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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방유취 권1 / 총론(總論)1○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약물의 조제에 대해 논함〔論合和〕
무릇 탕약(湯藥)을 조제할 때는 정밀하게 잘 짓도록 힘써야 한다. 햇약물과 오래 묵은 약물을 구별하고, 그 지역의 토질을 잘 분변하며 약물 손질〔修制〕이 법도에 맞고, 분량에 어긋남이 없어서 치료에 적합하다면 낫지 않을 질병이 없다. 만약 진짜와 가짜 약물을 구분하지 않고, 차갑고 뜨거운〔 熟〕 약물 성질을 뒤섞어버리며, 약물〔草石〕의 달고 매운 맛에 어둡고, 약물을 굽는 과정에서 약물의 본성을 잃어버리며, 체로 치는 명주〔篩羅〕는 거칠고, 약제 구성〔分劑〕에 착오가 있다면, 비록 질병을 치료한다는 이름을 내걸더라도 치유 효과는 끝내 없다.
그러므로 의인(醫人)은 모름지기 진지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계속 신경을 써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약물 손질〔修合〕을 맡겨서는 안 된다. 약물의 분량이 균등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울러 본래 처방의 취지도 잃게 된다. 약물을 빻거나 섞어버린 다음에는 그 좋고 나쁨을 밝히기가 어렵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약을 맛보거나 많은 사람들이 코로 약의 냄새를 맡는다면, 약의 정기(精氣)는 한결같이 모두 사라져버려서, 질병을 치료하고자 하더라도 효과를 보기는 참으로 어렵다. 이것이 대략 조제법〔合和〕의 허실〔盈虛〕이니 처방〔醫方〕이 볼품없었다고 탓할 수는 없는 일이다. 이것을 충분히 잘 고민해야 한다.
또한 고방(古方)에서는 약물을 대부분 수(銖)ㆍ냥(兩)으로 사용하였으며 사용하는 물은 모두 되(升)를 기준으로 삼았다. 연대(年代)가 이어지면서 점점 멀어지자 베껴서 전하는 과정에서 착오가 생겼다. 어떤 경우에는 약물 분량이 적어지면서 물의 분량이 많아지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물의 분량이 적어지면서〔 多〕 약물의 분량이 많아지기도〔 少〕 하였다. 제시하는 약물의 무게가 같지 않고 도량형기도 완전히 달라졌으니, 정밀한가 엉성한가를 판단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취사선택이 분명해지겠는가.
여기(《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에서는 약물 분량의 증감(增減)이 법도에 맞고 분량(分兩)도 정확한데, 옛 처방의 착오는 삭제하여 요즘 시대의 사용에 맞도록 하였다. 처방 중에서는 무릇 ‘푼(分)’이라고 말하였는데, 곧 2돈 반이 1푼이다. 무릇 ‘냥(兩)’이라고 말하였는데, 곧 4푼이 1냥이다. 무릇 ‘근(斤)’이라고 말하였는데, 곧 16냥이 1근이다. 【《화제지남(和劑指南)》에서는 이 아래에 “무릇 ‘등분(等分)’이라고 말하였는데, 이것은 푼(分)ㆍ냥(兩)이라고 할 때의 푼(分)이 아니라, 여러 약물들 분량의 다소(多少)가 각각 완전히 같은 것을 ‘등분’이라고 표현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무릇 탕제를 달이면서 ‘물 1대잔(大盞)을 사용한다’라고 한 것은 대략 1되(升)에 해당한다. 1중잔(中盞)은 대략 5홉〔合〕이다. 1소잔(小盞)은 대략 3홉이다. 여기에서는 간단하고 쉽도록 힘써서, 착오를 없애도록 노력하였다. 약물 손질과 달이는 데 있어서는, 질병의 위급한 상황을 해결하는데 다시는 번잡할 필요가 없이 쉽게 이해되도록 만들었다.
