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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초원의 나라 몽골,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낭만과 한민족의 始原 바이칼호수(2011. 7. 30 - 8. 7.)
1. 서두
푸르른 대초원의 나라 몽골, 그리고 낭만이 깃든 시베리아횡단열차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맑은 호수 바이칼!
여행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해보고 싶은 여행지이다. 이곳에는 끝없이 펼쳐진 테를지 국립공원의 푸른 추억과, 시베리아를 힘차게 달리는 기차, 창 밖에 비치는 시베리아의 드넓은 평원, 한없이 맑고 푸른 호수 바이칼의 진면목을 고스라이 담을 수 있는 여행지이기 때문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보기 어려운 지역이었으나 지금은 누구나 자유롭게 여행을 할 수 있어 이번에 고교동창생 다섯 부부와 하나투어여행사에서 만난 한 부부와 모두 12명이 여행을 할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번 여행코스는 몽골의 울란바타르에서 시작하여 테를지 국립공원의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초원을 느낀 후 꿈과 낭만이 깃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일컬어지는 러시아의 이르쿠츠크를 거처 한민족의 시원(始原)으로 알려진 세계에서 가장 깊고 맑은 호수 바이칼, 그리고 그 안에서 제일 큰 섬인 알혼섬 탐사까지로 되어 있다.
2. 몽골과 러시아
몽골(Mongol)은 징기스칸의 후예들이 만든 푸른 초원의 나라로 공식명칭은 몽골리아(the Republic of Mongolia)이고, 수도는 울란바타르(Ulan Baator)이며 인구는 280만 명인데 울란바타르에 120만 명이 모여 산다.
면적은 한반도의 7.5배이며 러시아와 중국 사이의 중앙아시아 고원지대인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내륙 국가로 평균고도가 해발 1,580m에 이르며 동남쪽 고비사막이 국토의 21%를 차지하고 있다. 여름은 15℃-35℃로 일교차가 심하고 7, 8월에는 가끔 백야현상도 볼 수 있다. 경제수준은 우리나라의 80년대 수준이다.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진 붉은 제국, 매서운 눈보라가 사계절 계속해서 몰아칠 것만 같은 동토의 나라 러시아! 그러나 영화 “백야”와 “닥터 지바고”의 낭만으로 애틋하게 기억되기도 하는 곳이다.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Moscow)이고 인구는 1억5,000만명이며 100여개의 소수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로 세계에서 제일 넓어 동서 지점 간 11개의 시간대를 사용하고 있는데 10월경부터 시작되는 겨울에는 아침 8시경 해가 뜨고 오후4시경 해가 지며, 6월부터 시작되는 여름에는 모스크바 등 북구 도시에서 백야 현상이 나타나고 밤 11시가 지나야 해가 지기 시작한다.
세계 최대의 철도 왕국으로 철도 노선도 길고 나라가 큰 만큼 철도의 중요성도 큰데 1992년이 되어서야 러시아 국내의 외국인 여행제도가 철폐되면서 외국인도 자유롭게 러시아 국내의 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3. 여행의 시작
2011. 7. 30(토) 여행의 부푼 마음을 안고 인천공항 도착.
오후 6시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하나투어 여행사에서 나온 가이드 이지현 씨와 이번 여행을 같이 하게 될 일행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하였다. 오후 8시15분 이륙한 비행기 창가로 인천공항과 주변 가로등의 모습이 그림같이 아름답다.
몽골의 수도 울란바타르 징기스칸 국제공항에 예정시간보다 약간 늦은 10시 30분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의 시차는 우리나라보다 한 시간 늦다. 이 공항은 해발 1,350m에 위치하며 현재의 온도는 16℃로 시원한 정도이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 밖으로 나오니 현지가이드 허서 씨가 기다리고 있다. 허서 씨는 몽골인으로 몽골대학교 한국어과를 졸업하고 한국에서 1년 정도 생활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말에 아주 익숙하다. 공항을 떠나 20여분 거리인 PALACE HOTEL에 도착하니 로비에서 몽골 복장을 예쁘게 한 아가씨들이 춤을 추며 반긴다.
2011. 7. 31(일)
9시에 버스로 호텔을 출발하였다. 오늘부터 드디어 몽골여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날씨는 서늘하여 여행하기에 좋은 계절임을 실감케 한다. 왕복 4차선으로 되어 있는 도로를 따라 시내를 통과하는데 도로는 포장한지 오래되어 많이 부서진 상태이며 도로 좌우에 있는 주택들의 모습도 많이 낡은 모습이다. 오른쪽 멀리 세계자연유산으로 처음 등재 되었다는 높이 2,255m의 벅트산이 안개에 싸여 신비롭게 보인다.
20여분 지나 도울강을 건넜다. 옛날에는 물이 많아 넓은 강이었으나 사막화가 진행되어 강폭이 많이 좁아 졌다고 한다. 도시를 벗어나니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방목되고 있는 말, 소떼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한 시간을 더 달려 징기스칸 청동기마상에 도착하였다. 이 기마상은 푸른 초원 허허벌판 가운데에 있는데 징기스칸이 15세 때 여기서 첫 번째 전쟁을 시작하였고 처음으로 말을 모는 채찍을 받은 곳이라고 한다. 높이 40m되는 말위에 징기스칸이 타고 있는 모습의 기마상은 마두가 징기스칸의 고향을 향하도록 서 있는데 마두에는 사람들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사방을 조망할 수 있게 되어 있다.
반시간 쯤 달려 테를지 국립공원 입구 언덕에 있는 “오워”라고 하는 샤머니즘의 성황당에 도착하였다. 돌무덤위에 깃발을 세워 놓고 여러 가지 색깔의 천을 감아 놓은 것인데 각자의 소망을 비는 것이라고 하며 바닥에는 동전들이 많이 던져져 있다.
샤머니즘의 성황당(오워)
우리는 성황당을 구경하고 툴강의 돌다리를 건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테를지국립공원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바위, 산, 초원, 그리고 강이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관광지로 몽골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툴강은 요사이 물이 많이 줄어들기는 하였어도 아직도 맑은 물이 힘차게 흐르고 있으며 이 강물이 바이칼호수까지 흘러간다고 한다. 툴강 주변으로는 깨끗한 별장들이 줄지어 서 있는 제법 큰 마을이 있는데 이곳은 몽골 부유층들의 여름별장이라고 한다. 우리들은 잠시 툴강 강가를 걸으며 야생화를 감상하는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출발하였다.
반시간 쯤 지나 거북바위에 도착하였다. 거북 모양의 큰 바위가 있어 이를 보려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바로 아래에 모자, 신발, 장신구 등의 기념품을 파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인다.
테를지 국립공원의 거북바위
12시 반경 우리는 숙박지인 게르에 도착하였다. 게르는 유목생활을 하던 몽고인들의 전통가옥으로 생활 형태에 맞추어 이동하기에 편한 천막식의 주거형태를 정착시킨 것인데 주된 재료는 느릅나무과 같은 단단한 나무와 펠트라 부르는 양털이다.
