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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구멍으로 죄다 들어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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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의 분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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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 가까이 지난 말을 지금 다시 듣는다. 새천년! 아~ 얼마 만인가? 말이다.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다. 그 시절이 생각나는 대둔산 새천년릿지길를 간다고 한다.
새천년 IT버블로 우연치 않게 용돈도 두둑이 챙겼었다. 그 후 삼십 년이 가까이 지나 그 시절과 비슷한 시절이 왔는데 신통치 않다. 그래도 산에 갈 용돈은 되니 고맙다.
버스에 올라 반갑게 인사를 하며 맨 뒤에까지 갔는데 한 여인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온다. 모르는 사람 같아서 되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잠시 후에 그 여인이 다가와 인사를 하는데 얼굴이 떠오른다. 한 십여 년 가까이 보지 못했던 미정이 이다. 반갑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고맙다.
버스는 대둔산 용문골 등산로 입구에 섰다. 비가 오면 갈아입으려고 가져온 옷을 배낭에서 빼고 짐을 챙기고 나오니 벌써 단체 사진을 담고 출발이다.
등산로로 올라서자마자 화장실이 있고 사람들이 화장실을 들리고 출발했다. 경사면을 치고 오르면서 계곡을 끼고 오른쪽으로 돈다.
저 위에 봉우리가 바위 봉우리로 아름답게 보이는데 나무가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다. 마치 어둠 속에서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그녀의 그림자처럼 아쉬움을 남긴다.
빗방울이 몇 방울 떨어지니 사람들이 우비를 입으려고 해서 비가 곧 그칠 것 같으니 그냥 가자고 했다. 앞에 작은 아치형 구름다리를 건너서 오르면 옛날 집터였던 것 같은 축대가 있다.
왼쪽으로 철재로 가드레일을 해 놓은 길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토끼가 다닌 것 같은 낙엽이 쌓인 길이 있다. 앞에서 산대장이 왼쪽으로 가면 B 코스가 가는 용문골 길이고 오른쪽으로 가면 A 코스 새천년릿지 길이라고 해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길은 낙엽이 쌓여있고 미끄럽다. 앞에 가는 사람이 잘 보이지 않아서 소리를 지르니 “여기 A 코스”하는 소리가 들렸다. 경사가 상당한 비탈을 오르니 앞에는 흙산 능선이고 왼쪽으로는 거대한 바위 봉우리가 있다.
왼쪽을 갔다 오는 사람이 있어서 어느 길이 맞느냐고 하니 별 대꾸가 없다. 능선에서 A 코스라고 해서 다가갔는데 벌써 능선을 넘어서 조릿대 숲을 헤치고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순옥이 일행이 와서 길이 아닌 길을 길이라고 하면서 앞에 간 사람들을 쫓아가다가 갑자기 순옥이가 하는 말이 정기는 아무 데나 들쑤시고 다녀서 길이 아닐 수도 있으니 길을 다시 봐야 한다고 한다.
막둥이가 산행지도를 인터넷으로 보더니 길을 잘못 들었다고 되돌아가자고 해서 되돌아 나왔다. 알바를 했다. 되돌아 나와서 뒤에 온 사람들을 다 만났다.
(알바 길)
거대한 바위와 바위 사이에 사잇길로 올라갔다. 바위 앞에서 미정이에게 오랜만에 만났으니 인증사진을 찍자고 했다. 멋진 산악인이 바위에 오르는 포즈를 취한다. 나도 한 장 담았다.
계곡을 오르니 거대한 바위가 천정같이 있고 그 천정에 구멍이 있는데 아주 좁아서 통과하는데 많은 시간이 걸린다.
지체되는 사람들 틈에서 한마디 했다. “우리 모두 한 구멍으로 들어가는 거여!” 말소리가 떨어지자마자 사람들이 “맞네!” 하면서 박장대소를 한다.