무릇 약을 달일 때는 당연히 아주 깨끗한 정화수(井華水)를 사용해야 하며, 정화수의 분량은 처방의 지시 분량〔多少〕에 따름으로써 착오가 없게 한다. 항상 문무화(文武火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文火〕로 살짝 넘치도록 끓여서 약물의 성질〔藥味〕이 분출되게 하며, 달이는 과정에서는 약물들이 조화를 이루도록 신경을 확실히 써야 한다. 이를 토대로 이탕(利湯)으로 사용할 때는 덜 익혀야 하므로 물은 조금 넣고 살짝 달여서 탕제를 많이 만든다. 그리고 보탕(補湯)으로 사용할 때는 잘 익혀야 하므로 물은 많이 넣고 진하게 달여서 탕제를 조금만 만든다. 달인 탕약은 새 포〔新布〕로 짠다.
탕제를 복용할 때는 차라리 약간 뜨겁다면 쉽게 소화가 되지만, 차갑다면 환자가 구역질을 하게 된다. ‘2회 복용분이나 3회 복용분으로 나누라’라고 말하는 경우는, 그 취지가 약물의 효과〔勢力〕를 적절하게 미치도록 하려는 것이다. 환자의 체력 상태〔強羸〕와 질병의 심각성〔輕重〕을 동시에 고려하면서 탕제를 복용시키거나 분량을 증감시키는 것이니, 무조건 처방 설명대로 따를 필요는 없다.
무릇 빻아서 가루 내어 환약(丸藥)을 만들 때는, 여러 겹으로 촘촘히 짠 명주〔絹〕로 곱게 가루 낸 후 꿀〔蜜〕에 넣고 버무리면 수월하게 잘 만들 수 있다. 만약 약초(藥草)들을 가루 내어 산제(散劑)를 만들 때는 가볍고 고운 명주〔絹〕를 사용하며, 술에 타서 복용하면 목에 걸리지 않는다. 광물성 약물〔石藥〕 역시 고운 명주〔絹〕를 이용해서 가루 낸 후에 약연(藥碾)으로 수백 번을 갈고 그 색깔이 잘 조화되었는지를 살피면 좋다.
무릇 탕주(湯酒 치료용으로 따뜻하게 데운 술) 속에 넣는 약용(藥用) 광물〔石藥〕들은 모두 좁쌀처럼 곱게 빻거나 또는 거친 베로 만든 체〔葛篩〕로 거를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새 면(緜)으로 싸서 탕주 속에 집어넣고 함께 달인다. 무릇 여러 약물들을 배합하여 만드는 환제(丸劑)나 산제(散劑) 약은 먼저 잘게 썰어 햇볕에 말린 다음에 빻는다. 이 중에는 약물별로 각각 빻는 경우도 있고 약물들을 한데 합쳐서 빻는 경우도 있는데, 어느 경우든 처방에서 말한 대로 따르며 윤습(潤濕)하게 만들어야 한다 【《화제지남(和劑指南)》에서는 윤습(潤濕)의 습(濕)을 ‘택(澤)’이라고 하였다.】.
천문동(天門冬)ㆍ건지황(乾地黃) 따위의 약은 언제나 먼저 잘라서 햇볕에 말린다. 그리고 완전히 분쇄되도록〔 偏碎〕 따로 간 후에, 다시 꺼내서 잘게 두드린 후 햇볕에 말린다. 비를 맞으면 약한 불로 쬐어주되, 건조되면 조금 후 식었을 때 빻는다. 무릇 젖어 있는 약물은 건조하면 크게 줄어들므로 처음에는 분량을 늘려야 하는데, 가루 낸 후 무게를 재서 바로잡아야 한다. 탕주(湯酒) 속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이렇게 할 필요는 없다.
