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 여섯 번의 옥중 투쟁
나는 이십 대 시절에 하나님 앞에 이 민족을 구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일본 국민이 천황을 위하는 마음보다도 내가 삼천만을 대신한 입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은 망한다고 믿었습니다. 일본이 선을 먼저 쳤으니까 그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거짓이 참을 치면 남아지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나는 속으로 ‘치고 싶은 대로 다 쳐 봐라! 더 이상 칠 수 없는 날에는 뒤집어질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을 내 손아귀에 집어넣겠다는 철석같은 신념을 가졌습니다. (33-116~117,…1970.8.9)
나는 일본에 가서 지하운동을 했습니다. 나라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하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때 우리 동지들은 상해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하여 김구 선생과 같이 운동하기 위해 관부연락선을 타고 다녔고, 부산에서부터 신의주까지 다니면서 항일운동을 했습니다. 선생님도 생명을 걸고 그런 일을 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39-63,…1971.1.9)
왜정시대에 선생님은 일본 동경에서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백주에 지하운동을 한 사람입니다. 그때 선생님은 미래에는 그들과 원수 사이가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 서러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의 아픔인 것도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공산주의자들이 원수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에 앞서 일본이 우리의 원수이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과 함께 별의별 일을 다 했던 것입니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서 그렇게 나온 것입니다. (34-353,…1970.9.20)
40년 동안 감옥에 들락날락하기를 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감옥에서 5년 이상 살았습니다. 욕을 먹은 것도 그렇습니다. 역사 이래에 나 이상 욕먹은 사람이 없습니다. 셀 수 없을 만큼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눈물과 피땀을 얼마나 흘렸는지 알아야 됩니다. (134-332,…1985.8.20)
학생 때에도 감옥 출입을 보통으로 한 사람입니다. 또 왜놈들의 고문대에서 뱃심도 부려 본 사람입니다. 그런 역사가 많은 사람입니다. 일본 녀석들한테 고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의 고문은 지독했습니다. 지금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그때처럼 지져대고 하면서 고문을 하면 옷에 똥을 싸면서 하지 않은 짓도 했다고 할 것입니다. (25-163,…1969.10.3)
왜정 때 내가 12시간 가까이 고문을 받고 피를 토한 적도 있었고, 15분 동안 사람을 미치게 하던 평생 잊지 못할 그런 고문도 받았습니다. 그것을 12시간 받으면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나왔습니다. 맞으면서 뒤로 벌렁벌렁 나자빠지고, 죽은 피가 주루룩 쏟아지도록 매를 맞으면서도 ‘쳐 봐라! 그 몽둥이가 부러지나, 내 뼈가 부러지나 보자!’ 하며 견뎌냈습니다. (27-74,…1969.11.23)
선생님이 피를 토하며 사경을 몇 번이나 넘나들었습니다. 감옥에서는 함께 있던 동지들에 대한 책임과 의리를 위해 생명을 걸고 나 혼자 싸웠다고 말했습니다. 죽인다고 위협해도 말을 안 했습니다. (23-135,1969.5.18)
여러분, 너무 피곤하면 코피가 납니다. 코피가 안 터지면, 뇌출혈이 되는 것입니다. 코피가 나는 것은 그 방지책입니다. 고단하게 될 때 혈압이 높아지는 것을 알기 때문에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고문당할 때는 반드시 숨통을 만들기 위해 피를 흘리고 가야 됩니다. 입술을 깨물든가 혓바닥을 깨물든가 해서 피를 흘리고 구멍을 뚫어 놓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내가 가르쳐 줘 가지고 많은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의 생애노정은 편안한 길이 아니고 쉬운 길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까지 수많은 죽음 길이 구비쳐 왔지만, 그 고개를 다 넘었습니다. (206-310,…1990.10.14)
이북에 가서 감옥살이도 했지만, 그때는 돈 때문에 걸려 들어갔습니다. 화폐문제 때문에 걸려 들어갔던 것입니다. 돈에 대한 미련을 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공산주의에 대해 요만한 미련도 못 갖게 하기 위한 하늘의 작전이었고, 공산권 내에 있던 기독교에 관심을 못 두게 한 하나님의 작전이었습니다. 공산권 내에 있던 교회를 믿지 못하게끔 끊어 버린 작전이었고, 그 나라도 믿지 못하게 끊어 버린 작전이었습니다. 일체를 부정시키기 위한 작전이었던 것입니다. (161-198,…1987.2.3)
선생님이 석방됐을 때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거의 죽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따르던 사람들은 선생님이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다시 살아난 것은 하나의 기적이었습니다. (52-153,1971.12.27)
선생님이 교회운동을 전개하자 식구들이 늘어났습니다. 그 당시에 북한 정부의 정책은 모든 종교를 말살하려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기성교회 목사들은 교회의 많은 신도들이 선생님에게로 왔기 때문에 선생님을 고발했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이 세 번째로 투옥됐습니다. (52-155,…1971.12.27)
선생님은 북한 공산당의 감옥에 들어가서 2년 8개월 동안 중노동을 했습니다. 무슨 노동이었느냐 하면 비료공장의 일이었습니다. (35-185,…1970.10.13)
선생님은 그런 일을 하려고 태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치 선생님이 복귀섭리를 하는 것처럼 모든 심정과 모든 성의를 그 일에 쏟았습니다. 항상 작업하던 동안에 영계에서 경험했던 것을 생각했고, 훗날 선생님의 후손들과 선생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보여 줄 영화에서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생님은 휴식시간이라는 벨이 울려도 못 들었습니다. (52-168,…1971.12.28)
