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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스포츠클라이밍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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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련 중인 전종완 회원. 그는 하루 3~4시간의 암장훈련 후에도 별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만큼 열혈 회원이다. |
위계와 유대. 서로 다른 이 두 개의 의미를 ‘빳다’라는 한 단어로
정의하는 것이 적어도 산에서만큼은 가능했던 시절. 인수봉과 선인봉의 바위꾼들에게 ‘모든 확보물은 추락에 대비한 방어적 수단으로만 기능해야
한다’라는 자유등반의 정의는, 일명 ‘볼트따기’라는 나름대로의 등반방식(?)을 통해 종종 무시되기도 했었다. 그곳에는 화려한 등반기술보다 우직한
근성을, 이론적 이해보다는 무조건 밀어붙이는 이른바 ‘무대포’정신을 산꾼의 미덕이라 편달하는 고참들이 있었다. 또 바윗길에서 나누는 담배 한
개비, 막영지에서 기울이는 소주잔이 좋아 산을 찾고 선배의 ‘아득가’ 선창에 마음이 동해 막춤을 춰대면서도 가슴 한 구석엔 히말라야의 만년설을
담고 있던 후배들이 있었다.
손정준스포츠클라이밍연구소(이하 손정준암장)의 손정준(41세) 소장 또한 등반에 입문했던 1980년대 인수와 선인의 정서를 그렇게
기억한다. 그 또한 하얀산을 꿈꾸는 젊은이였고 안 되면 될 때까지 매달리며 바위와 씨름하던 끈질긴 산꾼이었다. “그때만 해도 고산 거벽에서
행해지는 첨예등반이나 스포츠클라이밍이란 단어는 한국의 클라이이머들에게 그리 익숙하게 받아들여지지 못했습니다. 스포츠과학 또는 스포츠의학을 등반에
적용한다는 것 또한 생경한 것이었고요.
” 한때 인기 있던 코미디 프로 ‘동작 그만’이 자아내던 웃음의 재료가 군인들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시시콜콜한 이야기였던 것처럼 당시의
바위꾼들이 산에서 찾으려던 가치 또한 세상에 내세울 만한 그럴듯한 이력이나 ‘명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정서에 뿌리를 둔 이들이
좀처럼 등치시키지 못하는 등반과 스포츠. 남달리 이 둘의 결합에 대해 오래도록 고민해왔다는 그의 생각은 어떤 것일까. 알피니즘과 스포츠로서의
등반에 대한 논의가 아직은 대립하고 있는 분위기에서 그러한 기대가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손정준 소장은 그 물음에 자신 있게 “그렇다”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와 함께하는 암장 식구들 또한 입을 모아 “옳소”라고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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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준스포츠클라이밍센터 회원들. 대부분 암장의 자체 모임인 자유등반클럽 회원이다. |
- 회원 대부분이 자유등반클럽 활동
한국 최초 5.14급
루트 등반, 설악산 적벽 최초 자유등반, 5.13a 루트 프리솔로등반, 전국 암벽등반선수권대회 3연패, 스포츠클라이밍 대표팀 코치,
서울시산악연맹 교육이사. 1세대라 불릴 만큼 일찍이 스포츠클라이밍의 세계로 눈을 돌린 그의 이력은 일일이 열거하기조차 힘들 정도다. 손정준암장을
찾아가는 길에 올림픽 대표팀이나 태릉선수촌 등을 떠올렸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2002년 1월 문을 연 손정준암장. 4년이라는 시간에 비해
낡아 보이는 벽면과 홀드에서 회원들의 내공이 느껴지긴 했지만 암장 어디에도 회원들의 훈련을 채근하는 코치는
없었다.
