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질병은 단연 암질환이다. 예전에는 주변에서 드물다고 느껴지던 질병이었지만 이제는 주위의 친구, 친지, 심지어는 내 가족 중에서도 흔히 볼 수 있을 만큼 흔한 질병이 되어버렸다. 이는 진단기술의 발달, 평균수명의 연장, 환경변화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기인한 결과이며 현대화, 산업화, 문명화가 진행될수록 발생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종양이라 함은 정상적인 인체구조물이 아닌 이형성(異形性)을 지닌 신생물(neoplasm)을 가리킨다. 종양에는 양성 종양과 악성종양의 두 가지 종류가 있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마귀가 난다고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사마귀는 일정 정도 자라고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 한계성을 가지기 때문으로 우리는 이를 “양성종양”이라고 한다. 우리 의 손에서 손톱은 주기적으로 계속 자라나고 있는 반면 손가락은 성인이 되면 더 이상 자라나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손가락이 손톱처럼 계속 자라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도 톱으로 계속 잘라내야 할 참으로 끔찍한 상황이 초래될 것이다. 우리 몸은 각 부위마다 유전자들이 어디까지 자랄 것인가를 기억해 놓은 정보에 따라 성장을 한다. 그런데 이런 정보체계가 파괴되어 몸의 어떤 조직이 무한정 증식을 하는 것을 바로 “악성종양” 이라 한다. 이러한 제어시스템을 한의학에서는 “항해승제론(亢害承制論)”, 즉 항진된 것이 있으면 인체 조절시 스템이 이를 제어한다는 이론을 가지고 설명을 한다. 만일 제어가 이루어지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되면 “항이무제(亢而無制)”상태인 너무 지나쳐 더 이상 control 될 수 없는 상태로 치닫게 되어 결국은 신생물이 발생한다. 신생물이 형성된 것을 “극즉변(克卽變)”, 즉 “너무 극으로 치달아 더 이상 달아날 구멍이 없게 되면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암이라 함은 악성종양, 즉 무한정으로 증식하는 비정상적인 돌연변이 세포를 의미한다. 정상세포는 세포자살(apoptosis)이라는 과정을 통해 일정 정도 분열하면 증식을 멈추고 사멸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정상 세포의 유전자 끝에는 생명시계줄인 텔로미어(telomere)가 1,200개~1,500개 정도 있어서 세포가 한 번 분열할 때 마다 20개의 텔로미어가 사라지고 따라서 세포가 50~80번 정도 분열하면 텔로미어가 모두 없어져 더 이상 분열을 못하게 된다. 이를 조절해주는 유전자가 바로 p53, p21, p16 등이다. 그런데 암세포나 고환세포 등 지속적인 분열 이 필요한 곳에서는 텔로머라아제(telomerase)라는 효소가 분비되어 이 텔로미어라는 물질이 줄어들지 못하도록 해 세포가 무한정 분열을 하도록 만들어 암이라는 불사조 기형아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무한정 분열한다는 것이 바로 암의 특성이며 이로 인해 암은 전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 무서운 질병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암에 대한 흔적은 맘모스의 화석에서도 발견되었고 이집트 미이라에서도 발견된 적이 있다. 히포크라테스 시절에는 유방암에 대한 수술을 시행했다는 기록도 있다. 암이란 뜻인 “Cancer”는 희랍어 “Karkinos”와 라틴어 “Cancrum”에서 기원한 단어이며 이는 껍질이 딱딱한 “게”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암에 대해 한의학에서는 어떻게 인식했을까? 암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은허(殷墟)시대의 갑골문자(甲骨文字)에서 부터 나온다. 바위처럼 단단하다 하여 “바위 암(岩)”자를 쓰기도 했고, 또 쌓여서 생긴다고 하여 “쌓일 적(積) ”자를 쓰기도 했다. 