게르 내부의 구조는 북서쪽에 불단을 놓고 신성한 곳으로 여기며 출입구를 기준으로 왼쪽은 남자가 오른쪽은 여자가 차지하게 되어 있어 마구나 무기 등은 남자자리인 왼쪽에 놓고 조리기구 등은 여자자리인 오른쪽에 놓는다. 게르 내부는 세면대나 화장실이 없는 원룸식으로 중앙에 난방이 가능한 난로가 있고 잠을 잘 수 있는 침대정도가 구비되어 있다.
게르 내부의 모습
우리는 야채, 감자국, 돈까스 등으로 푸짐하게 마련해 준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맛있게 하고 조금 떨어진 초원에서 말 경주대회 연습을 하고 있는 것을 구경하였다. 10살도 안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말안장도 없이 여유 있게 말을 타고 경주연습을 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나이를 먹으면 말을 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도 넓은 초원이 있는 평원으로 이동하여 승마체험을 하였다. 한사람씩 조심스럽게 말을 탔는데 평탄한 초원이라 별 어려움 없이 즐겁게 승마체험을 하였다.
말 경주연습을 하는 어린이
아! 이 넓은 초원을 이곳 사람들은 소, 말과 함께 공유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부러운 생각마저 든다.
오후 5시 게르에 다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앞산 언덕에 올랐다. 온갖 이름 모를 꽃들이 저마다 아름다움을 뽐내고 언덕에 펼쳐져 있는 게르의 모습들이 한 폭의 그림 같다. 게르 뒤에 있는 언덕에 올라보니 초원 가운데 이곳에서 하나뿐인 골프장의 모습이 아련히 보인다.
게르 숙박지의 모습
조금 있으니 한 무리의 젊은 남녀 관광객들이 말을 타고 언덕을 올라와 옆 마을로 내려간다. 말을 타는 모습이 무척 여유로워 보인다.
저녁 식사는 허르헉이라는 양 훈제요리가 나오는데 양고기를 큼직하게 잘라 감자, 당근 등의 야채와 함께 양철통에 넣은 후 불에 달군 돌을 통에 넣고 뚜껑을 닫아서 1시간 정도 익힌 후 먹는 요리로 양갈비가 매우 푸짐하고 맛도 좋았다. 우리는 보드카를 한잔씩 하며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9시가 넘어서 캠프파이어를 하였다. 훨훨 타오르는 불 주위로 사람들이 둘러서서 노래를 하였다. 일본 관광객 한 무리가 같이 어울리게 되었고 한국노래와 몽골노래, 일본노래를 번갈아 부르면서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드디어 불도 꺼지고 모두 게르로 들어가니 주위에는 어두움이 찾아오고 하늘에는 별이 총총, 신비스러운 몽골의 밤이 깊어간다.
게르 숙박지의 캠프파이어
2011. 8. 1(월)
8시반경 일찍 출발하여 유목민 마을에 도착하였다. 유목민들이 게르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서 말 우유를 발효시킨 마유주를 한잔씩 마시고 치즈도 한 조각씩 맛보았다. 한쪽 벽에는 소가죽으로 크게 만든 푸대가 걸려 있고 그 안에는 발효중인 마유가 가득 들어 있다.
소가죽 부대속에서 발효중인 마유
다시 출발하여 20여분 지나 테를지 국립공원 지역을 나오게 되었다. 도로는 포장이 안 되어 버스는 많이 털털거리고 먼지를 많이 날리고 있다.
한 시간 쯤 이동하여 “간단 테그친렌 수도원”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높이가 26m나 되는 동양 최대의 불상이 모셔져 있는 라마교 사원인데 공산주의 시대에 절을 모두 없애 버렸다가 최근에 다시 지은 것이라고 한다. 참배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 붐비는데 마당에는 수많은 비들기가 관광객들이 던져 주는 먹이를 먹느라고 분주하다.
간단 테그친렌 수도원
30여분 이동하여 자연사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이곳은 몽골 자연 생태계 식물과 동물들의 박재, 거대한 공룡화석, 물고기, 새, 꽃, 나비, 곤충, 조개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박물관으로 우리나라와 교류가 많아 큰 전시실 한 칸에는 한국의 식물사진을 전시해 놓고 있다.
12시 반 이화정이라는 한국인 식당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였다. 김치찌개와 김치 등 반찬이 맛도 있고 푸짐하다.
식사 후 수헤바타르 광장에 도착하였다.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로 광장의 중앙에 국회의사당이 있고 건물 전면 중앙에 큰 징기스칸의 동상이 좌정하고 있다. 광장 중앙에는 몽골을 독립시킨 스쿠바틀의 동상이 서 있고 광장 주변으로는 시청사 등 현대식 건물들이 많이 지어져 있다. 몽골의 국회의원은 모두 76명인데 그중 여성이 5명이라고 한다.
국회의사당 앞 징기스칸 동상
부근에 있는 백화점에 들렀다. 식품부에 가서 보드카를 사려고 하였는데 오늘은 1일이라 술을 팔지 않는다고 한다. 사람들이 술을 너무 많이 마시기 때문에 매월 1일은 어디에서도 술을 팔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외국 관광객이라고 하여도 안 된다고 하는 것을 보니 무척 철저하게 잘 시행되고 있는 것 같아 좋은 제도를 만들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어 카시미어공장에 들렸다. 이곳 털은 품질이 매우 좋다고 하며 염소털로 만든 옷이 양털보다 훨씬 좋은 것이라고 한다. 고기는 양고기가 염소고기보다 훨씬 비싸다고 하니 반대인가 보다.
3시에 복트칸 궁전에 도착하였다. 1893-1903년에 걸쳐 지어졌는데 몽골 제국의 왕인 8명의 복트칸 중 마지막 왕이었던 복트칸 8세가 1924년 죽을 때까지 20년을 살았던 곳이다. 복트칸이 끝나게 된 것은 공산주의 체제의 몽골 정부가 어떠한 윤희도 금지를 시켰기 때문에 더 이상 몽골의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박물관 내에는 6개의 사원이 있는데 왕궁답게 그 규모나 소장품은 매우 훌륭하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안되는지 궁전은 많이 퇴색하였고 마당에는 풀이 무성하다. 하나의 방에는 비단에 수를 놓은 옛날 스님들의 작품과 옛날에 쓰던 물건, 불상 들이 전시되어 있고, 8세 왕이 사용하던 방에는 의자와 조그만 탁자, 왕의 불상, 왕의 선생의 불상, 그리고 중앙에는 1대 복트의 불상이 전시되어 있다.
복트칸 궁전
작은 문으로 연결되어 있는 겨울 별장에는 1층 입구에 왕이 사용하던 가마와 5리터, 10리터 크기의 마유주 그릇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왕이 소유하고 있던 코끼리의 장식이 전시되어 있는데 장식이 무척 화려하다. 왕이 동물을 좋아해서 선물로 동물이 많이 들어 왔다고 하며 왕은 이들을 박제로 만들어 큰 방 두 곳에 전시해 놓았는데 그 종류가 다양하고 수량도 무척 많다.
