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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플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읽고
저자는 1905년 오스트리아생으로 유대인이다. 빈 대학에서 신경정신과 교수를 역임했고,의학과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3년 간 지냈고,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과 아들러의 개인심리학에 이은 정신요법 제 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를 창시했다. 그는 1997년 92세에 삶을 마감했다.
책의 구성을 보면 강제수용소에서의 체험과 로고테라피의 기본개념에 대한 소개로 나뉘어 진다. 저자는 수용소 체험을 통해 ‘인간은 그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임을 깨닫고, 삶에 허무와 좌절을 겪는 정신질환자들에게 ‘삶의 의미와 책임을 깨닫게 해 주는’기법으로서 로고테라피를 만든 것이다.
아우슈비츠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로 희생된 유대인수는 600만명으로 추정되고 있다.44년 08월 어느 하루는 한 소각로에서 2만 4천명이 희생당한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단위의 소각과정이 이루어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3시간. 치클론 B가스로 사망케 이르는 시간은 대략 15~20분. 가장 약한 사람은 아래에 그래도 힘이 쎈 사람은 그 위로 차곡차곡 싸이면서 죽어간다고 한다. 이 소각장이 초기에 실체를 들어내지 못한 이유는 시체를 처리했던 사람들도 나중에 전원 소각처리됐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수용소에서 살아나올 확률은 28명중 1명 꼴이었다 한다.
나찌즘 선전장관인 괴벨스는 ‘유대인의 관리는 인도적 과업이 아니라 외과적 과업’이라 선언했고, 42년에는 유대인에 대한 인위적 절멸을 선언했다. 그러한 배경하에서 세워진 수용소는 보통의 생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모습을 보여 주게 된다. 수용소에 잡려 들어온 사람들은 나찌 장교의 손놀림 하나로 생사가 가려지고, 그나마 노동능력이 남아있는 사람들은 추위,배고픔,중노동,카포와 관리자들에 의한 검시와 폭력으로 절망적인 삶을 살아간다.
저자도 수용소에서 중노동에 대부분 처해졌고 나중에는 발진티푸스에 걸린 몸으로 요양소에서 의료 자원봉사자로 일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한 인간으로서, 정신의학자로서 보고 듣고 몸으로 몸소 겪은 바를 담담솔직하게 책에 기록하였다.
다음은 책을 읽으며 인용하고 기억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정리한 것이다. 한번 읽어 보시라.
I. 수용소 생활에서 사람들이 보이는 반응의 단계
1. 수용소에 들어온 직후
우선 충격적인 모습을 갖는다. 저 멀리 굴뚝이 보이고 연기가 보이고 ‘아우슈비츠’라는 팻말을 보는 순간 사람들은 죽음을 직감했을 것이다. 그러나 ‘집행유예 망상 delusion of reprieve:사형선고를 받은 죄수가 처형 직전에 집행유예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망상’이라고 사람들은 그래도 일망의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다. 그러나 수용소 입소과정에서 그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젊은 나찌장교에 의해 그들의 생사는 한 순간에 갈리고 말았다.
2. 수용소 생활 동안
극한의 고통과 절망속에 떨어진 그들은 상대적인 무감각의 단계에 빠지고 정신적으로 죽은 것과 다름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한다. 처음에는 ‘집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고 한다. 혐오감과 모멸감으로 몸을 움추려 들었고, 어떤 일에 대해 정상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옆에서의 기합과 폭력을 봐도 감정이 무뎌져 그것을 담담하게 바라보게 된다는 것이다.
죽음을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의 패턴이 있는데 그 시작은 체념상태에 빠지는 것이란다. 그 사람은 새벽 5시 기상시간에 남들과 같이 일어나지 않고 자신이 눈 똥 오줌이 묻은 볕짚 위에 누워 있는다 한다. 그리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담배를 핀단다. 이는 ‘의미를 찾을 의지가 없어지고 순간적인 쾌락의 추구가 뒤를 잇는다.’고 표현된다. 그는 48시간 이내에 죽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하에서도 삶의 존재이유와 의미를 찾고 끝까지 시련을 견딘 사람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존엄성을 잊지 않고 죽어간 사람도 있다고 한다.
3. 석방되어 자유를 얻은 후
수용소에 갑자기 감시자들이 사라져도 자신들이 진짜 자유를 얻었는지 깨닫지 못했고 그 사실을 진실로 알게 되었어도 기쁨의 감흥은 없었다고 한다. 그들은 처음에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그리고 말을 한 없이 풀어내면서 마음의 중압감을 털어내고서야 해방감을 느꼈다고 한다.