배낭을 벗어서 앞으로 주면 앞에 먼저 나간 사람이 그 배낭을 끌어 올린다. 그리고 가슴은 바닥에 비비고 등은 천정에 긁히며 머리를 내밀고 나가면 앞에 있는 사람이 머리를 조심하라고 하면서 눌러 준다.
그렇게 나가서 안내해 준 사람을 보니 우리 일행이 아니고 다른 산악회 사람인데 봉사를 해주고 있었다. 감사합니다.
여기를 나오면 배를 쑥 디밀고 좁은 틈을 나와야 한다.
여기를 나오면 일종의 바위 고갯마루이다. 바로 내려가는 절벽이 있는데 내려가려고 할 때 뒤에서 인덕원이 다가오더니 저 바위 위가 백미인데 저기에 가지 않으면 여기를 안 온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왼쪽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아서 올라보려고 하니 위험하기도 해서 망설이고 있는데 위에서 저 뒤로 바위를 돌아서 올라오라고 한다.
그렇게 커다란 찐빵 같은 바위 위에 올라서니 와~ 진짜 멋진 풍경이다. 한 폭의 산수화란 것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담아도 쪼가리로 담아야 하니 이 풍경을 온전히 담을 수는 없다. 오늘의 산행에 감사한다.
한 발 내디디면 낭떠러지기이니 마음의 쫄깃함이 더한다. 쭉쭉 빵빵 아줌마가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담는다. 나는 언제 저런 사람들과 함께 산행을 해보나 부러움이 극에 달한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한 산행이다. 아니 과거에 있긴 있었다.
여기를 내려서면 조각난 바위가 흘러내리는 바위강이다. 길이 어디인지 분간할 수가 없다. 다행히 앞에 있던 어떤 부부가 나의 일행이 저 위로 올라갔다고 알려줘서 바위강을 타고 올라갔다.
나중에 누군가 말하기를 여기서 어느 분이 넘어져서 얼굴을 긁혔다고 한다. 많이 다치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 끝에 바위의 안부에 인덕원이 풍경이 너무 멋지다고 하면서 노란 단풍과 빨간 단풍과 바위가 어우러져 너무 멋지다고 감탄을 하고 있다.
줄을 잡고 바위를 타고 오르는 구간이다. 남자들도 어렵게 오르는데 여자들은 훨씬 힘이 든다. 우리 송이가 용감하게 도전을 했다. 줄을 잡고 일단 올랐는데 발을 어디에 놓을지 몰라서 손으로만 밧줄을 잡고 매달인다.
보는 사람들도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여기를 밟아라! 저기를 밟아라! 소리 질러봤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렇게 아우성 속에 팔의 힘으로만 올랐다. 천만다행이다. 발로 디딜 곳을 찾아야 하는 데 익숙하지 못해서 그랬다
이곳의 문을 나서면 너른 바위가 나타나고 아까 저 아래 찐빵 바위 위에서 보았던 풍경이 더 또렷하게 보인다. 여기서도 한바탕 사진을 담았다.
또 틈으로 들어가고 바위를 오르고 하면 거대한 바위가 나타나고 떨어져 있는 바위틈 사이로 저 멀리 단풍을 입을 산들이 보이고 좁을 툇마루 같은 곳을 지나면 볼록 나온 바위를 끌어안고 돌아서 올라가는 곳이 있다.
이곳에서도 송이는 바위를 천년 만에 만난 애인 인양 꼭 끌어안고 있다. 지운이가 이리 해라. 저리 해라 해서 손을 잡고 올랐다.
바위에 올라서 뒤돌아보니 튼실한 양근바위이다. 앞에 커다란 불알도 있고 숲도 있어서 아주 제격이다. 뒤에 오는 인덕원에게 기를 받으라고 하니 아주 좋단다.
칼바위 능선을 넘어서 바위 숲에서 비바람을 피할 곳을 찾아서 점심을 먹었다. 늘 가져오는 회장의 푸짐한 회와 편육 족발 김치 등으로 맛나게 점심을 먹었다.