옆방에는 표범 150마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게르가 옛날 사용하던 형태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임금이 사용하던 햇빛가리개와 마차 등도 전시되어 있는데 그 장식이 매우 화려하다. 2층에는 접견실이 있고 왕비의 옷과 왕비가 사용하던 침대와 의자, 그 당시 사용하던 장비들과 금실로 짜여진 왕의 옷과 왕관, 훈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국세, 담배, 부싯돌, 젓가락, 칼 등이 있고 80마리의 까만 여우털과 166마리의 밍크 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왕의 옷 두벌, 700마리의 밍크가죽으로 만들었다는 왕과 왕비의 용상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어 정말 화려하였던 옛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오후 6시에는 몽골의 전통 민속 공연을 관람하였다. 180여석 정도 되는 공연장이 만석인데 거문고 비슷한 악기와 타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는 두 사람의 청아한 소리가 매우 아름답다. 한사람의 남자 출연자가 기타처럼 생긴 악기를 가지고 연주하면서 부르는 저음의 특이한 노래 가락이 흥겨웁고 관중들의 반응 또한 뜨겁다. 이어지는 여섯 명의 합동연주와 노래, 남녀 두 쌍의 춤, 남녀 세 명의 악기공연과 춤이 흥겨웠고, 여성 무용수 한사람은 몸의 부분들이 너무나 자유자재로 움직여 다리를 완전히 구부려서 얼굴을 감싸는 등 다리와 허리가 뼈 없는 듯 움직이니 안타까운 느낌마저 든다. 가면 춤에 이어 전 출연자의 마지막 인사공연으로 1시간 반의 공연이 끝났는데 기대이상의 좋은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특식인 몽골리안 바비큐로 맛있는 식사를 하고 나니 바쁜 하루가 지났는가 보다.
2011. 8. 2(화)
모처럼 여유 있게 호텔을 출발하여 자이산 승전기념탑에 올랐다. 이 탑은 1945년 소련이 몽골 연합국과의 제2차 세계대전 승리와 몽골 사회주의 혁명 50주년을 기념하여 1971년에 몽골에 기증한 것이다.
자이산은 울란바타르 시내와 툴 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높은 위치에 있는데 계단을 올라가 보니 정상에는 크게 원형의 틀을 만들어 놓고 전쟁시작부터 승리하기까지의 과정을 돌 모자이크로 그려 놓았다. 사방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데 남쪽 전면으로는 아파트와 빌딩들이 보이고 뒤편으로는 산비탈 곳곳에 게르의 모습이 보이는 시골풍경으로 도시와 시골이 혼재되어 있는 모습이다.
자이산 승전기념탑
계단으로 언덕을 내려와 그 옆에 있는 이태준열사의 기념공원에 도착하였다. 2001. 7월 몽골 국가에서 기증한 2,000평 부지에 만들어진 기념공원으로 조그마한 기념관이 있고 이태준 열사의 가묘가 조성되어 있다. 이태준 열사는 세브란스 의학교를 졸업하고 1914년 몽골에 들어와 몽골인의 각종 질병치료에 헌신하여 몽골사회에서 “하늘이 내린 의사”로 존경 받았으며 마지막 복트왕의 주치의로도 활동하였다. 또한 의열단 단원으로서 일제 타도를 위한 각종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는데 1921년 러시아 혁명의 와중에서 일본군과 연계된 백계 러시아군에 의하여 살해 되었다.
이태준열사 기념공원
오전 11시20분 “서울의 거리”를 통과하여 소양강 식당에 도착, 이른 점심을 먹었는데 된장찌개와 제육볶음이 나온다. 서울의 거리는 한국에서 예산을 지원하여 만든 거리로 길가에 기둥을 세우고 “서울의 거리”라고 써 놓았으며 조그마한 정자도 만들어 “서울정”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았다.
오후 1시경 울란바타르 기차역에 도착하였다. 러시아의 이르쿠츠크까지 가는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려고 하는데 승무원이 열차 승차 입구에서 열차표를 확인하고 승차시킨다. 열차는 한 칸에 4명이 사용하게 되어 있고 2층으로 되어 있다.
울란바타르 기차역
오후 1시 50분 기차는 정시에 소리 없이 출발한다. 잠깐 도심을 지나자 시골의 푸른 초원이 이어지고 멀리 점점으로 보이는 게르의 모습이 이채롭다. 뜨거운 햇살아래 건초를 준비하는 농부들의 모습에서 겨울이 다가 오는 것이 느껴지고 넓고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초원은 몽골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가슴속까지 시원한 느낌이다.
어둠이 내리려 하니 우리는 저녁식사를 해야 할까 보다. 기차에서 뜨거운 물을 잘 공급해 주기 때문에 준비해 가지고 간 햇반, 라면과 누룽지탕에 김치, 김, 깻잎 장아찌 등으로 푸짐한 식단이 되었다.
저녁 9시가 되니 어둠이 내리고 10시경 몽골 마지막 국경도시인 수흐바타르 역에 도착하여 출국수속을 하느라고 잠시 기다렸다.
저녁 11시가 넘어 러시아의 첫 국경도시 나우쉬키 역에 도착하였다. 입국심사를 하는데 너무 철저히 하니 시간이 많이 소요 된다. 2층에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도 모두 내려오라고 하고 의자도 들어 확인하고 2층에 짐 싣는 곳도 올라가 확인하고 개를 데리고 들어와 칸마다 세밀히 점검한다. 이렇게 철저한 입국심사를 하게 되는 것은 몽골에서 비자없이 무단으로 러시아에 입국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지만 관광객으로서는 많이 불편한 일이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화장실이 밑으로 열려 있어 열차가 역 근처에 가까워지면 화장실 문을 잠가 버리기 때문에 불편한데 입국심사 시간이 길어져 역에 있는 화장실을 사용하려고 하니 사용료를 받고 있다.
입국심사로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열차는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이 다시 출발한다. 창밖으로 비치는 맑은 하늘에는 별이 총총하다.
2011. 8. 3(수)
오전 7시경 잠에서 깨어 보니 장난감 같이 조그만 집들의 모습이 보이고 잘 생긴 소나무 숲과 이어서 자작나무 숲의 모습이 아름답다. 차창가에 스쳐가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라면과 햇반으로 아침식사를 하였다.
오전 8시경 울란우데에 도착하여 잠시 밖에 나가 바람을 쏘였다. 30분을 쉬고 기차는 다시 출발한다. 넓은 들판과 숲속으로 길게 이어진 도로에 간혹 한 대씩 지나가는 자동차의 모습 뿐, 사람들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려운 시골, 끝없이 펼쳐진 평원에는 자작나무 숲이 무성하다.
오전 10시경 바이칼 호수가 보이기 시작한다. 시베리아의 넓은 평원이 끝없이 이어지고 호수 주변으로는 가끔씩 목조형 주택들이 모여 있는데 호수의 끝은 보이지도 않는다. 이 구간이 시베리아 횡단열차 구간 중 가장 아름답다는 환바이칼 구간이라고 하는데 호수와 평원이 교차로 나타나 그림 같은 모습들이 연출된다.
