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덕소 쌍용이파트에서 나,아내,컴퓨터 강사 셋이서 소나타 승용차를 타고 왕십리 사무실로 첫출근하면서 말했다.
"여보! 나는 아무런 욕심이 없어.어렵게 결심한 구멍가게 사업이지만 죽을 때까지 소나타만이라도 탈 수 있으면 성공했다고 본다.
완도 섬놈으로 태어나 서울에서 좋은 대학도 나오고 감사원,그리고 좋은 직장에도 다녔고 쌍용아파트 48평에도 살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바램이 있겠어?"그랬다.
그리고 출근해서 공영빌딩 5층 13평짜리 사무실 안쪽에 서너평되는 곳에 나의 책상과 조그마한 상담용 테이블을 놓았고
밖에는 책상셋을 놓았다.
출근하자 마자 나는 준비에 바빴다.
첫째,광고는 어디에 어떤 문안으로 낼 것인가?광고금액은 얼마 정도?
일단,조선.동아,중앙 세곳과 한국일보 한곳 계 네곳 광고 담당자를 불러 계약하고 동시에 1개월간 광고를 냈다
.아마 광고비가 천만원쯤 되었다.
둘째,홈페이지 제작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사이버대학을 나온 컴퓨터 강사인 직원에게 물어보자 학교다닐 때 잘 알던 사람 이홈페이지 제작을 잘 한다고 해서
100만원에 그에게 제작 의뢰했다.내가 그쪽에 전혀 문외환이니 어찌 따저볼 겨를이 없었다.
국제결혼회사의 홈페이지 6곳을 출력해서 원고 초안을 그에게 주고 참고해 달라고 했다.
약 1개월이면 된다더니 1개월후에 가저온 홈페이지 시안은 너무 실망스러웠다.
2개월 후에 겨우 홈페이지를 완성해서 인터넷에 올렸지만 고객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나 는 여러 곳을 물색하다가 뉴코리아라는 박준모 사징에게 300만원에 제작의뢰했다.
그는 청산유수격으로 말은 잘했고 멋지게 홈페이지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전보다는 나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어떻든 모든 게 미흡했다.
당시 아들(고융)이 동신대학교 중국어과 졸업반이었는데 그를 불러 원급 60만원주면서 근무케했다. 오락만 할줄 알지
컴퓨터는 빵점이었다..내가 컴맹이니 아들은 나보다 젊은 세대이니 어떻게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아버지는 광주에서 서울로 유학왔는데 반대로 아들은 서울에서 광주.나주로 꺼꾸로 유학 갔으니 그 수준을 알만했다.
그런데 그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해 들어갔으니..그 수준이야..
할수 없이 종로1가에 있는 컴퓨터 학원에 1년간 등록시켜 저녁 5시에 퇴근해서 학원에 가도록 컴퓨터를 가르쳤다.
1년이 지난후에 컴퓨터를 조금 알게 되었다.
컴퓨터 강사였던 여직원은 당시 별거 상태였는데 6 세인 아들을 시어머니가 기르고 계섰다.그런데 아들 문제로 자주 근무중 나가기도 했고 어떤 때는 아들을 데리고 출근하기도 했다.급기야는 미안하다며 그만 두게되었다.아들 융은 비록 엉터리였지만 상황이 궁하다보니 그 자리를 대신했다
아내는 몇달 다니더니,왕십리가 공기가 너무 안좋아서 못다니겠다고 투덜대고 나와 매번 싸우다가 어느날 그만두었다.
할 수 없이 구인광고를 냈다가 40대의 이실장을 채용했다.그녀는 남편과 이혼했고 시어머니와 소송중이라고 했다.
나는 마음이 꺼림칙해서 채용을 망설였지만 워낙 급박하다 보니 채용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여자가 너무 독살스러웠다.
1개월쯤 되어서 해고시켰다.떠날 때 대들고 난리였다.
할 수 없이 아들과 사무실을 운영하던 중 학생운동을 했다는 미스 심을 채용했는데 제법 매너있는 여성이었다.
그런데 몇달 지나지 않아 결혼한다며 사직했다.
그리고 채용한 여성이 신정은 실장이었다.그녀는 얼굴도 예쁘고 마음이 비단같은 서울 깍쟁이였다.
나는 겨우 한숨을 놓았는데 머리가 전혀 아니였다.아무리 가르쳐도 상담을 전혀 이해 하지 못했다.
나는 울화통이 터졌지만 방법이 전혀 없었다.
어떻든 나는 상담은 사실상 내가 다하고 신실장은 심부름,그리고 아들 융이는 컹퓨터 담당으로 해서 회사를 꾸려갔다.
사업초기 가장 큰 어려움은 사람 구하는 일이었다.제법 능력있는 사람은 이 작은 회사에 좀채럼 오지 않는다.
오더라도 회사의 능력에 비해 높은 급여를 요구한다.
나는 이제야 풀무원 남승우 사장이 왜 벌교 여상출신,청주 여상 출신등 시골 학교 출신등을 선호했고
남자 직원은 전문대 또는고졸.중졸들만 채용했는지 알게 되었다.
그녀들은 비록 시골 출신들이였지만 능력면에서는 모두 출중했다.
시골출신이라 취업의 기회가 적다는 사실을 남사장은 정확히 꿰툻어 보았다.
인사팀장으로 있을 때 한번은 "왜 명문대 출신을 뽑지 않느냐"고 물었다.
남사장은"그 친구들 오지도 않지만 와도 몇달 안있는다"고 말했다.
실제로 스카이대 출신은 거의 오지 않았고 서울상대 출신 김모군과 고대 농대 출신 정모군이 처음으로 입사했는데
김군은 2년 있다가 대기업으로 스카웃되서 갔고,
정모군은 공인중개사 시험여 합격해서 학원강사로 직업을 바뀠다.
고대출신 정군은 컴퓨터에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고 아주 예의 바른 청년이었다.
나가 풀무원을 떠난후에 사내에서 예쁘고 매너좋기로 소문난 아가씨외 결혼했는데
정군은 "제가 풀무원에 와서. 미스유와 결혼한 것이 가장 큰 소득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초창기 사업을 일구는 데는 사람구하는 것보다 더 큰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첫댓글 이렇케 시작해서 수백억 성공하시다니. . .정말 입지전적인 신화.성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