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제목을 참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Something in the rain.
이상한 일입니다.
한국을 떠나 사는 15년 동안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영화는 몇 편 봤어도, 드라마는 전혀 보지 않았는데
요즘 보는 것이 말이지요.
우연하게 먼저 본 '봄밤'이 좋아서 Reviews of 'One Spring Night'을 검색해봤더니
외국인들이 쓴 '봄밤'에 관한 이야기들이 참 많이 올라와있데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Something in the rain'을 비교언급하고 있구요.
'봄밤'에서 워낙 정해인이 멋있어
그래, 한 번 그가 나오는 다른 드라마를 보자!고 Something in the rain을 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힘들었네요.
물러터진 등장인물들과 오버하는 장면들 때문에.
그래서 멈췄다가
드디어 엊그제부터 다시 시작해 이틀만에 다 보다!^^
이 드라마는 2018년 3월부터 5월까지 방영이 되었었군요.
'봄밤'보다 한 해 먼저.
손예진이 참 예쁜 사람임을 발견하게 합니다.
'봄밤'에서 봤던 연기자들이 여럿인데 전혀 다른 역할들을 하고 있고.
정해인은 헤어스타일 때문인지 더 말라보입니다.
참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다양한 역할을 잘 소화해내니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 이 Something in the rain은
보기 쉽지 않은 드라마입니다.
보는 데도 감정소모가 큰 드라마.
예쁘고 행복한 장면에서
같이 녹아들고
칼을 휘두르는 듯, 거칠고 냉정한 말과 행동을 보면서
같이 찔리고 다치는 드라마.
'봄밤'에서는 아빠가 그랬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여주인공의 엄마가 그 칼잡이 역을 했군요.
'다 너를 위해서다'라는 말을 입에 달면서
사정없이 자르고 찔러대는 칼잡이.
이 서구에 살며 사람들을 지켜보니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중의 하나가 가족관계.
오래 전에는 마찬가지였겠지만
아무래도 서구가 먼저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구나.
가족보다
개개인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먼저
하다.
이곳도 완전히 자유로울 리는 없지만
그래도
누구나 만 18세가 되면
본인의 결정권을 인정하거든요.
그래서 심지어 '백신반대'논리를 가진 부모에게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어떤 백신도 맞지 않았던 아이들이
만 18세가 되면 스스로 거슬러 맞는 아이들도 봤습니다.
이제는 월세가 비싸서 부모에게 눌러사는 아이들도 있지만
만 18세가 되면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구요.
성인인데도 부모와 같이 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문화.
부모이고 형제자매이고간에
안맞으면
안보고 사는 문화.
내 결정권이 그리도 중요한 문화.
물론 이렇게 살 수 있는 길이 있어 그렇지요.
굳이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길.
국가 정책이 다르다.
이런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아마 이런 한국드라마가 이해가 안될 겁니다.
어라? 왜 저걸 참는 거야?
왜 집에서 안나오지? 따로 살면 되잖아.
왜 굳이 저런 부모를 보고 살지?
왜 저런 배우자와 아직도 같이 살고?
왜 저런 직장에 매달리고?
이해가 안되고 답답해서 이 드라마를 보다 그만둔 사람들도 많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본 사람들도 많구요.
참...
이 드라마가 오버하는 거지요?
아무리 대한민국이라도
아직도 그런 부모가 있겠나?
아직도 그런 황당한 직장상사가 있겠나?
오버했을 게다.
그러면서도 생각을 합니다.
왜 손예진이 연기한 '윤진아'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까?
직장상사들의 횡포, 특히 성추행을 10년 넘게 참았을까?
왜 독선적인 엄마의 강요를 일찌감치부터 거부하지 않았을까?
갑자기 한 친구가 떠오릅니다.
자식에게 아주 엄격했던 친구.
자식이 어릴 때부터 '말 안들으면 집을 나가야한다'고 세뇌를 시키던 친구.
10살도 안되었을 때 그 아이들과 놀면서 제 딸이 그랬었네요.
재미가 없어.
무슨 놀이를 할까? 물어도 대답이 없고
활기도 없고
모든 면에서 수동적이어서 말입니다.