12시 햇반으로 식사를 하였다. 기차는 바이칼 호수를 따라 쉬지 않고 달리는데 아름다운 호수의 모습을 느긋한 마음으로 앉아 감상할 수 있어 우리는 행복한가 보다.
바이칼호수 전경
오후 1시가 되니 바이칼호수의 최남단에 위치한 슬류지얀카역에 도착하였는데 잠깐 쉬는 역이라고 하차승객 이외에는 내리지 못하게 한다. 시골 할머니들이 바이칼 호수의 명물이라는 오물 훈제와 딸기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있다. 기차는 다시 출발하여 자작나무 숲과 그 사이로 길게 뻗은 철로를 따라 달리는데 건너편 산에도 뱀처럼 길게 이어지는 철로의 모습과 화물차의 모습이 아련히 보인다.
오후 3시가 넘어 해바라기, 감자 등을 경작하는 마을이 나타나고 목조 가옥들의 모습이 보이는데 지붕의 경사가 매우 심하다. 겨울에 눈이 많이 오기 때문에 지붕에 눈이 쌓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오후 3시 40분 우리 열차여행의 종착역인 이르쿠츠크 역에 도착하였다. 열차역을 나오니 현지가이드 김지영 씨가 반갑게 맞아 주었다. 이곳은 동시베리아의 오지로 전문가이드가 없어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이곳에 유학중인 학생 가이드가 안내를 하게 된다고 한다.
이르쿠츠크(Irkutsk)는 “힘센 사나이”라는 뜻으로 바이칼 호의 남단, 앙가라강과 이르쿠트 강의 합류점이 되는 시베리아의 한 가운데 위치하며 이르쿠츠크주의 수도이다. 인구 67만명, 면적 306㎢이며 대륙성 기후로 엄동설한의 시기가 길다. 1652년 코사크의 부대가 모피 등을 구하기 위해 정착하기 시작하였고 1686년 시 정부가 세워졌는데 풍부한 천연자원을 배경으로 시베리아 개발의 중심지로 발전해 왔다.
이르쿠츠크의 특산물은 보드카, 초콜렛, 사간달리, 차가버섯, 자작나무 공예품이다. 보드카는 14세기경부터 옥수수 등 곡물을 증류하여 만들기 시작하였는데 바이칼 호수가 있는 곳 답게 바이칼이라는 보드카가 기념하기 좋고 , 초콜렛은 한국보다 당도가 높아 더 맛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사간달리라는 것은 이르쿠트 강의 발원지인 사얀산맥에서만 생산되는 차로 향이 매우 진한데 피로회복에 좋아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좋다고 하며 차가버섯은 자작나무에서 나온 버섯으로 몸에 자연 치유력을 회복해주며, 자작나무 공예품은 시베리아인 이곳 특유의 기념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르쿠츠크시는 시베리아 문화의 보물창고로 불리운다. 도시의 중심에는 스파스카야교회, 바가블레니야교회, 폴란드 성당 등 목조건물과 석조건물이 아름답고 훌륭하게 조화를 이루고 수많은 역사적인 기념물과 문학작품이 보존되어 있다고 하는데 “갈매기”로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러시아의 작가 안톤 체흡이 이르쿠츠크를 “시베리아의 파리”라고 처음 명명하여 유명해 졌다.
우리는 천천히 시내로 이동하는데 도로에는 전차와 버스가 혼재되어 운행되고 있어 어수선하다. 여름에는 낮이 길어 해는 아침 5시40분경 뜨고 저녁 10시가 되어야 진다고 한다. 앙가라강을 지나 도시로 진입하는 도로는 차가 많아 정체가 심한데 지나가는 버스의 앞과 옆에 “간석시장행”이라고 씌여진 글씨가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운행하던 중고차를 수입하여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후 4시가 넘어 즈나멘스키 사원에 도착하였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여자 수도원으로 지금은 러시아정교회로 사용 중인데 목조건물이었으나 1762년 목조 건물을 대신한 석조건물이 되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알렉산드로 꼴착제독의 동상이 서 있다. 꼴착은 1917년 볼세비키 혁명의 반대편인 백군으로 마지막까지 저항했는데 우리에게는 “제독의 여인”이라는 영화로 많이 알려진 사람이다. 1920년 2월 반혁명자로 총살되어 앙가라강에 시체를 던져 놓은 것을 그의 추종자가 이 광장에 옮겨 놓았기 때문에 그 자리에 이 동상을 세웠다고 한다.
사원 입구에 들어가니 건물 옆에 무덤이 이어져 있다. 데카브리스트의 난으로 처형된 귀족들의 묘가 있는 곳으로 이르쿠츠크를 시베리아의 파리라 불리우는데 크게 공언한 예카테리나 여사의 무덤과 이르쿠츠크 첫 번째 주교였던 이노켄트의 무덤, 러시아 최초로 알레스카반도를 발견하여 러시아의 콜롬버스로 불리우는 쉘레호프의 무덤 등이 이어져 있다. 사원 내부는 아름답게 꾸며져 있고 전면 제일 위에 십자가상, 그 밑으로 많은 성인들의 그림이 배치되어 있다.
즈나멘스키 사원
20분 정도 이동하니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이다. 1800년대 나폴레옹 군이 패망한 후 승리한 러시아의 젊은 장교들이 자유주의 사상에 젖어 1825. 12월 14일 혁명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였으나 이 혁명은 1917년 러시아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때 혁명을 일으켰던 젊은 장교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칭한다. 그 이유는 러시아어로 12월이 데카브리인데 혁명이 12월에 일어났다고 하여서 12월 당원이라는 뜻을 가진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이 박물관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라는 소설의 주인공 모티브가 되었던 제카브리스트 중 한명인 발콘스키가 직접 설계하고, 유배생활을 하였던 집이다.
데카브리스트 박물관
2층으로 올라가서 첫 번째 방에는 그 당시 혁명에 가담하였다가 처형되었던 다섯 명의 그림이 판화로 전시되어 있고, 다른 방에는 발콘스키의 부인 마리아 여사 등 혁명에 실패하여 유배생활로 끌려갔던 혁명가 부인의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제카브리스트들은 유배와 동시에 귀족의 자격이 박탈 되었는데, 그 당시 그들의 부인들에게 특별법이 떨어졌다. 그것은 유배 간 남편과 특별한 절차 없이 이혼을 하고 재가를 해 귀족신분을 유지할 수 있는 것과, 아니면 귀족 작위를 박탈당하고 남편을 따라 유배지로 가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부인들은 남편을 선택했고 시베리아의 설원을 해쳐가는 고통 속에 남편을 따라 유배를 선택했다.
다른 방에는 발콘스키 딸의 방으로 탁자와 의자가 있고, 한편에는 빨리 수도로 돌아갈 수 있게 해달라고 딸이 기도하던 장소가 있다. 옆방은 발콘스키의 서재인데 데카브리스트 전사들이 활동하던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옆에 있는 발콘스키 부인의 방에는 그 당시 사용하던 가구 다수와 1700년경 생산된 포르테피아노(전 세계에 두 대뿐으로 하나는 독일에 있다고 함)가 전시되어 있다.
