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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문 : 고전 14 : 1-19
▫제 목 : 덕을 세우고 있습니까? 18.11.25am /진관
[성경본문]--------------------------------
1 『사랑을 추구하면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피리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나타내지 아니하면 피리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하지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투를 준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이같이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많으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
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를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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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11월 마지막 주일예배에 오신 성도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며 축복한다.요-최근에 제법 춥더니 그제는 첫 눈이 내렸는데 서울에는 8.8센티의 눈이 쌓였다. 그럼에도 철마다 우리에게 따뜻한 집과 교회를 주심을 감사드리자.
-서로 인사하자. <하나님은 당신을 언제나 따뜻하게 안아주십니다!>
ex)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어 올해도 국회가 공전되어 새해의 예산안이 처리되지 않고 있는가 했는데 다행히 지난 주간에 타협이 되어 국회가 열리게 되었다고 한다.
-11월 마지막 주간 이맘 때는 나라만이 아니라 교회도 한 해를 돌아보며 결산을 준비한다. 그리고 우리 개인들도 어떻게 지내왔는지를 점검하고 새해를 계획한다.
성도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나 달란트를 한 해 동안 잘 사용했는지를 살피면서 보람도 느끼기도 하겠지만, 또한 아쉬워하기도 할 것이다.
-참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여러 은사를 주시고 좋은 달란트를 주셨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그리고 달란트는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말한다.
/그러하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건강이라는 은사. 시간이라는 은사. 그리고 믿음 소망 사랑의 은사도 주셨다.
/그리고 여러 재능들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는 남다른 보람을 느끼며 살아왔다.
목소리의 달란트를 주셔서 찬양으로 드리고, 가르치는 재능을 주셔서 교사로 헌신했다. 음악의 달란트를 주셔서 지휘나 반주로, 특별한 기술들의 재능을 주셔서 운전으로 교회 돌봄으로 드렸다. 음식솜씨가 있어 그 재능을 드리고, 친밀감의 재능을 주셔서 드리고, 섬김의 재능을 주셔서 이런저런 일로 섬기는 등, 우리는 은사와 재능을 동원해 드렸다.
/그럼에도 우리가 최선을 다하지 못했거나, 연 초에 하나님께 약속한 삶을 제대로 살아드리지 못하였다면 아쉬움이 남게 되고, 죄송한 것이다.
/과연 하나님 앞에 받은 달란트와 은사들을 과연 얼마나 알차게 사용하셨는가?
/하나님이 주신 건강 시간 물질을 잘 사용하셨는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나 잘하는 일로 주님을 위해 사용하셨는가?
-아마 우리 모두는 크거나 작게. 많거나 적게 나름대로 교회위해 은사를 사용하고, 재능을 사용하였을
것으로 저는 믿는다.
▫그런데 오늘 저는 이런 질문으로 여러분에게 도전하려 한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과연 은사나 달란트를 사용하시되 성경적으로 잘 사용하는가?
물론 우리 모두 나름대로 열정을 다해 은사와 재능 곧 달란트를 사용하고 살았다.
/그렇지만 과연 여러분은 하나님이 주신 그 은사들을 잘 사용하고, 그 달란트를 최선을 다해 잘 사용하는가? 를 묻는 것이다.
-이제라도 성도여러분은 받은 은사와 달란트를 잘 사용하시는 성도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그렇다면 4무엇으로 은사나 달란트를 평가할 수 있는가?
-그것은 ‘얼마나 덕을 끼치는가?’로 평가할 수 있다.
오늘 본문 -1절, 5절에 이렇게 말씀한다.
1 『사랑을 추구하면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 하는 자가 만일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많은 교회로서 특히 방언의 은사를 많이 받는 교회였다.
▫참으로 어느 때나 방언의 은사는 너무나 귀중한 은사이다.
/오순절의 방언의 은사가 교회 부흥에 큰 역할을 한 것을 우리는 너무 잘 안다.
