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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영화보기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매바우
1916년, 시카고 슬럼가의 제철소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빌(Bill: 리차드 기어 분)은 우발적으로 공장장을 살해하고 여동생(린다 만츠 분)과 애인 애비(Abby: 브룩 아담스 분)를 데리고 도망친다. 텍사스까지 흘러든 빌 일행은 떠돌이 노동자들과 함께 수확철의 밀 농장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빌은 사람들에게 애비를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이들이 남매인 줄로만 안 젊고 병약한 농장주(The Farmer: 샘 셰퍼드 분)는 애비에게 청혼한다. 우연히 농장주와 의사의 대화를 들은 빌은 농장주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는 지긋지긋한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욕심에 애비에게 농장주와 결혼하도록 설득한다.
두 사람의 결혼으로 빌 일행은 농장주의 집으로 옮겨가 한적하고 아름다운 대농장에서 꿈같은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나 금방 죽을 거라는 빌의 예상과는 달리 농장주의 병세는 악화되지 않고, 시간이 지날수록 빌과 애비의 관계는 모호해진다. 한편 둘의 관계를 눈치챈 농장주는 배신감과 분노를 삭이는 가운데 애비의 마음 속엔 차츰 농장주에 대한 사랑의 감정이 싹트게 된다. 이듬해 수확철을 앞두고 거대한 메뚜기떼가 습격하여 밀 농장을 뒤덮는, 잘못 던진 불씨로 인해 농장은 하룻밤 새에 잿더미가 된다. 이 와중에 빌과 애비가 함께 있는 것을 목격한 농장주는 빌에게 덤벼들고, 빌은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르고 도망치는 신세가 되는데.
풍경사진 속의 삶 <천국의 나날들>
정지된 이미지인 사진과 그 이미지가 연결된 영화. 정지와 움직임의 사이에서 영화는 무엇을 담고 있을까요. 브레히트가 "사진도 거짓말을 할 수 있다"며 2차대전 시기의 사진들에 주석처럼 시를 써서 붙였던 것처럼, 영화는 이미지들을 모아 이미지안에 숨어있는 삶의 이야기에 숨결을 불어넣습니다.
신화가 되어버린 테렌스 멜릭의 영화 '천국의 나날들'. 영화는 1900년대 초반 미국의 풍경을 담은 빛 바랜 사진들을 하나하나 나열하면서 시작합니다. 이미 오랜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그 순간의 이미지들 속에서 살아있는 삶을 끄집어내고 있습니다. 20년도 더 지난 영화이지만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과 녹슬지 않은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미국 역사상 가장 촬영을 아름답게 했다는 영화
화면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숨막히는 매혹을 주는 영화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바람에 출렁이는 황금빛 밀밭, 떼지어 달려가는 말들, 푸른 하늘 아래 한가히 떠있는 구름, 노을 속의 실루엣. 영화는 자연과 삶의 한 순간을 포착, 마치 정지된 이미지인 사진이나 그림을 보여주듯이 한 장면 한 장면 완결된 이미지의 향연을 펼쳐 보입니다. 그 아름다운 풍경만으로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되죠. 마치 후기 인상주의 화풍을 보듯 빛과 색의 섬세한 조화 속에서 그려지는 자연과 풍요로운 추수. 하지만 그 풍경 이면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삶은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습니다. 대개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는 영화들이 그 이면에 숨겨진 사회와 삶의 모순들을 감추지만, 이 영화는 아름다운 풍경과 삶의 모순들을 자연스럽게 모두 끌어안고 있습니다. 자연, 삶, 죽음이 포괄하고 있는 아름다움, 혼돈, 모순, 억압, 풍요, 질투, 광기 등이 놀랍게도 한 작품 안에 녹아있는 거죠.
미국의 산업혁명 시대, 열악한 공장지대에서 저임금에 시달리던 빌(리처드 기어)은 시비가 붙은 십장을 두들겨 패고는 연인 애비(브룩 애덤스)와 어린 누이동생 린다(린다 맨스)와 함께 무작정 도망칩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마치 유럽의 성과도 같은 거대한 밀 농장. 그 곳에서 빌은 두 여자가 모두 누이동생이라고 속이고 일감을 얻게 됩니다. 매일 매일 고된 노동 속에서 쉴 틈 없이 일해야 겨우 일당을 받는 비참한 현실. 하지만 감독은 악덕 지주와 살기 어려운 농민들이라는 이분법으로 그 현실을 그리고 있지 않습니다.
시한부 생명을 살고 있는 지주(샘 셰퍼드)는 애비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되고, 비참한 삶에서 탈출하는 방법은 이것뿐이라고 빌이 말하자 애비는 지주와 결혼을 하게 됩니다. 갑자기 바뀐 삶과 환경. 일하지 않고 매일매일 자연과 벗삼아 놀아도 되는 생활. 그때가 '천국의 나날들'이었을까요. 아니면 희망 하나 없이 고된 삶이었지만 빌과 애비가 연인으로 함께 했던 순간들이 '천국의 나날들'이었을까요.
애비는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하는 지주에게 점차 사랑을 느낍니다. 아니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풍족한 생활 때문인지도 모르죠. 원래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랑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르니까요. 진실이 어느 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아무튼 이 위태로운 평화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빌과 애비의 관계를 의심하기 시작한 지주는 점차 광기에 휩쓸려갑니다. 벌레 떼의 습격을 받고 불타오르는 밀밭. 휩싸이는 연기와 화염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검은 실루엣의 사람들. 그리고 죽음과 짧은 도주. 이 모든 상황에서 희생자는 있지만 가해자는 없습니다. 빌을 쫓는 사람들이 생각하듯이 빌과 애비가 돈을 노리고 사기결혼을 한 후 지주를 죽이고 달아난 것은 아닙니다. 뛰어넘을 수 없는 계급 때문인지, 사랑에 눈먼 질투 때문인지... 왜 그런 비극이 일어났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주 단순한 삼각관계일지도 모르는 스토리. 하지만 영화는 린다라는 어린 소녀의 내레이션으로 이끌어가면서 인간들의 비극적인 삶조차 한 발자국 떨어져 자연의 풍경처럼 관조할 수 있게 합니다. "인간의 반은 천사고 반은 악마"라는 린다의 내레이션처럼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인간이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이끌려 빚어진 의도하지 않은 비극. 이 앞에서 우리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진실이란 과연 언표화될 수 있는 것인가에 대해 철학적인 성찰을 계속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감독이 20년의 긴 침묵을 깨고 만든 영화 '씬 레드 라인'에서 아름다운 자연과 비참한 전쟁 사이에 선 인간이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물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자연광을 이용한 촬영과 더불어 젊었을 때의 리처드 기어의 연기를 보는 것도 또다른 즐거움입니다. 풍경과 심리를 정확하게 잡아내는 엔리오 모리꼬네의 음악도 인상적이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