1층 식당 방에는 “사모바르”라는 주전자처럼 물을 데워 먹을 수 있는 장비와 식탁이 있고 다음 방은 발콘스키의 방으로 불란서어로 된 큰 신문책자와 발콘스키의 어머니 그림과 훈장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옆방은 연회장으로 바이올린, 피아노 등이 전시되어 있는 넓은 공간인데 여기가 이르쿠츠크를 “시베리아의 파리”라는 문화의 도시로 불리우게 되는 계기가 되는 장소로 여기서 연주회와 발표회를 하였으며 지금도 가끔 연주회를 여는 장소로 이용된다고 한다. 옆방은 아들의 방으로 책장, 사진이 전시되어 있고 데카브리스트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로 러시아에서 제일 사랑받는 작가 푸쉬낀의 동상이 있다. 그리고 옆에 손님을 영접하는 방이 이어져 있다.
발콘스키가 귀족 작위를 박탈당하고 유배생활을 하면서도 이렇게 넓은 부지위에 큰 집을 유지하면서 옛날의 귀족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문화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조부가 모스크바 대학을 설립한 로모노소프로 대단한 명문 집안이었으므로 처가에서 계속 지원을 해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20분 정도 이동하여 폴란드 가톨릭교회에 도착하였다. 1830-1860년대 폴란드 정치 해방자들이 혁명에 실패하고 유배를 와서 의지하려고 세운 교회인데 목조건물이 화재로 소실되어 19세기 건축양식인 네오고딕의 석조 건물로 다시 세워진 것이라고 한다. 이르쿠츠크에서는 오르간 홀로도 유명하다. 그 옆에 시베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물인 스파스카야 교회(구원의 교회)가 있는데 새로 건축 중이어서 들어가지는 못하고 밖에서 관람하였다.
오후 5시40분 베츠뉘이 아곤(영원의 불)에 도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희생된 병사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만들었고 가스를 사용하여 1년 내내 불을 밝힌다고 한다. 이어지는 “늙은 군인의 길”에는 2차 대전 때 큰 공을 세운 벨라바라도프 장군의 동상이 있고 공원사이로 이르쿠츠크를 대표하는 건물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러시아 정교회가 보이는데 300여가지의 타일을 사용하여 만들어졌고, 소련방 시대에는 빵공장, 기숙사 등으로 쓰였다고 한다.
베츠뉘이 아곤(영원의 불)
“늙은 군인의 길” 끝에는 다리가 있고 다리 건너편의 이르쿠츠크강으로 이어지는데 다리 난간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매어 놓은 열쇠가 많이 매달려 있다. 여기는 앙가라강이 이르쿠츠크강과 만나는 지점으로 강물의 수량이 많고 유속이 빨라 겨울에도 얼지 않는다고 하며 이 강이 흘러 에니세이강을 만나고 흑해까지 흘러간다고 한다.
늙은 군인의 길
오후 6시 끼로바공원 광장을 지난다. 광장의 중앙에 주 정부 청사가 크게 자리 잡고 있는데 공산주의 혁명 후 종교 말살정책으로 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카잔성당을 헐고 주정부 청사를 지은 것이라고 하며 그 잔해를 끼로바공원에 묻었기 때문에 공원의 높이가 1cm 높아졌다고 한다.
이어 인도키타이라는 식당에 도착하여 저녁식사를 하였다. 현지 식을 하는 식당인데 내부를 매우 아름답게 장식해 놓은 품위 있는 식당이다. 감자와 고기를 썰어 넣어 만든 살리얀까라는 국과 야채샐러드, 치킨, 차가 나오는데 맛도 좋고 분위기도 좋아 기분 좋게 식사를 하였다.
7시반경 칼막스 거리를 통과하여 알렉산드로 3세 황제의 동상이 있는 노동자 광장에 도착하였다. 1908년 광장의 한편 앙가라강변에 만들어 놓은 이 동상은 시베리아 횡단열차가 블라디보스톡으로부터 상뜨 페테르부르그까지 전 구간이 이어지기를 염원하는 뜻으로 동쪽을 향하도록 세워졌다고 한다.
알렉산드르 3세 황제 동상
시베리아 횡단열차 건설의 필요성은 1874년 러시아 교통부장관 포시에트가 연해주 지역을 탐사한 후 극동지역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이 지역에 대한 개발을 위하여 필요성을 제기하였고, 알렉산드로 3세에 의하여 시작하게 되었던 것인데 그 당시에는 많은 건설비용 조달 등의 어려움으로 반대가 많았지만 지금은 러시아의 번영과 단결을 가져다 준 큰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베리아는 타타르어로써 “잠들어 있는 땅”이라는 뜻인데 러시아에서 유럽에 속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으로 우랄산맥에서부터 태평양 연안까지 동서로 7,000km, 남북으로 3,500km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러시아는 21개 공화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유럽 19%, 아시아 81%가 되므로 유라시아라고 부르는데 시베리아의 통상적인 의미로는 극동 쪽을 제외한 지역을 말하기도 하지만 러시아 지역은 대부분 시베리아라고 보면 된다. 러시아인은 이 무한히 펼쳐져 있는 대지에 16세기부터 개발을 시작하였지만 지금도 옛날과 변함없는 신비적이고 자연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감동을 받게 된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러시아의 땅이 너무 넓어 이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위대한 시베리아의 길”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에서 극동의 군항 블라디보스톡까지 9,298km로서 세계 최장이다. 처음에는 9,288km이었으나 나중에 모스크바 부근에서 10km를 연장하였는데 발트해 연안 상트 페테르부르그까지 포함하면 약 1만km가 된다.
1891년 처음 공사가 시작되어 1903년 1차로 첼랴빈스크에서 블라디보스톡에 이르는 철도가 완공되었고, 착공 25년 후 아들 니꼴라이 2세 때인 1916년 아무르철도 공사를 마지막으로 전 구간이 완공되었다. 상, 하행이 격일로 운행되며 옴스크, 이르쿠츠크, 치타, 하바로브스크 등 76개의 역이 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는 세 구간으로 나누어지며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톡 구간과 모스크바에서 고비사막 쪽을 거쳐 가는 베이징 구간과 모스크바에서 몽골을 거쳐 베이징까지의 구간이다.
2011. 8. 4(목)
오전 9시 호텔을 출발하여 바이칼호수로 향하였다. 시베리아의 푸른 평원이 끝없이 펼쳐지고 잠시 후 “호무또바”라는 별장 지역을 통과한다. 소련방 때 별장을 나누어 주었기 때문에 빈부의 차이와 관계없이 대부분 별장을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도로는 왕복 2차선인데 포장상태가 좋지 않아 차가 많이 흔들려 피곤하기는 하여도 도로 양쪽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목초와 야채의 경작지가 시베리아의 드넓음을 볼 수 있어 여행길은 한없이 즐거운 기분이다.