점심을 먹고 자리를 약간 벗어나 계곡을 바라보니 천 길 낭떠러지기이다. 이런 데 내가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바위고개를 넘는데 옆에 있는 바위를 바라보니 딱 돌고래 머리를 닮았다. 뒤에 있는 분이 앞에 산봉우리에서 우리가 멋져서 사진을 찍는가 보다고 한다. 나중에 내가 그 봉우리에 가보니 풍경을 찍은 것 같다.
앞에 봉우리에 올라 우리가 넘어온 고개를 보고 앞에 봉우리에 올라 정상을 보고 알바를 했다며 다시 내려와 마천루에 올랐다.
(쏙 들어간 곳, 우리가 넘어온 곳)
(알바 봉우리에서 본 풍경)
화~ 멋지다. 날씨가 좋았다면 얼마나 더 멋질까? 아쉬움이 살짝 들지만 그래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굽이굽이 물결치는 바위와 그 바위 위에 자라는 나무가 너무나 신기하다.
저 아래 삼선계단과 출렁다리가 한 폭의 그림이다. 정상이라 바람이 거세다. 사진도 담고 단체 사진도 담고 내려섰다.
내려오다가 삼선계단에서 올라오는 꼭대기로 가보았다. 원래는 통행금지인데 사람들이 없어서 올라가 보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경도 너무 멋지다.
내려와 계단 아래에 다다랐을 때 계단을 다녀오는 총무가 별을 따오라고 해서 뭔 말인가 했는데 올라가 보니 별따러 가는 길을 표시해 놓았다. 한 부부가 사진을 오래 진심으로 찍고 있다.
아자짱이 출렁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아 달라고 해서 담아주었다. 케이블카 타는 곳을 지나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과 너덜길을 내려섰다.
동학혁명 성지를 알리는 충혼탑이 있고 아기단풍 가로수 길을 지나 화장실을 들리고 비가 내려서 우산을 쓰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시간이 5분이나 남았는데 왜 이제 오느냐고 한다. 사실 자기들 사진 찍고 자기들은 다 떠나버리고 홀로 뒤처지다 보니 그런 것인데 말이다. 내가 좋아하는 풍경도 찍었지만 말이다.
버스로 자리를 옮겨 하산식으로 오리전골을 먹었다. 음식은 맛났다. 이렇게 해서 멋진 산행을 마쳤다.
다음 달에는 태안에 있는 백화산으로 가서 송년회를 한다고 한다.
운영진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덕분에 멋진 산행 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행 #좋은글 #자유 #산행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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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는 보고 싶은 분만 보세요
사람의 행동 패턴
우리는 의사 결정을 어떻게 할까?
지금 보고 지금 판단해서 결정할까?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낯선 거리에 가서 마음에 드는 것을 보았을 때 다시는 그곳에 갈 수 없을 것으로 예상하였을 때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의사를 결정한다. 대체적으로 3년 4년 전부터 경험해 온 것으로 의사 결정을 한다고 한다. 길면 7, 8년 전에 있었던 경험으로부터 의사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이 경험을 이용하기 위해 강제적으로 아니 자신도 모르게 지속해서 경험을 주는 것이 있다. 바로 광고이다. 그냥 보고 무심코 지나가는 것 같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경험이 된다. 다음에 물건을 사게 된다면 그 광고는 내가 경험을 한 결정적 요인이 된다.
(가을 상추)
의사 결정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가?
그렇지는 않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어떤 상황에 닥치면 그것이 변화가 있다는 것을,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해도 다시 말해서 알아도 즉각적인 의사 결정을 하지 않는다.
그것이 비켜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론 나에게는 생기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더 좋아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면 언제 의사 결정을 할까? 그 에너지가 응축되었을 때 한다. 다시 말해서 막판까지 몰렸을 때 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서 의사 결정 순간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주식 투자를 하는 사람들은 많이 느낄 것이다.