/방언의 은사로 개인적으로 신앙이 돈독해지고 열정을 가지게 되는 사람들을 우리는 주위에서 많이
보게 된다.
/그래서 80년대 부흥사가운데 <방언하지 못하면 사람도 아니다.> 라고 하는가하면,
/대형교회 모 목사님은 한때 <방언하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 때 그런 교회를 중심으로 방언으로 그의 신앙을 평가하는 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방언했다고 구원받거나 방언하지 못했다고 구원받지 못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방언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기에 귀한 것이다.
-고린도교회는 이런 방언의 은사가 넘쳐 났다. 그렇지만 그런 방언의 은사로 고린도교회가 혼란스러웠다. -방언하는 자신에게는 좋았지만, 회중에게는 덕이 되지 않고 도리어 힘들게 하는 일이 된 것이다.
-성도여러분! 방언의 은사뿐이겠는가?
-여러분이 받은 은사나 재능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질문할 필요가 있다.
<나의 은사와 재능들이 교회에 덕이 되는가?> 하고 물어봐야 한다.
ex)모 교회 권사님은 물질의 은사를 많이 받으셨다. 그래서 권사님은 비싼 피아노를 한대를 봉헌하여
강대상위에서 사용하게 되었다. 권사님은 예배시간에 목사님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자신이
드린 피아노를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렇지만 세월이 제법 지나서 교회가 부흥하고 새롭게 교회를 건축하게 되었다.
성도들은 기쁨으로 강대상이며 의자며 모든 성물을 새롭게 봉헌하게 되었다. 그리고 피아노도
봉헌하신ㄴ분이 나타났다. 그래서 이전에 쓰던 모든 성구는 교육관으로 배치하고 피아노도 교육관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런데 피아노를 드린 이 권사님이 뿔이 났다. <내가 드린 피아노를 왜 강대상에서 치웠느냐?> 는 것이다. 급기야 그 권사는 목사를 비방하고 목사 배척운동까지 서슴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 권사야말로 하나님이 주신 물질의 은사를 교회의 덕을 세우는데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 덕을 깨뜨리는데 사용한 것이다.
-저는 군대 가기 전 처음으로 모 교회 교육전도사가 되어 새벽같이 주일학교를 위해 달려갔다.
주일의 모든 예배가 마치고 서산에 해가지려고 할 때 저는 돌아오곤 했다. 어느 주일날, 목사님과 장로님들 교우들의 교회 앞마당에 서 계셔서 인사를 드리고 돌아서는데 <박전도사님!>하고 재정부장이 불렀다.
돌아보니 그 분은 하얀 봉투하나를 건네주었다. 그 당시 교통비정도로 사역할 때였기에 돌아오는 버스에서 안주머니에 있는 봉투가 궁금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살며시 꺼내보았다.
그 속에는 버스토큰 하나 살 1.000원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 재정보장은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마당에 있을 때만 생색을 내는 것이었다. 그것을 본 목사님이나 교우들은 파란 지폐라도 한 장
들어있는 것으로 알았는지 모른다.
저는 지금 <그 토큰 하나가 적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교우들에게 자신이 큰 구제라도 하는
것처럼 하는 그 외식을 지적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신 귀한 직분으로 젊은 전도사의 순수한 마음을
슬프게 함으로 덕을 세우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이 주신 건강과 물질의 은사나 재능, 그리고 직분을 마치 자기의 것처럼 교만하게 사용하거나,
그것으로 자신의 영광을 삼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고린도교회는 하나님이 주신 귀한 은사인 방언을 절제가 없이 사용하므로 교회와 성도들에게 덕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바울은『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했다.
-바울은 방언을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했다.
-『예언> 이라고 할 때 일반적으로 미래의 사건을 미리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본문의 ‘예언을 하려고 하라.’고 하는 바울의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예언의 은사를 말할 때는 미래 사건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진정한 예언은 성경이고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을 말한다.
▫-실로 하나님의 말씀은 예언의 말씀이다.