우리의 버스는 드넓은 평원을 계속 달린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을 만난 듯 푸른 초원은 야생화의 천국이다. 마치 꽃밭을 가꾸어 놓은 것처럼 여러 가지의 야생화들이 형형색색 아름답고 이어지는 소나무와 자작나무의 거대한 숲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오전 9시 50분 “우스쩨아르다” 지역의 성황당에 도착하였다. 큰 장승에 소원을 기원하는 “잘라아”라는 천 조각을 곳곳에 붙여 놓았고 바닥에는 성의를 표시하는 사람들이 던져 놓은 동전이 많이 흩어져 있다. 여기서부터 부리야뜨(Buryatia)인의 자치구가 시작되는데 이곳은 기가 굉장히 센 곳이라 성황당을 만들어 놓고 소원을 기원하는 것이며 이들의 영적 세계를 샤먼이 총괄한다고 한다.
부리야뜨(Buryatia)는 몽골의 직계 후손이며 부리야트 고유의 언어를 사용하는데 우리말과 같은 알타이어계로 분류된다. 이르쿠츠크 시도 부리야뜨의 땅이었는데 러시아에게 빼앗겨 끝까지 투쟁하였으나 실패하였고 현재는 러시아의 자치구로 승인되었다.
잠시 후 바얀다이 마을에서 잠시 휴식을 하고 12시 넘어 옐란cml 마을에 도착하였다. 식당이 있는 휴게소로 우리는 미리 준비한 도시락을 먹기 위하여 국을 주문했는데 빨간 무우 채를 넣어 만든 국으로 국물이 붉은 색이라 아무도 먹지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버스는 출발하였다. 방목하는 소가 길을 막아 이를 피하느라고 기다리기도 하고 먼지가 앞을 가리는 비포장 도로도 통과하여 두 시간 정도 피곤한 여행 끝에 바이칼호수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하여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오후 3시 10분 모터 수리 정비소라는 뜻을 가진 MRS마을에 도착하였다. 바이칼호수 안에 있는 알혼섬으로 들어가는 선착장 마을로 제법 많은 목조 건물들이 모여 있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깔끔한 느낌이 든다. 선착장 주변에는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여러 개 모여 있고 바이칼호수에서 다이빙을 하는 러시아여인의 모습이 이채롭다.
바이칼호수의 “바이”는 샤먼이라는 뜻이고 “칼”은 넓은 호수, 풍부한 호수라는 뜻인데 바이칼호수는 러시아 시베리아 남동쪽, 이르쿠츠크와 부리야뜨(Buryatia) 자치공화국 사이에 위치하며 2,500만 년 전에 생성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호수이다. 제일 깊은 곳의 수심은 1,637m로 세계에서 가장 깊고, 전 세계 인류가 40년을 먹고 살 수 있는 수량이라고 한다.
면적은 31,500㎢로 남한 면적의 1/3정도이며 남북 길이 636km, 최장 너비 79.5km, 둘레 2,200km에 이르며 336개의 강물이 흘러 들어오는데 나가는 수로는 앙가라강 뿐이다. 1,080종의 식물과 1,550종의 동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포유류인 바이칼 바다표범을 비롯하여 담비, 수달, 시베리아 족제비, 고라니, 흰꼬리수리, 새매부엉이 등 다양한 희귀 동식물을 볼 수 있다. 또한 1급수에만 살고 있는 하리우스(열목어)와 철갑상어도 살고 있는데 특히 오물이라는 생선은 바이칼 호수에만 있는 특산품이다. 오물은 사람들이 즐겨 먹는 생선으로 어족 보호를 위하여 하루에 한 시간만 잡을 수 있다고 한다.
호수인 바이칼에만 유일하게 살고 있는 “네르빠”라고 하는 바다물개는 배꼽이 3개인데 산란기는 2-4월로 바이칼이 얼으면 발톱으로 얼음을 긁어 얼음집을 만들고 새끼 1-2마리를 낳는데 처음에는 하얀 색깔이다가 자라면서 바다물개의 검은빛이 나는 고유색갈이 된다. 주식은 “깔야망까”라는 물고기인데 이 물고기는 햇빛을 보면 녹아버리기 때문에 물속 깊은 곳에서 살다가 밤에만 올라오므로 이때 잡아먹는다. 바이칼호수에는 27개의 섬이 있으며 그중 가장 큰 섬이 알혼섬이고 두 번째로 큰 섬이 우시칸섬인데 이곳에는 바닷물개인 네르빠의 서식지이다.
바이칼호수는 자체적으로 정화하는 능력이 있어 청정호수로 유지될 수 있다고 하며 호수의 가장 깊은 곳까지 생물이 살고 있는 신비한 호수로 40m 깊이까지 들어다 보이는 수정처럼 맑은 물과 여름이면 갖가지 색상의 야생화들이 호숫가를 뒤덮어 가히 “시베리아의 진주”라 불릴만한 가치와 아름다움을 간직한 곳이다.
오후 4시가 넘어 바지선을 타고 알혼(olkhon)섬으로 들어갔다. 바지선에는 여객실이 따로 없고 배에 자동차를 20여대 싣고 그 옆에 사람들이 탄다. 배를 타는 순서는 처음에 경찰관, 소방관 등 공무원이 타고 그 다음 주민이 타고 다음에 관광객이 타게 되어 있다고 한다. 들어오고 나가는 차량들이 길게 늘어서 있어 배가 여러 번 오가야 모두 건널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차량들 틈에 끼어 배를 타고 알혼섬으로 들어갔다.
알혼(olkhon)섬은 부리야트 어로 “메마르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이라는 뜻인데 세계에서 스위스의 다보스 다음으로 일조량이 많은 곳이다. 면적이 716㎢, 길이 72km로 제주도의 절반정도의 크기이며 호수 내에 있는 27개의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고 호수 내에 있는 섬으로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이다. 바이칼호수 내에 있는 섬 중에서는 유일하게 사람이 살고 있는데 5개 마을에 인구는 1,500명 정도로서 우리는 그중 가장 큰 후지르 마을에서 숙박을 하게 되어 있다.
여기서 특이한 것은 코리아가 알혼섬으로부터 기원되었다는 이야기를 한다. 지금으로부터 3만 년 전 빙하기에 아프리카에서 북방 몽골로이드가 동쪽으로 이동하던 중 빙하기를 만나 알혼섬에 갇혔다가 빙하기가 끝나자 동남쪽으로 내려와 부여를 세웠고 고구려의 시조 동명왕이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를 코리 칸(고구려 왕)이라 부르게 된 것이 코리아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현재 이곳에서는 코리 칸의 유물 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으며 샤머니즘과 부족신앙도 우리와 비슷하여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20여분 걸려 알혼섬에 도착하니 승합차 두 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무척이나 낡은 승합차는 우리를 태우고 척박한 들판가운데로 이어진 비포장도로를 무서운 속도로 달린다.
반시간쯤 달려 하가다이라는 성황당에 도착하였다. 길가에 있는 큰 소나무에 “잘라아”라고 하는 천 조각을 걸어 놓고 소원을 기원하는 곳으로 주변에는 동전이 많이 흩어져 있다.