완벽주의자인데다가 기가 센 부모 밑에서
기 죽어 지내는 아이들?
스스로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게 되지요.
그러다보니
잘못된 대접을 받으면서도
그 심각성을 모르게 되고.
착한 사람?
아마 맞을 겁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착하지?
몰라서.
겁나서.
제대로 알고
용감한 사람은
자신이 부당한 대접을 받도록 내두지 않는 법이거든요.
꼭 말로 받아치거나 거친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보호한다.
자신이 상하지 않도록
소중함을 지킨다.
어떻게 내가 소중한 존재임을 알게되는가?
합당한 대접을 받아봄으로 알게된다.
소중한 대접을 받아봄으로
사랑을 받아봄으로.
어느 한 생에서 이 게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요.
많은 생을 통해 깨닫게 되리라.
그래서 드디어 어떤 생에서는
날 때부터 그 깨달음을 갖고 시작하구요.
나는 소중해!
무시 받으면 안돼!
사랑 받을만해!
어릴 때부터 이런 아이들도 있거든요.
이 드라마 중에서 정해인이 연기한 '서준희'가
'윤진아'를 깨우치는 역할을 맡았네요.
누나는 예뻐.
소중한 사람이야.
정말 많이 말하고 사랑해줌으로
깨우쳐주다.
많이 노력했던 '준희'.
그도 힘이 부쳤네요.
떠났었으니.
그가 그렇게 무너진 가슴으로 혼자 떠나기 전에 '윤진아'가
결심을 했어야 했는데!
가족도 떠나고
직장도 떠났어야 했는데
그를 따라 나라도 떠났어야 했는데
못하데요.
그럴 수 있을 만큼
강하지 못해서.
크지 못해서.
그래서 죽을 만큼 마음고생을 했구요.
남동생의 결혼식장에서 '준희'를 다시 만났을 때라도
그녀는 말했어야 했습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지금이라도 기회가 있다면 다시 시작하고 싶어.
아직도 너를 사랑해.
또 못하데요.
그 후에 '준희'를 또 만났었는데도 못하고.
그런데 결국
직장을 그만두네요.
부모가 있는 지역도 떠나
먼 제주로 가고.
하지만
자신의 어리석음과 소심함에 절망하고 지친 '준희'
사랑하기에 화가 나있는 '준희'에게 가는 것이 아니라
또 도망을 치다.
그런 '진아'이지만
그래도 이전에 비하면 많이 강해진 거지요.
부모도, 직장도 떠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이제는
'준희'를 다시 볼 준비가 되다.
'준희'를 따라갈 준비가 되다.
'봄밤'을 보면서는 14회쯤 되니 나머지 두 편은 안봐도 되겠다 싶을만큼 편안해졌는데
이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그 편안함을 안줍니다. 너무 짧은 해후.
이 드라마를 보면서 지친 사람들을 위로해주지 않는다.
힘을 회복할 시간을 주지 않다.
오히려 '준희'가 사과하고 있구요.
내가 다 잘못했어.
미안해.
한 번만 봐줘.
정말 윤진아 없이는 못살겠어.
고개가 흔들어집니다.
아니, 너는 할 만큼 했었어!
네가 한 사과, 사실 '진아'가 네게 했어야 해!
하지만 아네요.
강한 사람이 먼저 사과하고
강한 사람이 먼저 용서하게되는 것을.
나이는 어려도 '준희'가 훨씬 강한 사람이니
그리했을 게다.
다행입니다.
해피 엔딩이라서.
하지만 짧은 해후가 아쉬워서
그 마지막 장면을 여러번 돌려 다시 봤구만요.ㅎㅎ
아무튼 이 두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들을 외국인들도 많이 하고 있음에 놀라네요.
제가 지적한 문화적, 사회적 시각차이는 역시 그들도 지적하구요.
요즘 만 스물다섯인 제 딸이 제게 삐져서 말도 잘 안합니다.
다행이지요.
그래, 마음에 안들면 그렇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이 맞다.
'윤진아'처럼 안 큰 것이 얼마나 다행이냐!ㅎㅎ
에고, 2021년 마지막 날을 이런 글로 시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