회원들의 이력 또한 의아하게도 스포츠 클라이밍의 계보에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때 암장 입구에서 몸을 풀고
있던 반백의 회원이 동료에게 말을 건넨다. “지난번 선운산 갔을 때 말이야. 어쨌든 목표달성을 해서 기분 좋기는 한데 이제 다음 그레이드로
넘어갈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몸에 기합이 들어가네.”“에이, 그 연세에 5.12면 됐지 다음 그레이드는요 뭘.” “어쨌든 내 목표는
13까지였으니까 해보긴 해야지.” 지난 4월 선운산 속살바위의 ZOO(5.12a) 루트를 끝냈다는 길덕환씨는 놀랍게도 올해 65세로 암벽등반을
처음 접한 나이가 62세, 환갑이 넘은 나이에 운동을 시작해 장년부 등반대회에서 최고령 입상 경험까지 있는 노익장이었다.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무려 20kg의 체중을 감량했다는 그는 “운동을 시작한 후부터 근육과 관절이 몰라보게 튼튼해졌고 오랜 직장생활 중
생긴 당뇨도 호전돼 지금은 병원에 출입하는 일이 전혀 없다”며 “손정준 소장이 권해준 트레이닝 프로그램 덕에 자연스럽게 식사조절과 체중감량에도
성공하게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오후 8시경. 손 소장과 아내인 윤경임 트레이너에 의해 몇 개 조로 나뉜 회원들은 간단한 스트레칭을 마친 후
지정된 벽면으로 흩어져 지시된 홀드를 하나하나 짚어나간다. 110도에서 180도에 이르는 다양한 각도의 벽면에는 스포츠 클라이머들이 선호하는
고급 홀드들이 빼곡히 설치돼 있다.트레이너 윤씨의 꼼꼼한 관리로 항상 깔끔하게 유지되는 홀드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주기적으로 배열을 수정해
회원들이 다양한 유형의 루트와 등반동작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다.
중상급자 벽면에서 훈련 중인 회원 전종환씨(37세). 유난히 다부진 몸매가 눈에 띄는 그는 작년 4월 손 소장이 관리하는
성동암벽등반공원의 스포츠클라이밍 1기 교육과정을 수료했다.
전문성이 강한 운동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접근하기가 쉽지 않았다는 그는 “인터넷을
통해 손정준암장을 알게 된 후 클라이밍에 매료돼 암장 근처로 집을 옮기기까지 했다”는 열혈 회원이다.
중·고교 시절 유도선수로 활약했고
철인 3종 경기, 마라톤, 인라인 스케이트 등 광적이라 할 만큼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하루 3~4시간의 암장훈련 후에도 별도의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만큼 대식가 기질을 타고난 클라이머로 인정받고 있다.
손 소장은 “전종환씨와 같이 어릴 적부터 강도 있는 훈련이 몸에 배어있는 사람이라도 잘못된 운동방법이나 지나친 근육사용으로 신체의
리듬이 깨지지 않도록 관리해줘야 한다”며 “충분한 휴식과 영양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훈련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지적한다.
연세대재활의학과의원 물리치료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장흥용(41세) 회원 또한 국립의료원의 응급구조사 양성과정을 이수한
스포츠의학과 재활 분야의 전문가다. 3년 전 지인을 통해 손정준암장을 소개 받았다는 장씨는 산악구조나 응급처치 등에 관심이 있어 암장운동을
시작, 지금은 손 소장의 연구논문과 저서, 선수 및 회원들의 부상관리 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는 “클라이밍이란 운동이 일반인들에게도 점차 보편화되고 있는 반면 운동 방법에 있어서는 아직도 시간과 양으로 밀어붙이는 식의
교육이 통용되고 있다”며 “이제는 등반에도 효과적인 방법과 지식을 갖추고 응용할 수 있는 전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암장 내부에는
홀드와 트레이닝보드 등의 시설 외에도 그립의 각도와 정교한 굴곡을 이용해 근육이 손상되는 것을 막고 동작과 자세를 바로잡아주는 근력운동용 벽면이
따로 마련돼 있다. 2003년 암장에 입회했다는 이석무씨(50세)는 요즘 이 벽면에서 보다 집중적인 근력 트레이닝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회원들의 신체적 특징과 성향 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 손정준 소장의 장점입니다.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각각의 회원에게 적합한 트레이닝 프로그램을 제시해주고 그 과정을 밟아가는 동안 체크해둔 특징을 다시 참고해 그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거죠.” 그는 외국어 강사로 일하느라 시간에 쫓기는 아내 신영숙씨(45세)와 틈틈이 암장을 찾고 시간을 쪼개 인수봉이나
간현암을 함께 오르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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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정준스포츠클라이밍연구소 손정준 소장. |
- 큰 부상 후 공부하는 클라이머로 변신
암장의 자체
모임인 자유등반클럽 회원 대부분은 “과학적인 트레이닝 방법이나 공부하는 트레이너의 자세가 암장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끄는 효과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한때 한국 최초 또는 최고라는 단어를 꼬리표처럼 달고 다녔던 클라이머 손정준. 그가 등반가가 아닌 ‘연구소장’이라는 직함으로
연필과 지휘봉을 서둘러 들게 된 것은 클라이머로서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택한 한 가지 방편이기도 했다. “인생을 산다는 건 무수한 길들과 끊임없이
대면하는 거라고 하잖아요. 등반이란 길을 택한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는 물론 등반을 하지 못하게 됐을 때였죠.” 후방십자인대 파열, 전방십자인대
부분파열, 측부인대 부분파열, 반월상 연골 손상. 듣기만 해서는 환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한 진단이지만 2000년 그는 큰 부상을
입었다.