조금 후 한호이 호수에 도착하였다. 바이칼 속에 있는 또 하나의 호수인데 얄가 마을에 있어 얄가 호수라고도 한다. 바이칼호수와는 모래사장으로 갈라져 있는데 자동차가 이 모래사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차를 타고 들어와 수영도 하며 휴식을 하고 있다. 이 호수의 물은 옆에 있는 바이칼호수의 물과 3℃차이가 난다고 하여 우리는 실제로 두 곳의 물을 만져보고 온도의 차이를 느껴 보았다.
오후 6시 후지르마을에 도착하였다. 알혼섬 내에 있는 5개 마을 중에서 가장 큰 마을로 우리가 숙박을 할 곳인데 가옥들은 모두 나무로 지어져 있다.
먼저 민속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초등학교 학교 내에 있는 박물관인데 선생님과 학생들이 같이 만든 작품을 전시해 놓았다고 한다. 바이칼의 지도, 5년 전 알혼섬에 전기가 들어오게 된 과정이 전시되어 있고, 미싱, 자수, 꽃병과 여우, 설치류, 철갑상어, 하리우스, 독수리, 순록, 물개 등 알혼섬에서 살고 있는 짐승들의 박재와 각종 농기구가 전시되어 있으며 게르와 같은 모양의 “유르따”라고 하는 나무로 만든 고전 가옥의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이어서 승합차를 타고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부르한 바위를 구경하였다. 부르한은 신 또는 샤먼을 통칭하는 말로 이 바위는 알혼섬의 상징이다. 옛날에 톈그리라는 신이 아들 13명을 데리고 이곳에 왔는데 그 중 가장 힘이 센 후테바바이칸이라는 아들이 이곳에 궁전을 세웠다고 하며 이곳은 기가 센 곳으로 말발굽소리도 못 내게 하는 등 사람들이 신성시하였고 처녀들이 이곳을 다녀가면 임신을 할 수 없다고 하여 처녀들은 못 오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곳이 징기스칸의 무덤이라는 설이 있어 실제로 발굴 작업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오후 7시20분이 되어서야 우리의 숙박지인 우싸지바 발료자 통나무집에 도착하였다. 가정집 같은 목조 빌라인데 집 둘레에 밭을 만들어 호박, 오이, 양배추, 감자, 토마토 등을 재배하고 있는데 농작물이 너무 싱싱하게 잘 자라고 있어 상쾌한 기분이다.
방은 조그마하고 아무 시설도 없으며 화장실, 세면대는 밖에서 공동으로 사용하게 되어 있는데 물은 물배급차로부터 배급받아 사용한다고 한다. 벽에 매달아 놓은 통속에 물을 부어 놓고 손으로 누르면 물이 흘러나오게 되어 있는데 익숙하지 않을뿐더러 양도 넉넉하게 사용할 수 없어 매우 불편하다. 물론 샤워는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5년 전 전기시설을 할 때에도 환경보호 때문에 찬반 양론이 있어 겨우 공사를 하게 되었는데 상수도는 주민들이 반대해서 시설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저녁식사는 러시아 전통식인데 감자볶음, 오물찜, 감자탕국물, 빵, 야채 등이 나온다. 식사 후 아직 해가 지기에는 이른 시간이라 호숫가를 산책하였다. 저녁 9시반경 호수너머 산꼭대기에 해가 넘어가려고 한다. 호수에 길게 비친 황금빛 햇살과 주변의 산이 호수와 어울리면서 조용한 저녁시간이 된다.
2011. 8. 5(금)
아침을 먹은 후 승합차 2대에 나누어 타고 알혼섬 관광을 시작하여 반시간 만에 하란cml에 도착하였다. 악어바위, 갈매기 섬이 보이고 호수 건너편에 바이칼의 얼굴바위가 보이는 곳인데 바위의 모습이 마치 사람의 얼굴 모습과 같다. 이어 푸른 초원사이로 난 좁은 비포장도로를 달리고 달려 10시경 뻬씨얀까에 도착하였다. 러시아 혁명 후 유배자들의 포로수용소가 있던 곳으로 유배자들이 오물을 잡아 수출을 하던 오물공장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조그만 가옥 두어 채 만 있을 뿐이다. 호수물이 무척 맑고 깨끗한데 물은 얼음물 같이 차갑다.
한 시간 반을 지나 사간후슌에 도착하였다. 호숫가에 삼형제바위라고 하는 큰 바위 세 개가 나란히 서 있다. 전설에 의하면 옛날에 왕에게 아들 독수리 삼형제가 있었는데 사람고기는 먹어서는 안 된다는 왕의 명령을 어기고 아들들이 사람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벌을 받아 바위로 변해 버렸다고 한다. 우리는 호수와 바위를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주변의 푸른 초원에서 잠시나마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12시 조금 지나 알혼섬의 최북단 하보이 곶 이정표다. 이곳에서 하차하고, 우리는 좁게 이어지는 섬의 끝 지점을 20분정도 걸어서 하보이 곶 최북단 하보이 곶에 도착하였다. “하보이”는 송곳니라는 뜻인데 이곳은 알혼섬의 최북단으로 바이칼호수 중 폭이 가장 넓은 79.5km에 해당되는 지점이며 바이칼호수 중에서 넓은 바다라고 부르는 “발쇼에 모례”와 작은 바다라고 부르는 “말로예 모례”가 나누어지는 지점이다. 넓은 호수의 끝은 보이지 않으며 호수는 좌우로 둥글게 이어진다. 섬 끝자락에 있는 큰 나무에 천 조각을 많이 걸어 놓고 소원을 비는 모습이 보이고 주위에는 많은 동전들이 흩어져 있다. 우리는 망망대해와 같은 호수의 위용에 감탄하며 보고 또 보다가 아쉬운 발길을 돌린다.
점심시간이다. 우리는 다시 하보이 곶 이정표가 있는 곳에 돌아오니 기사님들이 아침에 숙박지에서 가지고 온 재료로 오물국을 끓이고 빵으로 식사를 준비해 준다. 우리는 누룽지탕과 햇반, 빵으로 어릴적의 소풍 나온 기분에 젖어 야외에서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돌아올 때는 갈 때와 반대편 쪽으로 내려간다. 처음에 도착한 곳이 사랑의 언덕이다. 바위가 하트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아이가 없는 부부가 이곳에서 부부관계를 맺으면 아이가 태어난다고 하며 관광객들이 무척 많이 와서 사진을 찍느라고 바쁘다. 바다와 같이 큰 호수라 바람도 세다고 하는데 사람이 서 있기가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세게 분다.
30분쯤 걸려 우주릐만에 도착하였다. 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인데 호수와 접해 있는 지역이라 호수에 발을 담그고 휴식을 좀 취하려고 하였는데 주변과 물속에 소와 말의 똥이 너무 많아 냄새도 나고 지저분하여 그냥 출발하였다.