이인증(depersonalization 離人症)이라는 것이 있다. 석방된 죄수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으로 극도의 정신적 억압에서 갑자기 풀려남으로써 도덕적 정신적 손상을 유발하는 경우를 말한다. 원색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은 수용소에서의 야만성의 영향을 받는다. 그는 자유로운 상황이 되니 주변에 쉽게 잔인하게 행동한다. 나도 당했는데 이 까짓쯤이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옳지 못한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기가 그들에게 옳지 못한 짓을 할 권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일깨워 줘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또한 극적으로 살아남아 꿈에도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정작 사람들은 자신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고 ’비통과 환멸‘에 빠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상투적인 표현에, 감정결핍이 너무 혐오스러워 마침내 구멍으로 들어 가듯이 모든 사람들을 만나려하지도 않고 목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는‘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후일담을 들으며 “고통과 시련의 극한까지 간 경험 끝에 돌아온 새로운 일상의 삶에도 시련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이야기 한다. 우리는 시련의 끝에 깨달은 것은 ‘이 세상에는 두려워할 존재는 신외에 아무것도 없다는 것’임을
II.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뎌낼 수 있다. 니체.
III. 인간에 대한 구원은 사랑을 통해서,그리고 사랑 안에서 실현된다.(78쪽)
- 이 세상에 남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며 여전히 더 말 할 나위없는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새벽에 일하러 행군을 하는 대열에서 누군가 아내이야기를 꺼낼 때 모두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게 되었을 때 때때로 나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별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어가고 아침을 알리는 연분홍빛이 짙은 먹구름 뒤에서 서서히 퍼져 가고 있었다. 하지만 내 머리 속은 온통 아내 모습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아주 정확하게 머리 속으로 그렸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대답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녀가 웃는 것을 보았다. 그녀의 진솔하면서도 용기를 주는 듯한 시선을 느꼈다. 실제든 아니든 그때 그녀의 모습은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태양보다도 더 밝게 빛났다.
IV. 저자는 두 번의 생사의 갈림길에 선 적이 있다.
그중 한번은 환자후송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이는 말만 그렇지 대부분 가스실로 후송되는 것이었다. 저자는 이를 알면서 기꺼이 환자후송에 참여한다. 그때 자신을 도와주려했던 사람에게 한마디 하고 유언을 남긴다.
“나는 내 친구들 곁에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그리고 친구에게 유언을 남긴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 같이 매시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 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을. 세 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 했던 그 짧은 결혼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그러나 그가 참여한 환자후송은 진짜 환자후송이었다.
V. 죽을 병에 걸린 환자가 저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죽음의 의미에 대해 말하는 것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 아주 용감하고 품위있게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인데 그 영화를 보면서 죽음을 그렇게 의연하게 맞는 것이 인간으로서 참 위대한 성취였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썼다. 이제 운명이 자기에게 그와 똑 같은 기회를 주었다고.
VI. 영화 부활. 거기에 위대한 운명과 위대한 사람이 나온다.
- 사람이 환경에 영향을 받지만 그 운명의 궁극적 선택은 자기 자신에게 있다.
VII. 책에 나오는 명구
도스토예프스키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는 것이 되는 것이다.(121)
비스마르크
인생이란 치과의사 앞에 있는 것과 같다. 그 앞에 앉을 때마다 최악의 통증이 곧 찾아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다 보면 어느새 통증이 끝나 잇는 것이다.(131)
스피노자
감정,고통스러운 감정은 우리가 그것을 명확하고 확실하게 묘사하는 바로 순간에 고통이기를 멈춘다.
- 처한 상황과 고통을 순간 객관화하여 바라보기. 상상을 하는 것. 이 상황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상상할 것.
- 왜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 상황도 견딜 수 있다.
VIII. 인생에 대하여
자살을 기도하거나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은 보통 이렇게 이야기 한다.
“ 나는 내 인생에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어요.”
이런 분들에게는 삶에 대한 태도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공부해야 한다. 우리가 삶으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가 아니라 삶이 우리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대답은 말이나 명상이 아니라 올바른 행동과 태도에서 찾아야 한다. 인생이란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에 올바른 대답을 찾고 개개인 앞에 놓여진 과제를 수행해 나가기 위한 책임을 떠 맡는 것을 의미한다.(138)
누가 시련을 겪는 것이 자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 시련을 자신의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
VV. 수용소감시병들의 정신상태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진짜 새디스트가 있고 방관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동정하고 도와주려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결국 고매한 인격을 가진 부류와 미천한 인격을 가진 부류로 나뉘어 진다.