태국 프라낭에서 5.14급 루트 등반에 성공하고 설악산 적벽을 자유등반으로 오른 후였다.
무리한 훈련과 등반의 결과였다.
수술대에 오르면서 그는 또 한번 기로에 서야 했다.
무엇보다 사고의 전환이 필요했고 빠르게 포기한 만큼 빠르게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공부하는 클라이머’로서의 삶이었다. 2년간 경기지도자와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을 취득했고 2002년 새로운 목표를 위해 손정준암장을 개설했다.
80~90년대 클라이밍계의 박한 양분을 흡입하며 자란 그가 이제는 토양을 기름지게 하고 씨를 뿌려 가꾸고 열매를 거둬들이는 농부의 길을 택한
것이다.
알피니즘과 스포츠 클라이밍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대한 논의가 분분할 때도 그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고산등반에서 스포츠 클라이밍에 이르는 다양한 등반방식에 대한 그의 생각은, 알피니즘과 스포츠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논하기 이전에 각각의 등반이 추구하는 목적을 보다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차원으로서의 방법론에 집중돼 있었던 것. 자누 북벽과 로체 남벽을 단독 등반한 슬로베니아의 클라이머 토모 체슨은 “이제 고산에서도 5.13급 온사이트 능력을 갖추고 테크니컬한 플레이를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말하며
“일부 알파인 클라이머들이 스포츠클라이밍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그들이 이 스포츠를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그 높은
경지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손정준암장의 회원들에게 그런 이야기들은 어차피 찬반의 도마에 오르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미지를 섭렵하고 돌아와 무용담을 늘어놓는 ‘선원’의 기질이 아니라 협소한 땅을 일구고 살아가지만 같은 행위에서 무언가 새로운
의미를 캐내고 재생산할 수 있는 ‘농사꾼’의 근성을 배워가고 있는 중일 테니까.
- “이제 클라이밍에도 학문적 연구가 필요합니다”
80년대 등반에 입문해 일찍이
스포츠클라이머로서의 길을 걸어온 손정준 소장. 코오롱스포렉스 인공암벽 트레이너로 활동했으며 119특별구조대 기술고문, 대한산악연맹 청소년위원회,
서울시산악연맹 교육이사 등을 역임하고 있다. 암장 트레이너이자 아내인 윤경임씨(사진 왼쪽) 사이에 승민(11세), 소망(10세) 1남 1녀를
두고 있다. 경기지도자 1급, 생활체육지도자 2급, 등반경기 1급 심판, 운동요법사, 퍼스널 트레이너, 피트니스 매니저 트레이너 등의 자격을
갖추고 있다.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화된 클라이밍 교육을 위해 현재 경희대 체육대학원 과정을 이수 중인 그는 “세계적으로 손색없는 암장을 설립해
다양하고 좋은 환경에서 등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 바람이며 스포츠클라이밍을 학문적 연구를 토대로 체계화시켜 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 INFORMATION
서울 성동구 금호동 4가 지하철 1호선 옥수역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있다.
암장
면적은 60여 평으로 사무실 겸 휴게실, 샤워실, 탈의실, 개인 사물함 등의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인공벽면 외에 스트레칭과 근력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트레이닝은 손정준 소장과 아내 윤경임 부소장이 맡고 있다. 초보자의 경우 손 소장이 관리하고 있는
성동암벽등반공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등반교육에 참여할 수 있다.
주말이면 회원들과 함께 선운산, 간현암 등 자연 암장에서 등반훈련을
실시하고 있으며 여름휴가에 맞춰 순례등반을 떠나기도 한다. 또 매년 1~2회 태국 치앙마이 암장이나 프라낭 등의 원정등반에도 참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