1950년 10월 14일, 그러니까 선생님의 사형집행 예정일 하루 전날 맥아더 원수의 연합군이 선생님을 구출해 준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168-236,…1987.9.21)
유엔군이 상륙함으로 말미암아 선생님이 감옥에서 나오게 된 그것이 민주 세계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 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유엔군이 상륙하여 감옥문을 열어 가지고 선생님을 구출했기 때문에 민주 세계가 구원받고 후원받을 수 있는 인연이 남아졌다는 것입니다. (54-195~196,…1972.3.24)
통일교회에서 10월달은 해방의 달입니다. 10월 4일(서대문형무소 출감일)이 그렇고, 10월 14일(흥남수용소 출옥일)이 그렇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앞서는 달입니다. 그때 내가 사랑하던 가정을 잃어버렸고, 사랑하던 처자까지도 다 잃어버렸습니다. (147-329~330,…1986.10.1)
1954년에 통일교회라는 간판을 붙이고 출발했습니다. 그때도 남한에서 국가적인 반대를 했습니다. 전체가 반대했다는 것입니다. 1954년, 55년, 56년, 57년을 중심 삼고 선생님이 또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감옥에 들어가던 놀음이 벌어진 겁니다. 반대가 벌어진 것입니다. 3년 간은 언제나 탕감을 해야 합니다. 원리가 그렇게 돼 있습니다. (87-59,…1976.5.1)
1955년 이화여대 사건으로 인해 가지고 전국가가 소동해서 문 총재를 잡아넣으려고 했습니다. 언제는 동아일보가 지지하더니 반대하고 그러더라는 것입니다. 그래 가지고 5대 장관이 문 아무개를 잡아 죽이려고 계획했습니다. 이박사 정권을 중심 삼고 그 놀음을 한 것입니다. 갖은 흉악한 보따리를 다 씌워 놓았지만, 죄로 걸릴 게 없었습니다. (184-273,1989.1.1)
그때 형무소에 가더라도 부끄럼 하나 없이 갔습니다. 사람들이 비웃고 손가락질하며 “저거, 저거…!” 그랬지만, ‘너희들, 10년 후에 두고 보자!’ 했습니다. 그렇게 화살을 던지던 사람들이 ‘오냐, 나는 성공할 것이다!’라고 다짐하게 한 교육의 재료로 가슴에 남아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87-224,1976.6.3)
대한민국이 문 아무개를 때려잡고 밟아 치우려고 했고, 기성교회와 정부가 하나되어 별의별 짓을 다 해 가지고 없애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공판정에서 무죄로 석방됨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통일교회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87-59,…1976.5.1)
내가 미국 대통령을 진실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했습니다. 그러나 배반당했습니다. 상원의원들도 진실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했지만 배반당했습니다. 또 미국 국민들도 진실과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대했다가 배반당한 것입니다.
태평양에 매장하려 했고, 대서양에 매장하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나는 죽어서는 안 됩니다. 살아남아야 되겠다 이겁니다. 천근같은 몸뚱이를 가지고 걷는데 정신없이 다리가 휘청거릴 때가 많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됩니다. (123-295~296,…1983.1.6)
선생님의 사건은 역사에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 역사가 2백여 년인데, 선생님의 사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원고가 누구였느냐 하면 미합중국이고, 피고는 문선명이었습니다. 그렇게 싸워 가지고 자기들이 이겼다고 하지만 역사에 죄를 지었습니다. 천년만년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할 죄입니다. 교회의 이름을 가지고 예치해 놓은 돈에 대한 세금을 안 냈다고, 탈세했다고 한 것입니다. (403-98,…2003.1.20)
미국 정부가 통일교회를 없애기 위해서 기소했을 때, 문 총재가 독일에 가서 수련하다가 한국에 들르지도 않고 날아가니까 법무부 16명의 검사들이 문 총재는 절대 미국에 안 돌아온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야단났다고 하면서 탄식했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놈의 자식들! 너희들이 굴복하는가, 문 총재가 굴복하는가 두고 봐라! 2천7백 달러 세금이야, 도둑놈의 새끼들? 억지로 죄를 덮어씌운다고 해서 씌워지나? 하늘의 기록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한 것입니다. 그놈의 자식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두고 보라는 것입니다. 다 꺼져 갑니다. (399-115,…2002.12.21)
사탄이 전권을 가지고 “레버런 문을 때려 죽여라!” 한 것입니다. 개인으로부터 가정·종족·민족·국가뿐만 아니라 지옥에 있는 모든 영인들까지 레버런 문 타도운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레버런 문이 살았습니까, 죽었습니까? 유태교와 구교 그리고 신교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공산당까지 하나돼 가지고 타도하려고 했습니다. “어떻게 레버런 문을 쓰러뜨릴 것이냐?” 해 가지고 소련과 미국이 하나되어 가지고 사방으로 공격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로 가담해서 공격했습니다.
선생님의 원수 중의 원수가 누구냐 하면 미국입니다. 한국과 함께 반대한 것이 미국 선교사들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미국을 구해 주려고 내가 24년 동안 애쓴 것입니다. 청춘 시대를 다 바쳤습니다. 감옥에 들어가 가지고 망하던 미국을 위해서 워싱턴에 6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법정에서 제1차 ‘워싱턴타임스’의 설립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그때 미국 국민은 “아이구, 만세! 레버런 문이 감옥 갔다. 만세! 망한다, 망한다!” 하며 통일교회를 깨진 바가지마냥 발길로 차 버리고 별의별 짓을 다 했습니다.
종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원수 중의 원수가 쓰러졌다고 하면서 모든 인류가 승리의 만세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 하나님과 레버런 문이 얼마나 비참했겠습니까! (309-208~209,…1999.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