칫솔은 '지속가능'하고, 세탁기 세제는 '친환경적'이며, 쓰레기 봉투는 '생분해성'이라고 홍보한다. 환경에 대한 대중의 이해와 관심이 늘어나면서 '지구를 위한다'라는 문구를 붙이지 않은 물건을 사는 게 요즘 거의 불가능한 것 같다.
환경 관련 주장과 기업의 교묘한 '그린 워싱'(위장 환경주의)을 '생분해성'biodegradable과 '퇴비화 가능성'compostable 얘기로 풀어 본다.
생분해성
'생분해성'이라는 말은 참 매력적이다. 생분해된다는 것은 미생물이 분해해준다는 뜻이니, 자연이 치유되는 느낌이다. 문제는 '시간'이라는 단어를 여기에 덧붙이면 완전히 다른 얘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 막대기는 생분해된다. 바나나 껍질도 그렇다. 일부 플라스틱 역시 '충분한' 시간이 지나면 생분해될 수 있다. 생분해를 내세워 마케팅하는 일부 제품은 완전히 분해되는 데 '수백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실제로 분해되는 데 500년 넘게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 생분해성 비닐 봉투도 있다.
이게 바로 마케팅에서 생분해성이라는 단어가 논란이 되는 이유다. '어디서, 어떻게, 얼마나 시간이 지나야' 분해되는지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않는 한 이 단어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당의 흙 속에서, 산소가 차단된 매립지에서, 아니면 열∙수분∙기계장치가 동원되는 산업용 처리 시설에서 분해된다는 걸까? 그것도 아니면 인류 문명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나 분해되는 걸까?
구체적 맥락이 빠진 라벨은 과학적으로는 모호하기 짝이 없지만, 기업 측면에서는 매우 편리하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주에서는 소비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특정 일회용 제품에 '생분해성' 문구를 표시하는 걸 제한하거나 금지하고 있다.
퇴비화 가능성
'퇴비화 가능성'은 '퇴비화 조건에서 토양에 영양을 공급하는 물질로 분해되도록 설계'되었음을 의미한다. 포장재 조각으로 영원히 지구에서 떠돌아다니는 대신 이산화탄소∙물∙바이오매스와 영양분이 풍부한 퇴비로 완전히 돌아간다는 뜻이다.
퇴비화 가능 플라스틱으로 인증 받으려면 EL724, ASTM D640, EN13432 같은 공인된 국내외 표준을 충족해야 한다. 이런 표준은 제품이 허용가능한 속도로 분해되는지, 그리고 분해되어 생긴 퇴비가 유해물질 없이 식물성장을 도울 수 있는지를 엄격하게 평가한다.
또한 수많은 퇴비화가능 제품이 제대로 분해되려면 '산업용 퇴비화 시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쓰레기통에 제대로 버리는 것만이 아니라, 환경 당국의 쓰레기 배출 지침을 확인하고 따라야 한다.
소비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포장재가 '생분해성'이라고 외치고 있다면, 그 소리를 확인할 의무는 소비자에게 있다.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분해되는가? 어떤 조건에서인가? 누구에게서 검증을 받았는가?
지속가능한 구매는 초록색 진한 라벨을 붙인 제품을 사는 것이 아니다. 내가 진정으로 필요로 하고, 끝까지 실제로 사용할 수 있으며, 다음 달에 더 새롭고 더 친환경적인 제품 광고가 온라인에 떴다고 해서 쉽게 갈아치우지 않을, 바로 그런 제품을 사는 것이다.