삼국지를 보면 화타가 조조의 편두통을 뇌종양으로 진단하여 수술을 하려다 반역죄를 뒤집어 쓰고 처형당한 일화가 있고,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저술한 허준 선생님의 스승이신 유의태 선생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허준이 왕자의 위암을 치료했다는 일화도 잘 알려진 것이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암(癌)”이란 글자는 서기 1171년 송나라 “위제보서(衛濟寶書)”라는 책에 최초로 기재가 되었다. 암질환은 그 원인과 증상적 특징에 따라 식도암은 “열격(?膈)”, 위암은 “반위(?胃)”, 난소암은 “장담(腸覃) ”, 악성임파종은 “실영(失榮)” 등으로 인식되어 기록되어져 왔다. 그러면 이렇게 무한분열하는 종양세포는 왜 발생할까? 우리 몸은 60조개(6×1013)의 세포로 이루어져 있고, 매일 4억번의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우리 몸이 발암물질에 노출되거나 어떤 원인에 의해 인체 면역력이 떨어지게 되면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하게 되는데 정상적인 사람도 매일 800개 내지 2000개의 돌연변이세포가 생기게 된다. 즉 정상적인 세포도 백만분의 일의 확률을 가지고 돌연변이가 발생한다는 사실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진화를 하여 환경에 적응하고 있다. 따라서 인체 스스로는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돌연변이 세포를 만들어 내야만 하는 숙명을 가지고 있다. 암은 숙주의 자연선택에 대한 희생양(scapegoat)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발생한 돌연변이 세포를 다시 정상세포로 되돌려 주는 유전자가 바로 p53, nm23 등의 유전자이다. 하지만 인체의 면역력이 저하되거나 발암인자에 노출이 많이 될 경우 이러한 돌연변이 세포들은 제어가 안되어 결국 암화(癌化)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이를 한방에서는 克卽變(극즉변), 즉 암의 발생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암을 유발하는 원인은 크게 선천적인 원인과 후천적인 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선천적인 것은 유전자 질환이다. 대표적인 발암유전자가 바로 만성골수성백혈병을 일으키는 필라델피아 유전자이다. 사람의 염색체는 22쌍의 상염색체와 1쌍의 성염색체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9번 염색체의 긴 팔과 22번 염색체의 긴 팔의 일부가 각각 교체되어 비정상적으로 그 발현이 증폭되어 암이 발생하게 된다. 이와는 반대로 암억제유전자의 결함으로 생기는 선천적인 질환도 있다. 망막아세포종은 암억제유전자 Rb-1의 이상으로 13 번 염색체의 q14 밴드에 결함이 발견되는 악성종양이다. 이처럼 암유발유전자나 암억제유전자 등의 이상으로 인한 것을 선천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후천적으로는 음식, 환경, 스트레스 등이 발암의 원인이 된다. 이것이 정상세포에 영향을 주어 암세포로 전화될 때는 단번에 진행되지는 않는다. 즉 여러 단계를 거쳐 종국에는 암화가 된다는 것이다. 초기에 암을 유발시 키는 발암인자를 개시인자(initiator)라고 하며 중간에 암화를 촉진하는 인자를 촉진인자(promotor)라고 한다. 예를 들어 담배를 피울 경우 정상세포가 담배에 초반에 노출되면 돌연변이 세포가 발생하고 이 돌연변이 세포가 지속적으로 담배에 노출되게 되면 종국에는 암세포로 발전한다는 말이다. 같은 종류의 발암물질이 개시인자와 촉진인자로 동시에 작용할 수도 있다. 따라서 발암물질에 최소한으로 노출되는 생활습관을 가지는 것이 바로 암을 예방하는 방법인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급즉치기표, 완즉치기본(急卽治其標, 緩卽治其本)”이라는 말이 있다. 급할 때는 우선 드러난 병세를 치료해야 하고 일단 병세가 꺾인 후에는 그 근본을 치료하라는 뜻이다. 암이 일단 생긴 경우라면 급한 대로 불을 꺼주는 대증치료를 시행해야 하며, 암이 발생하기 이전 단계나 또는 전이와 재발을 막는 단계라면 근본적으로 암이 발생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만 한다. 한의학적인 변증시치(辨證施治)는 암질환을 예방하고 전이와 재발을 방지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대전대학교 부속 한방병원 한방종양과 진료교수 한의학박사 유화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