무릇 고약(膏藥)을 만들 때는 처음에 술이나 식초에 담가서 충분히 적시되 너무 많은 술이나 식초를 쓰지는 않는다. 고약 기운이 새어 나가지 못하게 밀봉하는데, 오늘 아침부터 내일 아침까지 하룻밤 동안으로 그친다. 그리고 약한 불로 달이는데, 불길을 세 번 올렸다가 세 번 내림으로써 그 열기를 배출시키면서 약물의 성질〔藥味〕이 분출될 수 있게 한다. 불길을 올릴 때는 펄펄 끓어 넘치게 하고, 이어서 불길을 내릴 때는 가만히 끓도록 하면서 한참 뒤에야 멈춘다. 차라리 조금씩 우러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 처방 중에는 해백(薤白)이 있으면 양 끝이 누렇게 될 때까지 살짝 볶아서 사용한다. 그리고 백지(白芷)ㆍ부자(附子)가 있으면 누르스름하게 되도록 해준다. 돼지기름〔豬肪〕은 전혀 물에 닿지 않도록 하는데 섣달에 잡은 돼지의 기름이 더욱 좋다. 고약을 짤 때는 새 베〔布〕로 짠다. 만약 복용하는 고약이라면, 고약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膏滓〕도 술에 달여서 마실 수 있다. 바르는 고약이라면, 고약을 만들고 남은 찌꺼기도 환부에 붙이기에 적합하다. 대체로 이렇게 하는 것은 그 약효를 완전히 쓰고자 해서이다.
고약 속에 들어가는 웅황(雄黃)ㆍ주사(朱砂)ㆍ사향(麝香) 등은 모두 분말〔粉〕처럼 되도록 약물별로〔別〕 간다. 그리고 고약 만드는 작업이 끝나면 그 속에 투입하고, 응결될 때까지 막대기〔物〕로 재빨리 휘젓는다. 이것들이 아래에 가라앉아 엉겨 붙음으로써 고약과 분리되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고약 속에 들어가는 수은(水銀)ㆍ호분(胡粉)은 응고된 고약 속에 넣어 녹아들 때까지 간다.
무릇 도교(道敎)〔修鍊〕에서 사용하는 ‘신선(神仙)’이라거나 ‘연년(延年)’이라는 환제(丸劑)ㆍ산제(散劑)를 만들 때는 언제나 먼저 작업실〔其室〕을 정리한 후, 향(香)을 사르고 청소를 하는 데 허튼소리〔浪語〕가 나서는 안 된다. 동자(童子)에게 약물들을 빻도록 하되 아주 곱게 빻도록 신경 쓰며, 천 번 만 번 공이질을 하는데 많이 빻을수록 좋다. 부인〔婦女〕ㆍ어린이〔小兒〕ㆍ상주〔喪孝〕ㆍ산모〔產婦〕 및 고질(痼疾) 환자ㆍ육근(六根)이 완전하지 않은 장애인 및 육축(六畜)으로 하여금 만드는 광경을 보지 못하도록 하는데, 이들이 보게 되면 효과를 모두 잃는다. 하지만 응급용으로 만든 단순한 탕제와 산제들〔小湯散〕은 여기에 적용되지 않는다.
[주-C001]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 : 중국 송(宋)나라의 대표적인 의서로서 《태평성혜방(太平聖惠方)》이 정식 명칭이며, 흔히 《성혜방(聖惠方)》으로 약칭한다. 송의 왕회은(王懷隱) 등이 민간 처방과 옛 방서를 토대로 100권으로 편찬하였는데, 992년에 간행되었다. 진단과 치료법 총론, 사기(邪氣)로 인한 질병, 부위에 따른 질병, 증상에 따른 질병, 응급 및 외상에 따른 질병, 부인과, 소아과, 도교와 양생, 침구법의 순서로 질병을 다루고 있다.
[주-D001] 숙(熟) : 원문은 ‘숙(熟)’이지만 문맥상 ‘열(熱)’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
[주-D002] 다(多) : 원문은 ‘다(多)’이지만 문맥상 ‘소(少)’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
[주-D003] 소(少) : 원문은 ‘소(少)’이지만 문맥상 ‘다(多)’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
[주-D004] 편(偏) : 원문은 ‘편(偏)’이지만 문맥상 ‘편(徧)’의 오각(誤刻)으로 판단된다.
[주-D005] 육근(六根) : 감각과 사고의 근원이 되는 여섯 가지 신체 부위를 말한다. 시각의 근원이 되는 눈[眼], 청각의 근원이 되는 귀[耳], 후각의 근원이 되는 코[鼻], 미각의 근원이 되는 혀[舌], 촉각의 근원이 되는 몸[身], 생각[念慮]의 근원이 되는 의지[意]이다.
[주-D006] 육축(六畜) : 6종의 가축으로 소, 말, 돼지, 개, 양, 닭을 가리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