성경에는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하나님께 구하면, 주시리라.』
『하나님을 의지하면, 도우시리라.』 『말씀대로 행하면 복을 받으리라.』 등등
무수한 예언으로 구성되어져 있다. 그래서 성경을 예언서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말씀으로 예언을 하면 교회에 덕이 세워지기에 예언을 하라고 하는 것이다.
성도여러분 교회의 덕을 끼치기 위해 예언하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시기를 바란다.
◼ 그렇다면 왜 예언이 더욱 교회의 덕을 세우는가?
-그것은 그 역할이 다르고 그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 -2절~4절에서는 방언과 예언의 역할을 이렇게 소개하는데 함께 읽자.
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듣는 자가 없고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a.방언은 사람이 아닌 하나님께 영으로 비밀을 말하는 것이다.(2)
그러나 /예언은 사람에게 덕을 세우며 권면하고 위로하려고 말하는 것이다.(3)
b.방언은 자기의 덕을 세우지만 /예언은 교회의 덕을 세운다.(4)
c.방언으로 하면 회중에게 유익이 없으나 /예언으로 하면 유익이 된다.(6)
-6절에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d. 방언은 알아듣지 못해 아멘하지 못하지만 /예언하면 덕 세움을 받는다.(16.17)
-그래서 16.17절에 이렇게 말했다.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알지 못하는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이처럼 방언과 예언은 그 역할이나 그 효과가 다르다. 방언은 자신에게 덕을 끼치지만, 교회에는 덕을 끼치지 못한다.
그러나 예언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덕을 끼쳐서 권면도 하고 위로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예언하기를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예언을 하려고 해야 하는가?
1. 먼저 사람에게 덕을 세우려고 하라.
-3절을 함께 읽자.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위로하는 것이요,』
-성도들은 사람들에게 덕이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 곧 예언을 해야 한다.
▫-사람들에게 덕이 되려면 두 가지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것은 권면과 위로이다.
사람들이 잘못 된 것은 지적하여 권면하므로 세워주고, 세상으로 낙심이 되는 사람들에게는 위로하여
세우는 것이다.
ex)우리의 문제 하나는 예배시간에 말씀을 통하여 위로받기만을 원한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세상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기에 위로가 필요하다.
그러나 죄를 가까이하다가 당한 상처라면 <그것은 죄악이므로 다시 죄와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엄한 책망과 경고로 권면을 들어야 한다.
ex) 아이가 습관적으로 돌을 차고 다녀서 발이 곪을 정도가 되었다면, 그 발의 상처치료도 해야 하겠으나 그 아이에게 <다시는 돌을 차지 말라.> 고 따끔하게 경고하고 일러주는 권면이 필요한 법이다.
곪아 있는 상처는 날카로운 메스를 대어서 고름을 빼내야 한다. 곪은 곳에 빨간 머큐룸을 바른다고
낫는 것은 아닌 것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예언인 말씀을 들을 때 잘못된 삶에 대하여 경책하므로 권면이 필요하고, 상처가
난 마음과 영혼을 위로해 주는 일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바울은 『특별히 예언하려고 하라.』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했다.
▫-참으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사람들에게 권면이 되고 위로가 되어 진다.
그래서 예언을 통해 그 사람들의 덕을 세운다.
/지금 교사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예언하므로 아이들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셀리더들이나 /전도회 회장이나 /지도자들이 말씀으로 성도들을 권면하고 위로한다면
그 사람들의 덕을 세우는 일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 성도들 모두도 서로 서로 성도들 간에 말씀의 예언으로 덕을 세우라.
/셀모임이나 친교로 모일 때 하나님의 말씀, 예언을 들려주어 덕을 세우고,
/가족에게 말씀의 예언을 들려주어 덕을 세우는 자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2. 교회에 덕을 세우려고 하라.
-4절을 보자.
4 『방언을 말하는 자는 자기의 덕을 세우고 예언하는 자는 교회의 덕을 세우나니』
5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 는 자가 만일 통역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바울은 모든 성도가 다 방언을 말하기를 원했다. 방언은 자기에게 덕이 되니까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통역하는 자가 있지 아니하면차라리 예언하려고 하라고 한다. 방언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이다.