숙소에 돌아와 저녁을 먹고 사우나를 하였다. “바냐”라는 러시아식 전통 사우나인데 사우나실 안에 있는 난로에 장작불을 피워 난로를 뜨겁게 만들고 난로에 물을 뿌려 수증기를 나게 해서 온도를 높이고 그 안에 들어가 사우나를 하는 식이다. 이때 자작나무 잎(베닉)으로 등을 두드리면 자작나무 향이 몸에 배어 향기롭다고 한다. 우리는 물을 뿌려가며 서로 자작나무 잎으로 등을 두드려주었는데 수증기 조절이 서투르다 보니 사우나실의 온도가 너무 뜨거워 30분 만에 사우나를 끝마쳤다. 한바탕 땀을 빼고 난 후의 맥주 한잔에 모두 흐뭇한 기분이다.
2011. 8. 6(토)
아침식단은 계란, 치즈, 쌀죽이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려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승합차로 한 시간 정도 걸려 부두에 도착하여 들어올 때와 같이 바지선을 타고 육지에 다시 돌아오니 우리가 타고 왔던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를 타고 부슬비가 내리는 비포장도로를 한 시간 가량 달렸다. 비포장도로에 비까지 와서 차는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넓은 초원에서 방목하고 있는 소들이 가끔 우리의 길을 가로막곤 한다.
오후 2시가 넘어 우스찌아르다 마을에 있는 부리야뜨 전통식당에 도착하였다. 부리야뜨 자치구의 시작으로 벌판 한가운데 식당만 하나 있다. 그러나 규모가 매우 크고 관광객들로 식당이 매우 혼잡하다. 만두같이 고기를 속에 넣은 “뽀즈”라는 부리아뜨의 전통음식과 닭고기를 넣은 국과 빵, 야채, 돼지고기 구운 것 등이 나오는데 모두 먹을 만하다.
오후 네시 넘어 이르추크츠 시내에 있는 까잔성당 옆을 지났다. 지금의 주정부 청사 자리에 있던 까잔성당을 이곳에 옮겨 복원했다는 설이 있는데 외모가 매우 아름답다. 시내를 지나자 도로 양쪽으로는 빽빽하게 들어선 자작나무 숲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 도로는 깨끗하게 잘 포장된 왕복 4차선 도로로 이곳에서 가장 좋은 도로라고 하는데 1958년 리스트비앙카에서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러시아 후루시쵸프와의 정상회담이 예정되어 있어 서둘러 이 도로를 건설하였는데 그 회담이 성사되지는 못하였다고 한다. 보아도보아도 보이는 것은 도로 양쪽으로 쭉쭉 뻗은 아름다운 자작나무의 숲이다.
오후 5시가 되어 딸찌 박물관에 도착하였다. 자작나무 숲속 깊숙한 곳에 있는 야외의 목조 박물관인데 강가라 댐 건설로 수몰된 지역에 있던 러시아 사람들의 집을 옮겨 복원해 놓은 곳으로 한국의 민속촌과 같은 곳이다. 모두 목조건축물로 추운 지역에 있던 집들이라 출입구는 높고 작게 만들어 머리를 숙이고 들어가게 되어 있고 통나무와 통나무 사이에 이끼를 끼어 넣어 틈을 막은 모습이 보인다. 박물관의 전체 규모가 무척 넓어 유리공장, 교회, 학교 등이 있고 옛날의 성벽이 일부 남아 있는데 이것도 모두 큰 통나무를 깎아 만든 목조 건축물이다.
꼴짝제독을 그린 영화 “제독의 연인” 의 촬영 장소인 영화촬영소가 있고 샤먼이 살았던 집을 재현한 샤먼의 집이 있는데 그 집 앞에는 말을 매어 놓는 말뚝이 있다. 이 말뚝은 모두 세 칸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하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말을 매는 칸이고, 하나는 샤먼이 말을 매는 칸, 하나는 일반인이 말을 매는 칸이라고 설명을 한다. 박물관 뒤쪽으로는 앙가라 강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다.
한 시간 넘게 박물관 관람을 하고 다시 출발하여 리스트비앙카 선착장을 향하였다. 우리가 지나는 강의 중간에 보이는 샤먼바위라는 큰 바위를 경계로 바이칼호수와 앙가라 강이 나누어 진다고고 하며 앙가라강 건너편 멀리 보이는 마을이 관광열차 구간인 환바이칼 지역이라고 한다. 슬루지앙카에서 뽀르트 바이칼역까지 89km에 해당하는 구간으로 지난 3일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오면서 울란우데 역을 지나 두 시간쯤 지난 지점에서 보았던 곳인데 1950년-1959년 앙가라댐 건설로 수몰된 시베리아 횡단열차구간을 관광용으로 개발하여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별도로 운행한다고 한다. 시속 20km로 운행하며 중간 중간 아름다운 곳에서 1시간씩 정차한다고 한다. 앙가라강 댐은 압록강발전소의 두 배에 해당하는 66만kw를 생산하는 큰 댐이다.
오후 6시 반 “낙엽송”이라는 의미를 가진 리스트비앙카 선착장에 도착하였다. 우리는 조그마한 유람선을 타고 훈제 오물을 안주로 하여 보드카를 한잔씩 하며 바이칼호수를 유람하였는데 날씨가 추워 서둘러 내렸다. 잠시 주변에 있는 골목시장에 가서 인형, 악세사리, 과일, 생선 등을 구경하였다.
오후 8시가 넘어 소나무와 자작나무 숲에 둘러싸인 식당에 도착하였다. 앙가라강을 끼고 공원과 산책길이 아름답게 이어져 있으며 깨끗하고 조용한 식당으로 음식도 맛있게 나온다. 우리는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앙가라강 너머로 넘어가는 석양과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식당 주변을 산책하였다. 이제 여행이 끝났구나 하는 아쉬운 마음이다.
밤 12시 경 이르쿠츠크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새벽3시 공항을 이륙, 아침 6시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니 여행이 끝났다.
아! 넓고 푸른 대지여, 바다같이 넓고 푸른 호수여.......
4. 글을 마치며
많은 기대와 부푼 가슴을 안고 출발한 이번 여행이 이렇게 끝났다. 짧은 기간에 먼 길을 거쳐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왔다. 세상은 넓고 우리가 모르는 세상은 너무나 많다. 여행은 이래서 좋은 것인가 보다.
기차 1박, 게르 1박, 알흔섬의 통나무집 2박 등 숙박지가 열악하고 비포장도로의 장거리 이동 등 힘든 여행이었지만 푸르름이 넘치는 테를지 국립공원, 그림 같은 게르 마을에서의 켐프파이어와 푸른 초원에서의 승마체험, 시베리아횡단 열차의 낭만, 끝없이 펼쳐지는 시베리아의 초원과 소나무, 자작나무 숲의 장관,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이라고 하는 바이칼호수의 거울같이 맑고 푸른 물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끝으로 시베리아 횡단열차, 바이칼호수, 시베리아의 모든 것에 관하여 열심히 안내를 맡아 주었던 가이드 김지영 씨에게 감사를 드리며 이글을 마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