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석수 시집 {강물처럼} 출간 지나온 세월들 세월에 쓸려 이제 가물거리는 나이지만 아직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 아니 강물되어 살고 싶다 들고나는 작은 개울들 제 맘대로 졸졸거리게 두고 돌멩이 동글둥글 따라 구르거든 바닥에 그어진 화인(火印) 토닥이며 물 속 깊이 흐르면 되지 강물 흘러흘러 바다 되지만 바다가려고 흐른 것은 아니잖아 잊고 지낸 다짐이 생각나서 말이지 「강물처럼」 전문 한석수韓晳洙 시인은 195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고, 한양대학교 및 미국 아이오와대학(Ph.D.)을 졸업했다. 2009년 계간시전문지 {애지}로 등단했고 시집으로는 {커피는 알라딘 램프다} 가 있다. 교육과학부 혁신인사기획관, 충남대학교 사무국장, 충남교육청 부교육감, 충남교육감 권한대행, 교육과학기술연수원장, 교육과학부 정책조정기획관, 대학지원관, 교육정보통계국장, 교육부 대학지원실장 등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교육학술정보원 (keris) 원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한석수 시인의 두 번째 시집인 {강물처럼}은 소박하고 조촐한 일상에서 시를 길어 올린다. 그의 시세계는 지속되는 일상의 안녕과 가족의 행복을 바라며 사는 가장의 범속한 서정이 그 중심인 세계다. 그것은 “세월에 허허롭게 기대”(「바닷가에서」)인 삶이거나, “세월 속 묻혀간 세상의 그리움들”(「상사화」)인데, 이는 삶의 태도와도 연관이 된다. 그 태도를 집약해서 보여준 시가 「강물처럼」이다. “강물처럼” 흐르고 싶다거나 “강물처럼” 살고 싶다는 소망은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삶을 살겠다는 의지와 맞닿아 있다. 강물은 “바닥에 그어진 화인(火印) 토닥이며” 흐르는데, 시인에 따르면 강물이 흐르는 것은 “바다”에 닿기 위함이 아니다. 강물은 흘러가다 보니 어쩌다 “바다”에 닿는 것이다. 목적지향적 삶보다 세월의 흐름에 기대는 순리와 무위를 더 강조하는 이런 삶의 태도는 그의 시 전반에 걸쳐져 있다. 바로 그런 맥락에서 “모두에게 세월은 숙명의 마라톤”(「설날」), “길은 언제나 대지에겐 생채기 내는 일”(「길」), “잊혀짐은 가슴 아프지만 잊는 것은 슬픈 일이다”(「시월 둘째 날」)와 같은 시구들이 빛을 발한다. 한석수 시인이 즉물적 감정보다는 차분한 관찰자의 태도에 기대어 시적 탐색을 이어갈 때 서정성은 더 큰 울림을 낳는다. “외롭고 힘들 때면 기차를 타봐”라고 무심하게 시작하는 시를 읽을 때 문득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 한석수 시인의 덕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첫 구절은 많은 것들을 생략한 채 주어진다. 이 첫 구절에서 사람은 자기 안에 숨은 참 자아를 만나기 위해 자기 바깥으로 나갈 필요가 있다는 암시를 읽었다. 언제까지나 자기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자기를 알지 못한다. 자기 바깥으로 나가봐야 비로소 자기가 보이는 것이다. 아울러 자기를 안다는 것의 가치는 우주를 아는 것과 맞먹는다. 외롭고 힘들 때면 기차를 타봐 창 밖 경치만 멋있는 게 아니네 터널 지날 때면 거울이 되는구만 빤히 쳐다보는 너를 볼 수 있어 밤하늘 별처럼 어둡고 깜깜해야 보이는 거야 그래서 왕복 철길 지루해질 때면 기차도 터널을 찾는 게지 어디 기차처럼 달려본 적은 있냐구 구름 끼고 비 온 하늘에서 따스한 햇살도 쏟아지는 거야 덜컹덜컹 너를 싣고 신나게 달려봐 그래, 거기 서있는 네가 또렷이 보여 「시월 첫날 출근길」 전문 기차를 타고 출퇴근하는 이의 경험을 전달하는 「시월 첫날 출근길」에서의 발견은 “창밖 경치”의 멋짐이 아니라 기차가 터널로 들어갔을 때 거울로 변하는 차창에 비친 ‘너’의 모습에 그 초점을 맞춘다.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너’의 모습이 “어둡고 깜깜해야 보이는 거”라는 깨달음은 범속하다. 여기서 ‘너’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까 ‘너’는 ‘나’다. 