VVI. 인간은 그 자신의 이상과 가치를 위해 살 수 있는 존재이며, 심지어 그것을 위해 죽을 수도 있는 존재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 vs 자기 삶의 목표와 의미를 찾는 것
X.실존적 좌절과 공허
실존이란 존재 그 자체, 존재의 의미, 각 개인의 삶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찾아내려는 노력,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로 구성된다.
현대인이 실존적 공허와 좌절을 겪는 이유는 첫 번째로 동물적 본능의 상실과 안전함을 지킬 수 있는 능 력의 상실 때문이며,두번째로 근대의 주체로 자아가 확립되면서 발생한 전통의 상실 때문이다. 그리하여 남이 하는대로 따라 하거나(동조주의) 남이 시키는 대로(전체주의)하는 사람이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좌절과 공허는 우울증,공격성,중독증으로 나타나며 또한 권력욕,물욕,성욕등의 가면과 위장의 형태로 보상받으려 하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환자)들에게는 정말로 환자가 자기 존재의 깊숙한 곳에서 정말로 소망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물어봐야 하며 항상성이 아니라 정신적인 역동성을 발휘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즉 신경질환을 앓는 환자에게 오히려 이완시키는 것이 아니라 삶의 긴장 하중을 얹혀주는 치료가 필요하다-할 수 있다.
XI. 삶의 의미
어떤 주어진 상황 속에서 한 개인의 삶이 갖고 있는 고유한 의미
인간은 삶으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으며, 그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짊으로써’만 삶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다. 로고테라피는 책임감을 인간존재의 본질로 본다.
존재의 본질은 “인생을 두 번째로 살고 있는 것 처럼 살아라.그리고 지금 당신이 막 하려고 하는 행동이 첫 번째 인생에서 이미 그릇되게 했던 바로 그 행동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에 있다.
삶의 의미의 세가지 방식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삶의 의미에 다가갈 수
있다.
XII. 인간존재의 자기 초월
인간은 책임감을 가져야 하며, 잠재되어 있는 삶의 의미를 실현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해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진정한 삶의 의미는 인간의 내면이나 그의 정신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183)
XIII. 비극속에서의 낙관
비극의 세가지 요소
고통
죄
죽음
낙관의 의미: 주어진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것. 최선과 낙관은 같은 의미.
optimum 최선, optimism 낙관
고통을 인간적인 성취와 실현으로 바꾸어 놓고 죄로부터 자기 자신을 발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
일회적인 삶에서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동기를 끌어낸다
낙관적인 생각이 명령과 지시되어서 될 일이 아니다.
XIV. 행복에 대하여
미국사회 행복되기를 강요하는 사회.
행복은 얻어지려 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의 결과로서 나타나는 것
인간은 행복을 찾는 존재가 아니라 주어진 상황에 내재해 있는 잠재적인 의미를 실현시
킴으로써 행복할 이유를 찾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221)
행복찾기는 마치 웃으라고 강요해서 웃는 얼굴이 아니라 우스운 이야기를 해서 웃는 얼굴이어야 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XV. 과잉의도 hyper-intention
발기부전- 쾌락을 얻어야 한다는 원칙을 머릿속에 강하게 갖고 있거나 상대방을 만족시켜야 한다는 과도한 집착을 가지면 생긴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맡김으로써 자기 자신을 잊으면 된다.
XVI. 사람이 의미를 찾으면 그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뿐 아니라 시련을 견딜 수 있는 힘도 준다.
XVII. 죄.
자유의지와 책임을 가진 인간. 기계로 취급하는 것에 문제. 수감기간이 끝나면 죄를 다 털어낸 것일까? 죄를 짓는 것도 그들의 자유인만큼 타자의 자유를 왜곡 억압 상실시킨 것에 대한 그 죄를 극복해야할 스스로의 책임도 있는 것이다.
XVIII. 나이든 사람에 대한 존경
나이든 사람에게 미래도 없고 기회도 없는 것이 사실.그러나 과거 속의 실체,즉 그들이 실현시켰던 잠재적 가능성들, 그들이 성취했던 의미들,그들이 깨달았던 가치들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어느 누구도 과거가 지니고 있는 이 자산들을 가져갈 수 없다.
XX.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는 것과 인간의 유용성이라는 측면에서 가치있다는 것 사이의 엄청난 차이를 인지하지 못 하고 애매모호한 태도를 가지면 히틀러의 계획에 의한 안락사- 본인 스스로 고통스런 장애 때문에, 사회에 쓸모없다는 이유때문에-하는 행위를 자비로운 행위였다고 주장할지도 모른다.
XXI. 그 어떤 상황하에서도-죽음조차도-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 갈 수 없다(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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