물을 끓일 때 처음부터 몇백 도의 열이 다가온다. 그렇다고 물이 금방 끓지는 않는다. 그 에너지가 완전히 응축되었을 때 끓는다. 의사 결정도 대부분이 이렇게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막판에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어떤 상황이 발생 된 것을 알아도 위험이 예상되어도 바로 의사 결정을 하지 않는다. 과거에 경험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의사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그래서 그 상황이 발생했을 때 때론 엄청난 피해를 보고 때론 이득을 보기도 한다. 그게 인생이다.
이 경험이란 것이 반드시 옳으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내가 경험한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이 아니고 아주 단편적인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내 경험이 100% 옳다고 우기며 산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이 옳을 수도 있지만, 꼭 옳은 것은 아니다.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은 내가 많이 듣고 많이 보고 한 것일 뿐이다. 다시 말해서 경험일 뿐이다. 경험이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이 사회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우연히 좋은 경험을 한 사람은 옳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신의 경험을 검증하고 수정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탐구이다. 다른 경우의 수를 알아보고 보편적인 것을 찾아내든지 아니면 자신의 전문적인 것을 극대화하든지 하면 된다.
이제 우리들의 의사 결정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배고픈 시절에 태어나서 세계 최강 선진국의 망각한 나라를 만든 사람들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의 성공 경험에 쌓여있고 그것이 옳은 것으로 각인 되어 있다. 우리는 축복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세상은 그렇지 않다.
요즘 젊은이들은 세상의 모든 것이 거의 갖춰졌을 때 태어났다.
부족한 것이 없었는데 사회를 나오면 직장이라는 문제, 결혼하면 집이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모든 것은 늙은이들이 가지고 있고 자신들은 가진 것이 없다.
갑자기 나락으로 떨어진 기분이다. 분노한다. 여러분이나 나나 젊은이들의 기분을 모를 것이다. 벼랑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젊은이들의 이 기분을 말이다.
이들은 우리와 뇌와 생각이 다르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갖춰졌었기 때문에 뇌는 당연히 좋은 직장도 집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또 죽도록 고생해서 그 집을 가져야 한다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이 태어난 나름의 생활 테두리 안에서 나름대로 그저 가지고 싶으면 가질 수 있었던 사람 들이다. 그것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이 용납이 안 된다.
그리고 그것을 자기가 가지지 못하는 것은 기존에 그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때문이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들은 그들에게는 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들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그들을 그렇게 키웠다.
오직 공부만 하라고 했지 노동의 어려움을 시켜본 적이 거의 없다. 오직 공부만 해서 너만 잘되라고 했지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부모는 나를 도와주는 대상이지 공경의 대상이 되라고도 하지 않았다. 당신의 자손의 예외이다.
그러니 잘못됐다고 욕하지 마라! 이해 못 하겠다고도 말하지 마라! 그냥 그게 현실이 그렇다.
십여 년 전에 서울에 아주 유명한 대학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부모가 몇 살까지 살면 적정하냐고 설문을 했다고 한다. 그 설문의 적정 나이는 61세이었다고 한다. 정년 퇴직금 받고 딱 물러설 나이이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에 비추어 이 좋은 시절에 젊은이들이 게으르고, 예의 없고, 일자리가 널려 있는데 일할 생각은 안 하고 먹고 놀려고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내 자식 말고 남의 자식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성공 경험은 수십 년을 아우르고 실패는 다 묻어두고 멋진 성공의 기억만 미화해서 재편집해서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수많은 도움이 있었는데도 홀로 성공했다고 굳건히 믿는다. 다시 말하면 내 성공담은 정확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우리 세대는 무엇을 하던 성공했고 성장했지만 지금 젊은이들은 잘 못 하면 평생 남의 종살이밖에 할 수 없다. 저가 노동과 고가의 직장이 완연하게 분리된 사회로 뚫고 올라갈 길이 꽉 막혀있다. 물려받지 않으면 아주 꽉 막혀있다.