기차가 터널을 통과할 때마다 어둠은 배경으로 한 차창에 또렷이 비치는 자기 얼굴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이 시는 자기 스스로를 바라보고 그 경험을 통해 객관적 성찰을 촉구한다. 자기 안에 숨은 참다운 자기를 성찰하라는 메시지는 출퇴근의 반복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으로 살지 말라는 시적 전언과 통한다. 많은 사람들이 습관의 노예가 되어 무자각의 삶을 영위하는데 바쁘다. 그들은 여행도 귀찮아하고, 책도 읽지 않으며, 음악도 듣지 않는다. 만사를 귀찮아하며 대충 살아간다. 브라질 출신의 시인 마사 메데이로스(1961~ )라는 시인은 그런 이들을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가 쓴 동명의 시에 따르면, “습관의 노예가 된 사람”, “매일 똑같은 길로만 다니는 사람”, “꿈을 따르기 위해 확실성을 불확실성으로 바꾸지 않는 사람”, “일생에 적어도 한번은 합리적인 조언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 사람”, “자신의 나쁜 운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비에 대해 불평하면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 바로 그들이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이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이미 삶의 경이와 아름다움에도 무감각해진다. 그들의 눈은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무덤덤하고, 심장 박동은 빨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감정의 고갈과 행복의 부재 속에서 겨우 숨만 쉬며 살아간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나날의 삶은 무의미한 타성의 되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 얘기했지 진정한 아름다움은 뒷모습에 있다고 오늘 보았네 그냥 걸어가는 사람 어제와 오늘을 내일이라 이름지으며 두 손 악수로 세월을 되짚더니 선한 미소 입춘지난 눈발로 던지고 가더이다 뒤돌아서니 낯익은 모습 당신은 누구시길래 눈 감고 가만가만 봄을 꼽아봅니다 「뒷모습」 전문 한석수 시인은 “진정한 아름다움은 뒷모습에 있다”라고 쓴다. 앞모습은 꾸밀 수 있지만 뒷모습은 꾸밈이 없다. 뒷모습은 존재의 질박한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참다운 시인은 앞모습이 아니라 뒷모습에서 더 드러난다. 너무 많은 집, 서류, 간판들 가운데 “그냥 걸어가는 사람”이란 바로 시인이다. 그는 어떤 재물과 명예보다 지금 이 순간의 살아 있음을 생생하게 느끼고, “눈 감고 가만가만 봄을 꼽아” 보는 데서 기쁨을 찾는 사람이다! 그들은 숲과 바람을 좋아하고, 구름과 별들에 매혹당하며, 변화무쌍한 계절 속에서 그 변화의 흐름을 좋아하고, 그것을 ‘좋아함’ 속에서 참다운 존재의 기본 감각을 느낄 줄 안다. 고독한 해변에서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며 우주의 태초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 지구가 기쁨과 웃음으로 빚어졌다는 비밀을 갑자기 깨닫는 사람, 만물에 다 저마다의 봉오리가 있음을 아는 사람, 그런 사람만이 시인이 될 수 있고, 마땅히 시인이 되어야 한다. 좋은 시인이란 정확하게 ‘서서히 죽어가는 사람’의 반대편에 서는 사람이고,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어야 한다. 봄에 피어난 첫 모란과 작약 꽃 앞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 타인의 불행과 고통에 연민하고 함께 아파할 줄 아는 사람, 평범한 사물의 인내심에 경탄하는 사람, 나를 비천하게 쓰고 버리는 운명을 향해 웃음을 짓고 저항할 줄 아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날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사람’이다. ----한석수 시집 {강물처럼}, 도서출판 지혜, 양장 값 10,000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