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된 농업의 비극은 동물의 주관적 욕구는 무시하면서 객관적 욕구만 잘 챙긴다는 점이다.
이 이론이 옳다는 사실은 적어도 1950년대 이래 알려져 있다.
미국 심리학자 해리 할로가 원숭이의 발달을 연구한 덕분이었다.
할로는 갓 태어난 원숭이들을 출생 몇 시간 만에 어미와 떼어놓았다.
새끼들은 우리에 가둬진 채 인형 어미의 젖을 먹엇다.
할로는 두 종류의 인형을 배치했는데,
하나는 철사로 만들어졌고 새끼들이 빨아먹을 수 있는 우유병이 달려 있었다.
또 하나는 나무로 제작해 겉에 천을 띄운 것으로 진짜 어미 원숭이를 닮았지만
새끼들에게 물질적인 자양분을 전혀 줄 수 없었다.
새끼들은 아무것도 주지 않는 천 엄마보다 영양을 공급하는 철사 엄마에게 매달릴 것이라고 예상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새끼원숭이들은 천으로 된 엄마를 훨씬 더 좋아했고,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냈다.
두 엄마가 가까이 놓여 있으면 심지어 철사 엄마에게서 우유를 빨기 위해 목을 뻗으면서도 천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다.
할로는 새끼들이 추워서 그러는 것은 아닐가 싶었다.
그는 철사 엄마의 내부에 전구를 장착해서 열으 내게 했다.
그러나 아주 어린 새끼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새끼는 계속해서 천 엄마를 좋아했다.
▲ 할로의 고아 원숭이가 철사 엄마의 젖을 빠는 동안에도 천 엄마에게 매달려 있다.
후속 영구 결과, 할로가 고아로 만든 새끼들은 필요한 모든 영양을 제공받았음에도 성장 후 정서장애가 생겼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런 원숭이들은 원숭이 사회에서 결코 적응하지 못햇고,
다른 원숭이와 소통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높은 수준의 불안과 공격성에 시달렸다.
결론은 뚜렷했다.
원숭이는 물질적 필요를 넘어서는 심리적 필요와 욕구를 지니고 있음이 틀림없고,
만일 이런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매우 큰 고통을 받는다.
할로의 새끼 원숭이들이 젖도 안 주는 천 엄마의 품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한 것은
이들이 젖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유대도 찾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후 몇십면 동안 수없이 많은 후속연구가 이루어져,
이 결론은 원숭이뿐 아니라 여타 포유류와 조류에까지 적용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오늘날 수백만 마리의 가축이 할로의 원숭이와 동일한 환경에 처해 있다.
농부들은 일상적으로 송아지를 비롯해 온갖 새끼들을 어미에게서 떼어내 고립 상태에서 사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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