-방언하면 그 자신이 영으로 하나님께 말한다. 그러나 곁에서 그 소리를 듣는 사람들은 무슨 소리인지 모른다. 그래서 아멘할 수도 없다. 자신에게는 은혜가 되고 믿음을 다지는 덕을 세우고 있지만 그 시간에 함께 하는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함으로 믿음을 일으키거나 하나님의 사람을 깊이 깨닫게 하지 못함으로 덕이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바울은 –6절에서는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으로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했다.
-말씀을 전해서 가르치지 않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덕을 세우려 한다면 예언이 필요하다.
물론 /교회의 덕을 세우는 일은 기도나 전도생활로 신앙의 본이 되는 사람으로 가능하다.
/말없이 겸손히 봉사하는 권사님같은 분들도 있어야 한다.
초대교회 바나바처럼 밭을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자가 있는 것도 귀하다. -그렇지만 가장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은 예언이라고 한다.
ex)우리는 더러 정치이야기로 시간을 보낸다. 경제 등 시사거리로 시간을 보내거나,
때로는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허물 등을 주제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런 이야기로 성도들이나 교회의 덕을 세우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언을 통해서만이 덕이 세워진다.
▫우리 성도들은 어디서나 성도의 덕과 교회의 덕을 세우는 자들어야 한다.
더욱이 교회의 본당은 물론이고 교회의 모든 장소들은 성도의 덕, 교회의 덕을 세우는 곳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엘리야가 로뎀 나무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힘을 얻었다. 이처럼 우리교회 로뎀 쉼터에서는 다른 사람의 허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고 위로하여 덕을 세우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로뎀 쉼터라고 이름을 지었다.
-그러하다. 로뎀 쉼터만이 아니라. 어디서나 하나님의 말씀 곧 예언을 바로 할 때 덕이 세워진다.
그러하기에 바울은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한 것이다.
3. 덕을 세우기 위해 깨닫는 자가 되도록 하라
-18절을 함께 읽자.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방언을 하되 그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방언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사도는 방언보다 이렇게 예언을 강조하는 까닭이 무엇인가?
그것은 다른 사람을 깨우쳐서 덕을 세우고 교회에 덕을 세우려 하심이었다.
▫-<이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를 이렇게 바울은 -19절에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방언으로 일만 마디 말하는 것보다』 예언의 말씀을 『깨닫는 그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하는 것』이 낫다는 것이다. 예언을 하려고 하되 진리를 깨닫도록 하라는 것이다.
▫-물론 성경은 진리를 깨닫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라고 한다.
ex)선지자 이사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깨닫지 못함을 -사 57:1절에 이렇게 말한다.
『의인이 죽을지라도 마음에 두는 자가 없고 진실한 이들이 거두어감을 당할지라도
깨닫는 자가 없도다. 의인들은 악한 자들 앞에 불리어 가도다.』
-로마서에서도 바울사도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깨닫는 자도 없다』 고 했다.(롬3:10)
▫그렇지만 예수님은 예수님을 통하여 깨달아 지고 이렇게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다.
-그래서 마 13:16절에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하셨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먼저 보고 먼저 바로 들으므로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한다.
-주님의 제자들은 깨닫기 전에는 도망자요 배신자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진리를 깨달은 후에 많은 사람과
교회를 세우는 자들이 되었다.
-바울이 복된 것은 다메섹도상에서 만난 주님을 만난 후 그가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하는 자가 되고 교회에 덕을 세우는 자가 되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 수 많은 바울의 동역자들이 주님을 깨달았기에 일생을 바울과
함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성도여러분들도 예언의 말씀을 깨닫도록 노력하라.
그래서 사람들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일하라.
일 만 마디 방언보다, 더 값진 것은 깨닫는 마음이다.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라도 하여 교회에 덕을 세울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믿음은 교회에 덕을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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