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살아가며/ '빈대떡 이야기'
2020.11.19 12: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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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살아가며/ '빈대떡 이야기' (유인호 제공)
나는 80년도 초반부터 종로 교보문고 뒤편 피맛골 입구에 위치한 ‘열차집’이라는 막걸리집을 자주 애용했었다. 이유는 안주로 나오는 빈대떡 때문이다. “돈 없으면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지”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즐겼던 빈대떡은 사실 그리 싼 안주가 아니었다.
옛 기록에 의하면 빈대떡의 재료로 파, 미나리, 쇠고기, 닭고기, 해삼, 전복, 잣, 밤, 대추 등 꽤 비싼 재료를 이용해 만든 음식이었다. 특히 서울에서는 혼례상이나 생신상, 제사상 등을 차릴 때 빈대떡이나 밀적을 부쳐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생선전, 간전, 산적을 얹었다. 그리고 TV 사극에서 잔칫날 동네 여인들이 마당 한가운데에 소댕(솥뚜껑)을 엎어놓고 전을 붙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런 모습으로 보아 빈대떡이 보통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것 같다.
어릴 때 전라도 남원에서 2~3년 산 적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시절이었다. 도시에서 살다가 이사 온 나에게 시골의 5일 장은 너무나 재미있고 신기한 요지경 같은 세상이었다. 장이 서는 날이면 내가 제일 재미있게 본 것은 지리산 쪽에서 내려오는 청학동 사람들의 옷차림이었다. 상투 틀고 댕기 딴 그런 모습들이었다. 그리고 시장에서 만드는 음식들이었는데, 그중에서 가마솥 뚜껑을 뒤집어 놓고 돼지고기 비계로 쓱쓱 바른 다음 부치는 빈대떡이었다. 어찌나 먹고 싶었든지. 지금 생각해도 침이 고인다.
요즘은 광장시장에서 가끔 빈대떡을 안주 삼아 막걸리 마시는데 어릴 때 그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런 빈대떡의 어원은 어떻게 될까? 우리말의 뿌리를 적은 '역어유해 (譯語類解)'에는 '빈자떡'이 나온다. 중국 떡의 일종인 병자(餠者)에서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명물기략'에는 중국의 콩가루 떡인 알병의 '알'자가, 빈대를 뜻하는 갈(蝎)로 와전돼 빈대떡이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또 서울 덕수궁 뒤쪽 지금의 정동이 예전에는 빈대가 많아 빈대골로 불렸는데, 이곳 사람 중에 부침개 장사가 많아 이름이 빈대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민속학자 방종현은 빈대떡을 '빈자(貧者)떡' 즉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떡이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사람의 몸은 비가 오면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않고 몸이 차지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몸 스스로가 따뜻한 음식을 찾게 되는데 바로 녹두, 부추, 파 등 혈액순환에 좋은 음식 등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비 오는 날에는 빈대떡을 비롯한 부침개가 유난히 맛있게 느껴진다고 한다. 나야 비가 안 와도 찾게 되지만. 오늘은 가을의 냄새가 무지무지 떠오르는 늦가을이다. 막걸리야 까짓 어제도 마셨지만 오늘 또 마신다고 누가 뭐라 그럴까. 주머니에 돈 만원 정도 있으니 6시 쯤 서울 신설동 풍물시장가서 빈대떡에 막걸리나 마셔야겠다.
빈대떡 한 접시와 막걸리 2통이면 대충 만원이네. 차비야 교통카드 이용하면 되고, 안되면 걸어가면 되고, 아~오늘도 하루가 자~알 나간다.
글/ 이관일<서울시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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