몇 푼 벌어서 입에 풀칠만 하면 뭐하나! 그래서 젊은이들이 힘들어서 하고 분노하는 것이다.
사람이 분노하면 파괴적 성향이 나타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파괴적 성향을 가진 사람들을 아주 좋아한다. 무엇인가 뒤집어엎는다면 열광한다. 세상을 기존 질서를 파괴해야 나에게도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북한도 때려 부수어야 하고, 외국 노동자도 부수어야 하고, 기존 사회도 때려 부수어야 하고, 말은 안 하지만 당신도 때려 부수어야 할 상대인 것이다.
법원을 과감히 때려 부수는 것도 이런 심정의 발로이다. 그들만 탓할 일이 아니다. 기회만 되면 뭐든 부술 수 있다. 기회가 안 되어서 웃으면서 감정을 감추고 있을 뿐이다.
모두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당신의 자녀처럼 좋은 직장에 멋진 심성을 가지고 있는 젊은이들도 있다. 내 자식만 착하다고 해서 이 사회가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들을 탓하지만 말고 마음을 달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서 사회에 안착시킬 의무가 있는 것이다. 우리 마음은 내가 개고생해서 번 것을 누구에게도 나눠줄 수 없다고 하는 심정이 깊이 박혀 있다.
너도 내가 젊어서 한 개고생처럼 그렇게 해봐라. 안 될 것이 있나? 하는 것이 우리의 심정이다. 그런데 미안하지만, 오늘날에는 개고생을 아무리 해도 안 될 것이 수두룩하다.
세금 이야기만 하면 분노하고 치가 떨린다. 여러분이 자주 보는 유튜브의 덕이다.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 그러는 것이 아니고 조금 가진 사람들이 더 그런다. 내 것을 나누지 않으면 언제가 모든 것을 빼앗길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자!
경험과 현실의 차이
경험은 이미 지난 일이고 현실은 오늘의 일이다. 오늘의 일인데 어제의 기준으로 자꾸 판단하는 것이다. 그러니 맞을 일이 별로 없다.
몸은 늙었는데 마음은 젊다는 것이 이런 것이다. 젊은 날의 기준으로 늙은이의 몸을 살자는 것이다. 맞지 않는 것이다.
이제 마음도 늙자! 그래야 늙은이로 살 수 있고 젊은이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 존경은 몰라도 무시는 받지 않을 것 같다. 그래야 젊은이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가 있다. 마음은 젊다고 같이 놀자고 하면 받아주겠나!
(가을 시금치)
마음도 늙자는 것은 나잇값을 하자는 것이다.
마음이 늙자는 것은 꼰대 짓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의 영역을 마음을 열어주고 내 의지를 내 가치관을 강요하지 말자는 것이다. 멀리서 바라보고 격려해 주자는 것이다. 물러날 줄도 알자는 것이다.
늙은이로 살자는 것은 대우를 받자는 것이 아니다. 젊은이가 늙은이의 말을 경청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내 욕심을 내 마음을 내 기준을 내려놓아야 젊은이들이 달아나지 않을 것이다.
(가을 고수)
오늘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고 생각하자
자꾸 라떼만 말하지 말고 AI가 돌아가는 현실을 조금이래도 보자! 요즘 개인정보가 털리는 것도 똑똑한 AI 때문이라고 한다.
AI 시대는 경험이 별 필요 없는 시대라고 한다. 과거에는 회사에서 풍부한 경험이 있는 고참이 최고 이였지만, 지금은 AI 검색을 잘 하는 사람이 최고라고 한다.
그냥 현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것이 옳다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자!
그리고 그 기준으로 판단을 하자! 그래야 남은 인생 조금이라도 편하게 살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날마다 욕만 하며 살다가 인생 종 칠 것 같다.
건강하게 삽시다. 늙은이 화이팅!

첫댓글 며칠 남지 안은 가을을 만끽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