대개 빵 조각 따위로 사회 문제를 뒤치다꺼리하며 그 본질을 호도하는 미봉 땜질에 불과합니다. 여기를 꿰매면 저기가 터지고 이곳을 때우면 저곳이 새기 일쑤입니다.
미봉 땜질이라도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필요 없다거나 무익하다 할 수 없습니다. 부정할 수도 폐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복지정책의 효용은 거기까지입니다.
복지정책은 대개 말단으로 말미암아 생겼으니|생기니 태생 자체가 말단입니다. 앞으로도 말단에 떠밀려 다니거나 말단을 팔아먹고 살아가다가 끝내 ‘말단 치다꺼리’를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사회사업이야말로 근본책입니다.이웃 관계와 인정의 소통을 살리는 사회사업은 근본에서 비롯하는 일입니다. 문제의 근원을 막고 복지의 바탕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복지야성」 ‘선택과 한계-3. 복지정책과 사회사업’ 가운데
무상급식도 사회사업가의 눈으로 보면
밥을 굶는 친구를 위해 도시락을 2개씩 싸오던 문화를 없애는 정책일 수도 있어서 조심스럽습니다.
대체로 유럽의 복지국가는 ‘중상층 이상의 소비를 함께 누리자’는 주장 으로 들립니다. 유럽이 복지국가를 이루고 유지하면서 소비한 자원을 생 각하면 지구가 열 개여도 모자라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이는 유럽의 복지국가를 ‘소비’복지국가라고도 했습니다. 이런 글이 복지에 반대하는 이야기로 오해받을 수 있습니다. 더욱 많은 예산이 공평하고 정의롭게, 특히 약자를 위해 사용되기를 원합니다. 나와 내 아이가 사는 곳이 그런 나라이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해 몸을 던져 애쓰는 분들이 계셔서 고맙습 니다. 용기 있는 그분들 앞에 서면 부끄럽기도 합니다. 「2백년 전 악녀일 기가 발견되다」와 다른 여러 글을 읽으며 복지국가 ‘그다음 세상’을 생각 했습니다. 복지국가도 이상을 향한 ‘과정’이 아닐까요? 복지국가나 유럽 몇몇 나라 정도가 우리의 이상일리 없습니다. 「사회복지사의 독서노트-책에서 만난 사회사업 실마리」 ‘악녀 사회복지사의 업무일지가 발견되다’ 가운데
누군가는 복지국가를 편협한 국수주의로 보기도 합니다.
세금을 걷어서 복지를 나누는 것(분배 정의)은 유
한한 자원의 착취가 필연적입니다.
우리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복지국가를 꿈꾸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복지국가가 유토피아가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사람은 살아있는 한 끝까지 자기 삶을 사는 존재입니다. 복지‘국가’는 이 런 존재로 살아갈 만한 세상을 이루는 과정 정도로 이해합니다. ‘국가’에 어느 정도 책임을 요구하며 의무를 다하라고 하겠지만, 내 모든 걸 맡기 고 싶지는 않습니다. 어디서 누구와 생을 마무리 할지도 스스로 정하지 못하는 삶이라면 복지국가 속에 살아도 두렵습니다.
(중략)
공동체가 무너져간다고 남아 있는 인정조차 허물어 버리고 이를 제도와 서비스로 대체하고 싶지 않습니다. 노르웨이 노부부가 우려하는 모습이 무엇인지는 짐작이 갑니다. 아마 ‘복지국가’는 목적이라기보다 이런 사 람살이를 향하는 과정일 겁니다. 「사회복지사의 독서노트-책에서 만난 사회사업 실마리」 ‘사회복지사, 너도 언젠가 대상자가 될 날이 올 게다’ 가운데
사회사업가는 공동체에 뜻이 있는 사람입니다. 관계는 놀라운 혁명이자 운동입니다. Radical은 급진이자 근본입니다.
혁명운동과 사회사업
세상의 온갖 부당한 권력에 맞서고 억압 착취 차별 폭력을 막고 전쟁을 끝내는 일, 정치혁명, 사회혁명, 경제혁명, 환경혁명… 사회사업가가 이 모든 일에 나서야 할까요? 어떤 일부터 해야 할까요? 어떤 혁명 노선을 따라야 할까요? 혁명 뒤에 변질 부패 없이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이웃 관계와 인정을 살리는 일은 혁명이 아닐까요? 무엇이 더 근본적인 혁명일까요? 진정한 혁명은 무엇일까요? 어설픈 의무감, 어쭙잖은 지식, 나서자니 확신도 자신도 없습니다. 신뢰할 만한 사람이 알아듣게 설명하고 그럴듯한 계획을 밝혀 앞장서면 혹 따를 수도 있겠지만, 우선은 사회사업 잘함으로써 세상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복지야성」 ‘선택과 한계-3. 복지정책과 사회사업’ 가운데
금세 2시간이 흘렀습니다.
좋은 책은 책을 덮고 생각이 많이 드는 책입니다.
우리 모임이 많은 생각을 불러오기를 바라며 책모임을 마쳤습니다.
첫댓글 '기품있다'는 말이 어렵지요.
사회사업가의 태도만을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당사자와 지역사회가 복지를 이루게 돕고, 더불어 살게 돕는 사회사업가의 실천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질 겁니다.
그런 실천에 뜻을 두면,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만나며 작은 일도 걸언하려 할테고
그런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요.
말버릇처럼 써 왔는데
경화 글 읽으며 조금 더 생각해요.
고마워요.
"관계는 놀라운 혁명이자 운동입니다."
사회사업가는 그런 귀한 일을 하는 운동가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 절실한 사람입니다.
좋은 학생들 모임에 초대해주어 고마워요.
즐겁게 나눴습니다.
글 읽어주니 고마워요.
경화와 둘이 만나도 좋고, 두세 명 만나도 좋아요.
언제든 초대해주세요~
오늘 저녁에는 순강과 순강 후배 선영을 만나요.
세 사람과 '황혼의 반란' 나누기로 했어요. 기다려집니다.
정말 재밌겠어요~
생각 깊은 세 분이 어떤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나누실까 기대합니다~
(순강오빠가 기록해주겠지요^^)
얼른 또 뵙고 싶습니다 선생님!
농사 잘 배워요.
건강하게 다녀와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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